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봉을 오르며
김창현
지리산은 양갓집 맏며느리 같고, 설악산은 양장미인 같다. 살결은 지리산은 육산(肉山)이라 부드럽고, 설악산은 골산(骨山)이라 각선미가 있다. 단풍철 옷 벗는 모습은 지리산은 구중심처 큰애기 한복 벗는 태고, 설악산은 모던걸 이브닝까운 벗는 태다.
한계령(寒溪嶺)은 차가울 한(寒), 시내 계(溪), 이름만으로도 운치있다. ‘한계고성’(寒溪古城) 터 설악루 매표소에서 입산하니, 처음부터 산색(山色) 비범하다. 푸른 잎 가장자리부터 싱그럽게 물들어가는 것은 상수리나무고, 비단에 그린 듯 화려하게 붉은 것은 단풍나무, 흰 줄기에 반짝이는 금빛 잎을 단 것은 숲의 귀족 자작나무다.
산공기 수정처럼 맑다. 풍마우세(風磨雨洗). 비바람에 씻기고 닦인 것 저만 아니련만, 그 무슨 조화로 한계 낙엽은 저리 고울고? 만산홍엽리(滿山紅葉裏) 초록은 바위의 청태(靑苔)요, 티 한점 섞지않은 남청(藍靑)은 초추(初秋)의 하늘이다. 고도 높을수록 단풍은 더 붉다. 나무 하나하나 비단 옷 입은 그 맵시 '지방시' 가을 패션쑈 모델 같다. 푸른 암봉이 실안개에 가렸다 나왔다 숨박꼭질하는 산길에, ‘내 밑으로 기어서 지나가시오’, 심술맞게 길 터억 막고 나자빠진 것은 거대한 굴참나무 고사목이다.
산공기로 폐부(肺腑)를 씻고 ‘서북주릉선’에 닿았다. 발 딛고 선 곳이 백두산 낭림산 금강산 진부령 대청봉 한계령과 점봉산 오대산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 지리산으로 뻗어가는 '백두대간' 큰 줄기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태백산맥 소백산맥의 명칭은 1900년 경 ‘고또분지로’(小藤文次郞)가 명한 것이다. 우리 고유 이름은 그보다 150년 전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의 ‘산경표’(山經表)에 나온다.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진 ‘백두대간’, 서울 도봉산 삼각산으로 이어진 ‘한북정맥’(漢北正脈), 수원 광교산 안양 수리산으로 이어진 ‘한남정맥’(漢南正脈) 등 살가운 이름이다.
산을 벗어나야 산이 보인다 했던가. 서북주능선에서 귀때기청 끝청 중청 대청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설악 산괴(山塊)는 거대한 한 점 수석(壽石)이다. 멀리 푸른 안개 속 대청봉을 향해서 용 이빨처럼 날카롭게 뻗어있는 용아장성이 보인다. 뜀바위 촛대바위 개구멍바위 등 깍아지른 험로(險路)로 암벽등산가를 매료시키는 용아릉은 산 아래 수많은 소(沼)와 담(潭) 경치 유명한 수렴동계곡이 있다. 용아릉이 물과 바위만 빼어나랴. 안개 낀 산상 바위틈에 꽃이 핀다. 마고(麻姑)선녀가 언제 여기 꽃씨를 심었나. 노란 각시원추리 보랏빛 난장이붓꽃 군락이 황홀하고, 바람꽃, 금마타리, 한계령풀, 금강초롱, 등대시호가 청초하다. 하이비스커스꽃 풀룸메니아꽃 덮힌 하와이를 꽃의 천국이라 부르는가. 보라빛 용담과 하얀 구절초 피는 여기를 나는 ‘천상화원’(天上花園)이라 명하련다.
‘용아장성’ 아래 봉정암(鳳停庵)이 있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가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와서 세운 봉정암은 오대산 상원사, 영취산 통도사, 태백산 정암사, 백덕산 법흥사와 함께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 중 하나다. 경내 왼쪽 돌계단 위 용아릉에 5층사리탑 세웠으니, 부처님 진신사리 어디 있는가. 뒤로 독성나한봉, 지장봉, 가섭봉, 석가봉, 기린봉, 할미봉, 범바위 등 ‘봉정연봉’이 병풍처럼 호위한 탑 속에 있다.
