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기고 글

모란시장 스케치/문학시대 2007년 가을호

김현거사 2011. 6. 16. 16:32

 

서울 여인은 세련되지만 쌀쌀맞고,시골 색씨는 투박하지만 따뜻하다.

청계천 무허가 판자촌 출신들이 만든 성남 모란시장은 어딘가 시골 색씨같은 데가 있다.

그래 간혹 서울 근교 유일한 5일장 모란시장을 찾아간다.


모란역에 내리면,우선 ‘폭탄쎄일’ 만난다.쌘달 슬리퍼는 무조건 천원이고,하이힐 등산화 운동화 구두는 무조건 5천원 만원이다.엄청난 다운가격에 놀라는 귀에 여기가 서민시장임을 ‘어쌰 어쌰!’ 야한 장똘뱅이 마이크 음악이 귀따갑게 현장확인해준다.


시장 올라가는 계단에는 시골 논에 앉아있던 백로 왜가리 보다 더 하얗게 떼지어 앉은 노인네들 볼 수 있다.시커먼 주름 아래,늙으셔서 체구가 소녀처럼 작아진 야윈 할머니들은 필시 인근 시골서 장보러 오셨을 것이다.어깨에 빽을 메셨고,할배들은 구식 모자에 부채를 들었다.


전철 입구에는 품종이 필시 똥개일 것이지만,귀엽기 그지없는 강아지 몇 마리 바구니에 담아놓고 파는 할머니가 있고,빨간 장삼 드리운 스님이 톡톡 목탁치면서 염불 외고,그 옆엔 ‘할렐루야!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한다니까.’ 장로교회 40대 여전도사 앙칼진 목소리가 있다.


양철담 그늘 아래,시장가는 길목 빈틈없이 채운 것은 행상들이다.

쑥떡 찹쌀떡 파는 떡장수 할매 옆은 비닐봉지에 팥 콩 땅콩 옥수수 한옹큼씩 넣어파는 40대 아줌마고,보리건빵 단팟빵 크림빵 밤빵 인삼캔디 수북히 한봉지 천원에 파는 아저씨,그 옆은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2천원 짜리 목도장 파는 두 늙수구레다.한분은 사과 박스 위에 ‘경력 50년 달인’이란 휘장을 쳤고,한분은 ‘속성 2분 완성.SBS 뉴스 추적 인간극장 2005년 2월1일 방영’써붙였다.

그 옆은 초상화 그리는 분이고,그 옆은 ‘사주 궁합 운세 취직 결혼 작명 三災.부적 있음.’써붙인 철학가다.


길은 남녀노소 사람물결 넘치는데,그 물결 거슬리며 가운데 떡 버티고 서서,‘빚 청산 과중한 채무의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란 전단지 노놔주는 이는 법무사 누구 사무실서 나온 아가씨다.허리에다 노랑 검정 고무줄 잔뜩 매고 기발하게 몸으로 고무줄가게 차리고 사람 사이를 돌아댕기는 청년도 있고,사람들 발 아래 길바닥에 깡통 하나 놓고 누었다가 천원 짜리 한장 넣자,찌그러진 입에 초점 흐린 눈으로 사람 쳐다보며 애처러운 미소 띄우는,하반신 마비 걸인이 있다.


주변 한바퀴 돌아봐도 아무도 잘난체 하는 사람 없지만,사람의 행불행은 비교에서 온다던가?이중 가장 여유있어 보이는 사람은 손수레 위에 편지봉투 칫솔 밧데리 손톱깍기 때밀이수건 말표구두약 파리채 등긁기 면도기 돋보기 이쑤시개 바퀴벌레약 등으로 백화점 채린 뚱뗑이 아줌마고,가장 초라한 분은,그걸 몽땅 전부 팔면 하루 총매상은 몇천원일까,그걸로 가족의 생계는 어떻게 하고 사시나 걱정되는,전구지 한옹큼 놓고 한쪽에 가만히 주무시듯 앉아계신 할머니다.


