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일의 노래<남해에서>

김현거사 2019. 2. 25. 11:06

  원일의 노래(남해에서)


 철수 자살 후 나는 부모님 애간장 어지간히 태워드렸다. 자살한다고 집에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입대하질 않나, 대학을 무단으로 중퇴해버리질 않나, 제대해서 집에 와서 섬으로 내빼질 않나, 모두 자식새끼 맘대로 였다.

 어느 날 나는 가방에 신구약 성경 두 권과 원고지만 챙겨넣고 집을 나섰다. 중앙로타리 버스 터미날에서 무조건 아무 버스나 탔는데, 타고보니 하동 가는 차다. 서장대 밑을 지나간 차는 동네마다 사람 태우는데, 몸뻬 차림 아낙과 두루마기 차림 촌영감들 타고내리는데 한참 걸린다. 차가 곤양 쯤 갔을 때다. 비단처럼 고운 바다에 뜨있는 비토(飛兎)섬이  보인다. 거긴 고2 때 내가 철수와 여름방학 보낸 곳이다. 달밤에 작은 배 타고 두어길 물 밑에 미역이 너울거리는 바다에서 바지락 미끼로 장어 잡았던 곳이다. 그 바다를 보면서 '아! 이제부터 나는 외로운 갈매기처럼 섬을 헤매자. 그러다 어느 날 저세상 사람 된 철수 옆으로 가야지'하고 생각했다. 

  금오산과 남해 망운산 사이 해협은 황혼에 물들어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가파른 계단 내려가니 짭쪼롬한 갯내음 코를 스친다. 파도는 늠실늠실 발끝에 닿고, 선체에 붉은 칠한 낡은 철선은 사람 태우자, 탈탈탈 공중에 발동기 검은 연기 날리며 바다 건너간다. 거기가 바로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 치른 장소다. 

 배가 섬에 닿자 부르릉 기다리던 남해버스가 시동을 건다. 들판은 황혼이 금실 수놓았는데, 작물은 풍요롭고, 사람들은 순하다. 꼴깍 해 넘어가고 나서 읍에 닿아 사람들 흩어진 컴컴한 터미널에 혼자 남았다. 여관이 없던 시절이라 잘 곳 찾아보니, 마침 국밥집에 장꾼 차림들이 보인다. 일단 국밥 시키고 거기 끼어앉아보니, 그 집 뒷방에서 국밥 먹은 사람은 잠 잘 수 있단다. 초가 위로 삐쭉 나온 굴뚝은 사람 손 닿을만치 낮다. 연기에 그을러 시커멓다. 화장실 냄새 나는 방 기둥에 걸린 때 묻은 남포등 희미한 불빛 비치고 있다. '좀 땡깁시다!' 왕년에 부산 서면 하이에리어 부대 근방 헌병도 구타한 몸이다. 시골 봇짐장사야 귀엽다. '재떨이 이리 주소' 재떨이까지 챙겨 담배 물고 천정 보고 누우니, 옆에 옹크린 봇짐장사 모습들 가련하다.

 사람 들락거리는 바람에 열어젖힌 문으로 찬바람 들어온다. 그 바람에 잠을 깨니, 장꾼들은 새벽부터 세수하느라 들락거린다. 부얶 가마솥은 쎄쎄 소리내며 하얀 김 내품는다. 아궁이 군불 타는 소리 탁탁 들리고, 낼름낼름 뻘건 불 혓바닥 보인다. 퍼담아주는 국밥은 사는 형편이 좋아 그런가. 인물 곱상한  오십대 아주머니는 인심도 좋다. 밥통을 아예 내놓고 장꾼이 양껒 밥을 퍼먹게 한다. 군 시절 부산 인심과 대조된다.

 제삿밥 먹은 셈치고 방에 들어가 한참 쉬다 대합실로 나갔다. 파리똥 묻은 남해 지도는 귀퉁이가 떨어져 보이지 않는다. 섬 끝머리 동네 찾으니 미조란 동네가 있다. 


