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0 년 전 시심(詩心)은 어떤 것인가/ 공자의 '시경(詩經)'
‘시경(詩經)’은 말 그대로 ‘시의 경전(經典)’이다. 공자가 서주(西周)부터 춘추시대(BC 6세기)까지 전승된 시 3,000여 편 중 305편을 가려서 정리했다고 한다.
공자는 만년에 제자를 가르침에 육경(六經) 중에서 시를 첫머리로 삼았다. 시가 인간의 순수한 감정에서 우러난 것이므로, 정서 순화에 그 만한 전범(典範)이 없다고 생각했다.
공자는 '시 300편을 한 마디로 사악함이 없다(思無邪).'고 했다. '즐겁되 음탕하지 않고 슬프되 상케 하지 않는다(樂而不淫, 哀而不傷)' 했다. 논어 <양화편>에서 '너희들은 왜 시경을 배우지 않느냐? 시경은 감흥을 일으켜 정서를 순화하고 사물을 바르게 관찰할 수 있게 하며, 많은 사람들과 사귀게 하고, 불의를 비판할 수 있게 하며, 집안에서는 부모를 섬기고, 나가서는 임금을 받들게 하고, 새, 짐승, 풀,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하느니라.'고 했다. 아들 백어(伯魚)에게 '시경의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공부하지 않으면, 마치 담벼락을 마주하고 서 있는 것과 같다.'면서 시 공부를 권했다.
'시경'은 민간에서 모은 풍(風), 정치에 관한 아(雅), 선왕의 덕을 칭송한 송(頌)이 있다. 신내림(降神), 주술(呪謠), 제가(祭歌), 충성, 효도, 연가 등이 고루 있다. '시경'에 실린 시들은 현학적이거나 어렵지 않다. 농익거나 짙지 아니하다. 담담한 물과 같아 그것을 공자가 즐긴 것 같다.
그 몇개를 소개한다. '시경'의 분위기는 감상할 수 있으리라 짐작된다.
베짱이
베짱이 떼 많기도 하네. 너의 자손 번창하리라.
베짱이 울음소리 시끄럽기도 하네. 너의 자손 번성하리라.
베짱이 울음소리 끝도 없네. 너의 자손 번성하리라.
*베짱이는 다산의 상징이며 약으로 쓰는 상서로운 곤충이다. 베짱이가 떼지어 날갯짓을 하면서 날아오르는 모양을 묘사함으로써 자손의 번영을 축복한 시이다. 아마도 결혼식 때 춤을 추면서 불렀을 것이다.
칡덩쿨
칡덩쿨은 골짜기에 뻗어 그 잎새 무성하다. 꾀꼬리 꾀꼴꾀꼴 저 숲 속에 날아앉아 그 울음 아름답네.
칡덩쿨은 골짜기에 뻗어 그 잎새 무성하다. 이걸 베고 쪄서 굵고 가는 베를 짜서 옷 지어입어 싫지 않구나.
어른께 말씀드려 근친 간다고 하거라. 막 입는 옷, 나들이 옷, 서둘러 빨래하자. 어느 건 빨고 안 빨 건가. 양친 뵈러 친정 가네.
까치집
까치가 지은 집에 비둘기가 들어가네.
우리 아씨 시집가네. 백 채 수레 마중하네.
까치가 지은 집에 비둘기가 가득하네.
우리 아씨 시집가네. 백 채 수레 따라가네.
*까치와 비둘기는 모두 상서로운 새다. 까치집에 비둘기를 맞이하는 정경을 빗대어 시집가는 딸이 남성의 집에 받아들여짐을 축복하는 시다.
누추한 집에서도
집이 누추하긴 해도 못 살 거야 없네. 졸졸대는 샘물에서도 가난은 즐길만 하네.
고기를 먹는 데에 꼭 황하의 잉어여야 하고, 아내를 얻는 데에 딱이 제나라 공주일 필요야 없네.
내게도 일찍이
내게도 일찍이 커다란 집에 살림 번성했었지. 지금은 먹기조차 어려우니, 계속되는 부귀는 없으련가.
내게도 일찍이 좋은 음식 많았었지. 지금은 배조차 채우기 어려우니, 계속되는 부귀는 없으련가.
복사나무
고운 복사나무 활짝 피었네. 이 집 처녀 시집가면 시집살이 잘도 할래.
고운 복사나무 잘도 익었네. 이 집 처녀 시집가면 시집살이 잘도 할래.
고운 복사나무 잎새도 싱그럽네. 이 집 처녀 시집가면 어진 아내 될터이니.
귀여운 여인
귀엽고 아름다운 그 여인, 성 모퉁이에서 날 기다리네.
날씨 흐려 눈에 안 띄어 머리 긁적이며 주저하네.
귀엽고 아름다운 그 여인, 내게 붉은 피리 주었네.
피리의 붉은 빛 곱기도 하나, 그녀가 더 곱네.
들판에서 그녀는 내게 삘기를 뽑아주었네.
삘기가 예쁜 것이 아니라, 고운 이가 주어서 예쁘다네.
달빛이 갈대에
갈대에 달빛이 어우러지니, 이슬 맺히고 서리 내렸네.
사랑하는 그대는 물 저쪽에 산다네. 거슬러 올라가 만나자니 길은 멀고 험하고,
물결 따라 내려가보려니, 마치 물 한가운데 있는 것 같네.
갈대에 달빛이 어우러지니, 이슬 아직 마르지 않았네.
