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남강문학회서 만난 정봉화 선배님

김현거사 2021. 12. 28. 05:29
 
 
남강문학회서 만난 정봉화 선배님

남강문학회 일을 하면서 만난 6년 선배 정봉화 수필가님 생각이 난다. 진주 비봉루 천석꾼 연일 정씨 후예인 그분은 포항제철 협력사 대표직을 역임했는데, 매년 '남강문학'에 광고료 백만원씩 협찬했고, 수필을 실었다. 또 서울서 열리는 모임에 오시면 꼭 금일봉을 내놓고 가시곤 했다. 

정봉화 선배님은 진주중- 부산고- 육군사관학교 과정을 거쳤다. 중학 동기생은 최병렬(한나라당 대표, 서울시장)이 있었다. 고등학교 원서를 쓰고 지원하고 하는 사이 아직 진학할 학교를 정하지 못하고 있는 그에게 부산에 가서 부산고 원서 2장을 사가지고 온 최병렬이 “봉화야, 부산고 원서 받아라. 같이 부산으로 가자”는 바람에 친구 따라 강남 간 식이 되었다. 부산고에서는 허문도를 만나 친구로 지냈다.
정선배가 육사 지원할 때 교장은 이한림 장군, 교무처장은 박태준 장군이었다. 그는 육군사관학교를 다니고 18기로 임관했다. 학구력도 대단해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대학 석사, 박사과정을 거쳐 2000년 2월 정치외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수도경비 사령관 윤필용의 비서실장을 했는데, 당시 윤필용 사건이 터졌다. 1973년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이 술자리에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박정희 대통령이 노쇠했으니 물러나게 하고 형님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쿠데타 모의 혐의를 받았다. 이에 윤 사령관을 비롯한 군 간부 13명이 징역형을 받았고, 정선배를 비롯한 31명은 보안사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은 뒤 강제 예편됐다. 그후 정선배는 43년 만에 전역 무효판결 받았고, ‘윤필용 장군, 사실과 진실’이라는 윤장군 평전 성격의 책을 발간하여, 윤필용의 억울한 진실을 세상에 밝힌 바 있다.

이 정선배에게 내가 특히 감명을 받은 건 그분과 포철 박태준 회장 사이에 얽힌 의리다. 그 분은 보안사에서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강제 전역당하자, 포철 박태준 회장을 찾아갔다고 한다. 박태준 장군은 윤필용 장군과 친하던 사이기도했고, 정선배가 육사 입학할때 육사 교무처장이기도했다. 그러나 박태준 회장은 원칙이 있었다. 과거 알던 사람은 만나주지 않는 원칙이다. 그래 만나보지도 못하고, 포철의 작은 일꺼리를 찾아서 했다고 한다. 그런데 박태준이 포철서 해임되어 미국 시골에 사는 딸에게 가 있을 때, 평소 원체 그 분을 존경하던 처지라 그 오지까지 찾아가서 만났다고 한다. 그때 박장군은 거기까지 찾아온 것에 너무나 감격해서 멀리까지 나와서 정선배를 배웅했는데, 그후 금방 포철 회장으로 복귀했다고 한다. 그후로 줄곧 동풍이 불었을 것이다. 결국 포철 협력사 대표로 자기 기업을 키웠고, 포철에 많은 공적도 쌓았다고 한다. 

