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관한 글

자식들에게 남기는 글

김현거사 2023. 4. 25. 10:04

이제 80이 되었으니 심중에 남아있던 이야기를 남긴다. 아들과 딸, 그리고 아내는 항상 내마음을 쓸쓸하게 한다. 그것이 내 잘못인지 그들 잘못인진 모르겠다. 대신 가족관계에 문제가 없는 사위와 며느리는 작은 위안을 주곤한다.

아들 딸 이야기부터 하자. 둘은 대학 졸업 때까지 부모 속을 썩인 일 없다. 둘 다 건강하고, 학교 성적 좋았다. 아들은 고2 때 이스라엘을 다녀왔다. 그때 옆동네에 살던 KBS 부장이 자기 딸을 이스라엘에 보냈다. 서울 사람 속셈은 뻔한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룹 계열사 사장에서 물러나자, KBS부장 내외는 금방 안면을 바꾸었다. 그 후유증인지 아들은 성적이 떨어졌고, 연세대 의대 시험에 실패한 후, 재수 후 홍익대 전파공학과에 입학했다. 그후 신도리코에 입사했는데, 전무로 있던 나의 고교 동창이 아들은 영어와 컴퓨터에 능해 사내에서 컴퓨터 강의를 한다고 했다. 나는 아들이 평생 집걱정은 하지말고 살아라고 삼성동 빌라 한 채를 주었다. 그 빌라는 지금 땅값만 30억이 되고, 앞으로 재개발이 잘 진행되면 50억~100억 정도 가치가 예상된다. 어디 딴데로 이사가지 않고 부모가 물려준 재산을 잘 지켜서 기특하다. 

그런데 어머니에 대한 무슨 오해가 생긴 것 같다. LG로 직장을 옮긴 후 어머니가 폐암과 뇌졸중 등 생사가 걸린 중병에 걸리자 병원과의 연락을 끊어버렸고 지금도 그러하다. 인륜을 저버린 패륜행위인데, 아마 그 이유가 어머니가 판사 사위 본 후 그쪽만 편애한단  느낌을 주어 자존심이 상한 것이라 짐작하지만, 아버지 가슴에 평생 큰 못을 밖아놓았다.

서울대 졸업하고 교직에 있는 며느리는 외할아버지가 외대 부총장 이었다. 좋은 가문 출신다운  처신을 한다. 어머니 병원에도 찾아오고, 명절마다 음식을 보내곤 한다. 결혼 전에 내가 집에 년노한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신다기에, 외출 후에 돌아오면 어른들에게 인사하는가 물어보고 그런다기에 두말없이 며느리로 삼았는데, 제대로 판단한 것 같다.

딸은 경기여고를 나와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는 동안 성적이 우수했다. 그런데 IMF 가 와서 취직이 어렵게 되자 미국 유학을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반대하였는데, 유학 다녀온 자녀가 콧대만 높아, 가난하고 늙은 부모를 업신여기는 경우를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번씩이나 엄마를 통해 부탁을 했다. 첫 등록금 한 번만 지원해 주면 박사 되어 귀국하겠다고 간청했다. 그래서 두 학기 등록금 지원한다.  그대신  장학금 못받아 중간에 문제 생기면 부모 원망 않고 무조건 귀국한다는 조건을 걸고 허락했다. 나의 고려대 입학 동기 하나가 프린스톤 대학에 유학, 장학금으로 고향의 부모님에게 논을 사드리며 공부하고 돌아와 경북대 교수가 된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 딸은 어렵게 공부했다. 박사 되어 한양대 교수로 돌아왔다. 그러나 애비에게 초겨울 날씨마냥 쌀쌀하다. 내가 처음 예상했던대로 연대 졸업하고 취직했다가  평범한 가정 이뤘으면 이런 불상사는 없었을 것이다. 재학 중에 고시 합격한 사위는 자식 노릇 제대로 해서 고맙다. 그러나 아직도 전세집에 살아 걱정이다. 전철역 생기면 집 값 오른다고 수지 대우아파트 64평 짜리 딸에게 넘겨주고, 내 평생 처음 20평 짜리 아파트로 집을 옮겼다가 강남의 삼성동 집을 팔아 빚 청산하고 다시 성복역 근처로 이사갔다. 다행이 전철역 개통되자 5억 짜리 아파트가 12억이 되었는데, 딸은 부모에게 상의 한마디 없이 판교로 이사 가버려 허망하게 되고말았다.

은 오빠처럼 강남에 비싼 빌라 주지 않아 불만이고, 아들은 여동생만 유학 간 게 불만일 것이다. 여하튼 자식  농사 실패한 것 같다. 그럼 아내는 어떠한가.

