동양화의 육법전서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이립옹(李笠翁)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은 동양화 공부에 필요한 화법 이론과 청나라 이전 대가들의 그림 모사본(模寫本)을 소개한 책 이다. 이를 모르고 동양화의 근본을 안다고 할 수 없다.
우선 물에 대한 사상부터 먼저 소개하면, '돌은 산의 뼈요 물은 돌의 골수다. 골수(骨髓)는 뼈에 영양을 공급한다. 만약 뼈에 골수가 없다면 바위는 흙덩이와 같으니 이미 뼈가 아닌 것이다. 물의 성질은 지극히 부드럽지만, 산을 밀어젖히고 돌을 뚫는다. 개울이 되고 대하(大河)와 바다가 되어, 만물을 기른다.' 심오하다.
이 책은 17세기 청나라 초기 남경(南京)에 살던 부호 이어(李漁)의 별장 개자원(芥子園)에서 만들어졌다. 별장 이름을 따서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이라고도 하고, 이어(李漁,)의 호를 따서 '입옹화전(笠翁畵傳)'이라고도 부른다.
강희(康熙) 18년에 1집이 출간되고, 22년만인 1701년에 3집이 완성되었다. 이어(李漁,)가 타계하자 사위 심심우(沈心友)가 책을 마무리 지었다.
'개자원화전' 1집은 산수 수석보(山水 水石譜)다. 산, 구름, 바위, 물, 봉우리, 나무, 그리는 법이 실려있다. 2집은 난죽매국보(蘭竹梅菊譜)로 매, 난, 국, 죽 치는 법이 실려있다. 3집은 초충영모화훼보(草蟲翎毛花卉譜)로 벌레, 새, 짐승, 나비, 꽃 그리는 법이 실려있다. 각 집 첫머리에 화론을 싣고, 그 다음에 그리는 기법, 마지막에 역대 명인들 작품 모사본(模寫本)이 실려있다.
화본(畵本)은 명나라 이유방(李流芳)의 모사본(模寫本), 청나라 왕개(王槪) 왕시(王蓍) 왕얼(王臬) 삼형제가 편찬한 '산수화보(山水畵譜)'가 토대이다.
산수화 그리는 법
산수화를 그리는 데는, 포국법(布局法), 용필법(用筆法), 용묵법(用墨法), 구륵법(鉤勒法), 찰법(擦法), 준법(皴法), 염법(染法), 점법(點法), 설색법(設色法), 임모법(臨摹法), 수목법(樹木法), 수천화법(水泉畵法), 시경화법(時景畵法)이 있다.
이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준법(皴法)이다. '준'은 산, 바위, 토파(土坡)의 입체감, 양감(量感), 질감(質感), 명암(明暗) 등을 나타내는 기법이다. 뽀죽붓에 엷은 먹을 묻혀 가로뉘어 문질러 만든 주름이 '준'이다.
여기에 다시 엺은 먹을 칠하는 것을 '선(渲)'이라 한다. 그 위에 붓끝을 가지고 하나하나 직필로 가필하여 긴장미 낸 것을 '탁(擢)'이라 한다.
'점(點)'은 멀리 있는 인물을 그릴 때 쓰고, 점태(點苔)라고 해서 돌을 그릴 때 이것으로 이끼를 나타내거나, 먼 산의 나무를 그릴 때 사용한다.
아무 것도 안 그린 비단에 맹물을 칠해 그 젖은 곳에 햇무리나 달무리 고리를 내어 안개인 것처럼 필묵의 자취 보이지 않는 것을 '염(染)'이라 한다. 폭포를 그릴 때 양쪽 벼랑과 물을 나누는 것을 '분(分)'이라 한다.
산(山)
뽀족하게 생긴 산을 봉(峰)이라 한다. 평평한 산을 정(頂)이라 한다. 둥근 산을 만(巒)이라 한다. 산이 마주 이어진 것을 영(嶺)이라 한다. 산에 구멍이 있는 것을 수(岫)라 한다. 험준한 벼랑을 애(崖)라 한다. 그 사이나 밑을 암(巖)이라 한다.
길이 있어서 산으로 통하게 된 곳을 곡(谷)이라 한다. 통하는 길이 없는 것을 욕(浴)이라 한다. 가운데 흐르는 물을 계(溪)라 한다. 산 사이에 낀 물은 간(澗)이라 한다. 산 밑에 있는 못을 뢰(瀨, 여울)라 한다.
