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내가 만난 주먹

김현거사 2011. 1. 29. 12:08

 내가 만난 주먹

 

 간혹 문인들이 이름난 작가를 회고하는 글을 쓰고 같이 찍은 사진을 올린 걸 본다.그걸 보면 그 분들 오랜 문단 경력이 부럽고 나도 그런 걸 쓰고싶은 충동이 인다. 나역시 젊어서는 문학전집을 들고다녔다. 그러나 문학은 나하곤 멀었고 나는 운동선수였다고 볼 수 있다.100미터 높이 뛰기 넓이 뛰기 투창 투포환 진주시 대표를 한 적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배에 술살이 올라 맛이 좀 갔지만,그때는 요새 젊은이들 보면 기절초풍할 임금 왕자 뚜렷한 흉배근도 가졌었다.원래 우리 집안은 김해김가 四君派고,사군파는 함경도 병마절도사 전라좌수사 같은 7척 장신 배출한 장군 집안이다. 그 덕에 나도 대학시절에는 성대 한양대 중앙대 서울농대 미식축구 선수들 애 좀 먹였다.'지리산 곰'의  어깨로 밀치는 숄더불럭과,전방 사오미터에서 휙 날아서 허리 휘청하도록 받아버리는 힙불럭은 위력적이었다.그러나 이제는 나이 들어 운동도 한 물 갔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수필을 쓰며 시간을 보낸다.문인이면 어떻고 무인이면 어떠냐? 내가 만난  왕주먹 이야기나 한번 해보련다.

 

 <야인시대>에 등장했던 조열승을 기억할 것이다.그는 자유당 때 깡패 임화수의 오른팔이다.자유당 시절 대표 주먹을 내가 제압해보려던 이야기다.

 우리 회사에 추풍령 넘어 김천에 몇 만평 금싸라기같은 배밭이 있다는 이야길 들었다.산 속에 있는 배밭엔 멋진 호수와 보트와 정자까지 있다고 했다.그런데 거길 조열승이 무단점유하고 산다는 것이다.부동산 관리 담당 과장 말로는 조열승은 서울의 유서있는 기와집을 헐어서 기왓장과 목재 하나하나까지 날라 대궐같은 한옥을 짓고 살면서, 매년 토지에 부과되는 재산세 고지서만 회사로 꼬박꼬박 보낸단 것이다.

'아니 이런 고약한 경우가 어딨소?그런데 왜 가만 있소?'

 이렇게 묻자,

'우리 회사에 조열승 만나서 담판할 인재가 없어서 않그럽니까?'

라는 대답이었다.

솔직히 조열승이란 말에 흥미가 모락모락 일었다.자유당 때 동대문 시장 사장하던 조열승 아닌가?도대채 덩치는 얼마만 하고, 주먹은 어떻게 생겼고,언행은 어떨까. 여행도 할겸 출장비 받아 그를 만나러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회장께 김천에 가서 조열승을 만나겠다고 했더니 노인네가 빙그레 웃기만 하며 다녀와보란다.네가 전직 기자였는데 조열승을 어떻게 다루나 한번 보자는 뜻이었다.

이래서 종합조정실 과장 하나 데리고 추풍령을 넘어갔다.  

' 자유당 시절 깡패면 지금은 늙었을 것이다.그 땅에다 부산의 '타이거'더러 도장 채리라고 해야지.'

나는 속으로 이런 계산을 해두었다. 내 친구 중에 '타이거'란  링네임으로 레슬링한 친구가 있다.그가 이름 좀 날리다가,몇년 외항선 타고 돌아와 도장 차릴 곳을 물색 중이었던 것이다. 힘은 힘으로 제압하자는 생각이었다.

물어물어 찾아가니 문제의 배밭 한구석 복숭아밭에 한 노인이 서 있다.보나마나 조열승이었다. 그는 자기집 찾아오는 우릴 높은 언덕에서 처음부터 빠안이 쳐다보고 있었다.

'저 사람이 조열승인 거 같습니다 어쩔가요?'.