 미조리


 차가 바다로 가는지 육지로 가는지 모르겠다. 바다가 육지로 파고들어온 게 만(灣)이고, 육지가 바다로 밀고나간 게 곶(串)이다. 산굽이 돌때마다 바다와 육지가 번갈아가며 나온다. 간혹 섬도 보이고, 금산 꼭대기 보리암도 보인다. 파도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너무 고요하다. 이런 곳엔 돈도 명예도  공부도 필요없다. 마음 편해진다. 

 달리던 버스가 마지막 선 곳이 미조리다. 사람들 모두 집으로 가버린 포구에 나만 남았다. 푸른 담쟁이 잎 덮힌 돌담 너머로 바다와 빨간 등대 보인다. 당시 미조는 한적한 포구다. 혼자 포구에 서있는데,

'누구 찾아왔소?'

어떤 영감이 말을 건다. 당시 겨우 여나믄 가구 살던 미조다. 사람들 모두 서로 알고 지낸다. 내 처지 설명하니,

'아 그럼 금순이네 집에 가봅시다.'

 영감이 안내해준 집 안주인은 초등학교 1학년 딸 하나 데리고 혼자 산다고 한다. 방문을 열자 무화과 나무 밑에 갈매기 나르는 바다가 보인다. 창틀이 액자 그림 같다. 외국 잡지에서 보던 멋진 항구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볼만하다. 싸구려 도배지로 도배한 벽 한쪽은 쥐가 쏠아 구멍 메꾸려고 그랬는지, 아니면 멋있다고 오려붙였는지, 반나의 수영복 차림 서양여자가  웃고 있다. 천장은 손 뻗으면 닿을만치 낮지만  창을 넘어온 바람은 머리칼을 날린다. 주인 여자 성격이 깔끔한지 장판은 먼지 하나 없고, 창호지 바른 창문 때문에 방은 밝다. 

 삼십대 과수댁은 볕에 탄 얼굴이 건강미 넘치는데, 시선이 마주치면 귓볼이 빨개지며 얼굴 돌린다. 딸 금순이는 도시 사람이 자기 집에 하숙했다고 신이 났다. 방안을 들낙거리며 담배 심부럼 자청한다. 여인이 기척만 내고 상을 방 앞에 놓고 가버리면, 금순이가 상 들고 방에 들어온다. 그날 첫 밥상에는 구운 갈치와 홍합과 파래 무침 올라있다. 조촐하지만 정성 가득한 것이었다. 이후 여인은 내가 없는 사이 방에 들어와 물걸레질 하고, 금순이 시켜 빨래감도 가져가곤 했다. 혼자 사는 젊은 여자가 보살펴주니 내가 신랑 된 기분이다.

 

 저녁이면 '망운산'호가 포구로 돌아온다. 삼천포서 돌아오는 '망운산'호는 포구로 들어올 때 확성기로 '쌍고동이 울어대는 이별의 인천항구' 튼다. 배 이름 남해서 제일 높은 망운산에서 따온 것이다. 음악을 틀면서 부드럽게 포구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배는 백조처럼 우아하진 않지만, 뭔가 이국적이다. 할 일 없는 나는 밤이면 금순이 대동하고 등대로 나가곤 했다. 바다는 낮과 밤의 무드 다르다. 낮은 눈부시고 생기차지만, 밤은 몇 초 간격으로 바다 비치는 푸른 등대불이 신비롭다. 수면에 반사되는 정박한 배의 불빛 외롭다.

 이런 글 원고지에 남기기도 했다.

'인생은 밤바다 위의 한 척 배 같이 외롭다. 바다가 어느 날 배를 폭풍으로 가라않히듯 나도 언젠가 폭풍으로 침몰하여 해저에 가라앉을 것이다. 고독과 허무 가득한 내 내부는 어쩌면 남태평양 어느 지점 바다인지 모른다. 폭풍을 잉태하고 있다. 인생은 무의미한 것이다. 철수처럼 남자답게 짧게 멋있게 살다 가고싶다. 나도 언젠가 니힐이 화약처럼 폭발하여 굉음이 천지를 진동하는 죽음을 맞을지 모른다. 나는 그 날을 기다린다.'


