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수필가로 늙어가는 이유(2)|

김현거사 2011. 1. 19. 11:20

 
 
 
수필가로 늙어가는 이유(2)|隨筆
김현거사 | 등급변경 | 조회 74 |추천 0 |2009.09.28. 17:26 http://cafe.daum.net/namgangmunoo/5gNC/234 

'그 친구 아마 욕지도서 자살로 끝날거야.' 
형 친구들은 당시 이리 생각했을 것이다.둘째형과 오간 내 편지는 그처럼  어두웠다.그러나 그건 기우였다.

욕지도서 탈출한 나는 지중해 외딴 섬 탈출한 몬테크리스트 백작이나,프랑스령 기아나 형무소 탈출한 빠삐옹처럼 좀 차급고 냉정한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그동안 자신의 외로움 외면한 세상 사람들에 대한 원망 때문이다.좀 씨니컬해진 것이다.그러나 나는 비 그친 아침 나팔꽃처럼 싱싱해졌다.마음 속에 일종의 도를 터득한듯 남모를 자부심이 있었다.문학과 철학을,마치 그것이 곪은 달걀인양,미련없이 버리고,사머셋모음의 소설 <면도날>  속의 <래리>처럼  나는 새 청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종암동 후암동 가요' 꿈결에 서울의 18번 버스 차장 목소리 듣고, 떠나온 서울,다시 돌아갈 수 없는 도시 그리워 몇번이나 눈시울 붉혔던가.다시 평범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다시 대학생이 될 수 있다면 하는 그리움과 후회 때문에 얼마나 가슴 저렸던가.그러나 때 되면 달도 찬다.다시 돌아온 서울은 흙내조차 고소했다.

형이 자취하던 다 큰 처녀 둘 데리고 살던 명륜동 과부댁은 시멘트 마당까지 물걸레질 깔끔히 해놓는 집이었다.나는, '제적'된 사실 은폐하기 위해,사범대 체육과 도전한다는 명분으로 학관에 등록했다.그러나 부지깽이 꺼꾸로 심는다고 싹이 나랴?봉사 단청 구경하듯 책 펴면 눈앞이 아득해지곤 한 것은,5년 공백기 술먹고 담배 먹고 자살하겠다 법석 떤 덕분이다.곁에 담배 물고 다니는 까까머리는 내가 대학생 뺏지 달았을 때,중2 아이들이다.군대 다녀온 나를 아저씨로 친다.챙피도 하고,공부는 않되고,자신은 없고,방법은 없고,에라 모르겠다.죽는 년이 밑 감출까.고민 고민 끝에 찾아간 곳이 고려대 학적과다.그리고 얼음 구멍에서 잉어 만났다.등록하고 과낙한 과목 재시험 학점 나오면 복학 된다는 선생님 말씀이었다.

 

천재일우로 복학한 것이다.일생일대 치욕이 은폐되고 넘어갈 가능성을 발견한 그때 환희를 어떻게 표현하랴.재시험! 재시험 통과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친구도 가족도 필요 없음은 이미 알았다.한번 지옥에 떨어진 사람만이 그리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등록하자 나는 난생 처음 책벌레가 되었다.도서관에서 강의실에서 사람과 잡담 한번 한 적 없다.강의실에선 무조건 교수님 턱 바로 밑에 앉아서,교수님 헛기침까지 철저히 노트에 기록하면서,붕어 밥알 받아먹듯,강의 내용을 삼켰다.등하교 길,심지어 화장실에서도,고양이가 쥐를 노리듯 집요하게,전 과목 수십번 반복하여 통채로 외우고,잘 때 제외하곤 책을 눈에서 뗀 적 없다.스님 염불 외듯 꿈에서도 잠고대했다.찐득이 사법고시생 공부 끝내고 나가는 밤 11시,도서관 청소하는 아저씨들이 문 닫는다고 나가라고 쫒아내는 그 시간까지,나는 도서관 밖에 나와본 적 없다.일요일도 없고 엉덩이살은 걸상에 붙어서 짓물러터지고 있었다.건강한 미식축구 체질이라서 모든 걸 견뎌낼 수 있었다.

 

그렇게 재시험 두과목 합격하였다.눈물이 핑 도는 행복에 겨워,본관 라이락 그늘 벤치에 앉아서 살랑살랑 지나가는 여학생들 감회롭게 보고 있을 때 였다.

