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고향의 강

김현거사 2011. 1. 19. 11:16
 

          고향의 강

 

                                                                                                김창현 

 

 지금도 나는 남상규가 부른 <고향의 강>이란 노래를 좋아한다. 노래말이 시처럼 잘 다듬어진 것은 아닌 것 같으면서도 정작 가슴을 때린다. 나는 이 노래 들을 때마다  따뜻하던 진주 남강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시울 붉힌다. '눈감으면 떠오르는 고향의 강 지금도 흘러가는 가슴 속의 강. 아아아 아아아아! 어느듯 세월의 강도 흘러,진달래 곱게 피던 봄날에 이 손을 잡던 그 사람.' 지금도 눈감으면 떠오르는 진주 남강이다.

 

 내고향 진주 남강은 옛날 진달래 곱게 피던 봄날에 만날려고 애태우던 고향 소녀처럼 그리운 존재다. 그 강은 내 소년시절 추억 속 한 언덕 아래로 흘렀다. 그 언덕은 서장대 건너편 <메기통> 가는 길에 있었다. 

 <당미>라고 부르던 그 언덕엔 커다란 늙은 감나무가 있었다. 늦가을 새빨간 서리맞은 홍시가 주렁주렁 매달리면 배고픈 아이들은 그 꿀맛을 따기위해 돌도 던지고 장대도 흔들고 안달이 나곤 했었다. <메기통>은 벌거숭이 아이들 따이빙 자리였다. 수경 쓰고 고무총 들고 잠수하면 물 속 바위 밑에 수염이 길다란 메기가 많았다.

 소년들은 물가 바위 위에서 영화 <쎈>의 게리쿠퍼나 <형제는 용감하였다>의 스츄어트그랜져 폼을 흉내내고, <애수>에 나오던 비비안리, <가스등>에 나오던 잉그릿드버그만의 미모에 가슴을  태웠다. 최무룡의 <꿈은 사라지고>, 현인의 <신라의 북소리>,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 불러가며 유행가 경연도 벌이고, 따닥따닥 천막 유랑극단 가설무대 말광대 탭댄스 흉내도 내고, 나무가지로 딸따냥마냥 칼싸움도 했다.

 나는 젊은 베르테르인양 절벽 위에 찔레꽃 비새꽃 나리꽃 피면 청순한 첫사랑 소녀 모습 그리워 한숨지었고, 고교 졸업 후 염세자살한 단짝 친구 뼈 몇조각을 그 언덕 위 노송의 옹이 틈에 깊이 감춰두고 군에 입대했다. 내가 그의 자살 충격으로 <이방인>의 주인공 뭐르소인양, 실존의 아품을 안고 스무 한 살에 자원입대한 것이 아득히 45년 전 일이다. 지금 그 언덕에 불던 그 싱그러운 봄바람과 벚꽃 만발한 언덕을 거닐던 꽃 같던 처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언덕 건너엔 신안동 들판이 있고, 사범학교가 있고, 서장대가 있었다. 간혹 기차를 타려고 통학하던 진주사범 여학생들이 하얀 종아리 걷고 강을 건너와서 우리 총각들 마음 설레게 했다. 지지배배 종달새 울던 신안동 강버들은 봄이면 아련한 그리움의 버들피리 불게했고, 수박향 나는 은어 몰려오던 <너우니>의 여름 지나가면, 노란 버들잎 물에 떠 흐르던 약수암 건너 가을 강은 그림같았다.

 

 하얀 백로떼처럼 촉석루에서 서장대까지 성 아래 남강변에서 빨래하던 여인들 모습은 한 폭 그림이었다. 달이 뜨거나 안개가 낀 날이면, 서장대 절벽에서 이봉조 쎅스폰, 남인수 고음 이브레이션을 흉내내던 모창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곤 했다. 이것이 진주 남강 풍경이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진주 출신 이형기 시인은 <낙화> 첫구절 이렇게 읊었다. 영남예술제 열린 밤이면 촉석루 아래 진주의 모든 남학생 여학생들이 유등을 띄웠고, 등은 청춘남녀의 낭만을 안고 멀리 <디비리> 모티를 돌아 도동으로 아득히 흘러가곤 했다.

 

 대밭이 사시사철 푸르던 남강 대숲엔 겨울 갈가마귀 떼가 모여 회오리바람 일으켰고, 물결 위에 불 밝힌 남강카바레 안에선 남녀가 밤늦도록 사교춤으로 바람나고 있었다.

