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기고 글

나는 이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2008 문장21 가을호

김현거사 2011. 6. 16. 16:14

나는 이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김창현

 

 학문도 부귀도 없는 나는,다만 이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평생 꽃을 사랑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감꽃 목걸이 만들던 소년,논둑 찔레꽃 사랑한 소년, 진주 칠암동 소녀네 우물가 하얀 탱자꽃 사모하던 소년, 대학시절에 보라빛 오동꽃을 책갈피 압화(押花)로 끼우던 청년, 라일락 벤치에서 시를 읽던 청년, 남해 먼 섬에서 작은 제비꽃에 눈시울 붉히던 청년, 이윽고 세월이 흐른 뒤 달밤에 난을 치던 노인, 이른 봄 매화 찾아 다정한 친구 부부와 남쪽으로 여행 떠나던 노인, 해마다 가을이면 국화를 키워 주변에 나눠주던 노인. 꽃을 사람인양 생각하고 사람처럼 친구하던 노인, 아침이면 정원의 장미와 글라디오라스꽃 자미화 앞에 한없이 오래 앉아있던 노인으로.

 친구를 사랑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어린이를 천사로, 여성을 꽃으로 보려했던 사람으로, 모든 사람을 친구로 보려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가난한 친구를 도와준 벗을 존경하고, 학식 있으면서 겸손한 벗을 존경하고, 부유하면서 티 내지 않는 벗을 존경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언쟁을 한 친구에게 먼저 말 건넨 벗을 존경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세상에는 자신보다 깊은 학식과 겸손한 벗이 많다고 늘상 생각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친구를 소중히 여겨, 반드시 두손으로 잔을 올린 벗으로 기억되고 싶다. 사바를 이별의 프랫홈이라 생각하고, 남에게 아품을 준 친구, 특정인에게 아부하거나, 편 가르거나, 이해관계로 움직이거나, 뒤에서 욕하거나, 우월감 떨치지 못한 속 좁은 친구에게도, 손수건 흔들던 벗으로 기억되고 싶다. 바람이 흘러가듯, 마음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그 행방을 몰랐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기도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모자라는 자가 살기에 세상은 얼마나 아품이 많았던가? 지혜롭지도, 온화하지도 못한 자에게 필요한 것이 기도였다. 겉으로 취생몽사(醉生夢死)하면서, 안으로 때와 장소 가릴 것 없이 참회하다 간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이른 새벽에 촛불 앞에 기도하고, 달빛 바다에 기도하고, 눈 쌓인 산에 기도하고, 명산대찰과 부처님 예수님께 기도하고, 바람에 기도하고, 흐르는 물, 총총한 별밤에 기도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이 세상 밑바닥 가장 못난 인간으로, 다만 기도 깊었던 노인으로 기억되고 싶다. 바람에 불려 어딘가로 날라가는 초라한 낙엽 마음으로, 빗물 속에 떨어지는 꽃의 마음으로, 새벽에 떠나가는 초생달 마음으로, 끝없이 반복된 자신의 죄업을 참회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세상 밑바닥 가장 고통스럽던 인간이면서도, 세상은 아름답고 선하다며,  끝없이 감사기도 올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