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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대통령

김현거사 2014. 4. 18. 09:16

 

며칠 전 문우 세사람과 기차를 타고 경주로 가면서 차 안에서 오간 이야기다. 요즘은 스피드 시대라 수필도 분량이 길어 잘 읽지 않는다. 함량미달의 작가가 횡설수설하는 수필이 많다. 그러면 이런 이야기는 어떻소 하면서, 내가 어떤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만난 대통령 이야기다. 시간도 많겠다 몇개 소개하니,  앞에 앉았던 여류시인이 '그런 이야기는 재미라도 있어 좋다'는 반응이었다. 

 

 나는 남의 비서 노릇을 20여년 하였다.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일로 노무현, 김대중,박충훈,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만났고, 박정희 전두환 두 분은 대화는 나눠보지 못했지만, 제법 근처까지 가보았다.

 노무현 씨는 노래방에서 만났다. 한번은 비서실 직원들과 회식을 하다가 3차로 한남동 필하모니란 노래방에 갔는데 그때 술은 이미 만취상태였다. 거기서 안면있는 사람이 보이길래, 술김에 반갑다싶어 청하지도 앉는 그들 좌석에 털썩 앉고보니, 노무현 씨와 손숙 씨 였다. 손숙씨는 학창시절 연극한다고 교정에서 멋 부리고 다녀, 내가 먼 발치로 꽤 이쁘다고 여기던 여학생이다. '이 아줌마 내가 안암동에서 안면 있던 아줌마네. 여긴 웬일이여?' 먼저 손숙씨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손숙씨는 생각보다 붙임성 있다. 당장 동문인줄 눈치채고, '그러시군요.반갑습니다' 아는체 해준다. 그런데 안면 있다고 착각한 남자는 아니다. 전혀 연고 없는 사람이다. 신문에서 본 사람을 순간적으로 아는 얼굴로 착각한 것이다. '선생은 안면이 많은데, 지금 내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신문과 TV에서 본 사람이오.' 노무현씨에게는 이렇게 해명할 수 밖에 없었다. 취중 실수인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씨는 옆의 미인을 고려했던지 화통하다. '아! 우리나라 사람은 다 동포 아닙니까. 자! 한잔 받으시오.' 양주 잔을 권넨다. 이렇게 남의 자리에 앉아 할 일은 실수 밖에 없다. '어! 잔이 비었네. 신사숙녀 여러분 이러시면 곤란하지. 이쁜 아줌마! 내 잔이 비었네?'  술 따라 달라고 야단이다. 그리곤 끝내 양주 한 병을 완전 비워버렸다. 두병째 였다. 노무현씨 노래 지명이 왔다. 그 양반이 무대로 올라가자, 취한은 그가 무슨 친한 친구라도 되는 양 같이 무대에 올라갔다. 그리고 같이 마이크 잡고 노래 세 곡을 연속 불렀다. 노래 끝나자, '아니 사회자 양반! 남인수 고향 사람을 잘 모르네? 나도 반주 한번 넣어주소'  그러곤 순서에 없는 노래를 세 곡 연속으로 불렀다. 이런 걸 안하무인이라 한다. 술주정이라 한다. 이때 노의원도 기세 강한 사람이다. 니가 내 노래 불렀으니, 나도 니 노래 부른다는 심보인 모양이다. 같이 마이크 잡고 거침없이 불렀다. 

 지금 생각해도 그날 운 좋았다. 임자 잘못 만났으면 시비 붙었을지 모른다. 나중에 비서실 직원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그룹 비서실장님인데, 만취해서 결례 많습니다. 오늘 계산은 저희들이 하겠습니다.' 그러자 그때 그 양반 댓구가 맘에 들었다. '나도 술 좀 하는 사람이요. 괜찮으니, 계산은 관두시오.' 였다. 훗날 나는 대학 홈컴잉 자리에서 손숙씨도 만났다. '전에 필하모니에서 결례한 그 사람이 바로 이 사람  올시다. 기억 나지요?' 그랬더니 손숙씨는 빵긋 웃으며, '아니네요, 정말로 재미있던 분이시던데요.' 멋진 댓구로 받았다.

  

 김대중 씨는 속초에서 만났다. 대통령 유세 때였던 것 같다. 한번은 관리부장이 내 방에 와서 오피스텔 두개와 강당을 김대중씨가 쓴다고 보고했다. 부장 생각엔 얼만가 사용계약금 받은 일을 칭찬받고 싶었던 같다. '어? 돈을? 그쪽에 연락해서 돈은 돌려주시오.' 이런 지시를 그는 선뜻 이해 안가던 모양이다. 쭈삣거리며 눈치를 본다. '썩어도 준치라고, 그래도 김대중 씨는 우리나라 3김 중 한 분이요. 그런 분한테 돈 받아서 쓰나? 오히려 우리 백화점에 와서 강연하니 우리 백화점 피알해준 것이요. 우리가 도로 그 양반한테 광고비를 줘야지...'  그랬더니, 좀 있다 속초 당 지부장 전화가 온다. '감사합니다. 선생님한테 사장님 조치를 보고하겠느니 어쩌니,' 돈 없는 야당 신세 하소연 겸해 고맙다는 인사였다. 