‘서북주능선’에서 보이는 끝청은 신기루다. 가도가도 끝 없는 산길을 코 끝에 쇠똥내 풍기며 터지려는 심장박동 참고 한걸음 한걸음 오르니, 땀은 비오듯 떨어져 눈에 들어가 따갑지, 후덜후덜 떨리는 다리는 중심 못잡아 너덜지대 젖은 돌에 미끈미끈 스키를 타지, 돌진 가재마냥 등짐은 왜 그리 어깨를 누르는가?
‘선배님 배낭 내가 메고 갈까요?’
눈 감으면 송장 염해도 될 얼굴 하자, 장교수가 배낭 달란다.
거대한 주목(朱木)을 만났다. 누가 작은 것이 아름답다 했던가? 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간다는 거대한 주목을 손으로 쓰다듬고 연인인양 팔로 안아보았다. 설화(雪花) 핀 겨울산에서 꼭 봐야할 정취는 주목의 푸른 침엽과 심홍(深紅)의 열매다.
갑자기 산길이 왜가리떼 몰려온듯 하다. 자배기 깨지는 소리 난다. 시끄럽기 일등인 내고향 경상도 여자들이다.
‘아저씨 끝청까지 얼매 걸립니꺼?’
사십대 아주머니 부대는 씩씩하다.
‘반시간 정돈데,어디서들 오셨소?’
‘울산요.’
‘울산? 온 김에 울산바위 좀 가져가시지.’
‘좋지예. 빽에 넣어만 주이소.’
등산은 달리기 위해 하는가? 보려고 하는가? 숨가쁘게 질주하는 아줌마들을 잠깐 세웠다.
‘속초가 왜 속초요?’
그러자 조용하다.
‘금강산 일만이천봉 만든다는 소식에 울산바위가 날라오다가 완성됐다는 소릴 듣고 이 산에 선 이야기는 다 아시지요? 그 뒤 울산사람이 속초에 와서 ’울산바위를 울산에 도로 갖다놓아라. 그리 못하면 울산바위를 재로 새끼줄 꼬아 묶어달라. 그러면 도술을 써서 가져가겠다’면서 시비를 걸었어요. 그래서 속초사람들이 고민 끝에 한 도인의 가르침을 받아, 기름 묻힌 새끼줄을 울산바위에 묶어 불을 질렀지요. 줄이 재로 변하니, 재로 꼰 새끼줄로 바위를 묶은 셈 아니요? 거기서 묶을 속(束)자. 풀 초(草)자 속초가 된거요.’
‘오매 우야꼬! 빽도 필요 없구마. 새끼줄로 묶어모 되니.’
고진감래(苦盡甘來)라던가. 끝청에 오르자 중청(中靑)대피소 가는 길은 완만한 능선이라 돛 달고 노젖기다. 백색 공 모양의 통신시설 지나 대피소 닿으니, 평상 위에 지글지글 삼겹살 굽는 소리 귀를 번쩍 뜨게한다. 국 끓자 해 지고, 속초시 먼 등불 어둠 속에 아련한데, ‘건배!’ 독한 꼬냑 한모금 목줄기 넘기자 피로가 싸악 가신다.
