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가버린 사람들과 한 잔 술이라도 나눠야겠다'

김현거사 2021. 10. 4. 10:22

'가버린 사람들과 한 잔 술이라도 나눠야겠다'

 

연암이 안의현감으로 있을 때 일이다. 하루는 낮잠을 자고 일어나더니 슬픈 표정으로 아랫사람에게 분부를 내렸다. “대나무 숲 그윽하고 고요한 곳을 깨끗이 쓸어 자리를 마련하고 술 한 동이와 고기, 생선, 과일, 포를 갖추어 술자리를 차리도록 하라.”

연암은 평복 차림으로 그곳으로 가서 술잔을 가득 따라 올리신 후 한참을 앉아 계시다가 서글픈 표정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상에 차렸던 음식을 거두어 아전과 하인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였다. 이상하게 여긴 아들 박종채가 연유를 묻자 연암은, “저번에 꿈을 꾸었는데 한양성 서쪽의 친구들 몇이 나를 찾아와 말하기를 자네 산수 좋은 고을의 원이 되었는데 왜 술자리를 벌여 우리를 대접하지 않는 것인가?라고 하였는데 꿈에서 깨어 가만히 생각해보니 모두 죽은 사람들이었다. 마음이 서글퍼서 상을 차려 술을 한잔 올린 것이다." 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해마다 오는 추석이지만, 금년 추석은 더 쓸쓸했다. 작년 금년 마음 속으로 존경하던 두 분을 여위었기 때문이다. 남강 문학회서 만난 정태수 차관님은 스승의 날에 아버님 생각난다며 아들인 나에게 전화하셨던 분이다. 사모님과 같이 욕지도를 방문하기도 했고, 분당 탄천에 봄꽃 피면 꽃을 감상하기도 했다. 금년 초 형님도 이승의 객이 되었다. 스므 살 무렵에 친구 자살했다고 자원입대하고 제대 후 정처 없이 섬을 떠돌던 나를 명륜동 서울대 옆에 데려온 분이 형님이고, 보잘것없는 내 수필을 항상 칭찬해주시던 분이 형님이다.   

 

이번 추석에는 허전한 맘을 달랠 길 없어 보름달을 볼려고 동네를 한 시간이나 헤매었다. 상현달은 보름을 전후하여 둥글게 차오르는 달이고, 하현달은 그저 시들기만 하는 달이다. 80이 3년 남았으니, 이제 나는 하현달이다. '가버린 사람들과 한 잔 술이라도 나눠야겠다'던 수필가 연암 박지원의 말이 새삼 느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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