그 정선배가 어느 봄날 나에게 전화를 했다. '봄에 꽃 피거던 한번 포항에 오소. 여긴 백두대간 맨 끝 경북의 가장 오지 산골이요. 소위 글 쓰는 사람이 한번 와볼만한 곳이라오'. 내가 당시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던 때라 망서리자, 자기는 보안사에서 맞아 뼈마디 몇개를 철사로 엮어 살면서도 매일 아침 1시간 거리에 있는 진양호변 된장국집을 꼭 운동삼아 산책하고 식사하고 오는데, 젊은 사람이 왜 그리 패기가 없나? 라고 하신다. 그래 안병남 손계숙 두 여류시인과 같이 내려가 마불링 아름다운 언양의 참숫불 갈비 대접받고, 그분이 운영하던 포철 협력사 영일기업과 竹長面 五士里에 있는 된장 공장 구경했다. 오사리 된장 공장에서 하루 밤 묵고 왔는데, 거기 구암산은 용암분출로 생긴 산이고, 강원도 양구 펀치볼처럼 생긴 커다란 분지이며, 상옥리 하옥리는 용암분출 분화구가 있어 경치가 좋았다.
내가 왜 이런 오지에 된장공장을 세웠냐고 묻자, 그 사연이 아름다웠다. 포스코(posco) 협력회사이던 영일기업이 1999년부터 '일사일촌운동'의 일환으로 상사리 마을과 결연을 맺고, 농번기 일손 돕기, 농기계 무상 수리 등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러자 농민들이 그 보답으로 뭘 갖다줄 것이 없자, 죽장면에서 생산된 콩으로 만든 된장과 간장 고추장을 회사로 보내주더라고 했다. 그래 선배님이 그걸 직원에게 무상으로 나눠주는 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켰다가, 나중에 아예 죽장리에 미국 일본 뉴질랜드로 된장 간장을 수출하는 발효공장을 세웠다는 것이다. 죽장면 농민들이 생산한 콩을 전부 수매해주고, 농한기에는 주민들이 된장 간장 만드는 회사에 근무하도록 일자리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20만평 산을 확보하고 그 아래 계곡 옆에 공장을 세웠는데, 4천개 넘는 장독대가 바람과 햇빛이 잘 드는 남향에 삼단으로 배치하여, 장독들은 독 하나 단가가 60만원인데, 1년에 1000독씩 항아리를 채운다고 했다. 간혹 장독대에 주인 이름을 써붙인 것은 미리 예약한 고객 이름인데, 빈티지 포도주처럼 된장 간장도 5년 이상 숙성시키면 음식 보다는 항암효과 높은 보약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날 저녂은 현지 싱싱한 더덕, 생표고, 두룹에 머루주 대접 받고, 동산 위에 접시 같이 밝은 보름달 뜬 밤에 정선배님은 우리 방 이불 밑에 직접 손을 넣어 방이 따뜻한지 살펴본 후 가셨다.

이튿날 아침 포항시에 있는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선배님은 출근하면서 충성! 회장실에 걸려있는 윤필용 장군 사진을 향해 경례ㄹ르 붙혀 깜짝 놀랬다. 한때 나는 새도 떨어트리던 수경사 윤필용 장군 이야긴 다 알지만, 미수를 앞 둔 그때까지 아침 출근시 경례를 붙이는 의리를 보고 저윽히 놀랬다. 
포스코(posco)는 공장 넒이가 여의도의 3배라 한다. 그 속에 설치된 철도 길이만 42킬로라 한다. 철광석 실어오는 전용 부두가 있는, 세계 5위 철강공장이라 한다. 그 포철의 가장 주요한 장비인 ET-Car를 정선배님이 도입했다고 한다. 선배님이 미국 프랑스 독일 철강공장을 둘러보고, 첨단장비를 비디오로 찍어와서 ET-Car 도입을 포스코(posco)에 건의하고, 한대 20억이 넘는 300톤이 넘는 쇳물을 옮기는 장비를 '내가 우선 도입할테니 장비를 사용해보고 결정하시오' 하면서 과감히 도입했다고 한다. 

정선배님은 비봉루 집안 후손인데, 거기 서예가로 유명한 은초 정명수 어른은 아버님 바둑 친구이셨고, 진중 최남덕 선생과 뜸부기 사냥 다니던 정봉화 선배 삼촌 정수영 선생님은 내가 중학생일때 가르침을 받은 은사이다. 봉화 선배님은 그 당시 멧돼지 잡는 큰 탄환, 뜸부기나 꿩 잡은 작은 탄환 등 삼촌 탄환 만드는 심부럼 했다고 한다. 그 집안 자제분 중 한분은 내 형님과 진고 동기요, 그 아래에 나와 동기되는 스님이 있다.
이런 선배님이라 근래에 내가 만든 책을 보냈더니, 책이 반송되어 돌아왔다. 알고보니 선배님이 작고하신 것이다. 인생사 허망하다. 또하나 아름다운 인연이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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