아내는 고려대 철학과 후배다. 내가 군대 제대해서 복학 하니, 김지미 보다 이뻐 캠퍼스 전체 일등 미인이었다. 출신 학교도 이화여중고 였다. 그래 나는 애초에 관심 두지 않았다. 학벌 좋은 미인은 결혼하면 어떻게 되는가. 남편이 출세하지 못하면 대개 구박한다. 그런데 내가 불교신문 기자일 때 잡지사 기자였던 그가 나에게 연락을 취해왔다. 나는 대학 4년 장학생으로 문과대 1등 졸업생이다. 재벌과 국회의원 집안 따님과 혼담도 있었다. 그런데 형이상학 같이 공부한 아내가 연락하자 그쪽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결혼 후 아내는 형이상학 보다 물질을 추구했다. 불교신문, 내외경제 기자, 재벌 자서전 써준 작가는 비난의 대상일 뿐이었다. 나의 모든 시도는 반대되었고, 평가절하 되었다. 비서실장 계열사 사장 시절에는 그럭저럭 지나갔다. 그러나 수입이 끊어진 은퇴 후 생활은 지옥이다. 내가 10권의 책을 냈으나 출판비가 없어 책을 낼 수 없었다.  딱한 사정을 들은 누이가 500만 원을 보내줘 그걸로 책 만들었다. 본인은 내가 낸 책은 읽어보지 않는다. 가족이나 친구한테 소개하지 않는다. 나는 철학과 답게 저술에 가치를 두지만, 그는 그것 때문에 가난이 온다 생각한다.  

나는 기업체 중역 때부터 돈은 전적으로 아내에게 맡겼다. 가정 경제는 부부 공동의 場으로 생각하였다. 건설회사 시절엔 여러 개 아파트 입주권과 수서의 오피스텔, 삼성동 두 개 빌라도 그에게 맡겼다. 딱 한번 재무에 관여한 적 있다. 모든 걸 처분하여 정자동에 다가구 빌라를 통으로 사자고 한 적 있다. 그게 노후 대책이라 싶었지만, 아내가 반대했다.

 

결국 은행빛으로 살다가 마지막에 삼성동 빌라 처분하고 용인시 수지에 와서 살게 되었다. 관리에 실패한 것이다. 물론 모든 재산 관리를 방임한 내 잘못도 크다. 그런데 요즘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내가 모든 재산이 자기 것이란 주장을 한다. 현재 살고있는 롯데 아파트가 값이 2배가 되었는데 아내 명의로 신청했다고 자기 재산이라고 주장한다. 그 아파트 입주금 5억은 우리가 살던 LG 2차 아파트 판 돈 아닌가? 나는 원래 재산의 반은 아내 것으로 인정한다. 재산은 내가 번 것이지만, 법적으로 부부 공동 노력으로 보는 모양이다. 그러나 어떤 가문이던 부인이 남편에게 재산 주장을 한다거나 부부간에 다툰다는 건 쌍스러운 일이다. 

두번째는 아내의 의부증 증세이다. 최근 아내는 뇌경색 증후로 두 번이나 응급실을 통해 입원한 적 있다. 나는 병든 아내를 끝까지 간병하는 것이 내 임무라고 생각한다. 간병인 보다 남편의 간병을 원하기에 80 노구가 불편한 병실에서 같이 생활했다. 그런데 죽음이 지나가자, 건강한 남편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의부증이 싹튼 모양이다. 퇴원하자 자기 방 침대에서 여자의 루주와 귀걸이가 나왔단다. 아파트 노인회 여자 감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사람은 나이가 나보다 많고 인물도 못생긴 편이다. 전에는 내가 입는 옷 하나를 누구 선물이냐고 추궁했다. 전부터 입던 낡은 옷인데 의심부터 한다. 한번 의심하면 무조건 확증을 가진다. 그래 불안해서 2년 임기인 아파트 노인회 회장을 1년 지난 금년 1월에 사임했다. 의부증을 판사인 사위 당군한테 상의한 모양이라 내가 하도 답답해서 육군 소장 출신 친구에게 하소연했더니, 그는 판사라면 제대로 잘 판단할 거라며 걱정 말라고 했다. 그러다 4월 24일 어젯밤에는 노인회 스마트폰 교육 신청을 해달라고 했다가 내가 찾느라고 시간이 걸리자, 분통을 터트리고 끝내 동네 파출소에 신고를 해서 경관 3명이 다녀갔다. 그들은 서재 문을 잠그고 숨어있는 나를 보고 육체적 싸움이 있었냐고 물어보고, 아니라며 나는 항상 이렇게 피한다고 하자, 할머니는 당뇨병 환자고 몸이 쇠약하시니, 끝까지 잘 참고 보살피라고 충고한 후 돌아갔다. 나도 그러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몇 가지 생각이 꼬리를 문다. 장보기, 음식 준비, 설거지 맡기는 건 참을  수 있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매사에 남편 의견을 개무시하는 태도는 참을 수 없다. 본인 말대로 별거 하면 어떨까? 재산을 반으로 갈라 나는 고향으로 가면 어떨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병세가 위험한 아내를 딸이나 아들에게 맡기는 건 도리가 아니다. 그들도 그럴 처지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점점 잘못되고 있다. 그래 사위와 며느리, 가족에게 미리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2023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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