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손자놈들

김현거사 2011. 1. 1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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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놈들|隨筆
김현거사 | 등급변경 | 조회 36 |추천 0 |2010.02.17. 12:03 http://cafe.daum.net/namgangmunoo/5gNC/304 

설날 아침 일어나니 거실이 난장판이다.어제 손자놈이 가위로 이지저리 잘라서 뭔가 만든 신문지 조각들,펼쳐진 동화책,여기저기 제맘대로 흩어진 크레용,그리다 펼쳐둔 스케치북,TV 리모콘,파리채,할애비 라이터,토끼인형,우유병,식탁 밑에 굴러간 뾰롱뾰롱 자동차가 어제 한살 네살 다섯살백이 손자 손녀 셋이 만들어 놓은 작품이다.

아직 자고있어 일어나면 먹으라고 귤 사과 빵을 접시에 담아놓고,우선 어지럽게 흩어진 신문지 조각부터 빗자로로 쓸어 쓰레기통에 버리다가,문득 할애비 잘못을 깨달았다.그 하찮은 신문지 조각은 아기공룡 사슴 비행기 토끼 오린 것도 있고,크레용으로 무슨 글을 쓴 것도 있고,종이학 접은 것도 있다.할애비에게 쓰레기인 이 작난감 신문지 조각은 아이들에겐 나중에 손재주 차원을 넘어 예술적 실용적 창의력의 원천 재료인 것이다.소중히 얼른 도로 소쿠리에 담아 얌전히 돌려놓았다.

 

이틀 전이 할애비 생일이다.소중한 편지 네 통 받았다.

'할아버지 생신 축하 드려요,우리는 여기애 왔잔아요.할아버지도 우리집애 놀러옸잔아요.한번 이요.할아버지 해 복마하니 밭으새요.또 건강하개 잘 지내새요.'

요걸 1번 2번 번호 붙인 두 장 마분지 조각에다 쓰고,3번 4번 조각에는 피카소같이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 꼬불꼬불 난해한 꽃그림 그려 놓았다.그림 옆에 명칭 쓴 것 보니 튤립 개나리 수선화 매화 장미 해바라기다.녀석의 수선화 매화 장미 애호 사상은 완전 할애비와 일치한다.4번 카드엔 할애비가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그리고 단풍나무와 가시덤불을 그렸는데,웬 가시덤불인가 했더니,우리집 정원 장미 아취에 올린 줄장미를 그린 모양이다.꽃을 그린 천사의 마음이 고맙다. 

 

젖먹이는 지 아빠 품에서 우유병 빨고있고,큰 놈 둘은 황금 꽃술 싱그러운 심비디움 꽃 아래 나란히 엉덩이 치켜들고 앙징스런 머리 맞대고 뭔가 열심히 보고있어  한 폭 그림이다.둘이 반절지에 쓴 할애비의 반야심경 붓글씨를 보고있다.큰손자는 한문을 익혔다.어디 한번 읽어봐라 했더니,없을 無,마음 心,아니 不,밝을 明,늙을 老,클 大,위 上은 알고,이 是는 머리를 흔드니 모른다는 뜻이다.그래도 그게 어딘가.'아이쿠 니가 한문 박사 되겠구나.'칭찬을 한바가지 안겨주었다.벌써 반야심경의 가장 중요한 글자,마음을 읽고 없음을 읽고 밝음을 읽고 늙음을 읽었으니,할애비는 흡족하기 그지없다.사실 그 뜻까지 나중에 알면 도를 통하지 않는가. 

                                                                                   (2010년 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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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송 10.02.17. 12:19
아 정말 부러움이 뭉클 가슴을 칩니다. 손주 녀석들 참 귀엽죠? 녀석들의 심정을 잘 헤아려 주는 할애비 마음이 더 아름답군요.
 
 
봉화 10.02.17. 12:33
눈에 담아가며 읽었습니다 너무 귀엽고 예쁩니다 안아주고 싶습니다 좋은가족 박수를 보냅니다 봉화
 
 
초영 10.02.17. 12:50
넘 넘 사랑스럽고 기특합니다. 신동중의 신동이라 후일에 큰 인물이 될것입니다. 축하드립니다. ^^*
 
 
일석 10.02.19. 12:02
손자놈들의 작난 재료들을 버리려다 도로 줏어담는 할애비의 순간의 깨달음, 우리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네요. 어줍잖은 것에도 가치를 부여할 줄 아는 통찰력이 문학을 성숙해 지게 하는 것 같네요. <김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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