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연지기(浩然之氣)란 무엇인가? /맹자(孟子)
요즘은 자식 교육을 위해, 엄마와 아기는 외국 나가고 나홀로 남는 '기러기 아빠'가 많다. 교육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가 떠오른다.
맹자가 세살 때 부친이 돌아가시자, 어머니와 처음 살았던 곳은 공동묘지 근처였다. 그래서 맹자가 구덩이를 파고 곡(哭)을 하며 장례 치르는 흉내를 내며 놀았다. 이를 본 맹자의 어머니는 안 되겠다 싶어 당장 이사를 하였는데, 하필 이사 간 곳이 시장 근처였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맹자가, 시장에서 물건 사고파는 장사꾼 흉내를 내며 노는 것이었다. 여기도 아이와 함께 살 만한 곳이 아니라고 판단한 어머니는 다시 서당 근처로 이사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맹자가 글 읽는 시늉을 하고, 제기(祭器)를 늘어놓고 제사 지내는 흉내를 내며 놀았다. 맹자의 어머니는 그제야 마음 놓고 아들과 함께 그곳에 머물러 살았다.
맹자는 추(鄒) 나라 사람으로 BC 372 년부터 289 년까지 살았던 춘추시대 인물 이다. 공자 손자인 자사(子思) 문하에서 배웠다. 맹(孟)은 성이고, 이름은 가(軻)다. '맹자'라 함은 '자(子)'가 원래 선생님의 높임말이기 때문이다.
사십 초반에 송(宋), 등(滕), 양(梁), 임(任), 제(齊), 노(魯), 설(薛)나라를 다니며 제후에게 왕도정치를 설파했다. 이십 여년 후 62세에 고향에 돌아와 은둔 생활을 하다가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맹자>란 책은 당(唐)나라 이전에는 경전이 아니었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제자백가(諸子百家)’로 분류되었다. 송대에 와서 주자(朱子)가 '맹자집주(孟子集注)'를 저술하고, <맹자>를 대학(大學), 중용(中庸), 논어(論語)와 함께 '사서(四書)'로 삼았다.
내용은 양혜왕편(梁惠王篇), 공손추편(公孫丑篇), 등문공편(滕文公篇), 이루편(離婁篇), 만장편(萬章篇), 고자편(告子篇), 진심편(盡心篇) 등 7편이 상하로 되어 있다.
호연지기(浩然之氣)
호연지기(浩然之氣)는 제자 공손추(公孫丑)와 용기 기르는 법에 대한 이야기 중에 나온다.
'여쭙건대, 무엇을 호연지기라고 하는 것입니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네. 지극히 크고 지극히 넓으며 강하고 곧은 것으로, 잘 길러 나가면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는 것 이네. 호연지기는 대장부가 지녀야 할 광명정대한 용기인데, 진정한 용기는 부동심(不動心) 이네. 그것은 도(道)와 짝이 되며, 정의(義)와 올바른 길(道)에 존재하여, 올바르게 살면 얻을 수 있지만, 마음이 흐트러지면 사라져 버리네.
의로운 일이라면 그만 두지 말고, 마음을 망녕되게 갖지 말고, 무리하게 잘 되게 하려고도 하지 말게. 전에 송(宋)나라 사람이 자기가 심은 곡식의 싹이 빨리 자라도록 밭의 싹을 억지로 뽑아올린 자가 있었네. 그는 집으로 와서 자기가 싹이 자라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자랑하였네. 그러나 아들이 가보니 싹은 말라죽어 있었네. 호연지기도 이 같은 것이네. 억지로 하는 것은 무익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되는 것 일세.
대장부(大丈夫)
'대장부는 천하의 넓은 데서 살고(居天下之廣居), 천하의 올바른 자리에 서고(立天下之正立), 천하의 대도를 실천하며(行天下之大道), 뜻을 얻으면 백성들과 함께 해 나가고(得志,與民由之), 얻지 못하면 혼자서 그 도를 실천하고(不得志,獨行其道), 부귀도 혼란케 하지 못하고(富貴不能淫), 빈천도 옮기지 못하고(貧賤不能移), 무서운 무력도 굴복시키지 못한다(威武不能屈). 이것을 대장부라 이른다(此之謂大丈夫).'
