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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김현거사 2011. 1. 19.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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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隨筆
김현거사 | 등급변경 | 조회 53 |추천 0 |2010.03.11. 06:13 http://cafe.daum.net/namgangmunoo/5gNC/308 

 사람마다 아름다운 미소를 가졌다.라일락처럼 수선화처럼 향기롭고 청순한 미소를 저마다 가졌다.만약 우리가 산야를 쏘다니며 야생화 수집하는 사람처럼 깊은 관심 가지고 주변을 살핀다면,삭막한 거리의 허공중으로 낙화처럼 흩어지는 사무치도록 아름다운 수많은 미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나는 언제부턴가 그 미소를 꽃잎인양 채집하는 버릇이 있다.소녀가 꽃잎이나 단풍잎을 책갈피에 끼우듯이,나는 외출시 마다 아름다운 미소를 마음의 갈피에 끼워 돌아온다.

 

  가장 아름다운 미소는 머리에 앙징스런 분홍 리번 단 서너살 짜리 어린 아이의 미소다.소매 끝에 금박 달린 노랑 색동저고리 초록 치마 받쳐입은 스스로가 인형같은 소녀가,고사리 손으로 인형을 안고, 별처럼 빤짝이는 눈동자로  인형을 쳐다볼 때 떠오르는 귀여운 미소는 지상에 하강한 천사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나는 아기와 동행한 보호자의 얼굴도 꼭 살펴본다.학처럼 가날픈 몸매에 세월의 향기 담은 은은한 노부인이 동행할 때가 가장 아름답다.나는 그 노부인이 손녀와 눈을 맞출 때 떠올리는 수선화처럼 차고 맑은 미소도 반드시 보고만다

 

 하얀 치아 들어내며 가녀린 눈에  애교있는 눈웃음 짓는 젊은 여성 미소는 훈풍에 나부끼는 실국화를 연상케 한다.버들피리처럼 우리 곁을 재빨리 스치고 지나가면서 어디 누군가와 즐거운 통화를 하는지 하늘 향해 웃는 소녀의 미소는 남녂의 싱싱한 유채꽃 떠오르게 한다.까만 마스카라한 긴 머리 아가씨가 연인과 도심의 페이브먼트 위를 걸어가며 띄우는 보조개는 터질려는 목단의 탄력을 생각나게 한다.스카프도 모자도 제복도 아름다운 스츄어디스들이 늘씬한 각선미 보이며 공항 라운지를 일렬로 또박또박 걸어가면서 던지는 세련된 미소는 흐드러지게 핀 라이락 향기 생각나게 한다.무슨 일로 피곤했던지 모르나,전철 안 의자에서 졸던 초라한 차림새의 새댁이,문득 자애롭게 자신을 지켜보는 마즌편 노인의 시선에 당황하여 던지는 미소는 수줍고 붉은 복숭아꽃 생각나게 한다.호수에 밀리는 물무늬처럼 비구니스님 눈가에 고요히 번지는 미소는 백련(白蓮)처럼 향기롭다.  

 

 남성의 미소도 아름답다.푸른 파도를 향해 질주하는 뜨거운 백사장 구리빛 아름다운 청년의 미소.편안히 평상에 앉아 출렁대는 막걸리 잔 입으로 가져가는 농부의 미소,칠척 장신에 근골 튼튼한 배구선수가 강스파이크 성공시키고 동료 향해 돌아설 때의 득의의 미소,자신만만한 눈빛의 사내가 파 쓰리 숕홀에서 7번 아이언으로 버디 잡고 입가에 띄우는 회심의 미소,파이프올갠 소리 성스러운 대성당 미사 집전하시는 주교님의 미소,이 모든 남성의 미소도 아름답다.

 

 웃음은 암세포와 싸우는 백혈구의 생명력을 튼튼하게 하고,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의 양을 줄인다고 한다.인디아나주 볼메모리얼 병원에서는 15초 웃으면 이틀 더 산다고 발표했고,그 경제적 가치가 200만원 상당이라는 주장도 있다.웃음은 신의 선물인지 모른다.신은 인간만 웃을 줄 아는 유일한 존재로 창조했다는 설도 있다.

 

 그 웃음 중에 미소가 가장 섬세하고 아름답다.대개의 웃음이 기쁨의 표현인데 반해, 미소는 외롭고 슬프고 고독한 미소도 있다.'A certain smile'이라는 음악처럼,영원히 잊지 못할 애상적인 미소도 있다.미소는 산허리에 감긴 안개처럼 감정을 보일듯 말듯 가리어 더욱 신비롭게 한다.청상(靑孀)의 미소가 더 사람의 심금을 후벼파는 경우가 그렇다.하얗게 스러지는 달빛처럼 애잔할 수 있다.양노원 휴게실 노인들 미소가 그렇다.

