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 제4편 서문

무엇이 진정한 다도(茶道)일까/ 육우(陸羽)/ 다경(茶經)

김현거사 2016. 2. 27. 08:16

 

   육우(陸羽). 다경(茶經)

 

  '다경(茶經)'은 세계 최초의 차에 관한 책이다. 당나라 때 육우(陸羽, 733-804) 저술로, 우리나라 초의(草衣, 1786~1866) 스님이 홍현주로부터 차를 알고 싶다는 부탁을 받고 편지로 답한 '동다송(東茶頌)' 보다 천 년 전 책이다. 

 육우는 733년 용개사(龍蓋寺)의 지적선사(智積禪師)가 복주(復州) 경릉군(竟陵郡) 호수 제방을 걷다가 풀숲에서 아기를 발견하여 절로 데리고와 키웠다고 한다. 성은 스님 성을 따 '육(陸)'으로, 이름은 점괘에 '큰기러기가 서서히 땅에서 날아오른다' 뜻이 나와 '우(羽)'로 지었다. 자는 큰기러기를 뜻하는 홍점(鴻漸) 이다.

 육우는 얼굴이 못생기고 말마저 심하게 더듬었지만 재주가 많았다. 20세 때  경릉 사마(司馬, 병권 통솔자)  최국보 눈에 들어 그가 추부자(鄒夫子)에게 보내 공부를 시켰는데, 거기서 찻잎 따고 차 끓이는 법을 배웠다. 화문산 남쪽 샘물로 차를 끓여, 이 샘을 육우천(陸羽泉)이라 부른다. 22세 때 최국보와 헤어질 때 육우에게 흰 나귀 한 마리와 괴목으로 만든 서함을 선물하였으니, 최국보가 그를 얼마나 아꼈던가 알 수 있다.

 756년 '안록산(安綠山)의 난'이 일어나자 피신하여, 24세 때 절강성(浙江省) 호주(湖州)의 한 암자에 은거하면서 차를 연구하였다27세 때 여류 시인 이야(李冶)의 차 스승이 되기도 했다. 이야는 도관(道觀, 도교 사원)의 여도사였고 나중에 덕종의 총애를 받았다.

 또 시인이던 교연(皎然)스님과 교분을 가져, 육우는 교연의 묘희사(妙喜寺) 근처에 초가집을 짓고 내왕하면서 차와 시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교연은 어느 해, 국화를 감상하며 ‘9일 육처사 '우'와 함께 차를 마시다(九日與陸處士羽飮茶)’란 시를 읊었다.

 
9 산승의 암자엔(九日山僧院)
국화가 동쪽 울타리에 노랗게 피었는데(東籬菊也黃)
속인들은 흔히 술에 국화를 띄우지만(俗人多泛酒)
누가 국화 향을 빌려와서 차 향을 돕게 하는가(誰借助茶香)

 

 육우는 교연스님 권유로 옛사람의 차의 내력을 집대성하기로 결심하고, 오흥(吳興)의 암자에 은거하면서, 호를 '상저옹(桑苧翁)'으로 하고, 저서를 집필하여 28세 때 '다경(茶經)' 초고(草稿)를 완성했다.

 774년 육우는 명필 안진경(顔眞卿)이 호주자사(湖州刺使)로 부임해 '운해경원(韻海鏡源)'을 저술할 때  참여했고,  안진경은 왕희지와의 교류를 주선해주었다. 그 때 들은 차의 고사를 제7장에 보충하여 '다경(茶經)'을 탈고했다.  

 804년 72세의 나이로 호주(湖州)에서 생을 마쳤고, 육우의 묘는 항주에 있다. 다성(茶聖) 다신(茶神)으로 숭앙 받아, 1995년 10월, 항주시 인민위원회가 묘역에 ‘당옹육우지묘’라는 비석을 세웠다.

  

  다경(茶經)

 

 다경(茶經)은 310장으로 되어있다.

 

 제1장차의 근원을 기술하였다

 차는 남방에서 자라는 상서로운 나무로 한두 자에서 수십 자까지 자란다. 나무는 과로목(瓜蘆木) 같고, 잎은 치자(梔子) 같으며, 꽃은 흰장미 같고, 열매는 종려(棕櫚) 같으며, 줄기는 정향(丁香) 같고, 뿌리는 호도(胡挑)를 닮았다.

 차를 뜻하는 글자는 차(茶), 가(檟), 설 (蔎), 명 (茗), 천 (荈)이 있다. 곽홍농(郭弘農)은 말하기를 '일찍 딴 것을 차라 하고, 늦게 딴 것을 명(茗), 혹은 천(荈)이라 한다' 하였다.

 상품(上品) 차는 자갈밭에서 나며, 중품(中品)은 사질(砂質)에서 나며, 하품(下品)은 황토땅에서 자란다.