경춘(景春)이 묻기를,
'진나라 장군 공손연(公孫衍)과 위나라 재상 장의(張儀)는 위엄과 세 치 혀로 제후를 설복하여, 제후들이 두려워하고 천하의 정세를 마음대로 했으니, 이들이 진정한 대장부가 아니겠습니까?'
맹자께서 대답했다.
'그렇게 해서 어찌 대장부가 되겠는가? 대장부는 임금이 바른 길로 나라를 다스리게 도와야 하는데, 그들은 그렇지 못했고, 섬기는 임금의 요구나 명령이 정도에서 벗어나도 순종했고, 온갖 사술과 기교를 다 피우고 다녔소. 이것은 남편 앞에 순종만 옳은 것으로 알고 사는 부녀자와 다를 바 없소.'
성선설(性善說)
맹자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했고. 순자(筍子)는 '인간은 본래 악한 존재'라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했고, 고자(告子)는 '인간은 본래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존재로, 악하게 키우면 악하고, 선하게 키우면 선하게 된다'는 성무선 무불선론(性無善 無不善論)을 주장했고, 한비자는 '인간이 천성적으로 악하기 때문에 상과 벌을 함께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맹자는,
'사람의 본성은 본래 선(善)하다. 사람은 누구나 어린애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면, 측은한 마음을 가진다. 이것은 동네 사람에게 칭찬받으려는 때문이 아니다. 측은해 하는 마음 없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며, 부끄러움 없는 사람도 인간이 아니며, 옳고 그른 것을 가리지 못하는 사람 역시 인간이 아니다.'
하였다.
이 중에 유명한 '사단지설(四端之說)'이 나온다.
'측은해 하는 마음은 인(仁)의 단서요(惻隱之心 仁之端), 부끄러워 하는 마음은 의(義)의 단서요(羞惡之心 義之端), 사양하는 마음은 예(禮)의 단서요(辭讓之心 禮之端),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智)의 단서다(是非之心 智之端).'
'사람은 사지(四肢)를 가진 것처럼 이 네 단서를 지니고 있는데, 이를 불이 처음에 타오르기 시작하듯, 샘이 처음 솟아나듯 확충시키면, 사해(四海)를 편안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것을 확충시키지 않으면 (옹졸하여) 제 부모 섬기기에도 부족하다.'
맹자는 우산지목(牛山之木)의 예를 들었다.
'우산(牛山)에 있던 나무와 풀은 사람과 동물로 인하여 없어져 버렸고 그 결과 민둥산이 되었다. 처음 인간의 본성도 이와 같았으나, 후천적으로 나쁜 모습이 된 것이다. 그러니 인간의 본성을 포기해서는 않된다. 인간은 착하게 살아서는 생존할 수 없다고 자신에게 포악하게 대하는 것을 자포(自暴)라고 한다. 나는 불가능하다고 자신을 버린 사람을 자기(自棄)라고 한다. 본성을 포기하는 것을 자포자기(自暴自棄)라 한다.'
*맹자와 고자(告子)의 성선(性善) 논쟁.
'고자는 인간의 본성은 버들가지와 같고 인의는 버드나무로 만든 술잔과 같다. 인의는 본성에서 곧바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모종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본성과는 무관하게 외재하는 것이며 후천적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했다.
이에 맹자는 '술잔을 버드나무의 결을 따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의라는 것도 사람의 본성에 따라 행하는 것이지, 강제적 힘을 가해 억지로 행하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인의는 인간의 선천적 본성 자체로 본다'고 하였다.