여기까지는 무조건 맨몸으로 나와 길에서 장사하는 애환 물씬한 곳이고,그 다음 시장 속에 점포 하나 차지한 곳들도, 때이르게 선진국 흉내내는 이마트나 백화점처럼 부티내는 시근방진 태도는 볼 수 없다.천원 3천원 선에서 수요를 충족시켜주는 마음 편한 염가품목들이요,품목은 거의 농수산 관련 품목이다.


입구 가게는 씨앗가게니,청치커리 청갓 비트 파프리카 돌산갓 흑치마상추 결구상추 강화순무 조선배추 도마도 애호박 씨앗 되로 팔고,봉지에 칼라 사진 찍힌 규정품으로도 판다.도끼 톱 낫 작두 야전삽 호미 갈구리 칼갈이 스므개씩 묶은 면장갑 개줄 비닐끈 잔디가위 등이 보기만해도 사고싶게 만든다.


둘째집은 약초집이니,수삼 감초 당귀 오미자 구기자 가시오갈피 영지 약도라지 지네 누렁호박 목초액 무좀약,당뇨 혈압 고지혈증에 좋다는 시커먼 차가버섯,폐기능에 좋다는 노오란 상황버섯,가평 햇잣,정선 황기들이 한약냄새를 풍긴다.  


좀 들어가니,둘러말해서 사철탕,북한식으로 단고기,우리가 보신탕이라 부르는 개고기집 있다.‘원조 건강원’ 간판 아래 철망 속에는,더워서 혀 내놓은 백구 황구가 헐떡거리면서 자기가 있는 곳이 어딘지 아는지,주인 손짓 따라 비굴한 눈빛을 굴리는데,커다란 도사견은 개소주 삶는 여나믄개 솥에서 허연 김이 안에서 오르는데도,‘에라 모르겠다’ 낮잠만 자고,손님 오자 장사 바쁜 주인은,그 옆에 나무젓가락 꽂은채 아직 달걀도 않먹은 불어터진 배달 냉면을 놔두었다.


흑염소 오리,두마리 5천원 써붙인 삼계탕닭 구경하면서 더 들어가니,열마리 4천원하는 꽁치,세마리 5천원하는 장작개비처럼 꽁꽁 얼어붙은 동태,열마리 만원하는 참조기,이면수 오징어 갈치 파는 어물전 있다.

‘머리 떼고?’

손님한테 묻고는 커다란 통나무에 손바닥만한 칼로 툭툭 생선 잘라 까만 비닐봉지에 넣어준다.


앞집 쌍둥이가게 기름집에서는 구수한 기름 냄새 풍기고,꿀자두는 한바구니 천원이요,찰도마도는 2천원이다.복숭아,천도복숭아 포도 참외 수박 키위 메론 등 과일 지천이고,깐마늘 양파 풋고추 미나리 취나물 감자 고구마 토란 건새우 건문어 대합 모시조개 키조개 없는게 없다.  

특히 꽃집이 많다.가난할수록 꽃을 사가 화분에 물주는 그 마음 알듯하다.


모란시장 매력은 싼 것도 있지만,어수룩한 것도 매력이다.

메기 자라 미꾸라지 가물치 민물고동 파는,시장에 처음 나온 아줌마는 붕어와 민물장어를 다 킬로에 7천원에 판다.민물장어는 귀한 것이다.요리점에선 한접시에 2만원도 넘는다.옆 사람에게 값 물어보니,아무래도 값을 까먹었다.

봉황 새겨진 지팡이,16층탑 향로 騎馬 골동도자기 옥으로 된 남근석,황동으로 만든 자축인묘 12지신상 파는 젊은 아줌마도 그렇다.곁의 남편에게 일일이 값 물어보니,잠시 남편 자리 뜨면 어쩔것인가?


한시간 돌고 주막 찾아보니,순대국 국수집 있다.

거기 메밀꽃이 소금을 뿌린 듯 피고,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들리는 밤에 물레방아간에서 몰래 성서방네 처녀와 사랑을 맺은 허생원 같은 장똘뱅이도 올까?기웃거리며 안을 흩어보다가,커다란 얼음통 녹차를 콜라잔 한잔에 천원에 파는 늘씬한 젊은 처녀가 있다.한잔 사서 다 마실 때까지,그가 이효석의 작품 속 성처녀인양 공연한 말부치다가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