 심는 법은 참외 심듯이 하는데, 삼 년이면 딸만 하다. 차나무는 산야의 야생차가 상이며. 밭에서 재배된 차는 차등품이다.

 색깔은 자색(紫色)이 으뜸이요 녹색(綠色)이 그 다음이다.

 첫 순이 상품이고, 싹이 그 다음이며, 잎이 말린 것이 상이며, 펴진 것이 다음이다.

 

 제2장은 다구(茶具)를 설명하였다.

 바구니, 광주리, 시루(甑), 절구통(杵臼), 송곳칼(棨), 두드리개 채찍(撲), 선반(棚), 꿰미(穿), 차를 보관하는 장육기(藏育器) 등을 기술하였다.

 

 제3장은 채엽(採葉)과 제다(製茶) 과정을 기술하였다.

 차를 따는 시기는 음력 2-4월 사이이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에 밤이슬 흠뻑 머금은 잎을 딴 것이 상품이고, 한낮에 딴 차는 그 다음이며, 흐린 날씨나 비가 올 때는 따지 말아야 한다.

 차 싹 중에서도 송곳의 끝처럼 쑥 빼어난 자순(紫筍)과 녹아(綠芽)를 골라 딴다.

 차를 만드는 방법은 수증기로 찌고(蒸), 절구통에 찧고(搗), 떡차의 경우는 두드리고(拍), 불에 쪼이고(焙), 틀에 넣고 압착하여 동그라미, 네모나 꽃 모양으로 박아내고, 대발에 펼쳐 말리고, 말린 차의 한가운데 창으로 구멍을 뚫은 후, 막대기로 꿰어 배로(焙爐)위에서 다시 불에 쬐어 말리고, 대나무나 닥나무 껍질을 꼬인 꿰미에 차를 꿰어서, 습기가 스미지 않는 종이나 나무통에 보관한다.

 떡차를 달여 마시고자 할 때는 장육기(藏育器)에서 차를 꺼내어 집게에 끼워서 불에 바싹대고, 여러 번 뒤쳐 가며 바르게 구워지도록 맞춘다. 떡차의 표면이 마치 두꺼비의 잔등처럼 우굴 쭈굴할 정도로 부풀어 오르게 굽는다.

 

 제4장은 차 끓이고, 병차(餠茶) 건조하는데 필요한 29가지 다기(茶器)를 소개하였다.

 *차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기구를 다구(茶具)라고 하, 차를 달이고 마시는데 필요한 것을 다기(茶器)라 한다.

 풍로(風爐), 타고 남은 재를 회수하는 회승(灰承), 떡차를 불에 쪼일 때 쓰는 청죽(靑竹)으로 만든 죽협(竹莢), 불에 쪼인 차를 담아 향기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한 지낭(紙囊). 차가루 모울 때 쓰는 불말(拂末), 탕 젓는데 쓰는 젓가락 목협(木莢), 소금 뜨는 숟가락 게(揭), 찻잔 완(碗), 생수 담는 수방(水方), 뜨거운 열탕 담는 숙우(熟盂),  다기 씻는 척방(滌方), 차 찌꺼기 담는 재방(滓方), 다기 집어넣는 대(竹)로 만든 도람(都籃) 등이다. 

 

 제5장은 차 끓이는 법을 기술하였다. 

 차 달이는 불은 숯을 쓰며, 그 다음으로는 섶나무를 쓴다.

 숯의 선택은 고기를 구웠던 적 없는 깨끗한 것을 사용한다. 뽕나무, 홰나무, 오동나무가 적당하다. 측백나무 계수나무 같이 기름성분이나 특이한 향을 지닌 것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썩은 나무나 오래된 폐가구나 수레바퀴처럼 다른 곳에 사용되었던 나무는 사용할 수 없다.

 

 차에 사용하는 물은 산수(山水)가 상이요, 강물이 중이고, 우물물이 하등품이다.

산수는 젖처럼 돌 사이 못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좋으며(乳泉 石池漫流), 폭포같이 용솟음 치는 물과 여울물은 오래 먹으면 사람 목 부분에 병이 생길 수 있다. 강물은 가급적 사람과 멀리 떨어진 것을 취함이 좋고, 우물물은 사람이 많이 긷는 곳의 물이 좋다.

 

 찻물 끓이는데 있어서는, 첫번째 어슴푸레하게 물 끓는 소리에서 솥바닥에 물고기의 눈(魚目)과 같은 기포가 생겨나며 약간의 소리가 난다. 이때가 일비(一沸)이다. 이때 숯불에 의해 물위에 검은 수막(黑雲母)이 뜨면 이를 제거한다. 흑운모는 차의 순정한 맛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마시지 않는다.

