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2

내가 만난 대학총장

김현거사 2014. 5. 29. 07:12

 

     내가 만난 대학총장

 

 

  흔히 인생을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고 하고, 남가일몽 (南柯一夢)이라고 한다.

  남가일몽은 당나라 때 이공좌(李公佐)의 소설 가기(南柯記)에서 유래한 것이다.

  광릉 땅에 순우분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집 옆에 커다란 회나무가 있었다. 어느날 술에 취하여 그 밑에서 잠이 들어었데, 꿈 속에서 두 남자를 만났다. 그들을 따라 괴안국이란 곳으로 가, 국왕의 사위가 되어, 남가국의 태수로 처음 20년은 잘 살았다. 그후 이웃나라 단라국과 전쟁이 벌어져 참패하고, 아내도 병으로 죽자, 원래 고향으로 돌아가려는데, 그 순간 꿈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깨어난 순우분은 하도 이상하여 홰나무 뿌리를 살펴 보니, 그곳에 과연 구멍이 하나 있었고, 그 구멍을 더듬어 들어가자, 수많은 개미떼와 왕개미가 있었다. 그곳이 바로 괴안국이었으며, 그 옆에 남쪽으로 뻗은 가지가 바로 자기가 다스렸던 남가군이었다.

 남가(南柯)란 남쪽으로 뻗은 나뭇가지를 의미한다. 여기서 크게 깨달은 순우분은 그 후로 집밖을 나가지 않은 채 사람을 멀리하고 도학에 정진하였다고 한다.

 

 나도 남가일몽 속에 칠십년 살았으니,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때 되었다. 그래 순우번처럼 사람을 멀리하고 도학에 정진하지는 않지만, 꿈속의 일을 기록이나 해놓자고, 지난 번 <내가 만난 대통령>이란 글을 썼다. 이왕 쓴 김에 이번에 <내가 만난 대학총장>을 써본다. 그분들은 장안에서 사학 최고의 명성을 가진 K대, Y대 총장 이다. 대통령이 왕개미라면 대학총장은 무슨 개미인지 모르겠다.

 

 K대 김총장님을 만난 것은 그분이 대학원장 하던 시절이다. 한번은 내가 있던 회사 회장 셋째를 K대 경영대학원에 보내려고 찾아갔다. 부탁을 드렸더니, 무슨 청탁같은지 처음엔 조금 주저하였다. '원장님!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재벌 아들이 여길 나오면, 사원 채용 때 그가 최종면접을 하는데, 이 대학 학생들이 다 동문 아닙니까? 팔이 밖으로 굽겠습니까? 제가 k대가 모교라서 일부러 여길 찾아와서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논리로 셋째는 입학하였고, 그 뒤 김원장은 K대 총장으로 영전했다. 축하 화분을 아주 작심하고 서울에서 가장 이름난 분재원의 고가 석부작 분재를 보내놓고, 셋째를 데리고 총장실로 갔더니, 수백개 난화분은 모두 바닥에 내려놓고, 내가 보낸 분재만 총장 집무실 탁자위에 달랑 놓아두었다. 총장님이 축하 화분 고맙다고 야단이다. 더군다나 새 총장 비서는 내 미식축구 선배였다.

 그런데 후에 그룹 건설사 상무로 가보니, 마침 K대 혜화동 의과대학 매각설이 있었다. 그래 총장님을 강남의 인터콘티넌탈 호텔 일식으로 모셨다. 그곳이 그분 단골집이다. K대가 유명한 것은 그 대학 출신들은 모두 술을 잘한다는 점이다. 양주 한 병이 비자. 총장님 호칭은 선배님으로 바뀌었고, 흥이 난 총장님은, 카운터에서 자기가 맡겨놓은 양주까지 가져왔다. 양주 두 병 들어가면 남자들은 호탕해진다. '선배님 혜화동 병원장은 우리가 잘 아는 분 입니다. 저희 건설회사가 그 땅 매입 건을 알아보니, 병원장이 총장님 눈치만 봅니다. 후배가 한번 회사 내에서 멋지게 공을 세우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러자, '나야 실무는 모르고, 병원장이 아는데, 그 분이 좋다면 나야 찬성이요.' 지극이 당연한 대답이다. '그럼 총장님께서 병원장이 결재 올리면, 도장 꾹 눌러주셔야 합니다.' 

 이렇게 해놓고 병원장을 찾아갔다. '원장님 이번 부지 매각 건 말 입니다. 총장님은 제가 전부터 잘 아시는 분인데, 위에서 먼저 뭐라고 말씀 드릴 수는 없는 눈치고, 병원장 결정만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한번 일을 소신대로 추진해 주십시오. 결재 올려 주십시오.'

 이렇게 혜화동 대학 부지는 A 건설로 낙찰되었고, 지금 거긴 A건설 아파트가 서있다. 

 당시 현대 정주영 회장은  K대맨 이다. 정회장은 젊은 시절 K대학 도서관 지을 때 공사장 인부로 일한 인연으로 K대를 모교 쯤으로 생각한 분이다. 스케일이 큰 분이라 K대 건물동 지으라고 40억을 기증한 적도 있다. K대 출신 이명박씨를 건설 회장에 앉히기도 했다. 그러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일도 있다. 현대는 당연히 자기들 몫인 줄 알았던 혜화동 병원을 이런 스토리로 날릴 줄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믿어도 중간중간 잘 점검해고 다둑그려야 그런 일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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