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2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김현거사 2014. 5. 16. 06:59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어떤 여인일까. 이에 대한 답은 모든 여성이 알고싶은 답일 것이다.

 나는 과 전부가 여학생인 속초의 한 대학에 출강하면서 매년 첫 강의는 이 문제를 다루었다. 이제 막 고등학교  졸업한 아직 대학생 티도 생기기 전 여대생에게 이보다 중요한 문제가 어디 있겠는가.  

  출석 부르고나면 특유의 인사말을 던졌다.

 '여러분을 보니, 여러분은 어쩌면 그렇게 수줍고 앳띤 모습일까요? 마치 대승폭포 옆에 핀 보라빛 용담꽃, 홍련암 뜰에 핀 해당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신비롭습니다. 이곳 산에 핀 꽃도 신비롭고,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도 신비롭습니다.'

 이런 느닷없는 찬사를 던지며, 마치 꽃을 감상하는 그런 눈으로 찬찬히 그들을 살펴본다. 사실 머루알처럼 까만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그들은, 진부령의 구절초나, 용아장성의 금강초롱꽃과 진배없다. 청초하고 청순하다. 

 그러나 학생들 자신은 그런 줄 모른다. 누구도 그렇게 불러주지 않기 때문이다. 원래 사람들은 여성의 면전에서, 상대가 아름답다고 직설법으로 말하는 경우 드물다. 고등학교 선생님도 그랬고, 대학 교수님도 그랬다. 모두 성적과 점수만 따졌지, 누구도 그들이 교정에 피어난 일군의 향기로운 벚꽃이고, 행복을 노래하는 한무리 새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들은 도브의 샘가에 살던 루시 같았다. 칭찬해줄 사람도 사랑해줄 사람도 없었다. 그들을 찬미해줄 오직 한사람은, 기업체에서 산전수전, 쓴맛 단맛 다 본, 나 같은 늙은 교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자신들의 현주소를 소개한 후, 다음 순서로 간다.

  '오늘 수업은 없습니다. 그 대신 첫 강의는 이야기만 하다가 갈 것 입니다.'

  이러고 출석부를 가방에 챙겨 넣는 시늉을 하면, 예상한대로 된다. 잠시 강의실은 축제 분위기가 된다. 박수 치는 학생도 생긴다.

 '조용히! 이제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어떤 여인인가 한번 진지하게 논의해봅시다. 여러분이 혹시 그런 여인인지 아닌지,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도, 같이 생각 해봅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란 그 소리에 학생들은 숨을 죽인다. 대학에선 이런 것도 가르키나 싶은 의아심도 보인다. 어쨌던 수업 안해서 좋고, 강의 타이틀도 좋다. 초롱초롱한 눈빛들이 단상을 주목한다.

 개중에는 이쁜 학생도 있지만, 평소 자기 외모에 대한 컴풀렉스 가진 학생도 있다. 이런 학생을 대학에서 Sad apple(슬픈 사과)이라 부른다. 나는 그들에게 대학생다운 지성적 논리를 주고 싶었다. 그들은 평소 무슨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예뻐지고 싶어했다. 아침 저녁 거울을 보고 가장 고민한 것이 외모였다. 그런데 의외의 강의를 한다니, 황당하고 반가웠을 것이다. 그건 아버지도 이야기 해준 적 없던 것이다. 

 '자! 시작 합니다. 저어기 맨 뒤에 앉은 학생! 학생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무슨 꽃이지요?'

 우선 이런 질문 던진다. 그러면 학생은 뭔소린가 싶은 모양이다. 한참 주춤거린다.

'괜찮아요. 솔직히 애기 해봐요.'

 그러면 여기저기서 수근대는 소리 들리다가, 옆 사람 입에서 꽃이름이 나온다. 장미, 벚꽃, 진달래, 코스모스, 백합,.....

 '좋아요. 그럼 이제부터 왜 그 꽃이 좋은지를 생각 해봅시다. 아까 장미꽃 좋다고한 학생 일어나세요. 왜 장미가 아름답지요?'

 그 참 고약한 질문이다. 알긴 알지만 표현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그동안 받은 수업은 모두 주입 암기식이었다. 표현하는 수업이 아니었다. 나는 이 점 오랜 기업 생활에서 철저히 배웠다. 참여야말로 가장 좋은 결과를 초래한다. 가장 효과적인 수업은 참여가 활발한 수업이다. 

지명 받은 학생은 일어나긴 했지만, 이른 봄 진달래꽃처럼 얼굴만 붉힌다. 

'틀려도 좋습니다. 그냥 생각나는대로 말해봐요.'

 그러면 여기저기서 소박한 대답들이 나온다. 장미는 붉어서 좋다, 벚꽃은 한꺼번에 화려하게 피니까 좋다, 진달래는 일찍 피어서 좋다. 코스모스는 청초해서 좋다.  

 '그래요? 자! 그러면 누구 한사람 대답해보세요. 이 중에서 어느 꽃이 가장 아름답지요?'