'학점 나왔나?'

권이라는 입학 동기생이었다.

'나왔다.'

'정말인가 보자'

깡패같던 나의 학점이 그는 미심쩍은 것이다.

'나왔다니까'

'아니 이게 니꺼냐? 전과목 올 A 아니가.가만있어라.'

 그가 날 데리고 간 곳이 교무과고 거기서 나는 외 넝쿨에 엉뚱하게 가지 열린 사실을 발견했다.이 무슨 조화더냐.내가 과에서 한명 뽑는 <과톱>인 것이다.이랑이 고랑 되고 고랑이 이랑된 정도가 아니다.지옥서 천국행 특급열차 다이렉터 탄 것이다.아버님께 특대생 장학금 나오니 등록금 보내지 말라는 효도성 전보친 건 처음이다. 

 

되는 집은 개를 낳아도 청삽살이고,구멍은 깍을수록 커진다는 말이 있다.열차는 한번 타기가 어렵지 타면 편안하다.나는 대학 4년 동안 그 열차에서 내리지 않았다.얼결에 탄 열차가 이렇게 솔솔 재미 있을 줄 예전엔 미쳐 몰랐다.나는 공부 힘든 젊은사람들에게 이 대목은 꼭 알려주고 싶다.당시 하숙집 아주머니와 친구와 심지어 은사님까지,친지  자기 누이동생 할 것 없이 나래비로 줄서서 소개해줬다는 사실을.

 

지금도 나는 공자 맹자 노자 장자 석가모니 좋아한다.매주 만나는 바둑친구보다 더 친하다.서재에 철로 된 부처님 한분과 신필 吳道子 솜씨 공자 초상 나란히 모셔놓고 있다.나는 지금도 요가 참선 리그베다 우파니샤드철학 좋아하고,원효 의상 이퇴계 이율곡 묵자 순자 한비자 동중서 주렴계 소강절 장횡거 정명도 정이천 주자 왕양명을 사랑한다.한분 한분이 매학기마다 내게 장학금 받게한 은인이다.

仁을 설한 공자,달관한 노자,호방한 장자,空 사상 피력한 싣달타가 특히 그렇다.

 

삶이 무엇인지,인생이 무엇인지,도가 무엇인지,중용이 무엇인지,학문이 무엇인지,명예가 무엇인지,군자가 무엇인지,지조가 무엇인지,가르켜 준 분들이 이 분들이다.나는 그들에게서 <仁> <誠> <命>을 배우고,<性善> <性惡> <有爲> <無爲>를 배우고,<易> <和> <五行> <兼愛>를 배우고,<無極> <太極>을 배우고,<格物> <理> <氣>를 배우고,<中觀> <唯識>  <空>을 배웠다. 

동양철학 수강생은 딱 한명이었다.그래 나는 운 좋게 李相殷 金敬琢 같은 금세기 최고 석학의 일대일 개인과외 받았다.북경대학 와세다대학의 전설적 최우수 졸업생 두분이 나 하나 놓고 가르킨 것이다.나는 주마간산이었으나,그분들은 철학계의 태산북두 아니던가.   

이렇게 동양철학으로 머리 채운 사람에게 딱 맞는 직업이 무엇일까.

 

불교신문 기자였다.절에서 자라서 철학과에 들어온 친구가 있었다.그가 구독하던 불교신문 기자 모집 소식 알려주었다.사회의 목탁 되려고 동아일보 응시했다가 실패하자,나는 절 집안 목탁이 되었다.

불교신문 기자는 딱 네명이었다.동국대학 학보 편집국장 출신인 선원빈 거사가 편집담당,취재는 고대 출신 고예환 보살과 내 담당이고,'如是我聞'이나 '고승열전' 같은 칼럼은 서울대 출신 정광호 거사가 썼다.주간은 팔만대장경 번역한 역경원 박경훈거사,편집국장은 광덕 월주 법정스님이 번갈아 하였다.

 

거기서 처음 한 일은 무엇인가.禪에 관한 책을 모우고,선 이론가,경보 지견 무진장 스님 닺자곶자 찾아가  물고늘어지고,심지어 너무 높아서 남들은 면회 어려운 조계종 총무원장 석주스님,고암 종정예하 방도 찾아가 禪旨를 캐물었다.불교신문 기자 특권이 무엇인가.禪書 들고 찾아오던 젊은 기자의 이런 행동이 좀 난감했을 것이다.