냉기 품은 강풍을 뚫고, 아침 8시 대청봉(大靑峰)에 올랐다. 봉황대(鳳凰臺), 봉정(鳳頂), 청봉(靑峰), 청산봉(靑山峰)이라 불리는 대청봉은, 해발 1708미터로, 1638미터 금강산 비로봉보다 높다. 지금 산신 모신 제단은 없고, 날씨는 문자 그대로 오리무중(五里霧中), 산과 바다는 운무에 덮혀있다. 희미한 안개 속으로, 북쪽 공룡릉 세존봉 울산바위 황철봉과 서쪽 중청을 겨우 보았다. 진동계곡 안고 있는 남쪽 점봉산은 연하(煙霞) 좌대 위에 수석처럼 뚜렷이 앉아있고, 권금성 너머 동쪽 구름은 금빛 일출 몇가닥이 통과하고 있다. 대청봉 산신(山神)은 오야붕답게 함부러 얼굴 보이질 않는다. 다만 쌀쌀한 강풍 속에서, ‘대청봉’. ‘양양군 서면 오색리 산1-1’. 라고 새긴 돌 앞에서 빨리 사진 몇장 찍고 가란다. 설악은 왜 대청 중청 소청 끝청 뀌때기청 봉마다 ‘청(靑)’자 돌림인가. 이리 작명한 것은, ‘청(靑)’이 흰빛과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기 때문이다. 흰 눈 흰 구름과 가장 잘 어울리는 빛은 짙푸른 에메랄드빛 하늘이다. 설악은 미국 해군의 멋을 부린듯 하다. 내비불루 청바지에 흰모자를 썼다.
대청봉에서 속초로 하산하는 길은 둘 이다. 화채봉(華彩峰) 만경대(萬景臺) 집선봉 권금성 소공원 코스와 소청봉 희운각 양폭 비선대 소공원 코스다. 이중 초봄의 화채봉 코스는 ‘아무도 밟지않은 능선의 하얀 눈 위에 우아한 보랏빛 얼러지꽃이 군락을 이루어 무더기로 피는 곳’이다. 설악의 보라빛 얼러지꽃은 알프스의 에델바이스 보다 시적(詩的) 상상력을 자극하는 꽃 이다. 그러나 우리는 천불동 코스를 택했다. 기암괴석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와 계류의 단풍을 보고싶었기 때문이다.
대청에서 소청은 지척이지만, 희운각산장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다. 험하고 가파른 계단 조심해서 내려오니 공릉능선(恐龍稜線)이 보인다. 마등령에서 무너미고개까지 공룡이 용솟음치듯 힘차게 울퉁불퉁 솟은 5 킬로 암봉군(群)인데, 이는 내외설악을 가르는 설악의 척추이다. 능선 동쪽 외설악은 기암절벽 천불동이 남성적이고, 서쪽 내설악은 백담 가야 백운계곡이 여성적이다.
무너미(水踰)고개 지나 희운각산장에 도착, 평상에서 시원한 샘물로 땀을 식히니, 대청봉 오른 것도 은근히 자랑인데, 남은 것이 천불동(千佛洞) 단풍 구경이라, 이제부턴 없던 흥도 절로 난다.
천불동 내려가니. 협곡을 사이에 두고 오른 쪽은 화채능선이요, 왼쪽은 톱날 공룡능선이다. 바위는 수직절리(垂直節理) 천태만상 빚었으니, 뽀족한 암봉마다 아미타불인가 하면 문수보살이고, 관음보살인가 하면 미륵보살이다. 십리 불계(佛界)는 천 불상(佛像) 펼쳤고, 골골이 은하(銀河)같은 폭포와 담(潭)이다.
선경(仙境)은 내려가면서 보아야한다. 선인(仙人) 하강(下降)의 운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 누가 나무까지 이리 멋진 수형 잡아주었던고. 바위 위 낙락장송은 안개 휘감아 멋을 부리고, 물은 폭포에서 쏟아져 암반의 소(沼)에서 휘돌고 구비치고 내달리며 골짜기를 소리로 덮는데, 하늘을 찌르고 구름을 뚫은 것 모두 암봉이요, 땅을 취토록 붉게 만든 것은 만산홍엽이다.
험한 바위틈 쇠난간 움켜잡고 양폭산장으로 내려가니, 절벽 중간중간 푸른 이끼와 단풍의 조화가 그림같은 만경대 능선이 하늘에서 수직으로 계곡에 꽃혔고, 천당폭포 지나서 양폭산장에 가니 양폭 음폭 쌍폭포가 있는데, 그것도 모자라 염주골에 염주폭포 하나 더 있어, 하얀 물보라는 부서져라 바위를 때린다. 천불동 기암절벽과 폭포, 소(沼)와 담(潭) 원도 한도 없이 보여준다. 폭포 없는 산들 여기 와서 꼬리도 못펴겠다. 여기가 설악의 백미(白眉)다.
