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동창

조규복

김현거사 2011. 11. 13. 09:11

작성자
작성일
2008-07-31 (08:37:41)
글제목
고인의 명복을 빌며
분당 차병원 영안실에서 대학교수였던 조규복 친구를 보냈다.그는 중학교 1학년 때 내 옆에 앉았던 친구다.
당시 영어 시간은 미리 예습 안해간 친구에겐 공포의 시간이었다.정답이 나올 때까지
‘너. 너. 그 다음 그 다음...’
변영우선생님은 냉정한 눈으로 친구들을 쏘아보면서 마치 줄빳다 치는 식으로 그 옆 사람에게
살벌한 고문을 계속했다.
그리고 대답 못한 친구들은 무슨 포로처럼 전부 세워두었다가 정답이 나온 후 모두 뺨다귀가 얼얼하고
화끈화끈하도록 매서운 손맛을 보여주었다.‘Spring has come.'은 지금도 확실히 기억난다.
그걸 'is'로 대답한 친구는 모두 가차없이 당했다.이 공포의 도미노게임을 규복이 덕에 나는 자주 벗어났다.
그가 예습을 해와서 번번히 질문이 그에게서 끝났기 때문이다.

금성초등학교 동기들은 어제도 빈소를 지켰다고 한다.소주 몇 잔 들어가자 나는 중학교 때 반장이던
내 앞에 앉은 김화홍 친구와 먼저 고인이 된 다른  친구도 회상했다.
‘가장 친하던 친구가 죽었는데도,하늘이 뒤집히고 땅이 꺼져야 했는데도,여전히 이 세상이 아무 탈없이
그대로 일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상하더라.’
고3 졸업 후 철도 자살한 철수를 그도 기억하고 있었다.쇼펜하우엘 키엘케골을 같이 논하던 철수가 떠나자,
나는 사하라 주둔 프랑스 외인부대를 지원하는 실존주의 소설의 주인공처럼 자신을 자학하려고 자원입대하여,
밤마다 달구지 수송부대의 고무호스 빳다로 엉덩이를 지졌다.자살하겠다고 실탄을 항상 내 차에 싣고 다녔다.
그리고도 모자라 제대하고 혼자 남해와 욕지도를 떠돌며 혼자 1년을 살았다.
영문 성경 한 권과 원고지만 들고 간 섬은 새벽이면 자갈밭에 부딪히는 파도소리가 가슴을 후벼팠다.
촛불을 켜놓고 빈 방에 혼자 앉아 울기도 했고,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운 해변을 혼자 미친 듯이 헤매기도 했다.
천길 절망의 벼랑 끝 청춘시절 이었다.

그는 규용이도 기억하고 있다.부산에서 규용이가 의식을 잃은 후 찾아간 가야의 병실에서 그의 부인을 만났다.
‘서울에서 김00란 친구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의식을 잃기 전에 부인에게 말했다고 한다.
부인이 유독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규용이와 나는 같은 날 결혼식을 올렸고 신혼여행을 법주사로 정했었다.
체격이나 성격이나 친구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던 그가 부산 생활에 절망한만치 서울 사는 벗이
더 그리웠을 것이다.그 흐느껴 울던 부인과 그 뒤 자주 연락을 취하지 못했다.

생은 한조각 구름이 생기는 것이요,죽음이란 한조각 구름이 흩어지는 것이라 한다.
환갑 진갑 지냈으니 이젠 친구들과 이승과 저승으로 간혹 나뉜다.
아!저승길엔 주막도 없다는데,그 황량하고 쓸쓸한 길 떠난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08.07.31(09:40:48) 수정 삭제
항시 느끼는 것이지만 역시 거사의 글은 정감이 가는 글이네. 호랑이 변영우 선생님,
또 규영이 얘기등에서 .......오늘 아침에도 잠깐 과거로 돌아가게하는군.고인의 명복을
빌어 봅니다.

2008.07.31(12:10:27) 수정 삭제
한치 앞도 볼 수 없음을  실감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의 죽음에 가슴이 무거워지고 답답한 심정을 글월로 올렸구나!
가슴으로 잘 읽었네.

살아있음의 감사함으로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다시 한 번 친구의 명복을 빌며...

2008.07.31(13:05:52) 수정 삭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08.07.31(15:22:56) 수정 삭제
대안동에 동아피혁상이 바로 우리점포며 그  옆에 붙은 과자공장이 삼화제과소였다.
조규복, 조태현 아제비 조카사이다.조규복 아버님은 당시 연세가 높았지만 준수한 용모였다.
조규복이 세상을 떠난 사실이 애석하다.그는  품위를 지키는 남학생이였다.

2008.07.31(17:10:14) 수정 삭제
거사님,
우찌 그리도 보고싶었던 변영우 선생님의 함자가 나왔노~!!
거사, 고인,화홍이,```키큰 친구들이라 뒷좌석에 앉아서 키가 작았던 우리들을 훝어 보면서
덩치를 자랑(?)하지 않했는가베. 이용주선생님이 담임을 한 1학년 5반아니었나??
참으로 그시절 변선생님의 엄한 숙제`각단원을 외워오라는 엄한 분부로 인해 난 지금도
`4계절의 문장`을 거의 외운단다.변선생님의 문장을 달달 외우게 한 교수법이 감사를 하면서````
고인의 가정은 대안동 에서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지 않는가~~~~하하하^&^ ^^^
다시 고인을 화상하면서 명복을 빌고 빈다.
``In spring,the gras is green and all flowers are in bloom
the birds sing all day and building their nest.````( 그때 영어교과서는 유니언 이 아니었는가?)

2008.07.31(17:39:03) 수정 삭제
성품에는 생사가 없는 줄(춘하추동과 같은 변화의 현상)을
확실히 깨달아서 친우의 영로를
잘 인도하기를 빕니다

2008.07.31(22:32:47) 수정 삭제
제법 기도 다운 기도를 했다. 그리고 명복을 빌었다.

2008.07.31(23:07:16) 수정 삭제
거사님! 남해안 누비며 방황했던 옛얘기 듣고보니 文靑의 기질이 진작부터 있었군.
여기 규용이는 조규용을 말하는지? 조규용이는 한때 나와도 한반이었는데.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차분한 멋쟁이었는데.변영우 선생님에 대한 추억을 언젠가 한번
얘기 한적 있었는데.1학년 6반 담임이었는데,당시 반장은 봉산이었고 나도 같은 반
이었지.뒤에 알고보니 나와 봉산이 합천 촌놈이었는데 변선생님도 고향이 합천이더라
그래서 조금 잘 봐줬는지 둘다 별로 얻어 맞진 않았어.UNION책에 나오는 Sally와
Willie를 양쪽편 맨 앞자리부터 대화를 시켜 모르면 next라고 했지. 그 시절 next에
걸려 서 있는 친구들 귀는 손바닥과 슬리퍼 자국으로 빨갛게 물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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