'어쩌긴 어째.그냥 무시하고 올라가자'.

그의 코 앞에서 그의 시선을 무시한채 일부러 집으로 올라가 대문을 두드렸다.대궐같이 큰 대문이었다.아마 일하는 아줌마인 모양이었다.

'조열승씨 있습니까?'.

저 아래 복숭아밭에 계신다고 했다.일부러 절차를 한번 뒤집어놓은 것이다.그걸 조열승이 지켜보고 있었다.그리고 다시 걸어내려와 그의 곁으로 닥아가니, 그는 사람이 곁에 가도 딴 곳만 보고 있었다. 

'조열승씹니까?'

이렇게 그와 만났다.

역시 한 시대를 뒤흔던 주먹이다. 멀리서 볼 때는 주먹치고는 덩치가 별로여서 속으로 좀 실망하려던 참인데,곁에 가서 천천히 돌아서는그의 시선과 마주치니 생각이 싹 바뀐다.제대로 임자 찾아왔구나 싶었다.그 눈빛은  뭐랄까, 화등잔만한 불을 켠 호랑이 눈빛이랄까.마치 자동차 헤트라이트 불빛이 갑자기 얼굴에 비치는 것 같았다. 강열하기 그지없다.그렇다고 적의를 품은 눈빛도 아니었다.장자에 나오는 최고의 싸움 닭 이야기가 생각났다.주나라 선왕의 부탁을 받고 기성자라는 사람이 싸움 닭을 길렀다.그 최고의 싸움닭은 옆에 다른 닭이 다가와도 눈길 한번 건네지않고,이미 무심의 경지에 이르러, 상대가 높은 소리도 울어도,마치 나무로 만든 닭은 보듯 전혀 반응을 보이지않았다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역시 고수답네.'

속으로 점수 한 점 주며, 계산해둔 수작을 펼쳤다.

'여기 사시지요?내가 이번에 이 땅을 사서 한번 둘러보러 왔습니다.'

'서울의 김ㅇㅇ한테서요?' 

'네 그렇습니다.'

그러자 금방 알아채린다. 땅 주인하고 따져서 뭘 하는가.태도가 신속히 변한다.

'잠시 저기 정자에 가서 이야기나 해봅시다.'

이리되면 서로 얼굴 붉힐 일 없다.사실 김천에 와서 추풍령 쪽 그 동네 사람들에게 조열승의 동향을 물어보다가 속으로 좀 뜨끔한 점이 있었다. 구멍가게 주인 말로는 그 동네서 나온 가장 유명한 사람이 조열승이고,그 다음이 참모총장 정승화란다.이렇게 알아주는 조열승을 자기 고향집에서  쫒아낸다는 것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정자에 올라가 내가 말문을 열었다.

'호수의 저 보트도 노인께서 띄웠습니까?'

땅 주인이 바뀌었으니 쫒겨나야할 팔자다.그 땅 위에다 정성껒 한옥집과 정자와 보트까지 만든 사람 심회가 어떻겠는다. 그걸 살짝 건드린 것이다. 

그는 한참 말이 없었다. 오랜 침묵 후 입을 떼었다. 김00는 자유당 국회의원이고,자기는 사례를 받고 뭔가 일을 해주는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그런데 무슨 건으로 돈은 받았는데,4.19가 일어나 자기가 감방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원래 그 시절 깡패는 요즘과는 다르다.의리를 안다.조열승도 그랬다.한글을 모르는 그는 김의원을 믿고 그가 내민 백지 위임장에 손도장을 찍어주었다는 것이다.나중에 보니 정릉의 천여평 넓은 집과 땅이면 충분한데 김천의 고향 집까지 포함시켰더라는 것이다.임화수한테 가서 호소했더니,

' 김00 의원한테 걸렸으면 잘못 얽혔어. 큰 일 났구먼'

하더란다. 조열승은 글은 모르는 대신 기억력이 비상한 사람이었다.모든 걸 소상히 기억하고 있었다. 자유당 시절 모년 모일 어디에서 누구와 무슨 이야길 했었다는 것까지 다 기억하고 있었다.그런 이야길 들으며 김천 간다니 빙그레 웃던 회장 얼굴이 떠올랐다. 역시 주먹보다 한 수 위인 우리 회장님이다.그 정도 쯤 되니 지금 벤츠 타고 다니는구나 싶었다.  