 

원일의 노래(남해에서)/2


 처음엔 자주 성경을 읽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이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마태복음도 읽고, '야훼가 최초의 사람인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를 만들어 에덴동산에 살게 했다'는 구약도 읽었다. 신구약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두어번 완독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아무리 읽어도 니체의 '초인'이라는 단어가 더 맘에 들었다. '인간은 황야의 늑대처럼 고독해야 한다'는 구절이 성경의 어느 구절보다  더 매력 있다. 사실 나는 내 또래 크리스찬들을 좀 얕잡아보고 있었다. 그들은  찬송가 잘 부르고 고분고분하다. 그래서 사람들한테 칭찬 듣지만 온실 속 화초다. 야생이 아니고 생명력 약하다. 

 그때가 크리스마스 이브 앞둔 어느 날일 것이다. 남학생 중 계집애처럼 안경잽이 얼굴 하얀 녀석이 있었다. 그를 멱살 잡고 혼쭐 내 준 이유는 '저 새벽 이슬 내린 빛나는 언덕은 그대 함께 언약 맺은 내마음의 고향, ...' 아니로리를 그렇게 곱게 잘 부르던 여학생과 그가 친했기 때문이다. 나는 칠암동 교회 층층 신발장에 놓인 그 소녀 신발 한짝을  감춰둔 적 있다. 나무꾼과 선녀처럼 해볼려고 그랬는데, 그걸 방해한 그 눈치없는 성가대원 녀석을 내가 그냥 두겠는가. 인물만 좋지 한주먹감도 않되는 녀석을 한 방 먹인 그날 이후 나는 영원히 그 소녀한테 낙인 찍혔다. 카인처럼 교회와 담 쌓았다. 

 나는 이런 글을 쓴 적 있다. '밝은 색만으론 명화는 그릴 수 없다. 명화는 밝고 어두운 색이 혼재할 때 가능하다. 나는 평범한 그림은 그리고 싶지않다. 그래서 나는 끝없이 인생의 악한 부분도 구경하려 한다. 헷세의 '데미안'이란 소설을 보면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라는 구절이 있다. 완전한 신은 선과 악을 모두 구비하고 있다. 나는 착하기만 한 기독교인은 반쪽 짜리 인생이라 본다.' 

요컨대 나는 미식축구 선수였고, 건강한 본능을 가진 야생마 였다.


 낮에는 주로 바닷가를 돌아다녔다. 나는 고립된 섬이나 험한 바위산 위에 수도원 세워놓고 엄격한 계율을 지키며 사는 터키의 수도원을 알고있다. 그런 곳이 남해에 있을 턱 없다. 그러나 나는 그런 곳 찾아 다녔다. 

 나는 기독교 사상보다 범신론(汎神論)에 흥미를 느꼈다. 그들은 신은 우주 속에 있고, 우주가 바로 신이라는 만유신론(萬有神論)을 주장한다. 나는 혼자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야생꽃을 흔드는 산들바람 속에서 신의 음성을 듣고자 했다. 파도에 굴러가는 조약돌 소리에서 찬송가를 듣고 싶었다. 산꼭대기를 휘감는 아름다운 목화송이 구름에서 신의 손길을 느끼고 싶었다. 