 두 번째는 솥의 가장자리까지 열이 전도되어 물이 뒤집히며 기포가 구슬같이 올라온다. 이때가 이비(二沸)이다. 세 번째 단계는 물결이 넘실거리고 북치는 소리가 난다. 이때가 삼비(三沸)이다. 그 이상 올라가면 물이 쇠어서 먹지못한다.

 표주박으로 미리 떠내어 물바리에 식힌 물을 찻솥에 붓고 찻물의 온도를 급히 식힌다. 이것을 구비(救沸) 혹은 육화(育華)라고 하는데, 이는 찻물의 정기(精氣)를 기르기 위함이다.

 찻물 위에 뜨는 차가루의 거품을 말발(沫餑)이라고 한다. 큰 꽃모양 거품을 발(餑)이라 하고, 작은 거품은 말(沫)이라 하며, 가늘고 가벼운 거품을 화(花)라 한다. 말(沫)의 모습은 녹색 이끼가 물가에 떠 있는 것과 같고, 국화꽃이 쟁반에 떨어져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 모양이 마치 대추꽃이 둥근 연못가로 두둥실 떠 있는 것 같고, 연못이나 구부러져 흐르는 물가에 푸른 부평초가 자라는 모양 같으며, 맑게 개인 날 하늘에 비늘구름이 떠 있는 것 같다. 발(餑)과 말(沫)이 포개어져 있는 모습은 희끗희끗하게 눈이 쌓인 것 같다.

 차를 나눌 때 특히 주의할 것은 말(沫) 발(餑) 화(花)를 고르게 나누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세가지 거품을 총칭하여 '화(華)'라고 한다. 거품은 차탕의 꽃으로서, 한사발 춘설차는 제호(醍醐)보다 낫다.

 물 한되를 끓이면 차가 다섯 사발정도 나온다. 끓여낸 차 가운데 가장 향기로운 것은 첫 번째와 두번 째 사발이다. 세번 째는 그 다음이고, 그 다음이 네 번째 다섯 번째 사발, 그 다음은 갈증이 심하지 않으면 마시지 말도록 한다.

차탕은 뜨거울 때 잇대어 마셔야 한다. 무겁고 탁한 것은 아래에 엉키고, 정화는 위에 뜨기 때문이다. 만약 차가 식으면 정화의 향기도 열기를 따라서 사라진다.

 차의 성품은 검소하므로 진하게 마셔서는 안된다. 차가 진하면 참된 맛이 숨어버리기 때문이다.

 차탕의 빛깔은 담황색이다. 그 향기는 매우 아름답다. 차 맛은 단 것은 (檟)이며, 달지 않고 쓴 것은 천 (荈)이고, 마시면 쓰지만 목구멍으로 넘어가면서 단 것이 차(茶) 이다.

 목이 마르면 장((醬)을 마시고, 근심과 번뇌를 벗어버리려면 술을 마시고, 정신을 맑게 하고 잠을 깨려면 차를 마신다. 

 

제6장은 차의 음용편이다. 

 육우는 이 장에서 '물을 마시는 것은 생명을 위해서이며, 차를 마시는 것은 정신을 위한 것'이라 선언해서, 물 마시는 것과 차 마시는 것의 차이를 분명히 했다. '음차의 요체는 정미함을 맛보고 마음의 참모습과 자연의 도를 깨달으려면 마땅히 맑게 마시는 것을 아름다움으로 삼아야 한다' 하였다. 

 

 趙原의 陸羽烹茶圖

 

 차를 음료를 삼은 것은 신농씨(神農氏)로 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춘추, 진한(秦漢), 삼국시대 사람들이 모두 차 마시기를 좋아했고, 당(唐)에 이르러 극성에 달했다. 당시 차는 조차(粗茶), 산차(散茶), 말차(末茶), 병차(餠茶) 등이 있고, 일부 사람들은 파, 새양, 대추, 귤껍질, 수유(茱萸), 박하 등을 넣고 끓이기도 했다.

 차에는 아홉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

 첫째는 제조인데, 흐린 날에 채집하고 야간에 말리면 제조가 부당하다. 둘째는 감별하는 법인데, 입으로 씹어 냄새를 분별하고, 코로 향기를 쿵쿵 맡는 감별법은 부당하다. 셋째 다기 다루는 법인데, 노린내 나는 가마와 비린내 나는 대야를 사용하면 용기가 부당하다. 넷째 불 다루는 법인데, 연기 나는 장작과 고기 구운 숯을 사용하면 연료가 부당하다. 다섯째 물 선별하는 법인데, 급히 흐르는 물과 막혀서 정체된 물을 사용하면 용수가 부당하다. 여섯째 떡차 굽는 법인데, 밖은 익고 안은 생것으로 구우면 굽는 방법이 부당하다. 일곱째 떡차 가루 내는 방법인데, 너무 가늘게 찧어 티끌같이 부순 가루를 만들면 찧는 법이 부당하다. 여덟째 차를 다리는 방법인데, 조작이 숙련되지 못해 너무 휘저어 급하게 다리는 것은 부당하다. 아홉째 음다방법인데, 여름에 마시고 겨울에 마시지 않으면 음용이 부당하다.(사시사철 마시어 심장과 폐장을 청량하게 해야 한다)

 상술한 '9가지 어려운 점'을 해결하면, 한 공기의 좋은 차를 마실 수 있다.

