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에 소개한 동양고전 50

구름 낀 숲에 사는 한 선비/ 화담 서경덕

김현거사 2015. 9. 23. 13:08

 

 

 구름 낀 숲에 사는 한 선비/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지금으로부터 4백 년 전 일이다. 용모와 춤솜씨 두루 갖춘 개성의 황진이가 어느 날 밤, 가야금을 들고 한 선비를 유혹하러 갔다. 그런데 거절돠자, 약이 오른 황진이는 꽃 피는 봄에 다시 몇 번 찾아갔으나, 선비는 그를 제자로 거두었을 뿐, 꿈적도 하지 않았다. 이에 황진이는 '내가 삼십 년 면벽적공(面壁積功)한 지족선사도 농락하였지만, 이 분은 끄떡도 하지 않으니, 이 분이야말로 참된 성인이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과 박연폭포와 서화담 셋을 '송도 삼절'이라고 선언했다.

 서경덕은 1489년 성종 20년에 개성 화정리(禾井里)에서 태어났다. 자(字)는 가구(可久), 호(號)는 화담(花譚),시호는 문강공(文康公)이다. 벼슬길은 31세 때 과거에 붙었으나 나가지 않았고, 43세 때 어머니 명령으로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그냥 돌아왔다. 56세 때 후릉참봉(厚陵參奉) 벼슬을 내렸으나 사양했고, 평생 포의(布衣)로 고향에서 후학을 가르키며 살다가 58세에 세상을 떠났다. 임종 즈음 화담에서 목욕을 하였는데, 이 때 제자가 '지금 심경이 어떠하십니까? 묻자,'삶과 죽음의 이치를 안지 이미 오래라 심경이 편안하기만 하다.'고 대답했다.

제자로는 영의정을 지낸 박순(朴淳),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허엽(許曄), '토정비결' 저자로 알려진 이지함 등 쟁쟁한 인물이 있다.

 

술회(述懷)

讀書當日 志經論     공부하던 그 옛날엔 세상 다스리는 일에 뜻을 두었건만,

歲暮還甘 顔氏貧     나이 늙자 안회(顔回, 공자의 제자)와 같이 가난함을 달갑게 여기며 사네.

富貴有爭 難下手     부귀는 다툼이 있게 마련이니 손 대기 어렵고,

林泉無禁 可安身     숲과 샘물은 간섭하는 이 없으니 몸을 편히 담을 수 있네.

採山有水 堪充腹     산에서  약 캐고 물에서 낚시질하여 배를 채우고,

詠月吟風 足暢神     달을 노래하고 바람을 읊으니 정신이 맑아지네.

學至不疑 眞快活     공부는 의심이 없는 데 이르러 참으로 쾌활함을 느끼니,

免敎虛作 百年人     헛되이 백년 사는 사람을 면하였네.

 

산거(山居)

화담의 한 바위 아래 내가 사는 것은, 성품이 느슨하고 좁은 때문이네.

숲에 앉아 새들을 벗 삼고, 냇가 거닐며 물고기를 벗 하네.

한가하면 꽃잎 지는 언덕길에 비질도 하고, 때로는 호미 메고 약초 캐러 가네.

이 밖에는 일이 없으니, 차 한 잔 들고는 옛 책을 열람하네.

화담에 있는 한 칸 초옥은 깨끗하기 신선이 사는 집 같네.

창문 열면 산빛 닥아오고, 샘물 소리는 베갯머리에 들리네.

골짜기는 깊고, 바람은 살랑이며, 경계가 외로워 나무만 우거졌네.

그 속을 거니는 자 있으니, 날 맑은 아침 책 읽기 또한 좋네.

 

읊어 봄(偶吟)

조각달이 서쪽으로 진 뒤 낡은 거문고 뜯다 문득 쉬나니,

밝음과 소란스러움 어두움과 고요함으로 바뀌일 때,

이런 때의 묘한 맛은 어떠한가?

 

비 갠 뒤 산을 보며(雨後看山)

텅 빈 누각에서 자다가 일어나 문득 발을 들어보니, 비 지나간 산빛은 더욱 짙어졌네.