간혹 불립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이란 말로 대화를 회피하는 분도 있었다.불교란 문자 밖  <마음>이니 말로 해선 안된다는 것이다.말이사 맞는 말이다.그럼 나는 어떻게 했는가.이래서야 불교가 학문인가.수행과 이론 둘다 중요하다.禪敎兩宗 그래서 있는 것이다.나는 절밥 썩히는 食蟲이 스님의 적이었다.

아쉬운 것은 그 당시 더 과감히 그 길로 갔어야 했단 점이다.30년 전 내가 인터뷰한 그때 송광사 구산스님 따라 선 배운다고 한국 온 하바드 출신 벽안의 그 젊은이가 지금 세계적인 불교학자 아닌가.불교철학 공맹철학 노장철학 청대철학까지 마스터 하고 좋은 찬스 놓친 것이다.

 

취재는 무엇부터 했는가.도봉산 無門關 토굴에서 10년 혼자 수도한 경산스님 인터뷰, 불교계 방문한 영국성공회 램 주교 인터뷰,춘원 이광수의 사촌형인 운허 노장 봉선사 인터뷰가 가장 인상 깊다.삼풍상가 대학생불교연합회 초파일 공휴일 제정 운동에 교계의 주의를 환기시켜,용태영 변호사 끌어들여 총무처 장관을 피고로 소송 벌인 끝에 결국 공휴일 만든 일도,초파일마다 새록새록 생각난다.드라마에서 항상 땡중 그리는 방송작가 50여명을 해인사로 초청하여 참선의 진면목 알려준 그 취재도 의미 깊었다.

불교계 문인이 불교신문 외면 하겠는가.그때 친면 쌓은 서정주 김어수 시인 추천 받았으면 나는 지금 문단경력 30년 고참일 것이다.배고픈 작가 되기 싫어 입에 자물쇠 채운 것이 잘한 건지 못한 건지 지금도 모르겠다.未堂은 알다시피 문단의 거목이고,魚水란 특이한 이름 쓰신 影潭은 한국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이었다.

모시던 법정스님 외에도,당시 불교신문 찾아와 차 마신 젊던 스님이 지금 백담사 會主 오현스님,청량사 주지 지현스님,정휴스님 향봉스님이다.지금은 다 원로 문필가다.

 

가봐도 별 것 아닌데,왜 그리 가고 싶었을까.주간지는 일간지가 꿈이었다.그래 내외경제 수습 1기 기자 응시한 것이다.되돌아보니 그때 툭 떨어졌어야 했다.계속 해인사 불국사 통도사 송광사 백담사 월정사 찾아가서,고찰의 풍경 구석구석 감상하고,향냄새 그윽한 법당서 염불 외고,눈 푸른 똑똑한  선방 수좌들과 법담 나누고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上求菩提 下化衆生.위로 깨달음 구하고 아래로 중생 제도하는 삶이야말로 얼마나 거룩한 삶인가.포교사실도 있고,불교방송도 있는데,왜 그 걸 버리고 딴 데 갔던지 모르겠다.담 넘어 감이 더 맛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중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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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09.09.28. 19:01
여기 잘못 길 들어와 그르친 인생이 있구먼. 원래 재주가 너무 지나치면 그런 법. 누가 좀 일찌기 깨우쳐 줬드라면 다른 사람 되어 있을것을 애석하다는 생각이 간절하구먼. 내 이 못난 인생도 비록 남의 거울에 나마 잠간 비쳐 보았습니다.
 
 
이영성 09.09.28. 19:55
이제사 문인이 되었다고 후회하는 소리는 아니겟고 늦은 길 빨리 갈 각오가 기다려집니다.
 
 
김현거사 09.09.29. 08:32
영성아 가로늦게 빨리 가모 뭐하것노?이미 은퇴해서 초야에 묻힌 몸이.다 졸업했다. 그냥 내고향 진주 훌륭하신 선배님 후배님들과 요렇게 알콩달콩 어울리는 것만 행복하다.
 
 
탁구짱 09.09.29. 19:17
많은것 보고 배운다. 거사 말되로 좋코 나뿐이 어디 있겼노?
 
 
초영 09.09.29. 23:54
(손계숙)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선배님! 지금도 좋으십니다. 하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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