 해변을 따라 정처없이 가보곤 했다. 어느 외진 곳에 헷세의 '유리알 유회'에 나오는 '카스탈리엔' 같은 동네가 있고, 유리알 유회의 명수 '요오제프 크네히트'를 만날지 모른다 생각했다. 해변을 혼자 걸어다니다가, 황혼이 어둠으로 변하고, 밀물이 거친 소리 내며 육지로 밀려오는 밤중에 돌아오기도 했다. 산에 올라가 하얀 포말을 드레스 레이스처럼 아랫도리에 단 섬들을 바라보기도 했다. 잎이 햇볕에  빤작이는 짙푸른 동백나무 아래서 담배를 피우며 트란지스터 음악 듣곤했다. 딱 한사람 살만큼 작은 섬도 있다. 거기 백사장에 오두막 짓고 대밭과 옹담샘 벗하며 살 수 있다. 몽상에 잠기기도 했다. 동남쪽 바다에 먼 두미도 노대도 욕지도는 수반 위 작은 수석처럼 보인다. 거긴 해변에 널린 것이 홍합이고, 트란지스터나 손목시계 같은 귀중품 하루 종일 돌담 위에 얹어놓아도 누가 집어가는 사람 없다. 거긴 낙원이다. 

 송남(松南)이란 곳에 가보니, 넓은 백사장과 솔밭이 있고, 솔밭 옆에 엎드린 손바닥만한 작은 초등학교가 있었다. 바다에 들어가서 발바닥으로 모래를 부벼, 물속에서 빤짝이는 납작한 가리비조개를 바께스 채로 잡아온 적도 있다. 바위 밑에서 소라와 해삼 줍기도 했다. 달밤에 혼자 못에서 팬츠 벗고 헤엄 쳐본 적 있다. 햇볕에 따뜻하게 데워진 물이 피부의 가장 은밀한 부분에 닿는 촉감이 비단 이불처럼 부드러웠다.


 

아담과 이브


  바다 풍경이 참으로 아름다운 곳도 있었다. 집채만한 파도가 넘실거리며 달려와서 쾅! 하고 벽력같은 소릴 지르며 암벽 무너지라 덮치면 파도가 십여 미터 솟구친 후 하얀 포말 남기고 물러간다. 그다음에 또 파도가 달려와 바위를 덮친다. 해신(海神) 포세이돈과 대지의 여신 레아는 끝없이 영토 싸움을 벌인다. 바다는 육지로 끝없이 달려오고, 육지는 바다로 끝없이 달려간다. 아열대 상록수림은  바위 틈 한 치 땅에도 끝없이 뿌리 내리고,  바람에 날라온 야생화는 끝없이 꽃을 피운다. 

 바다와 육지가 서로 경쟁하는 그 틈바구니에  작은 물웅덩이가 있다. 밀물 때 들어온 바닷물이 고인 곳이다. 바위에는 까만 홍합이 붙어있고, 톧나물과 미역 줄기 너울거리고, 게가 기어다닌다. 물 속에는 밀물 때 들어온 손바닥만한 우럭과 노래미가 유유히 헤엄친다. 물 밑에는 소라고둥과 조개가 숨어있다. 물웅덩이는 거울처럼 투명하다. 아무도 오지않는 외딴 곳이다. 이승이 아닌듯 고요하다. 근처 풀밭에는 야생 나리꽃 피어있다. 나리꽃은 화판에 미인의 입술가에 찍힌 점처럼 요염한 반점이 찍혀있다. 그 꽃은 내 마음 사로잡고 있던 어떤 소녀 모습과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와 나는 잘 맞는 한쌍이었다. 그의 부친은 진주 모 대학 학장이었고, 우리 아버지는 진양군 교육감이었다. 그가 사범학교 나와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다면, 나는 명문 K대 학생이다. 그가 명작 속 소녀처럼 수줍고 아름다웠다면, 나는 건강하고 다정한 소년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투루게네프의 '첫사랑'이나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좋아하던 문학청년이던 점이다. 나는 '샤롯테'를 사랑한 젊은 ‘베르테르’ 였고, '지나이다'를 사랑한 '페트로비치' 였다. 나는 그 소녀 앞에 서면 갑자기 노틀담의 꼽추 '콰지모도'가 되었고, 그는 한없이 아름다운 짚씨 여인 '에스메랄다'가 되었다. 나는 소녀 앞에 서면 몸에 화살을 맞은 표범처럼 갑자기 수십만 볼트의 전류가 흘렀다. 그 모두 내 탓이다. 이렇게 중학교 3학년 때 시작된 짝사랑은 내가 군인이던 어느 날 끝났다. 그와 어떤 군의관 혼담이 진행된다는 소문을 듣고, 나는 단판을 내려고 육군 병장 계급장 달고 그가 근무하던 문산초등학교를 찾아갔다. 그리고 수업 끝날 때까지 기다려, 코스모스 핀 신작로 지나, 같이 기차 타고 진주역에 내렸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실패했다. 나는 중세의 기사가 영주의 따님을 사모하던 것처럼 그 소녀를 사모했다. 목슴을 던질만치 헌신적이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기사도 정신으로 보면 그건 불경이었다. 이렇게 첫사랑은 끝났다. 

