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낮잠 한번 시원하게

김현거사 2013. 6. 11. 08:38

 

 

    낮잠 한번 시원하게

 

  나는 태생이 원래 미련한 곰이다. 처세에 서투른 편이다. 욱하는 성질이 있는 소다, 간혹 사람을 뿔로 받는다. 좋은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비서를 20년 했으니, 고충이 오죽 많았겠는가. 청탁 오는 사람들, 회장한테 아첨하러 오는 중역 모습에 염증을 내다가, 어느날 은퇴했다. 부귀영화가 복마전인걸 알았으니, 시골 가서 농사나 짓자고 생각했다. 내가 키운 채소가 이 세상 어느 산해진미 보다 맛있음을 누려나보자 했다. 거친 음식, 거친 술 마다않고, 청산에 살아보자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서울에 살고있다. 새벽에 글 쓰고, 아침은 뜰에 나가서 돌과 꽃을 친구한다. 나의 글은 소동파같은 풍류도 없고, 제갈량같은 충정도 없다. 왕유처럼 속세를 초월한 뜻도 없다. 군데군데 미욱한 구석만 보이고, 덕지덕지 때만 묻어있다. 어쨌던 쓰기 끝나면 뜰로 나간다. 시원한 아침 공기 마신다. 돌에 물을 준다. 돌을 적시면 마음도 적셔진다. 젖은 돌무뉘를 본다. 어떤 돌은 바탕에 하얀 폭포가 들어난다. 흰구름도 보인다. 태산준령도 보인다. 이런 것이 산수화 아니던가. 나는 청산 속으로 들어간다. 그걸 저승꽃이라 한다. 세월이 가면서 내 얼굴에 검버섯이 피고있다. 돌도 나의 검버섯 같은 청태가 끼기를 기다린다. 6시면 봉은사 종소리가 들려온다. 고요한 종소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리다. 화초는 여인이다. 어제 곱던 꽃이 오늘 시들고, 어제 외면한 꽃이 오늘은 곱다. 그걸 변화라 한다. 올해도 이미 6월이라, 수선화 매화는 날 만나고 떠났고, 작약과 장미도 왔다가 떠났다. 그걸 회자상리(會者常離)라 한다. 이젠 접시꽃을 만나고 있다.

  주원장은 소싯적에 중이 되어 떠돌아다닐 때, 옷에는 이가 득실거렸고, 부잣집 문전에서 밥을 구걸하다가 개망신 당했다. 천신만고 끝에 명 태조가 되었으나, 노년은 쓸쓸했다. 함께 한 공신들을 자기 손으로 처형하여 냉혹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조강지처마져 그를 외면했다. 제갈공명의 말년도 비참했다. 임금은 우둔했고, 중신들은 그를 모함했다. 쓸쓸한 오장원 별로 지면서 그는 후회하였을 것이다. 애당초 유현덕의 삼고초려를 거절했어야 했다는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영웅호걸도 말년은 이처럼 비참했다. 그런데 곰처럼 소처럼 미련한 내가 뭘 바라겠는가. 세월은 공평해서 나도 그들 같은 노년이 되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우리 보통 사람은 그들과 다르다. 주원장처럼 개망신 당한 적 없고, 제갈공명처럼 가슴 치며 후회할 일 없다. 다 가늘게 먹고 가는 * 싼 덕이다. 나는 이걸 천우신조와 조상님 은덕이라 생각한다. 사람이 재주 많으면 오만하고, 돈 많으면 오만하고, 권세 많으면 오만하다. 오만하면 욕을 먹는다. 우리는 재주도 돈도 권세도 없으니, 이걸 천우신조라 말하지 않는다면, 감히 또 무엇을 말하겠는가. 이제 나는 다리 밑 거지 팔자다. 밥 걱정 없고, 세상 걱정 없다.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바둑 구경하고, 오후엔 거실에서 낮잠 한번 시원하게 자는 것이 일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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