이 질문은 매학기 한번도 제대로 대답한 학생이 없다. 모두 입 다물고, 침묵을 지킨다. 그러면 나는 잠시 스스로 생각해보도록 시간을 준 뒤, 해설로 들어간다.

'사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없습니다. 장미는 장미 같아서 이쁘고, 벚꽃은 벚꽃 같아서 이뿔 뿐 입니다. 각자 다 이쁩니다. 둘 중 누가 더 이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꽃은 다 아름다워요. 

 사람은 어떨까요? 마리린몬로와 잉글릿드버그만, 오도리햇번과  파스칼뿌디 중 누가 가장 아름다울까요? 그 답도 당연히 없습니다. 다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움에는 차등이 없어요. 각자 개성이 있을 뿐 입니다. 아름다움에는 차등이 없고, 개성만 있다가 정답입니다.'

 그들로선 이런 이야기는 생전 첨 듣는 이야기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미인에 차등은 없는 것이다. 다 아름답고 개성의 차이만 날 뿐이다.  

 이쯤에서 내가 만난 탈렌트 이야길 꺼내, 흥미의 양념을 쳐준다.  

 '나는 전에 큰 회사 중역이었어요. 광고를 만들 때 유명 탈렌트를 많이 만났어요. 김수미? 김수미는 젊은 시절 리즈테일러라는 별명 있을만큼 만나보면 예뻤어요. 그들과 몇날몇일 촬영도 하고, 밥도 먹었지요. 그러나 탈렌트는 어떻게 선정하는지 알아요? 그때 그때 개성이 맞아야 선택되는 것 입니다. 얼굴 이쁘다고 선택하는 게 아닙니다. 개성이 중요한 것 입니다.'

 이쯤에서 개성이 얼마나 중요한가, 개성이란 무엇인가로 직행한다. 그들이 동경하던 외국 여배우를 끌어들인다.

 '나는 오도리햇번을 좋아합니다. 그 분 매력은 외형미가 아니라 청순한 눈에 있습니다. 착한 마음씨에 있습니다. 아프리카 난민 어린이 도운 것 아시지요? 오도리햇번은 살아있는 천사입니다. 옛말에 몸이 천량이면 눈이 구백량이라고 합니다. 이 말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맘씨가 고아야 눈빛이 고아지고, 눈빛이 고와야, 남자가  평생 가슴에 간직할 잊지못할 여인이 되는 것입니다.

 프랑스에 파스칼뿌띠라는 여배우가 있어요. 그는 나탈리우드가 아니예요. 얼굴이 청순하고 이쁜게 아니예요. 발랄한 개성이 있었지요. 가장 지적인 프랑스 사람들이 그래서 파스칼뿌디를 좋아했어요.

 알겠어요? 개성이란 이런 것 입니다. 뻐스칸에서 콤팩트 꺼내서 천번만번 얼굴 두드려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주변 시선 무시하는 그런 행동은 무식의 소치 입니다. 외모 신경 쓰고 지성 없는 여인은 종이꽃 입니다. 향기가 없습니다. 교양있는 여러분은 절대로 그 짓 하면 않됩니다. '

 이쯤에서 학생들은 킥킥 웃는다. 자신들이 교양있다는 말도 처음 듣는다.

 '자! 교수님을 주목하세요. 여러분은 다 꽃봉오리 입니다. 이제 그 꽃봉오리는 대학생활을 거치면서 활짝   만개한 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여러분이 나중에 어떤 향기를 가질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애벌레라면, 나중에 어떤 황홀한 나비가 될지 아무도 모르지요.

 여러분은 아마 틀림없이 진부령의 구절초나, 용아장성의 금강초롱처럼 청순하고 은은한 꽃이 되겠지요. 각자 고유의 은밀하고 미묘한 향기를 몸에 품을 것 입니다.

 여기 교수님은 앞으로 그 과정을  지켜보며 여러분이 아름다운 나비가 되도록 도울 것 입니다. 향기를 일깨워 드릴 것 입니다. 여러분께 정신적 아름다움을 가르키고, 인생을 가르킬 것 입니다.'

 이 정도 해놓고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마지막 센텐스를 주었다.

 '오늘 두시간 강의는 이것으로 끝 입니다. 나머지 한 시간은 교정에 나가서 벤치에 앉아, 혼자 사색에 잠겨보세요. 사색이 두시간 강의 보다 더 의미있을 것입니다.'

 그럼 와! 하는 함성이 터진다. 나는 매학기 이런 수업 끝 선언으로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렇게 첫수업 마치고, 한학기 비서학 강의 끝나면, 골머리 썩이지 말라고 시험문제는 미리 가르켜 주었다. 땅 짚고 헤엄치기 과목이었을 것이다. A 학점 되도록 많이 주었다.

 그리고 여름방학 지나서 강의실에서 만나면, 어떤 학생은 처음이라 약간 어색한 파마를 했고, 어떤 학생은 의외로 세련된 썬그라스를 끼었고, 어떤 학생은 귀여운 새 양장을 맞춰입었다. 어딘가 숙녀티가 조금씩 불거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들은 꽃보다 귀엽고 사랑스런 제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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