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관한 글

'스승의 날'에 걸려온 전화

김현거사 2011. 5. 15. 11:03

 15일 '스승의 날' 아침에 귀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나야 교편 잡은 적 없으니,제자가 없다. 진주서 교직에 몸담으셨던 돌아가신 아버님 대신 나에게 온 전화였다.통화하신 분은 팔순을 눈 앞에 두신 어른이다. 

'오늘이 스승의 날이라, 아침에 평생 마음 깊이 흠모하던 선생님은 뵈올 수 없고, 대신에 아드님에게 전화를 한 것입니다.'

정태수 선생님이 서두를 이렇게 꺼냈다.순간 '세상에 이런 일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의 은혜를 세 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첫째는 진주사범에서 국사를 그렇게 재미있게 학생들이 심취하도록 가르키신 것입니다.내가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서 법학을 배우면서 국사를 독학하게 만들어,현재 내가 <우주의 역사>를 소재로 시집을 준비하는데까지 발전하도록 이끌어주신 은혜입니다.둘째는 내가 고등고시 시험 때 법학보다 국사 점수가 결정적으로 좋아, 합격했다고 생각하는 은혜입니다.셋째는 선생님이 진양군 교육감으로 계실 때,문산에 있던 나를 부산의 학교로 보내주셔서 대학에 진학하여 큰 뜻을 품게 해주신 은혜입니다.나는 부산 같은 학교에 근무하던 평양사범 출신 동료가 하는 것을 보고, 고시준비를 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때 고등고시에 합격, 나중에 문교부 차관 서울교육대 총장 대진대 총장을 역임하셨다. 지금은 시조시인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시조를 어린이들이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뜻 깊은 운동에 앞장서고 계신다.

'선생님의 뜻깊은 전화를 받으니,저까지도 감동스럽습니다.그런데 막상 이 전화 받고보니,곁에 계신 선생님께 자주 문안인사 올리고 찾아뵙지 못한 제자신이 돌아뵙니다.민망해서 몸둘 곳을 모르겠습니다. 대신 이번 가을에 선생님께서 자서전 집필 시작하시면 미력하나마 제가 정성껒 돕겠습니다.'

'그러면 두대에 걸쳐서 아름다운 인연이 연속 되지요.고맙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나는 두어권의 자서전을 집필한 적 있다.

 년전에 내가 수지구로 이사온 후, 생전에 아버님이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시던 제자 중에 한 분이 이웃에 계신 것을 알았다. 정태수 정희채 박창남 세 분 중,앞의 두 분은 문교부 차관을 나란히 연임하셨고, 박선생님은 우루과이 대사를 지낸 분이다.엘지 회장 구자경씨도 제자지만,아버님은 항시 흐믓하게 세 분 칭찬만 하시다 가셨다.그래 정태수 총장님께 언제 한번 식사 대접을 올린다고 전화를 드려,미금에서 식사를 했는데,중간에 선생님이 잠시 화장실 다녀오신다며 계산을 먼저 해놓았다.

'아니 제가 모신 자리에 선생님이 이러시면...'

내가 당황하자,

'이 식사는 내가 평생에 가장 존경하던 선생님 자제분을 대접 한 것으로 합시다.'

그 말씀도 의미 깊었다. 

그 후 우리 내외는 선생님 부부를 모시고 선생님 제자분이 교장 은퇴해 계신 욕지도에서 하루밤 보내며 바다낚시도 즐기고, 쌍계사 벚꽃을 구경하고 오기도 하였다.그 당시 칠순 가까운 교장 출신 제자가 노스승께서 도다리와 우럭 낚으라고 낚시 미끼를 달아주며 그리 은근히 대하는 모습을 보고,스승에 대한 존경과 제자에 대한 사랑이 오가는 모습을 보고, 과연 師道란 이리 엄숙하고 아름다운 것이구나 느낀 적 있다. 

지금은 진주사범이 없어지고 교육대학이 남았지만,당시 서부 경남 최고 인재가 다니던 곳이 진주사범이다.사라진 그 학교의 전통은 이리 아름다운 것이었다 .진주는 과연 말 그대로 교육도시다.지금 나는 선생님과 같은 남강문우회 회원으로 선생님을 간혹 뵙고있다.선생님은 과연 문교부의 首長을 지내실만한 분이다. '스승의 날' 아침에 선생님한테서 색다른 가르침 한 수 배웠다.

 

 

경향신문 편집국장 김경래   

인간 세상에서 아름다운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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