 나는 그 물웅덩이 근처가 너무나 고요하고 아름다워 마치 에덴동산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담 그는 이브다. 이브가 거기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를 생각하며 나리꽃을 꺽어 꽃다발을 만들었다.  죽은 햄릿을 슬퍼하는 오필리아처럼, 죽음처럼 고요한 수면 위로  꽃을 던졌다. 꽃은 쓸쓸히 물 위로 흩어져 갔다.


 아나벨 리


 지금 남해 미조리는 빌딍도 있고, 넓직한 수협 공판장 앞에 멸치나 도미 우럭 잡아온 배가 정박하고, 버스 타고온 관광객 북적거리는 곳이다. 그러나 66년 그때는 바닷가에 돌담 둘러친 오막살이  몇 채 있던 한가한 곳이다. 초등학교 일학년 금순이는 거기 돌담에 피어있던 애처럽고 작은 제비꽃 같았다. 아빠가 없어서 그랬을까. 금순이는 학교 다녀오면 나만 졸졸 따라다녔다. 말동무 없는 어촌이라 그랬을까. 동무들 달고와서 도시 아저씨가 자기집에 있는 걸 자랑했다.

 이 꼬마 숙녀 금순이와 내가 자주 가던 바다는 등대 우측 해풍에 잘 자란 풀밭 옆 아담한 만(灣)이다. 거긴 바위가 많아 물결은 호수처럼 잔잔했고, 흰구름 아래 비취빛 파도는 끝없이 밀려왔다. 둘은 인기척에 도망치는 게를 잡기도 하고, 보석처럼 아름다운 조개를 잡기도 했다. 외로운 곳에 피는 꽃이라 그랬을까. 금순이는 이 세상 어느 소녀보다 이뻤다. 하느님은 그에게 가난과 건강을 동시에 준 것이다. 햇볕에 탄 통통한 구리빛 팔목은 이 세상 어느 소녀보다 사랑스러웠다.    

 둘은 수영복이 없는지라, 금순이는 까만 광목 홑치마만 벗으면 된다. 빤스가 수영복이다. 금순이는 시원하게 나가는 크롤 헤엄이고 나는 두팔로 헤우는 개구리 헤엄이다. 섬 아이는 걷기 전에 수영부터 배운다. 금순이는 내 수영 선생이다. 둘은 파도 속에서 입술 파래지도록 놀고, 물놀이 끝나면 발 통통 굴러 귀에 들어간 물 빼고, 각자 바위 뒤로 가서 빤스 벗어 물을 짜고, 다시 입고 집에 갔다. 금순이는 푸른 파도 속에서 같이 놀던 인어였다. 나는 금순이네 돌담에 피어있던 보라빛 바이올렛 꽃을 한송이 책갈피에 끼운 적 있다. 금순이는 그때 책갈피에 끼운 애처러운 작은 제비꽃 이었던가. 40년 후 미조 가서 횟집 주인에게 물어보니 금순이 소식 모른다. '날 잊지 말아라. 내 품을 떠난 그대여. 밤마다 네 얼굴 내 맘에 사라지지않네. 나 항상 너를 고대하노라. 날 잊지 말하라.' 스테파노의 노래가 그때처럼 사무치게 들린 적 없다. 금순이는 에드가 알란 포우의 '아나벨 리'처럼, 바닷가 왕국으로 가버린 모양이다.  