산 사이 평탄한 곳을 파(坡, 고개)라 한다. 물 속에 돌출한 바위를 기(磯, 물 가)라 한다. 바다 속에 있는 산을 도(島)라 한다.
산 그리는 법
산을 그릴 때는 먼저 대체적인 윤곽을 그린 다음에 준(皴)을 베풀어야 한다. 사람들은 세부부터 그리어 높은 산을 만들어 가는데, 이것은 큰 병폐다. 옛 사람들은 큰 화면을 앞에 놓고 산이 나뉘고 만나는 대체적인 형세를 먼저 그렸다. 그러므로 걸작이 되었다.
빈(賓)은 나그네요, 주(主)는 주인이다. '빈주조읍(賓主朝揖)'이란 나그네와 주인이 손을 모아 인사하는 것이다. 주인 격인 산과 나그네 격인 산이 서로 기맥 상통해서 떨어지는 일 없이 적절히 안배해야 한다.
산에는 삼원(三遠)이 있다. 밑에서 산마루를 우러러보는 것을 고원(高遠)이라 한다. 산 앞에서 산 밑을 굽어보는 것을 심원(深遠)이라 한다. 가까운 산에서 먼산을 바라보는 것을 평원(平遠)이라 한다.
고원의 형세는 돌올(突兀)하여 치솟고, 심원의 의취(意趣)는 끝없이 중첩하며, 평원의 멋은 표묘한 데 있다.
파(坡)는 석파가 있고 토파가 있으며, 어느 것이나 위가 평평하게 생겼다. 파의 상면(上面)은 깍아서 평평히 다져진 것 같아야 하고, 측면의 준(皴)은 흙이나 돌이 긴 세월 풍설에 시달린 나머지 깨어지고 벗겨져서 저절로 생긴 듯해야 한다.
나무 그리는 법
산수화는 먼저 나무를 그리고, 나무를 그릴 때는 먼저 줄기를 그린다. 줄기를 그린 다음에 거기에 점을 가하면 무성한 숲이 되고, 가지를 많이 그리면 고목이 된다. 고목은 반드시 죽었다는 뜻이 아니라, 겨울에 잎이 시들어 떨어진 나무를 의미한다.
노근(露根)은 겉으로 들어난 뿌리이다. 산이 기름지고 땅이 두터운 데서 자란 나무는 대개 뿌리가 땅 속에 숨겨져 있다. 천인절벽 바위 틈에서 돌에 끼이고 물에 씻기고 있는 나무가 높이 치솟은 고목이 되면, 매양 뿌리를 노출시키게 마련이다. 마치 세속을 벗어난 신선이 바짝 야위고 나이가 늙어서 힘줄과 뼈가 들어난 것처럼 보여 한층 특이한 느낌을 준다.
한 떨기 잡목을 그릴 때, 그 중 한두 그루 뿌리가 드러나게 하여 변화를 주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반드시 나무에 혹이 있고 마디가 있는 것을 가려서 뿌리가 드러나게 해야 한다. 모든 나무 뿌리가 드러나게 하면 아취가 없어진다.
산수화 속 인물 그리는 법
산수화의 인물은 너무 정교하게 그려서도 않되며, 너무 기세가 없어도 않된다. 산과 사람이 서로 마주 보고 있어, 사람은 산을 보고 있는듯 하고, 산은 사람을 굽어보고 있는 듯 해야 한다. 거문고는 달에게 들려주는 듯하고, 달은 고요히 거문고를 듣고 있는 듯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그림을 보는 사람이 그림 속에 뛰어들어 그림 속 인물과 자리를 같이 하지 못함을 한탄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산은 산이요, 사람은 사람이라는 식이 되어 전혀 관계없는 것이 된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예운림(倪雲林)의 그림처럼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공산인 쪽이 낫다.
산수화 속의 인물은 학처럼 맑게 여위어서 멀리서 보기에 신선 같은 느낌이 들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세속적인 냄새가 나서는 않된다. 세속적인 냄새가 나면 산수화의 흠이 된다.