 태풍 동반한 장마철이면 도도히 흙탕물로 변한 남강에 수박과 소나 돼지도 떠내려왔다. 그러면 진주 사람들은 모두 철교에 올라가 물구경 하였다.

 겨울 볼거리는 남강 둑에서 벌어지던 연싸움이었다. 싸움연은 민어 부레로 사금파리 연줄에 시퍼렇게 날 세운 사각방패연이었다. 방패연이 바람 타고 좌우로 아래위로 달리다가 다른 연과 엉키면 탁! 줄 끊긴 힘없는 연 하나 하늘하늘 공중에 떨어진다. 그러면 연줄 줏는 아이들 백사장 다투어 질주하곤 했다.

 얼음 언 강바닥은 댓가지 스케이트 타는 아이들 천국이었다. 지리산서 흘러온 여름 남강물은 너무 맑고 달콤했으며, 어항에 베를 덮고 구멍을 뚫어 그 안에 된장을 발라 잡던 모래문지 보리피리는 너무 이뻤다.

 <옥봉> 쪽 백사장엔 전국의 씨름판에서 황소 수십마리를 독점한 양점배 장사가 씨름을 가르켰고, 가을 백사장에선 소싸움판이 벌어졌다. 막걸리 한 말씩 먹은 경상도 전라도 싸움소들이 그 커다란 눈을 부릅뜨고 발로 모래를 걷어차며, 억센 뿔로 상대의 머리를 찌르고 감고 치며 자웅을 다투고, 인산인해 모여든 사람들은 그때마다 환호하며 자기 동네 소를 응원했다.

 이 남강의 밤은 호국사 종소리에 깊어갔고, 수주 변영로가 노래한 <강남콩 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흐르는 남강물 속엔 논개의 거룩한 분노가 흘렀다.

  

 남강 따라 <디비리 모티>를 지나가면 도동이 나온다. 도동은 복숭아 풍개 수박밭 천지였다. 디비리의 봄은 복숭아꽃 살구꽃 물에 뜨흐르는 도화원경을 이루었고, 칠암동 대숲엔 밤 목욕하러 나온 아줌마와 처녀들 나지막히 웃으며 철썩철썩 물장구 치는 소리 들려왔다. 그러면 장난끼 발동한 총각은 처녀들 옷 훔치려고 모래밭을 낮은 포복으로 기곤 했다. 단언컨대 당시 달빛 아래 푸른 대숲 속에서 연 맺은 청춘남녀도 더러 있었을 것이다.

 나는 달밤에 습천못 뒤 과수원 단감 따서 남강 모래밭에 숨겨놓고 댓가지 꽂아 표시해놓았다가, 이튿날 누가 그 댓가지 뽑아버려 노획물을 잃어버린 적도 있다. <너무니>에서 대를 베어 뗏목 만들어 낙동강을 타고 내려가 구포에 가서 팔아 돈을 만들 계획을 세운 적도 있다.

 임꺽정이 되어 물 건너 도동 수박 참외밭 풍개밭 습격 감행했다. 보라빛 칡꽃 핀 대밭에 들어가 낚싯대 만들어 뒤벼리에서 낚시도 했고, 진주농고 크로바풀 뜯어와 눈이 루비같이 붉고 털이 부드럽고 하얀 이쁜 토끼 키웠다.

 여름방학 숙제 한다고 약골서 정촌 넘어가는 고개길 아래 지독(진흙)을 캐서 탱크와 비행기 만들고 놀기도 했고, 물에 빠져 용왕님 전으로 갈뻔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지리산에서 흘러온 남강물처럼 따뜻하고 유정한 남자로 성장했다.

 

 내 언젠가 노년엔 남강에 돌아가 살리라 항상 꿈꾸곤 했다. 노년이 되면 연어처럼 귀향하여, 푸른 대숲 가에 초막 하나 짓고, 아침 안개 속에 차를 마시며, 서화와 분재 줄기며 야생화 키우며 조용히 여생을 보낼 꿈을 꾼다. 아직도 내 마음 속엔 <너우니> 푸른 버들잎이 살랑살랑 흔들리고, 봄철 도동 모래밭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비봉산 뒤 산딸기 붉게 익고, 안개 덮힌 월아산 푸른 정기 눈에 아롱거린다. 그러나 이루지못한 첫사랑마냥 귀향의 꿈도 아득하다. 다만 그 시절 고향 친구와 남강이 그리워 울컥울컥 주체하지 못하는 마음만 그 옛날 남강의 갈가마귀 떼처럼 고향의 허공을 떠돈다. 아! 눈감으면 떠오르는 고향의 강, 남강이 사모치게 그립다. 