 

 바다와 노인


 할 일 없이 바닷가를 쏘다니던 어느날 이다. 한 노인이 낡아빠진 뗀마로 얕은 바다를 다니면서 그물로 갯바닥을 흝어 뭔가 잡고있었다. 배에서 내려 어깨에 메고 내려온 납 뭉치 달린 그물을 하나씩 옆으로 제치고 있길래 곁에 가보니, 집게발 허우적거리는 게와 펄쩍거리는 전어가 나온다.  

 부럽기도 해서  '매일 이리 잡힙니까?'  말을 걸고 담배를 권했다. 그러자 노인은 '파고다' 담배는 아까운지 호주머니에 넣고, 풍년초를 신문지에 말아 입에 문다.  

'어디서 오셨수?'

 내가 진주서 왔다고 하자. 

'진주 문산은 넘어지면 코 닿을 데지.'

 자기는 고향이 문산이라면서 진주 문산 삼십리 길을 이리 말한다. 주름으로 가뭄 때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진 얼굴, 백발 덮힌 목덜미가 오래 타관을 떠돈 외로운 모습이다.

 그날 나는 노인 집에 따라갔다. 자살할려고 성경과 원고지 들고 섬에 간 사람이 따로 할 일 없다. 가보니 노인의 요리 솜씨가 대단하다.

'그 파란 국물이 간에 좋은 거요, 술을 아무리 먹어도 그거 먹으면 숙취(宿醉) 없어져.' 

보약이라고 권한 뿔소라 껍질에 고인 국물은 시원했고, 연탄불에 구운 살은 쫄깃했다. 총총 썰어 내놓은 돌처럼 딱딱한 해삼은 달콤한 초장과 잘 어울린다. 내가 막걸리를 사오자, 노인은 흥이 났다. 

'문어는 너무 삶으면 맛이 없어.'

돌문어를 데쳐 도마에 놓고 손에 입김 호호 불어가며 뜸성듬성 썰어 권하는데, 나는 세상에 모락모락 김 나는 그렇게 뜨겁고 맛있는 문어는 처음 먹어보았다. 노인은 자기는 이런 걸 맨날 먹는다며 입에 대지도 않았다. 노인의 집은 겨우 하늘을 겨우 가린 움막이지만, 요리는 천하일미였다.

 그 후로도 나는 노인의 파티에 혼자 초대되어 이런 요리를 맛보았으니, 세상 어느 호사가 보다 호강한 셈이다. 노인이 예리한 칼로 등뼈만 남기고 능숙하게 살을 뜬 후, 물엿과 생강즙 넣은 비법 양념장 발라 구운 장어는 얼마던지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글지글 구워지는 소리도 듣기 좋았다. 삶은 게는 껍질부터 빨갛게 익는다. 등딱지 안에 붙은 누렇고 흰 장(醬)맛은 먹어본 사람만 안다. 임어당은 '게는 원래 바다와 육지를 오가는 수서생물로, 수륙(水陸)의 진미(珍味)를 한몸에 지닌 것인데, 그 중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황고백방(黃膏白肪)이라 한다'고 했다. '가을 국화 옆에서 삶은 게 먹는 걸 인생의 제일 큰 즐거움'이라고 말한 사람도 임어당이다. 

 노인은 바다에서 나온 재료는 무엇이던 멋지게 요리했다. 하얀 모자만 안썼을 뿐이지, 도시의 일식집 주방장 보다 솜씨 좋았다. 인이 요리하면 그것이 무엇이던지 바다의 미각이 살아났다. 그가 만든 음식에선 바다 냄새가 났다. 뻘맛이 났다.

 시커멓고 쭈굴쭈굴한 노인의 손은 바닷가에서 수십년 살아온 고목의 가지였다. 노인의 손은 바다의 일부였다. 그의 손맛은 배워서 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오묘한 경지 터득한 바다의 일부였다. 