집과 오솔길 그리는 법
산수화에서 집은 정다운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인가를 난잡스레 막 그려넣으면 시정의 속된 기분이 되고 만다. 요즘 그림 속에 집을 적당한 곳에 그려 넣을 줄 아는 사람은 겨우 몇 명 있을 뿐이다. 이 몇 명을 제외하면 산수는 곧잘 그리면서도 거기 그린 인가는 치졸하다.
전에 요간숙(姚簡叔)이 그린 그림을 보았는데, 수수알 정도의 작은 집이라도 반드시 전후가 상통하고 곡절(曲折)하여 아취가 넘쳐 있었고, 산은 집을 돌아보고 집은 산을 돌아보는 묘미가 있었다.
집은 물론 신선을 살게 하는 곳이다. 그러나 콩이나 오이 시렁같은 청절(淸絶)한 것도 신선 못지않는 경치다. 그러므로 시골 경치를 그리는데 몇가지 담박한 것들도 착안해야 한다. 싸리문에는 등나무 덩굴이 감기고, 돌계단은 잡초에 묻혔으며, 기와는 찢긴 비늘처럼 여기저기 빠져있고, 벽은 거북이 잔등처럼 금이 가 있다. 아주 황폐한듯 하면서 자연스런 기운이 넘친다.
산중의 은자는 반드시 서재에 있어야 유한(幽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으로 통하는 소로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덕이 높은 사람의 초막임을 알 수 있다. 사람으로 하여금 흠모의 정을 억누르지 못하게 한다. 이런 느낌이 드는 문(門)과 소로(逕)를 그릴 때 비로소 능수(能手)라 할 만하다.
구름 그리는 법
구름은 천지의 큰 장식이다. 산천에 금수(錦繡), 즉 비단옷을 입히며, 속력이 빠른 것은 달리는 말과 같아서 돌에 부딪치면 소리가 날 것 같다.
옛사람들이 구름을 그린 것은 보면 두 가지 비결이 있다.
하나는 천암만학(千巖萬壑)이 겹쳐 있는 곳을 구름으로 한가롭게 만드는 법이다. 푸른 봉우리가 하늘에 치솟았는데 갑자기 흰 구름이 가로 휘날리며 층층으로 산을 뒤덮는다. 왼쪽에서 구름이 개이면 푸른 산마루가 다시 모습을 나타낸다. 이는 문인들의 이른바 '망리투한(忙裏偸閑)', 바쁜 중에 한가로움을 훔쳐내는 법과 같다.
또 하나 방법은 봉우리가 하나 밖에 없어 구도가 너무 한가한 경우, 구름을 가지고 화면을 바쁘게 하는 법이다. 산과 물이 다한 곳에서 구름이 일어나고, 갑자기 바다에 물결이 나타나는 것이 그런 식이다.
그래서 산을 운산(雲山)이라 하고, 물을 운수(雲水)라 한다.
내가 산수 그리는 법에서 구름을 마지막으로 돌린 것은, 옛사람들이 '구름은 산수의 마감'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까닭이다.
매화 그리는 법
매화나무가 맑고 깨끗한 것은 꽃이 야위기 마련이며, 나무 끝이 연한 곳에서 살찐 꽃이 핀다. 가지가 겹친 나무에는 많은 꽃이 피고, 홀로 나온 가지 끝에서는 성기게 핀다.
줄기를 그리는 데는 용처럼 꾸불꾸불하고 쇠처럼 굳건하게 하며, 나무 끝을 그리는 데는 긴 것은 화살처럼, 짧은 것은 창처럼 그려야 한다.
화폭에 공백이 있을 때는 나무를 끝까지 그리며, 아래가 좁을 때는 뿌리까지 다 그리지 않는다.
만약 벼랑에 있어 가지가 기괴하고 꽃이 성긴 매화를그릴 때는, 꽃망울이나 반쯤 핀 매화를 그려야 한다. 만약 바람에 날리고 눈이 쌓여서 가지가 얕게 드리운 모습을 그리는 데는, 줄기는 늙고 꽃은 적을 필요가 있다. 만약 안개 낀 가운데 서있는 가지가 어리고 꽃은 예쁜 매화를 그리는 데는, 꽃이 반쯤 벌어져 있어야 어울린다. 만약 서리를 맞고 아침 햇빛에 비쳐서 굳세고 곧게 서 있는 모습을 그린다면, 꽃은 작고 향기가 풍기도록 해야 한다.