고자는 '인간의 본성은 갇힌 채 소용돌이 치는 물과 같다. 물꼬를 동쪽으로 트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트면 서쪽으로 흐른다. 이처럼 선과 악도 후천적인 것이다'고 했다.
이에 맹자는 '물이 좌우로 흐르는 것도 사실이지만,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도 사실이다. 물의 본성은 좌우 구분 없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 이다. 이처럼 사람의 본성도 선과 불선의 구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왕도(王道)와 패도(覇道)
맹자가 살았던 시기는, 진(秦)나라가 상앙(商鞅)을 등용하여 부국강병책을 실시하고, 위는 오기(吳起)를 등용하였고, 제(齊)는 병가(兵家)인 손자(孫子)를 등용하는 등, 합종연횡의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며 힘만을 숭상하던 패도정치(覇道政治) 시대였다.
이때 맹자(孟子)는 '힘으로 인(仁)인양 가장하는 것을 패(覇)라 한다.'고 규탄하며, 패도를 행한 대표적 제후로 제(齊) 환공(桓公), 진(晉) 문공(文公), 송(宋) 양공(襄公), 진(秦) 목공(穆公), 초(楚) 장공(莊公)을 들었다. 이들을 '춘추5패(春秋五覇)'라 한다.
그러면서 과감히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주장했는데, 유가의 성왕(聖王)들을 예로 들면서, '덕이 많은 사람만이 천명(天命)을 받들어 임금이 될 수 있고, 덕(德)의 유무는 백성들이 그를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에 달려있다'고 하였다.
또 이렇게 말했다.
'힘으로써 인(仁)을 가식하는 자는 패(覇)이다. 패는 간혹 큰 나라(大國)를 이룬다. 덕으로써 인을 행하는 자는 왕이 된다. 그러나 왕자라고 반드시 큰 나라를 기대하지는 못한다. 탕(湯) 임금은 칠십리(七十里)로써 했고, 문왕(文王)은 백리로써 했다. 힘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것은 심복(心服)시키는 것이 아니다. 덕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것이 심복시키는 것이다. 공자의 칠십 제자가 그랬다.(공손추(公孫丑) 상편)
제나라 선왕이 물었다.
'왕도정치에 대하여 묻겠소이다.'
맹자가 답하였다.
'옛날 문왕이 기주(岐周)를 다스릴 때 경작하는 자들에게 9분의 1을 세금으로 받았고, 벼슬하는 자들에게 대대로 녹(綠)을 지급하였으며, 국경과 시장에서는 기찰할 뿐 세금을 징수하지 않았습니다. 연못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을 금하지 않았으며, 죄인을 처벌하되 그 죄가 처자식에게까지 미치지 않게 하였습니다. 늙어서 아내가 없는 것을 환(鰥)이라 하고, 남편 없는 것을 과(寡)라 하며, 자식 없는 것을 독(獨), 어리면서 부모 없는 것을 고(孤)라 합니다.
이 넷이 천하의 불쌍한 백성들이며 하소연 할 곳 없는 자들 입니다. 그래서 문왕은 정치를 할 때, 반드시 이 넷을 먼저 돌보았습니다. '시경(詩經)'에서도 '부유한 사람은 괜찮지만, 홀로인 자들이 걱정스럽다'고 하였습니다.
양(梁)나라 혜왕(惠王)이 맹자에게 물었다.
'노인장께서 천 리를 멀다 않고 찾아오셨는데, 우리나라에 어떤 이익을 주시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 하필이면 왜 이익만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에 이로울까?’ 하시면, 관리들은 ‘어떻게 하면 내 집에 이로울까? 어떻게 하면 내 한 몸 이로울까?’ 합니다. 어진 사람은 어버이를 버리는 법이 없고, 의로운 사람이 자기 임금을 가볍게 여기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왕께서는 오직 어질음과 의로움을 좇으셔야 합니다.'
그 말에 혜왕이 입을 다물었다.
혜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나는 나랏일에 정성을 다하는데 왜 백성이 늘어나지 않소이까?'
