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동창

박종식 선배

김현거사 2011. 11. 13. 09:00

작성자
작성일
2008-07-04 (06:11:19)
글제목
젊은 날의 여름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 사람 이름은 박종식이다.

방학이지만,막상 집에서 놀아보면 지루한 것이 여름방학이다.
석양이 오면 나는 해인고에 평행봉 하러 가곤했다.
그는 해인고 부록크 담벼락 밑에 혼자 앉아 남강서 줏어온 넙적한 돌에 手刀를 단련하고 있었다.
그의 수도는 그의 정권과 마찬가지로 궂은 살이 겹겹히 박혀있었다.
그가 수도나 정권으로 때리면 길다랗거나 납작한 돌이 떡! 반쪽으로 잘라지곤 했다.
그는 모래주머니를 허벅지에 매달고 운동장을 스므번씩 돌기도 했다.
이렇게 다리 힘을 기른 그가 하는 옆발차기는 상상을 불허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은 갈비뼈가 부러진다고 했다.
나도 간혹 그 사람 옆에서 운동 흉내를 내곤 했다.
옆에 넙적하고 커다란 돌을 놓고 수도나 정권을 다듬고,
모래주머니를 메고 따라서 운동장을 돌기도 했다.
나는 도 닦는 기분으로 그 옆에서 그가 하는 운동을 따라했다.
나도 원간한 두툼한 돌을 반쪽으로 잘랐고,다리 힘이 좋았다.
내 키보다 훨씬 높은 해인고 부로크 담벼락을 두발로 올라서곤 했다.
서너 발거름 뒤에서 달려가 손 안대고 발로 중간을 툭 차고 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당시 진고 교실 문패를 뛰어올라 발로 찰 수 있는 것은 몸이 가볍고 키 큰 임영호와
80킬로 나가면서도 발 힘 좋은 나 밖에 우리 동기 중에 없었다.
그는 손가락도 단련하여 살아있는 돼지를 맨손으로 찔러 내장을 꺼낼 수도 있다고 하였다.
탄력있는 돼지의 삽겹살 오겹살을 찌르고 그 속의 내장을 꺼낼려면 엄청난 손가락 힘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보통 사람은 엄두도 못내는 것이다.
그는 남강 모래밭에 손가락을 찌르며 손가락 힘을 단련했다.
나는 소림사 승려처럼 무도를 닦는 이 사람이 좋아 그의 제자를 자청하여,
당수의 기본형을 그에게 배웠다.
시내에는 주먹도 별로 없는 친구들이 시골서 진주로 유학 온 어수룩한 시골애들을
괴롭히고 다녔다.그러나 그들 싸움은 병아리 싸움 같은 애들 작난같은 것이었다.
전혀 위력도 없고 깊은 내공도 없다.사람을 치사케 할 치명적인 파워도 없었다.
그러나 박종식은 이들과 싸운 역사가 없다.
당시 진주 시내를 건들거리는 소워 깡패란 것들도 해인고의 이 박종식을  전문 싸움닭
<한또>처럼 피했다.
내가 아는 한 당시 그는 진주에서 숨어있는 최고 고수였다.
그 박종식은 그 후 남미 어느 나라 태권도 사범으로 이민 갔다.
여름이 되어 푸라타나스 푸른 잎새 사이로 흩어지는 뭉게구름  보느라니,
해인고에서 평행봉하던 그 시절 추억이 떠오른다.
그때는 스물 안쪽의 소년이었고,지금은 64세다.
내년이면 경노우대증이 나온다.
박종식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늙어갈까?
2008.07.04(06:45:58) 수정 삭제
참으로 혈기방장하던 젊은 날의 추억이다. 호방하고 정열이 넘쳐서 좋다.

2008.07.04(07:48:35) 수정 삭제
태권도 2-3단 가지고는 실전 싸움꾼 한테는 절대 이길수 없다. 단 이길수 있는 방법은 기습 선방으로
넉 다운 시켜야한다. 그런데 거사 니가 힘께나 썻다는 것은 미끼지 않는다. 지가 자랑하는 것은
누가 못하노! 친구들이 확실히 증언 해 주어야 한다. 이번 토요일에 진실이 밖혀 질테니 사전에
친구들 한테 잘 부탁한다고 전화 하지마라ㅎㅎ.