 
 

 고향의 강

 

                                                                                                김창현 

 

 지금도 나는 남상규가 부른 <고향의 강>이란 노래를 좋아한다. 노래말이 시처럼 잘 다듬어진 것은 아닌 것 같으면서도 정작 가슴을 때린다. 나는 이 노래 들을 때마다  따뜻하던 진주 남강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시울 붉힌다. '눈감으면 떠오르는 고향의 강 지금도 흘러가는 가슴 속의 강. 아아아 아아아아! 어느듯 세월의 강도 흘러,진달래 곱게 피던 봄날에 이 손을 잡던 그 사람.'

지금도 눈감으면 떠오르는 진주 남강이다.

 

 서장대 건너편에 <당미> 언덕이 있었다. 망경산 끝자락 이 언덕에 불던 그 싱그러운 봄바람과 벚꽃 만발한 그 언덕 거닐던 꽃보다 아름답던 처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메기통> 가는 길에 커다란 늙은 감나무가 있었다. 늦가을 새빨간 서리맞은 홍시가 주렁주렁 매달리면 배고픈 시골 아이들은 그 꿀맛의 홍시를 따기위해 돌도 던지고 장대도 흔들고 안달이 나곤 했었다. 절벽 아래 <메기통>은 벌거숭이 아이들 따이빙 자리였다. 수경 쓰고 고무총 들고 잠수하면 물 속 바위 밑에 수염이 길다란 메기가 많았다. 소년들은 물가 바위 위에서 영화 <쎈>의 게리쿠퍼나 <형제는 용감하였다>의 스츄어트그랜져 멋진 폼 흉내내고, <애수>에 나오던 비비안리, <가스등>에 나오던 잉그릿드버그만의 미모에 가슴을  태웠다. 최무룡의 <꿈은 사라지고>, 현인의 <신라의 북소리>,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 유행가 경연 벌이고, 따닥따닥 천막 유랑극단 가설무대 말광대 탭댄스 흉내도 내보고, 나무가지 꺽어 딸따냥마냥 칼싸움도 했다. 나는 젊은 베르테르처럼 절벽 위 잔디밭에 핀 찔레꽃 비새꽃 나리꽃 피면 매번 청순한 첫사랑 소녀 모습 그리워 한숨지었고, 고교 졸업 후 피지 못하고 틴에이저 때 염세자살한 단짝 친구 뼈 몇조각을 당미 언덕 위 노송의 옹이 틈에 깊이 감춰두고 군에 입대했다. 그의 자살 충격으로 <이방인>의 주인공 뭐르소가 된 양, 실존의 아품을 안고 자원입대한 것이 아득히 45년 전 일이다. 당미는 내 소년시절 추억의 언덕이다.

 

 건너편에는 서장대가 있었다. 그 아래 얕은 곳으로 간혹 기차통학 시간에 늦은 진주사범 여학생들이 하얀 종아리 걷고 강을 건너 우리 총각들 마음 설레게 했으며, 지지배배 종달새 울던 신안동 강버들은 봄이면 아련한 그리움의 버들피리 불게했고, 수박향 나던 은어 몰려오던 <너우니>의 여름 지나가면, 노란 버들잎 물에 떠 흐르던 약수암 건너 가을 강은 그림같았다.

 

 하얀 백로떼처럼 촉석루에서 서장대까지 성 아래 남강변에서 빨래하던 여인들 모습이 당시 진주 낮풍경이었고, 달이 뜨거나 안개 낀 서장대 절벽에서 이봉조 쎅스폰, 남인수 모창 구슬프던 것이 진주 밤풍경이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진주 출신 이형기 시인은 <낙화> 첫구절 이렇게 읊었다. 영남예술제가 열린 밤이면 촉석루 아래 진주의 모든 남학생 여학생들이 유등을 띄웠고, 등은 청춘남녀의 낭만을 안고 멀리 <디비리> 모티를 돌아 도동으로 아득히 흘러가곤 했다.