맹자가 대답했다.
'전쟁 이야기를 예로 들겠습니다. 진격을 알리는 북소리를 따라 무기를 들고 싸우다가 갑옷을 버리고 도망치는데, 어떤 사람은 백 보를 가서 멈추고, 또 어떤 사람은 오십 보를 가서 멈추었습니다. 그러자 오십 보를 도망친 사람이 백 보를 도망친 사람을 비웃습니다. 왕께서는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십 보건 백 보건 도망치기는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그와 같이 오십보 백보의 선정(善政)으로 이웃 나라보다 백성이 많아지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혜왕이 맹자에게 부탁했다.
'나는 어리석어 나아갈 수 없으니 부디 선생께서 가르쳐 주시오.'
이에 맹자는.
'5묘(五畝=한 묘는 30 평)의 집에 뽕나무를 심으면 50세의 어른들이 비단을 입을 수 있습니다. 닭, 돼지, 개를 기르면서 번식 시기를 잃지 않게 하면, 칠십 노인이 고기를 먹도록 할 수 있습니다. 100 묘의 밭에 일하는 시기를 징병이나 부역으로 빼앗지 않으면, 8식구의 집이 굶주리지 않게 됩니다. 가르침을 신중히 베풀어 효도와 우애를 가르치면, 머리 희끗한 노인이 길거리에서 짐을 지고 이고 다니지 않게 됩니다. 노인이 비단옷 입고 고기 먹고, 백성이 굶주리지 않고 추위에 시달리지 않게 만들면, 왕노릇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공손추가 왕도와 패도의 차이점을 물었다.
'세관에서 기찰만 하고 세금을 받지 아니하면 모두 기뻐서 그 나라 길로 통행하기를 원할 것이다. 밭 가는 사람에게 조법을 적용하고 세금을 받지 아니하면 천하의 농부들이 모두 기뻐서 그 나라 땅에서 농사짓기를 원할 것이다. 상가에서 인두세와 공한지세를 받지 아니하면 천하의 백성들이 그 나라 백성이 되기를 원할 것이다.
진실로 이 몇 가지를 잘 시행한다면, 이웃나라 백성들이 우럴러 보기를 부모와 같이 하리라. 백성이 이처럼 나라를 공경한다면,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 천하에 대적할 사람이 없게 되면 이는 하늘이 내신 분으로, 이렇게 되고 왕이 되지 못한 사람은 없느니라.'
*맹자는 토지를 인민에게 공평히 분배하는 정전법(井田法)을 주장했고, '인(仁)의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먹고사는 환경이 넉넉하고, 규제가 없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면,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 관에서 각종규제를 풀고, 세금을 적게 부과해야 된다는 뜻이다.
민본주의(民本主義)
맹자는 '백성이 제일 귀하고, 나라가 그 다음이고, 군주가 가장 가볍다. 그러므로 뭇 백성의 마음을 얻는 자가 천자(天子)가 되는 것이요, 천자의 신임을 얻는 자가 제후(諸侯)가 되는 것이요, 제후의 신임을 얻는 자가 대부(大夫)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제후가 무도하여 국가 사직을 위태롭게 만든다면, 제후는 갈아치워야 한다.' 했다.
이런 민본주의는, '군주가 잘못하면 군주를 바꾸어야 한다'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의미한다.
'임금이 크게 잘못하면 간언하고, 만약에 여러 번 간언해도 듣지 않는다면, 그 때에는 그 임금을 폐하고 덕이 있는 다른 사람으로 임금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제(齌) 나라 선왕(宣王)이 물었다.
'무왕(武王)이 주(紂, 은나라 폭군)를 몰아냈다고 하니 그런 일이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옛 기록에 있습니다.'
'신하가 임금을 죽여도 좋습니까?'
'인(仁)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고 합니다. 이런 잔적을 일개 필부라 합니다. 일개 필부인 주(紂)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아직 임금을 죽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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