양폭산장 물 맑고 깨끗한 바위 위에서 늦점심 먹고, 하얀 구절초 향기 맡으며 탁족(濯足)하니, 추수여면경(秋水如面鏡)이라 얼굴이 다 비친다. 소소히 날리는 단풍 어깨에 맞으며 골 안 굽이쳐 흐르는 물길 따라 걷노라니, 천불동(千佛洞) 물소리 바로 무량(無量)설법이요 장광설(長廣舌)이다.
거기서 내려와 용소골 철다리께 침봉(針峰) 에워싼 곳에 다섯 개 폭포 연이어 흘러내리니 오련(五連)폭포다. 칠선(七仙)폭포 있는 칠선골 밑, 병풍바위 지나 절벽이 만길 벽처럼 우뚝 솟은 것은 귀면암(鬼面岩)이다. 토막골 설악골 잦은바위골 물줄기는 연이어 맑은 담(潭)과 소(沼)를 만들어놓았는데, 그 길에서 결정타로 사람 마음을 뒤흔들어놓은 것은 문수담(文殊潭) 이호담(二壺潭)의 유리처럼 파란 물빛이다.
그리고 비선대(飛仙臺)가 나온다. 마고(麻姑)선녀가 너럭바위에서 바둑과 거문고 즐기며 누워서 경치를 감상한 곳이 와선대(臥仙臺)요, 하늘로 올라간 곳이 비선대다. 수석(水石)이 이리 맑으니 전설이 어이 없으랴. 시인은 ‘반석 위로 흘러가는 물은 아름다운 옥구슬 구르는 것 같고, 너럭바위에 폭포수 떨어지는 모습은 선녀의 옷자락이 나부끼는 것 같다.’고 읊은 적 있다. 바람 속에 ‘줄 없는 거문고’(無弦琴), ‘구멍없는 피리’(無空笛) 소리 들리는듯한데, 박새 노랑할미새는 이 여기서 득음(得音)하였나. 맑은 울음소리 속세를 떠나있다.
비선대 위에 나란히 선 것이 선녀봉 장군봉이다. 장군봉 아득한 층층계단 위가 원효스님이 도 닦던 금강굴이니, ‘금강삼매경’은 그 어떤 경계더냐. 지관(止觀)의 맑은 심정, 물속에 비쳐있다. 여기가 신선이고 극락이 아니겠는가. 비선대에서 산을 보고 합장하는 고운 할머니 한 분을 보았다. 나도 내려온 산을 되돌아보았다. 준수한 준봉이 안개 휘감고 있다. 월야선봉(月夜仙峰). 달밤엔 저 봉이 선녀로 보일테지. 하얀 안개가 향 피우듯 산 위로 올라가고 있다.
2002년 10월
대청봉(大靑峰) 등반기
설악산과 지리산의 차이점이 무얼까.
'지리산은 맏며느리 같고,설악산은 양장미인 같다.살결은 지리산은 육산(肉山)이라 부드럽고,설악산은 골산(骨山)이라 각선미가 있다.단풍철 옷 벗는 모습은 지리산은 구중심처 큰애기 한복 벗는 태고,설악산은 모던걸 이브닝까운 벗는 모습이다.'
한계령(寒溪嶺)
차거운(寒) 시내(溪) 영마루(嶺) 세 글자 '한계령'은 이름만으로도 운치있다.신라 때 축성한 '한계고성'(寒溪古城) 터 설악루 매표소에서 입산하면,처음부터 산색(山色) 비범하다.
푸른 잎 가장자리부터 싱그럽게 물들어가는 것은 상수리나무고,비단에 그린 듯 화려하게 붉은 빛은 단풍나무요,흰 줄기에 반짝이는 금빛 잎은 숲의 귀족 자작나무다.