 

 나야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는 지붕 위 닭처럼 보는 사람이다. 관심 없다. 그러나 같은 호남 출신 그룹 회장은 어떨까? 미리 보고는 해두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그래 전화 보고를 하니, 노회장이 반가워 한다. '그랬어? 그럼 김대중씨 오시면 자네가 한번 만나소. 내 안부도 좀 전하고....' 말하자면  만나서 직접 자기 생색 좀 내라는 것이다. '그러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고 당에 연락하였더니, 좀 있다 면담 시간이 온다. 그런데 우리 그룹 종합조정실에서 난리났다. '김대중씨는 절대 만나선 안된다'는 것이다. 아들 회장이 대통령 출마한 이회창씨와 경기고 동창이다. 아버지 이야기 듣고, 아들이  놀래버린 것 이다. 선거 자금도 좀 건넨 것 같았다. '알았어요.' 일단 이렇게 대답은 했으나, 일은 꼬였다. 아버지는 만나라 하고, 아들은 안된다고 펄펄 뛴다. 김대중씨 쪽도 문제다. 멀쩡히 면담 신청해놓고 금방 어떻게 취소하나? 그날 그룹 본사는 밤 10시까지 절대 만나지 말라는 긴급 전화를 무려 세번이나 나에게 하였다.

 '아따 호떡집에 불 났어? 골치 아프게.' 이렇게 한참 골치 썩이다 내린 결론은, 만나고 안만났다고 보고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이튿날 김대중씨를 만났다. 그런데 별로 친하지도 않은 노회장 안부만 전하려고 면담 신청했다긴 뭔가 싱거웠다. 그래 궁리해서 낸 것이 내가 낸 책 한권 증정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 나온 사람이란 그런 것인가 싶었다. 15층 복도 전체가 그 분 만나려는 사람들로 장사진 이었다. 한없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방에 들어가니 정동영 정희경 두분이 수행하고 있었다. VIIP라고 우리 직원이 방에 병풍도 하나 갖다 놓았다. '백화점 사장님 이십니다.' 날 데려간 속초 지부장이 나를 소개하자, '서로 인사하세요.' 김대중씨는 손을 뻗어 뒤에 배석한 두사람을 가리킨다. '아! 이분들 제가 잘 아는 사람들 입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생판부지의 남자가 자기를 안다니 정작 당사자가 더 놀랬을 것이다. 그러나 내 말도 따져보면 틀린 말 아니다. ' 이분들 요즘 신문 TV에  맨날 나오는 분들 아닙니까?' 모두 웃고 말았다.  

 다 바쁜 분인데 우물쭈물 할 필요없다. 나는 바로 본론에 들어 갔다. '평소 제가 듣기로 선생님은 책을 많이 읽는 어른으로 알고 있어, 혹시 지방 가실 때 비행기 기다리는 시간에 보시라고 책 한 권 올리려고 왔습니다. 제가 쓴 책인데, 동양 고전 간략히 소개한 책 입니다. 그리고 저희 노회장님 안부 전해 올립니다.'

 그러자, 김대중씨가 책을 펼쳐보더니, '아 출판사가 김영사군요. 김영사 좋은 출판사지요. 곧 내 책도 거기서 한 권 나옵니다.' 그러면서 배석한 사람에게 자기 책 가져오라해서 즉석 휘호하고 건네준다. 한길사에서 나온 <나의 길, 나의 사상>이란 책이었다.

 

 

 

곁들여 본인 이름 새겨진 탁상시계와 만년필도 선물한다. 하나 주고 셋 얻었으니 장사 잘 한 셈이다. 훗날, 만년필은 나에게 살갑게 구는 호남 출신 후배에게 주었다. 김대중 휘호 새겨진 그 만년필은 그에게는 귀한 물건일 것이다. 

  

 

 

 이날 강연 마치고 돌아갈 때, 김대중 선생은 나에게 또다른 선물 하나 주고 갔다. 내 집 찾아온 손님이니 가실 때 배웅이나 해야겠다고, 백화점 입구에 나갔더니, 수많은 인파 속에서 어떻게 나를 보았던지 모르겠다. 선생이 인파를 헤치고 내게 닥아오더니, 귓속말 건넨다. '회장님께 잘 다녀갔다고 안부 전해주시오' 내용은 별 거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정치 9단의 그 제스쳐 의미를 몰랐다. 이튿날 아침에야 깨달았다. 새벽에 대명콘도 골프연습장에서 경찰서장 만났더니, '김사장! 사람이 어찌 그럴 수 있소? 자주 만나는 사람이....' 이상한 소리를 한다. '아니 서장님 무슨 말씀입니까?' 물으니, '사람이 숨기고 그러지 맙시다. 수사과장한테 어제 일 다 보고 들었소. 김대중 선생과 귓속말 한 거...' 한다. 그 보고 받고, 내가 서울의 무슨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된 모양이다. 그 참 군중 앞에서의 정치인 귓속말 하나가 이처럼 약빨이 강하다. 경찰서장과 같이 운동하던 세무서장은 더 놀래버렸다. 그 분도 호남 분이다. 당장 그날 아침밥은 세무서장이 샀다. 백화점 사장이 물주지, 세무서장이 물주겠는가. 그런데 상황 역전된 것이다. 다 선생님 덕이었다. 그 뒤부터 그들이 날 대하는 태도는 백팔십도 달라져버렸다. 은근 정중히 대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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