2008.07.04(09:03:15) 수정 삭제
진서야 !
정말 그분이 9.33의 최고순가 ?
이번 토요일에 누가 도전하는가 ? 찬바람이 여기까지....
혹시 자네는 아이것제 ?
옆에서 심판이나 봐라
내친김에 토요일에 이 와룡선생도 상경 해볼까나 ?

2008.07.04(10:05:29) 수정 삭제
홍열아!내친김에 족구장에서 진서 실력 확인도 할겸 한번 오이라.

2008.07.04(11:38:45) 수정 삭제
우리 어릴 때  진주극장에서 관수(손가락)로 돼지의 내장을 찔럿던 분들은
우리나라 당수(태권도)의 개척자들이였다. 진주출신으로도 여러분 해외로 나가셨지.
철없이 각목에 짚감아 정권 단련하고, 남강에서 조약돌 쥐고 수도연습. 모래사장에 손가락 찌르기 흉내내던
그래도 태권도, 유도, 권투등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있던 우리의 학창시절은 행복했다
요즈음의 학생들 생활을 보면 불상해 눈물이 난다. 공부에 찌달려 피곤해 하는 걸 보면.

2008.07.04(11:51:40) 수정 삭제

야들이 공부는 안하고 싸움 연습이나 하고 다녔나?

2008.07.04(16:42:03) 수정 삭제
제자가 싸부 보고 야들이라니 말세로다.

준재야 동아콤 읽어보았다.그 사람은 진주 그 사람 아니다.

2008.07.04(20:10:10) 수정 삭제
Glad you read DongA.com article, Chang-hyun ah. Sorry, I erased my reply.
It was too long, I thought. I'll find out through Mr.Lee Moon-sung.

2008.07.04(23:47:45) 수정 삭제
요즘은 인사청문회 안 해 보모 사실을 명확히 알 수 없다.
거사가 교실 문패를 뛰어 올라 찼다는 데...
족구장에서 조금 높은 공이 오면 발보다는 머리를 많이 쓰던데...
어쩌다가 높은 공 발로 처리하다가 꽈다당 엉덩 방아 찢는 거 보면...사실일까?
중식이나 건갑이 보면 그 체중으로도 가볍게 뒷발이나...단숨에 뛰어가 처리하는 순발력이...아직도 살아...
국가 대표선수...배구와 유도선수의 기량이 예순이 넘어도 은연중에 발휘되는거 보면...
거사가 교실의 문패를 뛰어 올라 찼다는 얘기는 검증이 필요한 사항이다....

2008.07.05(11:33:19) 수정 삭제
우리들의 학창시절은 쌈 잘하고 힘센 사람이 최고가 아니였던가?
거사도 그당시 상당했던것 같네.한참 세월이 흐른 지금에는 부산의 양장사,
진주의 강홍열.제주의 탐라왕,서울의 거사 정도가 그래도 힘 깨나 쓸수있는
능력자로 보이는데 ......ㅎ ㅎ

2008.07.05(17:28:17) 수정 삭제
우리 학창시절에 태양, 파도,독수리 ```주먹 클럽이 학교간 조직이
되어  학생들 사이에 군림(?)했지, 생활지도부선생님들의 골치대상이었지만 ,그시절은 하나의 낭만도 있었고 의리도 좋은 순수파 주먹구락부였다고 회상되네.
진고-농고간 대립으로 큰 싸움이 있을 때도 전진하는
행렬 앞,뒤, 옆에서  다그치며 전열을 재촉한 선배들도
다들 주먹클럽 소속들이였지 않나 싶다
참으로 순수파 적 그때 그시절의 아련한
추억들이아닌가 ^^^ㅋㅋㅋ.

2008.07.06(15:35:33) 수정 삭제
당시 진고 교실 문패를 뛰어올라 발로 찰 수 있는 것은 몸이 가볍고 키 큰 임영호와
80킬로 나가면서도 발 힘 좋은 창현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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