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연꽃

김현거사 2013. 7. 13. 08:23

 

          연꽃  

    

  나는 그 꽃을 마음을 비우게 하는 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언젠가 인도에 가면 반드시 그 꽃을 구경하고 오리라 생각하고 있다. 불교의 팔만대장경은 한마듸로 요약하면 공(空)이다. 오온(五蘊)이 개공(皆空)이니, 집착을 끊고 마음을 비우라고 한다. 불교의 상징인 연꽃은 공(空)을 말해주는 꽃이다. 그래서 나는 점점 이 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이 들면 누구나 건강도 기억력도 주머니 사정도 약해진다. 그 시점에서 연꽃 앞에 앉아, 고요히 인간의 생노병사, 빈부귀천의 본질을 생각해보는 것은 바람직한 일 이다. 연꽃은 오온(五蘊) 개공(皆空)이라는 화두(話頭)를 말해주는 신비로운 꽃 이다.

 나는 그 꽃을 참선의 꽃이라 생각한다. 부처님이 제자들 앞에 연꽃을 흔들자, 가섭 혼자 그 뜻을 알고 빙그레 웃었다고 한다. 이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는, 말을 넘어선, 말이 필요없는, 경지다. 선(禪)의 출발점 이다. 연꽃은 이심전심의 꽃이요, 묵언의 꽃이다. 선(禪)의 출발점이요, 선(禪)을 사랑하는 사람이 즐길 꽃 이다. 이 연꽃 앞에 앉아, 연향을 맡으며, 법(法)을 생각해보는 것은 바람직한 일 이다.

 

 

 주렴계는 <애련설(愛蓮說)>에서 자신이 연꽃을 사랑한 까닭을 피력하였다. '연꽃이 유독 진흙 속에서 나왔으면서도 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씻었지만 요염하지 않고, 속은 비었지만 밖은 곧으며, 넝쿨지지 않고 가지 치지 않으며, 향은 멀수록 더욱 맑고, 고결하게 서 있어서, 멀리서 볼 수는 있어도 함부로 가지고 놀 수 없음' 때문이라 하였다. 사람이 진흙탕 속에서 물들지 않을 수 있는가. 맑은 물에 씻고도 자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 속으로 너그럽게 비웠으면서, 밖으로 꼳꼳하게 절조를 지킬 수 있는가. 속된 무리와 넝쿨을 만들고 가지를 치지 않을 수 있는가. 자신의 고결함을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멀리서 바라보면 그윽한 향기를 풍길 수 있는가. 남이 함부러 할 수 없도록 처신할 수 있는가. <애련설>은 그 모든 것을 말해준다.  

 

 

  세상에 아름다운 꽃은 많다. 그러나 청련(靑蓮)거사 이태백처럼 연꽃을 사랑한 사람은 드물다. 그는 특정 꽃을 지칭한 시를 남기지 않았으나, 연꽃만은 예외다. <채련곡(採蓮曲)>이란 시를 남겼다. 
'약야계(若耶溪)의 물가에서 연꽃 따는 아가씨들. 웃으며 연꽃 사이에서 이야기한다. 아름답게 단장한 얼굴에 해가 비추니 물 속까지 환해지고, 소맷자락 향기는 바람에 공중으로 솟구친다. 물가 기슭에는 뉘 집 한량들인가, 삼삼 오오 수양버들 사이로 오가는 게 비친다. 자색 말이 길게 울며 낙화 속으로 사라지니, 이를 본 연꽃 따던 아가씨들 주저하여 말 못하고 애만 태운다.'

 

 

  나는 이번에 수지로 이사온 김에 맘 먹고 연꽃을 사왔다. 흔히 연꽃을 물속의 요정이라 부른다. 연꽃은 어디에 있어도 푸르고 맑은 줄기를 유지한다. 연잎에 물이 닿으면 물방울은 수정처럼 굴러 떨어진다. 물방울이 지나간 자리는 흔적이 남지 않는다. 사람이 세속을 대함이 이 연꽃 같아야 할 것이다. 이를 본체청정(本體淸淨)이라 한다. 연꽃이 피면 물속의 시궁창 냄새가 사라진다. 향기가 연못에 가득해진다. 사람이 이 연꽃처럼 살아야 할 것이다. 이를 계향충만(戒香充滿)이라 한다. 연꽃은 모양이 둥굴고 원만하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온화해진다. 사람이 이 연꽃처럼 원만하고 부드럽고, 옆에서 보면 마음이 화평해져야 할 것이다. 이를 면상희이(面相喜怡)라 한다. 이런 것이 연꽃의 가르침이라 하겠다. 그래 큰 맘 먹고 연꽃을 사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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