 

 제7장은 차의 고사를 설명하였다.

 삼황(三黃) 때에 염제(炎帝)인 신농씨(神農氏)로 부터, 노(魯)나라 주공(周公), 제(齊)나라 안영, 한(漢)나라 때 선인(仙人)인 단구자(丹丘子), 황산군(黃山君), 사마상여(司馬相如), 양웅(楊雄) 등 선인(仙人)들이 차 마신 일화를 기술하였다.

 

 제8장은 차 산지를 기술하였다.

 당시 전국 40여 차 생산지의 차를 등급을 매겨 소개하였다. 그가 매긴 차의 등급은 상(上), 차(次), 하(下), 우하(又下)의 4등급이다. 산남지방의 협주(峽州), 양주(襄州), 형주(荊州), 형주(衡州), 금주(金州), 양주(梁州) 차를 품평하고. 회남(淮南)지방의 광주(光州), 의양군(義陽郡), 서주(舒州), 수주(壽州), 황주(黃州) 차를 소개했다. 또 절서(浙西)지방의 호주(湖州), 상주(常州), 선주(宣州), 항주(杭州), 윤주(潤州), 소주(蘇州) 차를 품평하고, 검남(劒南)지방의 팽주(彭州), 면주(綿州), 촉주(蜀州), 미주(眉州), 한주(漢州) 차를 소개하고, 절동(浙東)지방의 월주(越州), 명주(明州), 태주(台州) 차를 소개했다.

 

 제9장에서는 다구의 간소화를 설하고 있다.

 간소함(簡)은 검약함(儉)에서 나오고 검약해야 고상하다.

 벌판의 절간이나 동산에서 제다를 할 때에는 송곳칼인 계(棨), 두드리게 채찍인 박(樸), 꿰뚫개 관(貫), 선반 붕(棚), 꿰미 천(穿), 차 보관하는 장육기(藏育器) 등 7가지는 모두 쓰지 않는다.

 다기들을 돌 위에 앉힐 수 있다면 다기를 거두어 진열하는 구열(具列)은 필요 없고, 마른 섶나무와 다리 굽은 솥을 쓸 수 있다면 풍로(風爐), 재받이 회승(灰承), 부젓가락 화협(火夾) 따위는 들고 가지 않아도 된다.

 만약 샘물이나 산골물 근처에서 차를 달이면 물통 수방(水方), 개숫물통 척방(滌方) 등은 필요치 않다.

 또 가루차가 정제된 것이라면 체로 쓰는 라(羅)는 휴대할 필요가 없고, 가루털개 불말(拂末)도 필요치 않다 대젓가락 죽협(竹夾), 주발 완(碗), 물바리 숙우(熟盂), 소금단지 차궤(茶櫃)를 대광주리에 담았다면, 모듬바구니 도람(都籃)은 필요치 않다.

 그러나 정식 다법을 행할 때는 24개의 다구나 다기 중에서 하나만 빠져도 좋은 차를 우릴 수 없다.

 

 제10장에서는 흰 명주천에 앞의 9장까지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내었다.

 

*'다경(茶經)'을 보면, 인류 최초 차 마신 사람은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다. 신농씨는 호북성(湖北省) 기산(岐山) 아래 강수(姜水)에서 양을 몰던 부락민과 살았으므로 성(性)을 강(姜)씨라 했다.

 머리가 소 모양인 신농씨를 염제(炎帝, 불 임금)라고 부르는데, 그가 처음 음식을 불로 끓여 먹는 방법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는 농사짓는 법을 백성들에게 알려 주었고 온갖 초목을 헤치고 다니며 수백종의 식물을 맛보아 약초를 찾아내었다. 산야를 거닐면서 하루 칠십여 가지씩 풀잎, 나뭇잎을 씹어 그 효용을 알아보다가 독에 중독되었는데 찻잎을 씹었더니 그 독이 사라졌다. 그로부터 찻잎에 해독의 효능이 있음을 알고 이를 세상에 널리 알렸다.

 지금 그의 능(陵)을 차능(茶陵)이라 부른다. 중국인은 지금도 햇차가 나오면 먼저 다신(茶神)인 신농씨에게 차례를 지낸다. 차(茶)라면 먼저 동이족 신농씨를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