보며는 화공도 그려내지 못할 저 경치, 높은 봉우리에 구름 걷히니, 푸른 꼭대기 들어나네.

 

귀법사(歸法寺) 계곡에서 놀며

위아래로 산봉우리와 계곡을 다니고 또 다니면서,

반나절을 한가히 놀아도 아침 같은 맑음이 있네.

뒷날 푸른 산허리에 살게라도 된다면,

오직 가야금과 책만으로 일평생을 보내리라.

 

영통사(靈通寺)에서 

시냇가로 난 길은 푸른 숲으로 들어가고, 숲속 좌선하는 선방(禪房)은 낮에도 그늘졌네.

돌에 부딪치는 물소리는 수천곡 거문고 소리 같고, 하늘을 의지하고 솟은 산은 만 겹으로 둘러있네.

아침 나절부터 저녂까지 맑은 경관 변치않으나, 지금의 흥취 후인에게 잇기 어려우리.

몇 판 한가히 바둑 두며 웃고 이야기 하는 사이에, 구름 속 해가 서산에 지는 줄 몰랐네.

 

바람결 따라 서서히 숲 헤치고 들어가니, 탑 그림자는 마당에 누워있고 저녁 어둠 내리네.

절은 낡아 건물이 더욱 축축하고, 산은 예부터 풍우에 씻겨 계곡만 더욱 깊어있네.

천 년도 못되어 옛 모습 찾기 어려우니, 억 년 후에 뉘라서 알아보리?

어떤 손이 만물 밖에서 노니는데, 스스로를 천지의 부침(浮沈)에 함께 하네.

 

유수(留守) 이찬(李澯)을 술자리에 모시고

술통 기울이어 옛 친구 위해 따르니, 한가을 달빛 아래 함께 잔 기울이네.

시냇가 국화와 바위 틈의 단풍 지금 한창이니, 좋은 날 또 만나길 기약하네.

 

관원이 화담에 놀러 와 준 것을 감사하며

만 겹 청산에 초가집 한 채, 평생 두고 서너 질의 성현들 책과 벗하네.

가끔 좋은 손들께서 찾아주시는 것은, 이 곳의 숲과 못이 그림보다 곱기 때문일세.

 

의인당(醫人堂)에서

우연히 자그마한 크기의 언덕을 구하여 손수 꽃과 나무를 심고 보니, 집이 그윽한 운치가 있네.

먼지 같은 세상일에 분주하여 사람들은 모두 취해있는데, 의인당 주인만은 신선처럼 만상(萬象) 밖에서 취하지 않았구려.

때때로 술잔을 들면 산에 걸린 달빛이 찾아주고, 거문고 들고 한가히 바라보면 들판에 구름이 떠 있네.

스스로 자유로운 삶의 즐거움 알고 있으니, 세속의 흥망과 비애 같은 건 알 바 아니네.

 

심 교수(沈 敎授)를 전송하며

고향에서 삼 년간 후학을 가르치니, 어느덧 그들이 구슬같이 귀한 인재가 되었네.

심군을 떠나보내는 마음 참을 길 없으려니와, 이젠 다시 불러 얼굴 마주하기 어렵게 되었네.

꽃 핀 계곡에서 함께 발 씻고, 구름 낀 골짜기에서 함께 잔 기울였었지.

만물 밖에서 초연히 노닐던 땅, 뒷날 꿈에라도 한번 돌아오게나.

푸른 산 몇 칸 집에 누런 책들은 상 위에 가득하다.

꼴 베고 나무하는 늙은이 안부 묻거들랑, 근년에 더욱 게으르고 멋대로 산다 하구려.

 

두 선비가 옷을 보내 준 데 감사 드림

구름 낀 숲속에 한 선비가 사는데, 그의 높은 뜻 아는 이 없네.

도(道)의 맛을 씹어가면서 늘상 배고픈 것은 걱정 않네.

