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기고 글

장미뿌리를 깍으면서/문학바탕 2011년 8월호 게재

김현거사 2011. 7. 27. 08:35

장미뿌리를 깍으면서

                                                                                                                                                 김창현

 

 

 미인박명이랄까. 아끼던 백장미 나무가 이유도 모르게 죽어버렸다. 봄철마다 창 밖에서 하얀 향기를 풍겨주던 미인이 떠났다. 나는 식탁에 앉으면 늘상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 러시아 국민가수 알라푸카체프의 노래처럼 '백만송이 장미'는 아니라도, 매일 아침마다 이리 싱싱한 장미꽃 선물하는 남편이 세상에 어딧겠소?'  장미향이 창 밖에서 안으로 은은히 날라오던 식탁이다. 그 식탁에 매일 아침 한송이 싱싱한 백장미가 놓여지곤 했다. 크리스탈잔에 백장미 한송이를 꽂아놓으면, 마시는 차는 더 향기롭고, 빵과 우유 한 잔의 조촐한 식사도 더 격조 있다. 앞마당 뒷마당 장미꽃 구경하라고 친구 부르는 일도 장미 키우는 사람들의 즐거움 이다.

 어쨌던 장미 키우는 일은 우아한 일이다. 그 우아한 취미 살리느라 봄마다 장미를 파는 곳이라면 일산 상일동 양재동 종로5가를 막론하고 화원 순례하는 고행을 즐겨 감수해왔다. 덕분에 이브닝가운 보다 하얀 백장미, 노랑 치마에 빨간 레이스 단 피스장미, 양장 여인처럼 단아한 아이보리장미, 검붉은 루즈빛깔의 흑장미, 고귀한 주황장미, 핑크레이디 핑크장미, 텍사스 기병대 트럼펫 소리 생각나는 노랑장미가 내 뜰에 화려하다.

 간혹 가위로 장미 다루다가 손가락을 찔리기도 한다. 그땐 론강(江) 근처 고성(古城)에서 장미 키우며 시작(詩作)에 몰두하던 릴케 생각한다. 알다시피 릴케는 장미가시에 찔려 죽었다는데, 그의 비에는  미리 작성한 유언장 내용대로 장미를 읊은 시가 새겨졌다고 한다. 장미는 미인과 비슷하다. 반드시 댓가를 요구한다. 어딘가에 가시가 있는 법이다. 

 하여튼 죽은 장미를 어떻게 하겠는가. 모든 만남은 반드시 헤어짐이 있는 법. 애석한 마음으로 삽으로 장미를 캐내고, 그 자리에 옥잠화를 심었다. 그런데 땅 속에서 생각지 못한 보물을 발견했다. 장미 뿌리다.

 나는 기자 시절 파이프에 '하루방' 잎담배를 담고, 담배연기 뿜으며 편집국 안을 겁도없이 물고다녔다. 옛날 명동에는 라이타와 파이프 파는 노점들이 많았다. 글 쓰는 신사는 파이프를 입에 물어야 멋 있다고 생각하던 때다. 당시 라이타는 지포라이타, 파이프는 장미 파이프가 최고의 물건이었다. 장미파이프는 얼마나 세련된 신사용 고급 액서세리 였던가. 나는 명동을  오가며 노점 앞에 멈춰 몇번이나 장미파이프를 손가락으로 만지락거리며 매끄러운 그 감촉을 느껴보며, 입에 문 감촉도 어떤지 알아보고, 노점상에게 가격을 묻곤 했던가. 그러다 어느 날 한숨을 쉬며, 어느 항구 목로주점 어떤 마도로스가 쓰던 파이프인지, 동두천 미군부대 어느 군인이 쓰던 것인지, 그 족보를 알 수 없는 싸구려 파이프 하나를 호주머니 사정에 맞게 골라왔던 것이다.

 만약 임어당이나 보들레르가 어느 날 자기 정원에서 나처럼 멋진 장미 뿌리를 발견했다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틀림없이 기겁을 하며 반가워했을 것이다. 헤밍웨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꽁초 오상순 선생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모든 존경할만한 작가들은 당연히 담배를 피웠고, 장미뿌리 파이프의 가치를  충분히 알고 계셨다.