 촉석루 앞 사시사철 푸르던 남강 대숲엔 겨울 갈가마귀 떼가 모여 회오리바람 일으켰고, 물결 위에 불 밝힌 남강카바레 안에선 남녀가 밤늦도록 사교춤으로 바람나고 있었다. 태풍 동반한 장마철이면 도도히 흙탕물로 변한 남강에 수박과 소나 돼지도 떠내려왔고, 그러면 진주 사람들은 모두 철교에 올라가 물구경 하였다. 겨울 진주 사람 볼거리는 남강 둑에서 벌어지던 연싸움이었다. 싸움연은 민어 부레로 사금파리 연줄로 시퍼렇게 날 세운 사각방패연이었다. 방패연이 바람 타고 좌우로 아래위로 달리다가 다른 연과 엉키면 탁! 줄 끊긴 힘없는 연 하나 하늘하늘 공중에 떨어지고, 그러면 연줄 줏는 아이들 백사장 다투어 질주하곤 했다. 얼음 언 강바닥은 댓가지 스케이트 타는 아이들 천국이었고, 지리산서 흘러온 여름 남강물은 너무 맑고 달콤했으며, 어항에 베를 덮고 구멍을 뚫어 그 안에 된장을 발라 잡던 모래문지 보리피리는 너무 이뻤다.

 <옥봉> 쪽 백사장엔 전국의 씨름판에서 황소 수십마리를 독점한 양점배 장사가 씨름을 가르켰고, 가을 백사장에선 소싸움판이 벌어졌다. 막걸리 한 말씩 먹은 경상도 전라도 싸움소들이 그 커다란 눈을 부릅뜨고 발로 모래를 걷어차며, 억센 뿔로 상대의 머리를 찌르고 감고 치며 자웅을 다투고, 인산인해 모여든 사람들은 그때마다 환호하며 자기 동네 소를 응원했다. 이 남강의 밤은 호국사 종소리에 깊어갔고, 수주 변영로가 노래한 <강남콩 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흐르는 남강물 속엔 논개의 거룩한 분노가 흘렀다.

  

 <디비리 모티> 건너 도동은 복숭아 풍개 수박밭 천지였다. 디비리의 봄은 복숭아꽃 살구꽃 물에 뜨흐르는 도화원경이고, 칠암동 푸른 대숲엔 밤 목욕하러 나온 아줌마와 처녀들 나지막히 웃으며 철썩철썩 물장구 치는 소리 들려왔고, 그러면 장난끼 발동한 총각은 처녀들 옷 훔치려고 모래밭을 낮은 포복으로 기곤 했다. 단언컨대 당시 달빛 아래 푸른 대숲 속에서 연 맺은 청춘남녀 더러 있었을 것이다.

 나는 달밤에 습천못 뒤 과수원 단감 따다가 모래밭에 숨겨놓고 댓가지 꽂아 표시해놓았다가, 이튿날 누가 그 댓가지 뽑아버려 노획물을 잃어버린 적도 있고, <너무니> 대를 베어 뗏목 만들어 낙동강 내려가 구포에 가서 팔아 돈을 만들 계획을 세운 적도 있다. 임꺽정 되어 물 건너 도동 수박 참외밭 풍개밭 습격 감행했고, 보라빛 칡꽃 핀 대밭에 들어가 낚싯대 만들어 뒤벼리에서 낚시도 했고, 진주농고 크로바풀 뜯어와 눈이 루비같이 붉고 털이 부드럽고 하얀 이쁜 토끼 키웠다. 여름방학 숙제 한다고 약골서 정촌 넘어가는 고개길 아래 지독(진흙)을 캐서 탱크 비행기 만들고 놀다가 물에 빠져 용왕님 전으로 갈뻔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지리산에서 흘러온 남강물처럼 따뜻하고 유정한 남자로 성장했다.

 

 내 언젠가 노년엔 남강에 돌아가 살리라 항상 꿈꾸곤 했다. 타관서 흰서리 앉은 노년 되면 연어처럼 귀향하여, 푸른 대숲 가에 초막 하나 짓고, 아침 안개 속에 차를 마시며, 서화 분재 야생화 하며 조용히 자유로운 여생을 보낼 꿈 꾸었다. 근년에 마산 살던 한 친구가 귀향하여 금산 금호못 가에 살고있다. 그는 매번 돌아온 따뜻한 고향 자랑한다. 그러나 <너우니> 버들잎 내 마음 속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봄철 도동 모래밭 아지랑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비봉산 뒤 산딸기 붉게 익고, 안개 덮힌 월아산 푸른 정기 눈에 아롱거리건만, 나는 지금도 귀향의 꿈 이루지 못하였다. 다정한 그 시절과 고향 친구 그리워 울컥울컥 주체하지 못하는 마음 남강 갈가마귀처럼 허공을 떠돈다. 아!눈감으면 떠오르는 고향의 강, 남강이 사모치게 그립다. 