그의 내면은 수놓은 비단으로 장식하듯 훌륭하되, 그의 몸은 온전한 옷가지 하나 걸치지 못했네.

굶주리고 헐벗음 세상에 비할 자 없으련만, 오히려 부귀한 사람들 비웃고 있네.

홀로 눈 쌓인 집 아래서 시를 읊는데, 웅크린 몸은 거북이 같네.

 

손아래로 사귄 사람에 이군이 있는데, 옷을 벗어 선비에게 주려 하여,

두터운 그의 뜻을 거절할 수 없어 받아 두는 게 마땅하였네.

이군의 사람됨은 자애롭고 착하며, 효성스럽고 조심스러우며, 말은 거짓이 없네.

일찍이 어머님 병환이 위독하자, 똥을 맛보고 병세를 고치려 하며 하늘의 자비를 빌었었네.

 또 한사람 옷을 보내 준 황군 역시 비범한 사람이니, 똑똑한 재질은 나면서 타고났네.

두 선비 모두 나에게 최선을 다해주며 자주 찾아와 어울려 주었네.

두터운 그들의 뜻을 글로 적어, 시로서 소중히 엮어 보내는 바일세.

 

황진이와 오고 간 시조  

내 언제 무신(無信)하여 님을 속였관대,

월침삼경(月沈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秋風)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하리오.

                                        (황진이)

 

마음이 어린 후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萬重雲山)에 어이 님 오리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귄가 하노라.

                                   (서경덕)

 

화담선생의 임종시 글

 

 만물은 어디에서 왔다가 또 어디로 가는지, 음양이 모였다 헤어졌다 하는 이치는 알듯 모를듯 오묘하다.
구름이 생겼다 사라졌다 하는 것을 깨우쳤는지 못 깨우쳤는지, 만물의 이치를 보면 달이 차고 기우는 것 같다.
시작에서 끝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항아리 치며 노래한 뜻(*莊子는 아내가 죽었을 때 항아리를 치고 노래하였다) 을 알겠으니, 인생이 약상(弱喪, 莊子 齊物篇에 나오는말) 같다는 것을 아는 이 얼마나 되는가? 제 집으로 돌아가듯 본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죽음일지니.

 

 법화경에 얽힌 일화

 화담(花潭) 선생이 나이 30살 때에 서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하루는 선생께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슬며시 문이 열리며 나이 70가량이 되는 노인이 말없이 들어와서 선생에게 절을 세 번 한 후 밖으로 나갔다.

학생들은 노인이 30살 정도의 자기 스승에게 절을 하는데, 스승이 처다보지도 않는 까닭을 물었다. 이에 선생이 말하기를, '그 노인은 사람이 아니고, 뒷산에 사는 산신이다. 그 산신이 무슨 일이 있어서 나에게 용서를 빌려고 온 것인데 돌아볼 필요가 없다. 아무개 집에 딸이 있는데 그 집 딸을 잡아가려고 나한데 와서 용서를 빌려고 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학생들이, '그러면 그 처녀를 살리는 방법은 없느냐'고 선생에게 물었더니, 선생께서 '법화경이 필요하다.'라고 하셨다.

 학생들이 법화경을 구해 가지고 오니, 선생께서는, '담이 센 사람 세 명을 데려 오라. 아무개 처녀를 잡아가는데 아무개 날 아무개 시에 잡아갈 것이니, 그 전 날 해 떨어지기 전에 문 앞에 법화경을 펴놓고, 한 사람은 처녀를 붙잡고, 둘은 문 앞에서 호랑이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법화경을 날이 샐 때까지 읽어라. 그러면 호랑이가 장난을 치다가 결국은 침범하지 못하고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선생이 시키는 대로 하였더니, 새벽에 여산대호(如山大虎)가 집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발로 문지방을 세 번 치고 돌아갔다. 그렇게 처녀를 살리고 선생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 선생은 빙긋이 웃으면서 '호랑이가 문지방을 세 번 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학생들이 선생께서 그걸 어떻게 아시냐고 물으니 선생은, '그것은 법화경 세 구절을 잘못 읽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