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2

절 구경

김현거사 2014. 3. 5. 07:26

       절 구경

 

 

  절에 가면 무엇을 구경하는가. 사람들은 우선 절 입구에 세워놓은 사천왕상을 구경한다. 네 분 천왕이 악귀(惡鬼) 위에 걸터 앉아 두 눈을 부라린 험상궂은 얼굴로, 칼, 창, 비파 등 무기를 든 모습을 구경한다. 경내로 들어가서 물 철철 넘치는 돌확을 구경하고, 시원한 물을 한 표주박 마신다. 그다음 범종을 구경한다. 범종은 천상계에 있는 육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친다고 한다. 법고는 지상에 살고있는 중생을 위해서, 공중에 매달린 구름 모양 운판은 날짐승과 허공을 떠도는 영혼을 위해서, 뱃속을 파낸 물고기 형상의 목어는 물고기를 위해서 친다고 한다. 붉고 푸른 단청 칠한 절 처마에 대롱대롱 매달린 풍경을 본다. 바람에 울리는 풍경소리를 듣는다. 탑전의 오래된 탑을 바라본다. 안내판에 쓰여진 글을 읽어본다. 카메라를 끄내 촬영을 하기도 한다. 돌계단을 밟고올라가서 법당 문짝의 창살에 새겨진 꽃무뉘를 구경한다. 그러나 대개 사람들은 법당 밖에서 기웃거리며 커다란 목탁과 염주만 구경하고, 정작 법당에 들어가서 부처님 앞에 두 손 모우고 예배보는 일은 드물다. 불전함에 돈 넣는 일도 드물다. 대충 밖에서 구경한 후 휑하니 산으로 내뺀다. 등산하러 간다. 그러나 사람들은 절에 간다. 이유는 잘 알 수 없지만, 절에 가면 뭔가 맘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나 역시 업장 많은 중생이라 절을 좋아한다. 뭔가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절에 가면 나는 부처님과 눈을 맞추는 묘한 버릇을 가지고 있다. 절에 가면, 절 주인인 부처님을 만나야지, 집구경은 그 다음 일이라 생각한다. 부처님과 마주 앉아서 상호를 이리저리 살핀다. 화룡점청이라는 말이 있듯이, 부처님 모습 중에 제일 공력을 들인 부분이 눈 이다. 눈을 보아야 한다. 부처님의 눈은 말을 한다. 그 눈은 고요함을 일깨워준다. 눈 다음은 미소를 본다. 부처님은 웃지 않는다. 은은한 미소를 보낸다나는 그 미소를 잉그릿드버그만의 미소보다 좋아한다. 부처님 미소는 육도윤회에서 허우적거리는 중생을 받아주는 자비의 미소이다. 

 절 마다 부처님의 눈빛과 미소가 다르다. 마곡사 부처님 눈빛을 보면 한송이 물에 젖은 연꽃이 떠오른다. 눈빛이 오래 수도한 고요한 수도자의 눈빛이다. 탐진치를 초월한, 내면을 응시하는 눈빛이다. 선운사 부처님은 초연한 해탈의 눈빛을 가졌다. 나는 선운사 부처님과 눈을 맞출 때 해탈과 초연함을 생각한다. 이런 눈빛 앞에 며칠이라도 기도하고 싶어한다. 월정사 부처님은 미소가 아름답다. 그 미소는 자비, 원만, 지혜, 셋다 원만하게 갖췄다. 부처님은 원래 카필라국의 왕자다. 왕자다운 고귀함과 번뇌를 벗어난 밝은 얼굴을 한 부처님이 고운사 부처님이다. 내면의 따뜻한 기운이 통통한 두 볼에 곱게 어려있다. 명상을 이렇게 밝고 고요한 얼굴로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한다. 

 

  조계종  25교구본사는 전국에 흩어져 있다. 그 중 도량이 도량다운 품위를 가장 잘 갖춘 곳은 법주사다. 높이 33m의 미륵대불과 팔상전이 나란히 속리산에 우뚝 선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통도사와 법어사는 산이 아름답다. 영축산과 금정산은 높고 가파르고 준수하다. 남쪽 지방다운 푸른 대밭과 향기로운 솔내음이 인상적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향기로운 10리 벚꽃길 안에 쌍계사가 있다. 봄의 화개동천을 걷노라면 극락의 향기가 풍긴다. 백담사는 백개의 연못에서 흘러온 물이 수정같다. 단풍이 설악에 물들면 거기가 신선향이다. 탑이 아름다운 곳은 청량사다. 높은 바위 벼랑 위에 넓고 편편한 대가 있다. 그 위 우뚝 선 5층탑이 눈 앞에 황금빛 단풍 곱게 물든 금탑봉 바라보고 있다. 오죽 단풍이 고와서 봉우리 이름이 금탑봉일까. 달빛 아름다운 절은 대흥사 일지암 이다. 차스님 초의선사가 주석한 일지암 이다. 툇마루에 앉아 고요히 피어오르는 차의 향기를 맡으며 바라보는 달빛은 정말 일생 꼭 한번은 봐두어야 할 달빛이다. 진달래꽃 아름다운 절은 흥국사다. 은은한 수채화처럼 연분홍 진달래꽃이 산을 덮은 곳이 여수 영취산이요, 그 속에 안긴 절이 흥국사다. 매화가 아름다운 곳은 통도사와 선암사다. 통도사 홍매화는 꽃창살과 탑에 어리는 조화가 멋 있고, 선암사 백매화는 오래된 담장 위로 뻗은 고목의 흰빛이 고결하다. 강이 아름다운 곳은 여주 신륵사요, 바다가 아름다운 곳은 여수 향일암이다.

 

 절이 좋은 점은 이런 점 때문이다. 그런데 풍경 이상으로 더 좋은 점이 있다. 잠시 속세를 잊게 하는 점이다. 알게 모르게 소유에 집착하고, 아상에 사로잡히고, 번뇌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산문에 들어 서면, 잠시 번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다. 명예에 연연하고, 탐욕에 빠지고, 남에게 성내던 중생이, 잠시 시냇물 소리에 정신이 맑아짐을 느끼고, 풍경소리가 맑고 고운 것을 느낄 수 있다. 신기할 정도로 정신이 상쾌해지고, 긍정적인 마음이 들고. 인생이 아름다워 보인다. 참으로 놀랍기 그지 없는 일이다. 찰라지만, 잠시 윤회의 업장을 씻어내는 순간인 것이다. 이런 느낌이 좋다. 그래서 시간이 허락하는한, 나는 종종 절 구경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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