사랑하는 그대는 물가에 산다네. 거슬러 올라가 만나자니 길은 멀고 가쁘고,
마치 물 가운데 모래섬에 있는듯 하네.
떨어지는 매실
내던지는 매실 일곱 개, 나 찾는 사내들아, 어서 이 좋은 기회에.
내던지는 매실 세 개, 나 찾는 사내들아, 오늘 어서.
내던지는 매실 한 광주리, 나 찾는 사내들아, 지금 당장 어서.
*매실은 임산부에게 좋은 약리작용 하는 열매이다. 그 매실을 마음에 둔 남자를 향해 던져 구혼하는 시다. 이것을 투과혼(投果婚, 열매를 던져 구혼하는 것)이라 한다. 진서(晋書) '반악전(潘岳傳)'에 미소년 반악(潘岳)이 외출하면 여자들이 둘러싸고 마차가 가득 찰 정도로 과일을 던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웅치(雄雉, 장끼)
장끼가 날아오르네, 천천히 날갯짓하며 가네.
그리운 임이여! 내 마음에 괴로움만 남았구나.
장끼가 날아오르네, 오르락내리락 날갯짓 소리 들리네.
진짜 내 임이여! 이 괴로움 어이할까?
저 해와 달 바라보며 끝없는 이 생각
길은 멀다 하는데, 어찌 능히 오려나?
세상의 군자들아! 어찌 덕행을 모르느냐?
해하고 탐내지 않는데, 어찌 이보다 더 선하란 말이냐?
*장끼는 남자를 상징한다. 장끼가 날아가는 모습을 노래하여 남자가 여자로부터 떠남을 상징한다. 다시 맺어지고 싶어 하는 여자의 희망, 한에 사무쳐 자신을 위로하는 버림받은 여인의 심정을 그렸다.
다북쑥(蓼蕭, 제례에 참석한 손님을 의미)
저 큰 다북쑥, 이슬 촉촉하네.
임을 만나 보니, 내 마음 후련하네.
잔치 벌여 웃고 이야기 하니, 좋은 말만 들리고 마음 편안하네.
저 큰 다북쑥, 이슬 듬뿍 젖었네.
임을 만나 보니, 가없는 영광이네.
그 덕 그르치지 않으니, 오래오래 살리라.
저 큰 다북쑥, 이슬 함빡 젖었네.
임을 만나 보니, 즐겁고 편안하네.
그 형에 그 아우라, 착한 덕 오래하고 즐거우리.
*쑥과 이슬은 신성한 주술적 힘을 지니고 있다. 그 쑥에 이슬 맺혔다는 표현으로 제례에 참석한 손님을 축복하는 시다. 손님은 이 노래에 답가를 불렀다.
추우(騶虞, 사냥터의 신)
저 무성한 갈대밭에서 화살 하나에 암퇘지 다섯 마리라니
아! 진짜 추우(騶虞, 천자의 사냥터를 돌보는 신)로다.
저 무성한 쑥밭에서 화살 하나에 새끼 돼지 다섯 마리라니
아! 진짜 추우로다.
*사냥을 시작하기 전에 사냥꾼이 멧돼지를 활로 쏘아 사냥터 신에게 바치고 사냥 잘되게 해 달라고 기원하는 주술적 의례의 시이다.
문왕(文王)
문왕의 영혼은 위에 계시고, 오! 하늘에서 빛나네.
주는 오래된 나라이지만, 그 천명은 늘 새로웠네.
주가 밝지 않은가, 천명이 늘 때에 맞으니,
문왕이 오르내려 천제의 곁에 계셨네.
*문왕 제사 지낼 때 제전가(祭典歌)다. 모두 7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명을 받은 문왕의 영혼이 주나라에 강림하는 부분부터 시작, 자손의 번영과 신하의 충성, 은나라의 복속, 신하들의 활약을 노래하고, 문왕의 덕에 따라 만방을 아울러야 한다고 가르치는 서사시다. 집단의 결속을 강화할 목적으로, 문왕으로 분장한 춤꾼이 이야기에 맞춰 춤을 추는 극시(劇詩)이기도 했다.
우거진 저것은
우거진 저것은 쑥인가 했더니 다북쑥이로다. 슬프도다, 우리 부모님 날 낳으시고 고생하셨다.
우거진 저것은 쑥인가 했더니 제비쑥이로다. 슬프도다, 우리 부모님 날 나으시고 여위셨다.
병의 술이 떨어짐은 술통의 수치로다. 궁하고 외로운 살림살이 죽으만 같지 못한지 오래도다.
아버님 없이 누굴 믿으며, 어머님 없이 누굴 의지하리. 나가면 걱정이요, 들어오면 몸 둘 곳 없도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이 날 기르셨다. 쓰다듬어 가르치고, 키우고 가꾸시고,
나며 들며 안아주시니, 그 은덕 갚으려해도 저 하늘이 아득하도다.
남산은 험악하고 높기도 하고, 바람은 모질게 휘몰아치도다.
사람들은 모두 잘 살고 있건만, 나만 어이 이 신센가?
남산은 험악하고 높기도 하고, 바람은 모질게 휘몰아치도다.
사람들은 모두 잘 살고 있건만, 나만 홀로 봉양을 다하지 못했도다.
*부모를 생각하는 시인데, 주세붕과 정철의 시조가 여기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부모 곧 아니시면 내 몸이 없으렷다. 이 덕(德)을 갚으려 하니 하늘 끝이 없습니다.(주세붕)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두 분 곳 아니시면 이 몸이 살았을까. 하늘같은 가 없는 은혜 어디에 다 갚사오리.(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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