꽃잎 그리는 법은 뾰족하지도 않고 둥글지도 않게 붓 따라 적절히 가감한다. 꽃 핀 모양을 그릴 경우, 만약 꽃이 칠푼(七分) 쯤 피어있을 때는 꽃잎을 전부 표현하고, 반개(半開)일 때는 그 반만 나타내고, 정면을 향해 피어있을 때는 전체를 나타낸다. 이것을 무분별하게 구분하지 못함은 불가하다.
매화 그림은 여러 화풍이 있다. 성기면서 교태를 머금은 것이 있고, 번성하면서 굳센 것이 있고, 늙었으면서 고고한 것이 있고, 맑으면서 꿋꿋한 것이 있으나, 그 모두를 다 말할 수 없다.
매화 그리는 법을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이런 일들을 자세히 이해해야 한다.
난초 그리는 법
난은 먼저 잎을 그려야 하는데, 자유로이 팔을 휘두르기 위해서는 가벼운 붓이 좋다.
잎은 두 잎 중 하나는 길고 하나는 짧게 하며, 떨기로 뻗은 잎은 종횡으로 엇갈려야 한다. 꺽인 잎이나 아래로 드리운 잎을 그려넣어 형세를 돋우고, 굽어보는 잎이나 위로 향한 잎을 그려서 저절로 정취가 생기도록 하는 것이 좋다.
잎에서 앞 뒤 것을 구별하도록 하려면 진한 먹과 엷은 먹을 써서 차이가 나도록 한다.
먼저 엷은 먹으로 꽃을 그리고, 그 다음 부드러운 줄기를 그려 그것을 받는다.
활짝 핀 꽃은 위로 향해 있고, 피기 시작한 꽃은 반드시 비스듬이 기울어져 있다. 개인 날 꽃은 다투어 해를 향하고, 바람 속의 꽃은 웃으면서 객을 맞이하는 듯하다. 드리운 꽃의 가지는 이슬에 젖은 듯하고, 꽃술은 향기를 머금은 듯하다.
다섯장 꽃잎을 손바닥처럼 그려서는 안된다. 손가락이 굽던가 펴지던가 하는 것처럼 그려야 한다.
꽃 핀 줄기는 가늘고 작은 잎으로 좌우에서 포위되고, 꽃술은 진한 먹으로 그린다. 꽃을 그린 다음에는 화면의 조화를 위해 다시 잎을 그려넣는다. 짧은 잎을 몇 개 그려서 뿌리를 싸듯이 한다.
꽃이 여러 개 피는 혜초(蕙)의 줄기는 빼어나게 서 있는 자세가 좋고, 잎은 굳세게 그릴 필요가 없다.
*일경일화(一莖一花)를 난(蘭)이라 하고, 일경다화(一莖多花)를 혜(蕙)라 한다.
국화 그리는 법
국화는 성질이 고고하고 그 빛깔이 아름답고 그 향기가 늦다.
이를 그리려면 먼저 가슴에 국화의 이런 모습을 품어야 비로소 그 그윽한 운치를 그릴 수 있게 된다.
국화는 초본이지만 서리에도 오연한 모습을 지니고 있어서 소나무와 아울러 일컬어진다. 따라서 그 가지는 외롭고 억세게 그려야 하니, 봄꽃의 가지가 부드러운 것과 처음부터 같을 수 없다. 잎은 윤끼가 있는 것이 좋으니, 늦가을 다른 초목이 시들어 있는 것과 같을 수 없다.
꽃은 높은 것도 있고 낮은 것도 있되 번잡하지 않아야 하며, 잎은 상하전후 서로 덮고 가리면서 난잡하지 않아야 한다. 가지는 서로 뒤얽혀 있으면서 무잡(蕪雜)하지 않아야 하며, 뿌리는 겹쳐 있으면서 늘어서지 않아야 한다.
꽃과 꽃술은 미개(未開)한 것과 반개한 것을 고루 갖추어서, 가지 끝이 눕든가 일어나 있든가 하여야 한다. 만개한 것은 무거우므로 누워 있는 것이 어울리고, 미개한 것은 가벼울 수 밖에 없으므로 끝이 올라가는 것이 제격이다. 이것이 그 대략이다.
만약 더 깊은 정취를 찾는다면, 일지일엽(一枝一葉)과 일화일예(一花一蘂)가 각기 그 멋을 나타내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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