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기고 글

수종사의 차맛/ 청다문학 2009년 봄호

김현거사 2011. 6. 16. 16:37

수종사(水鐘寺)의 차맛



올림픽대로 끝에 팔당대교가 있고,팔당땜 넘어서면 양수리가 나온다.누가 한강을 아름답다 했는가?한강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이 두물머리(兩水里)에 가서 호수처럼 넓은 강에 피어오르는 뽀얀 운무와  양수리 푸른 들판과 물에 비친 산그림자를 봐야 그 아름다움 제대로 본것이다. 


양수리서 양평쪽으로 가지말고 북한강 따라 조금 올라가면 송촌리가 나오고,길가에 610미터 운길산이 강 위에 솟아있으니,차로 꼬불꼬불 꽤 험한 산길 20분 올라가면 절벽 위 수종사에 닿는다.

수종사는 왜 수종사(水鐘寺)인가?1458년 세조가 피부병으로 오대산에서 요양하고 오다가 양수리 근처에 와서 은은한 종소리를 들었다.그래서 병졸을 시켜 여기 어디에 절이 있나 알아봐라 산을 뒤지게 했더니,산 중턱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소리가 종소리처럼 들렸더라 한다.그래 그 자리에 절을 창건했으니,수종사 올라가서 맨처음 할 일이 무엇인가?우선 종소리같은 그 물방울소리 들리는 그 물 시원하게 한모금 마실 일이다.그 다음에는 세조가 기념식수한 수령 500년짜리 은행나무 용트림한 모습 감상하고,바위에 새겨져 있는 18나한상 구경하고,중요유형문화재라는 오층석탑 구경한 후에 법당에 들어가서,엉덩이를 하늘로 치켜세우고 허리 구부려 삼존불 앞에 삼배(三拜) 올릴 일이다.


산신각도 빼지말고 올라가서,노인이 노송 아래 호랑이 데리고 노는 산신도 그림 감상해보고,마당가 전망대로 내려가 조선조 명문장가로 이름난 서거정이 ‘동방 사찰 중 제일의 전망’이라 칭한 북한강 남한강 두 물이 합쳐지는 광활한 아래의 두물머리 풍경을 감상할 일이다.멀리 용문산이 보이고.바다같이 넓은 팔당호수 보이고,강 위로 난 철로에는 작난감같이 작은 기차가 보인다.이 광활한 풍경을 보면 사나이 가슴에 펑펑 호연지기 솟는다.


전망대 옆에 세운 건물은 무엇인가?여기서 내려다보이는 팔당댐 근처 능내 마을이 정약용의 고향이다.그래 다산 정약용이 추사 김정희 불러와 여기서 차도를 즐겼다고,그 연유로 근래에 삼정헌(三鼎軒)이란 다실(茶室)을 지은 것이다.다산이 원래 찻물 평가에 대해서 둘째 가라면 섪어할 분이다.추사와 둘이 여기서 차 마셨다면 수종사 물이 분명 명품이다. 

문 앞에 신발을 벗어두고,한옥 문고리를 당기고 들어가면,통나무로 만든 차탁이 서너개 놓여있고,한쪽에 이당 김은호 화백 미인도에 나오는 것같은 여인이 얌전히 앉아있으니,부끄러워하지말고 그 여인한테 곧바로 가서 두손 합장하고,

‘안녕하세요.차 공양하러 왔습니다.’

한번 말해보라.

여인이 호수같이 잔잔한 눈을 들어 그대를 염화시중의 미소로 맞아주면서 조용히 한쪽 차탁으로 안내해줄 것이다.

보온병에 담긴 뜨거운 물을 먼저 찻잔과 찻주전자에 부어 그릇을 덥힌 다음에,대숟갈에 녹차를 담아 주전자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잠시 기다려 차가 우려지면 찻잔에 붇는데,이때 가능한한 주전자를 높이 치켜서 잔에 찻물을 떨어뜨림은 떨어지는 물소리에서 심산유곡의 폭포소리를 연상하기 위함이다.그 다음에 나무숟가락으로 찻잔을 세 번 치는데,그 까닭도 적막강산 숲속에서 벌목꾼이 도끼로 나무를 찍는 그 소리 연상하기 위함이다.이른바 벌목정정(伐木丁丁)의 운치라는 것이다.


보통 왼손 바닥 위에 찻잔을 올리고 오른손으로 잔을 잡고 차를 마시되,눈으로는 찻물빛을,코로는 차향기를 감상하는데,일본인처럼 형식에 너무 얶매일 필요는 없다.근세 초의선사 다음으로는 진주 해인대학 최범술스님이 이 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이론가였다.최범술 스님의 <한국의 차도>란 저술을 보면,차 마시는 데는 형식보다 마음을 비우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형식에 얽매인 놈이 어찌 마음을 비우겠는가.


차는 보통 세 번 우려 마시는데,첫번 우린 차맛은 소녀같고,두번째 차맛은 여인같고,세번째는 노파같다는 것만 알면 된다.여리고 짙고 여리다.

차를 마시면서 무엇을 생각하는가?창 아래 보이는 그림같은 양수리 풍경을 보면서 삼정헌에 놓아둔 고승들의 선시(禪詩)나 하나 음미해보면 된다.샘풀 하나 소개하면 이런 것이다.


일이 없는 듯 일을 마친 듯

사립문 닫고 한낮에 누웠으니

내 외로움 산새는 아는가?

그림자 그림자가 창 앞을 지나가네.


차를 마신 다음에는 물로 찻주전자의 녹차를 부어내고,남은 찌꺼기는 대젓갈로 긁어낸 후,보온병을 공손히 마주 합장하면서 어여쁜 절집 보살님에게 반납하고 나오면 된다.

차실을 나서 숲길 걸어내려오면 무슨 느낌이 오는가?옆에 정약용과 추사가 그대에게 무슨 이야기를 던지며 따라오는 기분이 혹시 들지 모른다.바야흐로 다도(茶道)의 최상승(上乘) 경지란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