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거사(居士)란 무엇인가

김현거사 2021. 9. 20. 08:26

거사(居士)란 무엇인가

 

원래 거사란 말은 승려가 아니라 재가에서 불도를 닦는 사람을 가리키는 불교용어이다. 범어 꿀라빠띠(kulapati), 그르하빠띠(Gŗhapati)를 옮긴 것으로, 음역으로는 가라월(迦羅越, 伽羅越), 의역으로는 장자(長者) 가주(家主) 가장(家長) 등으로 번역한다. 가정을 떠나지 않고 붓다의 법을 믿고 따르는 신행자이다. 이들 중 재가 남자는 우파사카(Upāsakā, 優婆塞), 즉 청신사(淸信士) 혹은 선남자(kulaputra), 근사남(近事男)으로 호칭되고, 재가 여자는 우파시카(Upāsika, 優婆夷), 즉 청신녀(淸信女) 혹은 선여인(kuladuhitŗ), 근사녀(近事女)로 호명되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거사와 처사는 다르다. 불교에서는 출가했다 환속한 이를 ‘처사’라고 부른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처사와 거사를 함께 쓰기도 한다. 하지만 재가불자는 거사라 해야 옳다.

 

이름난 거사(居士)로는 유마힐(維摩詰)과 소성(小姓) 거사가 있다. 유마힐 거사는 석가모니 재세시에 바이 살리라는 도시에 살고 있던 부호인데, 학문과 지혜가 문수보살 관음보살 위에 있었다고 한다. 재가 신자(在家信者)로써 불교의 진수(眞髓)를 체득하고 청정(淸淨)한 행위를 실천하며 가난한 자에게는 도움을 주고 올바른 가르침을 전하고자 노력한 인물이다. 세속에 있으면서도 대승의 보살도를 성취하여 출가자와 동일한 종교 이상을 실현하며 살고 있었던 그는 재가신자의 이상상(理想像)이다. 이 유마힐거사를 중심인물로 출가 중심주의의 형식적인 불교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반야경》에 서술된 공(空)의 사상을 실천적으로 체득하려는 대승보살(大乘菩薩)의 실천도(實踐道)를 강조한 것이 유마 경이다. 


소성(小姓) 거사는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 617~686) 스님이다.  원효(元曉)는 ‘이른 아침’ 또는 ‘처음 부처의 해가 빛난다’는 뜻을 지녔다. 그가 의상(義湘) 스님과 당나라로 유학 떠나려고 가던 중 새벽녘에 목이 말라 옆에 있던 바가지에 물을 시원스레 마시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무리 해골바가지에 담겨있음을 보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달려 있는 것을 깨닫고 돌아온 일화는 유명하다.  
계림에 나타난 원효는 시장과 거리에서 노래도 부르고 무애(無碍)라는 이름의 바가지를 두들기며 돌아다니고 아무데나 들어가 밥을 얻어먹고 잠을 잤다.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빌려줄 테냐. 내가 하늘을 받칠 기둥을 다듬겠노라'라는 노래를 부르며 돌아다닌다는 소문을 들은 태종 무열왕은 '귀부인을 얻어 아들을 낳겠다'는 뜻이라 풀이하여 요석궁으로 불러 과부인 요석공주와 잠자리를 같이하게 했는데, 이들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유학의 시조 설총(薛聰)이다.
만년에 소성거사라 자처하고 무애행을 벌였는데 거사라 했으니 중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금강삼매경론》을 비롯해 《대승기신론 소》, 《십문화쟁론》 등 무수한 저술을 냈다. 나이 70세에 동두천 자재암 토굴에서 혼자 숨을 거두었고, 자재암에 가면 요석공주가 다녀간 흔적이 있다. 

 

두 분 거사를 존경하여 스스로 거사 자칭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대학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한 후 불교신문 기자로도 있었다. 은퇴 후 수지 광교산 아래 살면서, 한국 사상과 중국 사상을 각각 25편으로 간결히 정리하여 두 권 책을 냈다. ㅎㅎㅎ 국제화 시대이니 제 나라 철학과 사상을 대충은 이해하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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