'나는 어르신이 그런 유명한 분인줄 몰랐습니다.그건 그렇고요. 지금 부산 가야하는데,시간이 없습니다.연락처 드릴테니 잘 생각하셔서 1년 도지 얼마 주겠는지 전화하세요.서로 상의 않되면 나가셔야 되고.'

이러고 일어나서 총총히 과수원을 내려왔다.그와 오래 있어봐야 손해기 때문이다.일단계 작업이 이것이고, 이단계는 <타이거> 데리고 올 일이다.

이렇게 가볍게 일 끝내고 박과장과 희심의 미소 짓고 내려오는데,

'여보시오,젊은 양반!'

 뒤에서 조열승이 뛰어왔다.

'그래도 먼 데서 온 손님인데, 그냥 보내는 것이 미안해서...막걸리 밖에 없지만, 저 밑에서 한잔 사리다.'

 경우가 있다.그래 둘이서 동네 가게서 막걸리 세 되 비웠다. 자연 이야기가 길어졌다.그는 자기가 감방에 갖히자 이혼해준 처자식 이야기도 했다.부인은 당시 동대문 모여학교 재단이사장이라고 했다.자기는 음지에 살면서, 처자식은 양지에 살도록 한 그의 배려가 맘에 들었다.나 역시 술 들어가면 술술 말이 잘나오는 사람이다.마치 형님 만난냥 주거니 받거니 끝 없이 잔 돌렸다.

'형님! 부산 가는 기차 늦겠소.빨리 일어납시다'

서울 올라오는 기차 속에서 박과장이 내가 실수할까봐 조마조마해서 간이 다 오무라들더라고 했다.

이러고 올라와서 슬슬 이단계 작업을 시작해볼까 생각중인 어느날 이다. 수위실에서 전화가 왔다.

'김천서 조열승이란 분이 회장님 뵈러 비서실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아니 그냥 올려보내면 어떡해?수위실에서 제지해야지.'

'이 분을 막을 수가 없는데요.'

하긴 그러려니 싶었다.자유당 때 그 조열승을 우리 수위가 어찌 막으랴.

'그럼 종조실 김전무가 만나라고 해.'

이래 놓았더니,좀 있어 김전무 전화가 왔다.

'아니 김비서역!가만 있는 조열승을 당신이 내려가서 건드려 놓고 날 더러 만나라면 어떡해?'

'왜 안되십니까?회사 부동산 관리하는 종조실 책임자 아니십니까.만나서 그 땅은 언제 김 누구누구인 나에게 팔아버렸다고 해명만 해주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김전무는 전혀 내키지않는 모양이다.

'김비서역 이래도 되는거요?'

싱강이부터 벌인다.

'아니 경우가 그렇찮아요?내가 나가면 일이 우습게 되잖아요?부동산 담당부서가 만나야지.'

'당신 정말 이럴꺼요?'

'뭐가 어떻다는 겁니까?방법이 그것 밖에 없는데...'

김전무는 한참 더 사설을 달면서 열 올리더니,궁여지책을 썼다.자기 산하 박과장을 내려보낸 것이다. 

그런데 김천에 왔던 박과장 얼굴을 본,조열승의 태도가 역시 한 시대의 주먹 보스다웠다, 쓰다달다 두말없이 가버리더라고 했다.대번에 사태파악을 한 것이다.회장을 만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역시 센스가 번개였다.흥분한 김전무가 나중에 회장실에 올라와 이 일을 횡설수설 회장에게 보고했다.이때 회장은 날 보고  빙그레 웃기만 했다.나 역시 회장 보고 싱그레 웃었다.김전무만 그 까닭을 몰랐다.

 

.

 

 

속초 강패.조달청 우라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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