 

 어쨌던 미소는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관심의 대상이었다.서양은 모나리자의 미소를 83퍼센트의 기쁨과 17퍼센트의 슬픔이 균형을 이뤘다고 분석했고,불가에서는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이요,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미묘한 향이로다.깨끗하고 티 없는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이란 게송을 읊고,염화시중의 미소를 논한다.

 

 현대에 와서는 항공사 스츄어디스들처럼 미소의 가치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없다.그들은 진지하게 아름답게 미소 짓는 법을 배운다.

 알고보면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미소는 얼굴에 있는 감정을 담아내는 80여개의 표정근들이 서로 밀고 당기면서 표정을 연출하여 만들어진다고 한다.이 근육들은 사람마다 팔뚝 굵기가 다른 것처럼,사용여부에 따라 퇴화하고 발전한다고 한다.스츄어디스들은 입술 둘러싼 구륜근을 사용하여 입을 다문채로 볼이 쏙 들어갈 정도로 오므리는 연습을 하고,광대뼈에서 입술 가장자리 잇는 대협골근을 사용하여 입을 다문채로 입술을 위와 뒤쪽으로 끌어올리는 연습을 하고,눈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안륜근을 사용하여 눈꼬리에 부드러운 주름 잡히는 연습을 하고,'아이우에오'와 '위스키'란 발음을 하여 입가 근육을 풀고,입술꼬리 올려 미소짓는 연습한다는 것이다.

 

 목슴 걸고 살 뺀다는 소리는 있고,목슴 걸고  미소 배운다는 말은 없다.미소는 사람을 더욱 은은하게 만들고.지성적으로 만들고,품위있게 만든다.여성을 더욱 여성답게,남성을 더욱 남성답게 보이게 한다.우리는 흔히 외모를 '예쁘고 밉다'라고 표현하지만,타고난 예쁘고 미운 걸 하드웨어라 치면,미소는 개발 가능한 소프트웨어 이다.미소는 어쩌면 지식이나 기술보다 더 유용한 것일지 모른다.요즘 어린이들이  '배꼽인사'란 걸 하는 것을 종종 보는데,동네 어른 만났을 때 두손을 배꼽 근처에 모으고 허리 굽혀 공손히 절하는 어린이를 보면,껴안아주고싶도록 이쁘다.이 참에 나는 어린이집에서 미소교육도 병행하였으면 싶다.우리가 유년부터 남들이 영원히 잊지못할 사무치도록 아름다운 미소를 배운다면,거리가 얼마나 더 밝아질 것인가.사람마다 수선화 라이락 아카시아 백목련같은 미소를 지녔다고 생각해보자.은은한 꽃들이 만발한 화원보다 더 향기로울 것이다.

  (201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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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계 10.03.11. 07:16
오랫만에 참 좋은 수필 읽었습니다.가지가지 경우의 미소,그 중에도 스튜어디스의 교육받은 미소는 단연 으뜸이지요.그렇긴 해도 갖난 아이의 방끗 미소는 원초적인 미소의 頂上이 아니겠습니까.정태수.
 
 
봉화 10.03.11. 08:38
미소 예찬론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클릭만하면 실타래처럼 술술 풀어지는 거사님의 창고안이 궁금해서 그것이 못내 궁금해서요 스튜어디스들의 교육받은 미소에 저는 점수를 많이 주고싶지않고요 세살짜리 머리에 리번을단 아기의 천연산 미소에 으뜸상을 주고싶고요 그 아기를 바라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미소에 천연산 미소 버금상을 주고싶네요 아뭏던 세상 모든 미소는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거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봉화
 
 
천성산 10.03.11. 11:44
김현거사님. 아니 까페지기님. 너무 아는것이 많아서 이런 경우는 탈이라 해야 하나요. 길가에 널려있는 미소를 내 얼굴에 담지 못하고 살아온 날이 많았던 지난날을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동림 10.03.11. 18:21
외롭고 슬프고 고독한 미소.........? 은근과 내포가 깊은 미소론이 독창적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일석 10.03.12. 16:02
그토록 많은 미소 가운데 나를 빗댄 아름다운 미소가 없음이 몹내 씁쓸하네요. 인생을 헛 산듯 하네요. 지금부터 라도 목숨건 미소를 배워야 겠습니다. 참 해박한 지식 감탄할 따름이네요. <김한석>
 
 
아송 10.03.12. 23:37
미소를 저토록 잘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나도 미소를 좀 연구해 보아야겠군요. 고맙습니다.
 
 
초영 10.03.14. 23:51
(손계숙) 선배님의 <명수필>에 감동을 한 아름 안았습니다.
저도 오늘부터 <미소짓기>를 자주자주 해 볼래요.
미소예찬론! 우리 모두 가슴에 새겨야 할 명언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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