산공기 수정처럼 맑다.풍마우세(風磨雨洗).비바람에 씻기고 닦인 것 저만 아니련만,그 무슨 조화로 한계 낙엽은 저리 고울고? 만산홍엽리(滿山紅葉裏) 초록은 바위의 청태(靑苔)요,티 한점 섞지않은 남청(藍靑)은 초추(初秋)의 하늘이다.
고도 높을수록 단풍 더 붉다.나무 하나하나 비단 옷 입은 맵시가 '지방시' 가을 패션쑈의 모델 같다.
푸른 암봉이 실안개에 가렸다 나왔다 숨박꼭질하는 산길에, '내 밑으로 기어서 지나가시오',심술맞게 길을 터억 막고 나자빠진 것은 거대한 굴참나무 고사목이다.
서북주능선(西北主稜線)
산공기로 폐부(肺腑)를 씻고 '서북주릉선'에 닿으니,발 딛고 선 곳이 백두산 낭림산 금강산 진부령 대청봉 한계령과 점봉산 오대산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 지리산으로 뻗어가는 '백두대간' 큰줄기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태백산맥 소백산맥 명칭은 1900년 경 '고또분지로'(小藤文次郞)가 명한 것이고,우리 고유 이름은 그보다 150년 전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의 '산경표'(山經表)에 나온다.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진 '백두대간',서울 도봉산 삼각산으로 이어진 '한북정맥'(漢北正脈),수원 광교산 안양 수리산으로 이어진 '한남정맥'(漢南正脈) 등 느낌 와닿는 살가운 이름이다.
용아장성(龍牙長成)
산을 벗어나야 산이 보인다 했던가.서북주능선에서 귀때기청 끝청 중청 대청이 한 눈에 들어온다.설악 산괴(山塊)는 거대한 한 점 수석(壽石)이다.
멀리 푸른 안개 속 대청봉을 향해서 용 이빨처럼 날카롭게 뻗어있는 용아장성이 보인다.뜀바위 촛대바위 개구멍바위 등 깍아지른 험로(險路)로 암벽등산가를 매료시키는 용아릉은 산 아래 수많은 소(沼)와 담(潭) 경치로 유명한 수렴동계곡이 있다.
용아릉이 물과 바위만 빼어나랴.안개 낀 산상 바위틈에 꽃이 핀다.마고(麻姑)선녀가 언제 여기 꽃씨를 심었나.노란 각시원추리 보랏빛 난장이붓꽃 군락이 황홀하고,바람꽃,금마타리,한계령풀,금강초롱,등대시호가 청초하다.
하이비스커스꽃과 풀룸메니아꽃 덮힌 하와이를 꽃의 천국이라 부르는가.보라빛 용담과 하얀 구절초 피는 여기를 나는 '천상화원'(天上花園)이라 명하련다.
봉정암(鳳停庵)
'용아장성' 아래 암자가 있다.
신라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와서 세운 봉정암은 오대산 상원사,영취산 통도사,태백산 정암사,백덕산 법흥사와 함께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 중 하나다.
경내 왼쪽 돌계단 위 용아릉에 5층사리탑 있으니,부처님 진신사리 어디 모셨는가.뒤로 독성나한봉 지장봉 가섭봉 석가봉 기린봉 할미봉 범바위 등 '봉정연봉'이 병풍처럼 호위한 곳이다.
대청봉 등반기(中)
끝청
'서북주능선'에서 보이는 끝청은 신기루다.가도가도 끝 없는 산길을 코 끝에 쇠똥내 풍기며 터지려는 심장박동 참고 한걸음 한걸음 오르니,땀은 비오듯 떨어져 눈에 들어가 따갑지,후덜후덜 떨리는 다리는 중심 못잡아 너덜지대 젖은 돌에 미끈미끈 스키를 타지,돌진 가재마냥 등짐은 왜 그리 어깨를 누르는가?
'선배님 배낭 내가 메고 갈까요?'
눈 감으면 송장 염해도 될 얼굴 하자,장교수가 배낭 달란다.