 그 장미파이프 소재가 됨직한 장미뿌리를 땅속에서 발견한 것이다. 나는 뜰에서 보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흥분하고 말았다. 죽은 장미나무는 실망과 함께 기대 밖 뜻밖의 선물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흙을 털어내자, 묻혀있던  장미뿌리 모습은 매우 훌륭하였다. 통통한 둥치는 오래된 향로처럼 생겼고, 잔뿌리는 문어 다리처럼 이리저리 얽혀나가 충분히 기괴하였다. 피부가 발가스름한 것, 뿌리가 향기로운 점도 끝없는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점이었다. 도대채 이 뿌리 어느 구석에 그처럼 순결한 장미꽃의 흰빛과 미묘한 향기를 감추고 있었더란 말인가. 장미뿌리를 이리저리 한참 뒤척여 보면서, 문득 장미뿌리가 시인 같다는 생각까지 했다. 오랜 시간 땅 속에서 향기로운 시심을  길러 끝내 꽃을 피우는 점에선 장미도 시인이었다. 굵다란 구리철사로 얽힌 뿌리 속의 흙을 하나하나 털어내는 작업 자체가 무쌍의 기쁨이었다. 고고학자가 땅속에 묻힌 유물을 조심스레 만지는 신비한 체험 같은 것이었다. 

  나는  설악산에 가면, 산도 산이지만, 기념품 가게 앞을 서성거리기 좋아한다. 기묘한 나무 뿌리나 죽은 소나무 옹이로 만든 목각을 보기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풍우에 씻겨진 오랜 세월과 신비한 산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다. 나는 거기 있던 오래된 대추나무로 만든 달마상에 대한 애착을 지금도 버리지 못한다. 알다시피 벼락 맞아 속으로 심하게 금이 가고 타죽은 벽조목으로 만든 염주는, 스님들이 가장 아끼는 염주가 아니던가. 우주의 기를 지녀 사업 발복의 효험을 준다는 벽조목 도장은, 호사가들이 가장 애끼는 물건이 아니던가. 그 달마상을 가난한 서생의 서재에 옮기지 못함을 지금도 애석해 한다. 

 지리산 청학동 목계마을에도 목조각을 잘하는 사람이 한 분 있다. 그는 자칭 산에 미쳤다는 기인이다. 그는 계곡물에 떠내려온 갖가지 형태의 나무조각을 주워와서, 기묘한 나무의 모습 그대로 살린채로 만든 수백개의 찻숟갈을 깍아 벽에 진열해놓고 있다. 그 찻숟갈 하나하나는 지리산 골짝골짝의 물소리 바람소리를 들려준다. 작품들은 나무의 자연 결이 그대로 살아있어 신비스러웠다. 조각가의 소재 다루는 안목과 재치가 넘쳐있어 감탄할만 했다. 아마 은은한 향 지닌 찻잎 담는 숟갈로는  최상의 운치 지닌 작품이 아닐까하고 나는 생각한다. 차 마실 때 찻숫깔에서부터 산이 그대로 느껴져 올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참 무아의 경지에 들어 장미 뿌리 사이의 흙을 제거하고, 물에 깨끗이 씻어 놓았다. 그리고 한참을 이리저리 뒤척여 보다가, 그늘에 말려두었다. 마침 집에 조각도가 있었다. 나의 나무 다루는 안목과 창의력은  다소 미홉하지만, 나도 마음만은 설악산 지리산의 목조각 예술가들처럼 최대한 자연미를 그대로 살려볼 작정인 것이다.

 백장미와 나와의 그 오랜 인연은 너무나 아름답지 않은가. 봄마다 그토록 순결한 향기와 감동을 나누던 백장미가 아니였던가. 장미파이프는 이제 그 추억의 증인이 될 것이다. 향기의 주인 백장미는 이제 죽어 파이프로 변신될 것이다. 파이프가 완성되면 나는 그 파이프를 서가에 놓아둘 예정이다. 서가엔 내가 인사동서 가져온 상형분자 새겨진 청동향로, 에밀레종 축소한 범종, 청옥으로 만든 문진, 홍옥으로 만든  달마상, 칼날에 검푸른 녹이 쓴 옛 보검, 비단띠 두른 대나무 단소 등이 놓여있다. 그 옆에 장미파이프는 놓여질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수필을 쓸 것이다. 그때 그 장미파이프로 고요한 흰 연기를 품으면서, 백장미같이 향기로운 작품을 구상해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