 

 
저작자 표시컨텐츠변경비영리

 
이영성 09.11.26. 12:11
'동재'친구야. 너무나 정확한 어릴적 지명과 풍광들의 기억에 박수를 보내네. 영구 귀향은 못해도 틈틈히 내려와 추억 되살리며 웃으봄세. 추석이후 몇명 먼저 가니 초겨울 햇살이 서글프지네.
 
 
아송 09.11.26. 17:38
서장대 건너편 당미고개는 망경산 낮은 끝자락께에 내가 태어나 25년간을 살던 곳이죠. 습천 못 뒷편에 있는 감나무 과수원은 우리집 과수원이었는데 하도 그 못된 녀석들이 감 서리를 해 나를 괴롭혔는데 알고보니 김현거사도 한 몫을 했군요.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그간 잊고 있던 고향 골목골목을 온통 뒤지고 다녔답니다. 고향을 소재로 한 내 시편들도 꽤나 있지요. 참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천성산 09.11.27. 09:12
이래 가지고 김현거사 머리가 복잡하여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네. 웬통 남강에 소재가 이렇게 많을 수가 있을까 글 여러편을 쓸것을 한꺼번에 쏟아 부어 놓았으니 흡사 덕석에 깨 쏟아 놓은 것 같구먼.
 
 
정태수 09.11.27. 05:07
고향의 강, 남강의 구석구석을 다정다감한 고등학생 김헌거사와 함께 깨가 쏟이지게 돌아다니다 갑니다.월계.
 
 
일경 09.11.27. 06:39
한 시절 진주와 남강의 풍물시가 파노라마 같이 흥청하게 펼쳐져 있군요. 남강가에서 자라지 않은 사람 은근히 부럽습니다.
 
 
봉화 09.11.27. 12:11
마치 타향인이 이글을 읽는것같군요 구석구석 어떻게 그렇게도 샅샅이 기억하고 있는지 나는 정말 덩덕군인가봐요 유려한 문체가 사람의 넋을 홀리고 잊었던 고향의 모습들을 모조리 끄내 보여주니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정말 잘 읽고갑니다 봉화
 
 
일석 09.11.29. 01:11
오직 진주만을 아는 사람이네요. 어쩌면 남강의 구석구석을 그렇게 짚어주니 ....나도 태어나면서부터 남강물을 먹고 자랐고 남강을 바라보며 젊은날의 꿈을 키워왔기에 남강에 대한 애착이 남 못지 않는데 김현거사에게 뒤질까봐 두려워지네요. 수필이라기 보다 차라리 시에 가깝네요. 지금 글을 쓰면서도 가슴으로는 그 시를 읽고 있어요. (김한석)
 
 
동림 09.12.06. 22:58
연어의 귀향 심리를 인연으로 머금은 거사님의 진주 남강 주변에서 보낸 젊은날들의 추억과 낭만에 동감입니다.
 
 
초영 09.12.06. 09:32
(손계숙) 꼭 한 폭의 풍경화 같은 <고향 진주>를 다시 그리움으로 물들게 하는 귀한 수필! 잘 감상하며 다녀갑니다.
진주 고향의 추억이 우수수 그리움으로 밀려오는군요. 선배님! 감사합니다. ~~~
 
 
오솔길 09.12.06. 11:23
칠암동 대숲마을이 제 어린 시절의 꿈이 자라던 곳입니다 언젠가 저도 그 동네 얘기 글로 쓴 적이 있답니다 그리운 남강 봄이면 지천으로 돋던 죽순... 눈에 삼삼합니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필가로 늙어가는 이유  (0) 2011.01.19
수필가로 늙어가는 이유(2)|  (0) 2011.01.19
한 해를 넘기며  (0) 2011.01.19
눈 내리는 아침  (0) 2011.01.19
소나무|  (0) 2011.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