거대한 주목(朱木)을 만났다.
누가 작은 것이 아름답다 했던가?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간다는 거대한 주목을 손으로 쓰다듬고 연인인양 팔로 안아보았다.설화(雪花) 핀 겨울산에서 꼭 봐야할 정취는 주목의 푸른 침엽과 심홍(深紅)의 열매다.
갑자기 산길이 왜가리떼 몰려온듯 하다.
자배기 깨지는 소리 난다.
시끄럽기 일등인 내고향 경상도 여자들이다.
'아저씨 끝청까지 얼매 걸립니꺼?'
사십대 아주머니 부대는 씩씩하다.
'반시간 정돈데,어디서들 오셨소?'
'울산요.'
'울산?온 김에 울산바위 좀 가져가시지.'
'좋지예.빽에 넣어만 주이소.'
등산은 달리기를 위해 하는가?보려고 하는가?
숨가쁘게 질주하는 아줌마들을 잠깐 세웠다.
'속초가 왜 속초요?'
그러자 조용하다.
'금강산 일만이천봉 만든다는 소식에 울산바위가 날라오다가 완성됐다는 소릴 듣고 이 산에 선 이야기는 다 아시지요?
그 뒤 울산사람이 속초에 와서 '울산바위를 울산에 도로 갖다놓아라' '그리 못하면 울산바위를 재로 세끼줄 꼬아 묶어달라.그러면 도술을 써서 가져가겠다'면서 시비를 걸었어요.
그래서 속초사람들이 고민고민 끝에 한 도인의 가르침을 받아,기름 묻힌 세끼줄을 울산바위에 묶어 불을 질렀지요.줄이 재로 변하자,재로 꼰 세끼줄로 바위를 묶은 셈 아니요?
거기서 묶을 속(束)자.풀 초(草)자 속초가 된거요.'
'오매 우야꼬!빽도 필요 없구마.세끼줄로 묶어모 되니.'
중청(中靑)대피소
고진감래(苦盡甘來)라던가.끝청에 오르자 중청대피소 가는 길은 완만한 능선이라 돛 달고 노젖기다.
백색 공 모양의 통신시설 아래 대피소에 닿으니,평상 위에 지글지글 삼겹살 굽는 소리 귀를 번쩍 뜨게한다.
국 끓자 해 지고,속초시 먼 등불 어둠 속에 아련한데,
'건배'
독한 꼬냑 한모금 목줄기 넘기자 피로가 싸악 가신다.
대청봉(大靑峰)
냉기 품은 강풍을 뚫고,아침 8시 대청에 올랐다.
봉황대(鳳凰臺),봉정(鳳頂),청봉(靑峰),청산봉(靑山峰)이라 불리는 대청봉은 해발 1708미터로 금강산 비로봉이 1638미터니 그보다 높다.산신 모신 제단은 지금 없고,날씨는 문자 그대로 오리무중(五里霧中),산과 바다는 운무에 덮혀있다.
희미한 안개 속으로,북쪽 공룡릉 세존봉 울산바위 황철봉과 서쪽 중청을 겨우 보았다.진동계곡 안고 있는 남쪽 점봉산은 연하(煙霞) 좌대 위에 수석처럼 뚜렷이 앉아있고,권금성 너머 동쪽 구름은 금빛 일출 몇가닥 비친다.
대청봉 산신(山神)은 오야붕답게 함부러 얼굴 보이질 않고 쌀쌀한 강풍 속에, '대청봉'. '양양군 서면 오색리 산1-1'.라고 새긴 각각의 돌 앞에서 빨리 사진 몇장 찍고 가란다.
설악은 왜 대청 중청 소청 끝청 뀌때기청 봉마다 '청(靑)'자 돌림 작명인가?'청(靑)'이 흰빛과 가장 어울리는 색이기 때문이다.백설(白雪) 백운(白雲)의 설악에 가장 어울리는 빛은 짙푸른 에메랄드색 하늘이다.설악은 미해군의 멋이다.내비불루 청바지에 흰모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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