 바다 일이라면 모르는 게 없는 노인에게 나는 여러가지 배웠다. 몇 월 무슨 고기가 알배기고 기름지고 맛 있는지, 장어나 게는 어떻게 잡는지, 잡는 포인트는 어딘지, 물 때가 언제인지 등이다. 

 장어 잡으려면, 해그름에 등대 옆 석축으로 가면 된다. 먼저 바위에 붙은 석화를 깨어 준비한다. 그걸 몽당 낚싯대 봉돌 무게를 감지하며 물밑에 놓았다 당겼다 하면 툭하고 어신이 온다. 장어는 물 속을 휘젓고 버티는 힘이 강하고, 바위 틈에 들어가면 낚시줄 끊어진다. 몸에 미끌미끌한 점액질 많아 손바닥에 호박잎 깔고 바늘 뺀다.

 게는 썰물 때 잡는데, 게걸음이란 말 있지만, 느릴 것 같아도 옆으로 내뺄 때는 빠르다. 조용히 닥아가서 불시에 낫으로 등짝을 찍어 잡는다. 손으로 잡으면 집게에 물린다. 문어는 사람처럼 머리통 이리저리 흔들며 뻘밭 돌아다닌다. 인기척 나면 재빨리 굴로 숨는데, 굴에 들어간 놈을 손으로 꺼내려면 워험하다. 굴 안에서 흡판으로 손 잡고 버티는 힘이 강해, 밀물 들어오면 낭패 당한다. 가만히 굴 옆에서 기다리다가 이놈이 성질이 지긋하지 못해 머리를 밖으로 내밀어 사방을 두리번 거릴 때 낫으로 확 잡아챈다.

 노인은 소라나 전복이 어디 많은지 잘 았았다. 소라 전복은 미역같은 해초를 먹고 살아, 해초 많은 곳에 산다. 해초는 뿌리를 바위에 내리니, 바위 많은 곳에 산다. 조개는 프랑크톤이나 작은 벌레 빨아먹고 살기 때문에 모래밭에 산다. 노인이 한번은 가리비고둥이 많은 곳을 알으켜주었는데, 거긴 가리비가 물 속에 몇가마씩 무리 지어 살고있었다. 그러나 노인은 그게 뭐던지 한번에 다 잡는 일은 없다. 그날 필요한 양만 잡았다. 바다는 노인에게 생물을 보관한 창고요 냉장고 였다.

 교인들은 식탁에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어쩌고 하면서 손으로 가슴에 성호를 긋고 식사 시작한다. 노인은 그런 건 할 줄 몰랐다. 말 없이 바다에 감사할 줄만 알았다. 바다는 노인에게 물고기와 조개 같은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주님이었다. 나는 노인 곁에서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가장 감사한 마음으로 얻는 직업은 농부나 어부임을 깨달았다.

 헤밍웨이는 '바다와 노인'에서 불굴의 의지를 가진 노인을 그렸지만, 1966년 나는 미조리에서 어쩌면 가장 (神)에 근접한 노인을 만났는지 모른다. 노인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민한 청년의 물음에 대한 대답일 수도 있었다.


 

 

시바의 여인


 '오늘 어장 일 하러가는데, 아저씨 혼자 집에 있지말고  같이 배 타고 가입시더.'

 어느 날 금순이 엄마가 권했다. 당시 미조는 구약에 나오는 시바 왕국 비슷했다.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그 여인 천국 같다. 남정네 모두 멸치잡이 배 타러 나가고, 동네에 ㅜ남자라곤 쪼무래기 아이들 밖에 없다. 그래 그 날 '뗀마'란 걸 타보았는데, 여름이라 여인들만 탄 배에 여인 체취 가득하다. 파도는 넘실넘실 '뗀마'를 흔들고, 여인들은 대학 다닌다는 날 의식해 빈 말에도 까르르 까르르 웃음보를 터트린다. 노 저어보니, 사람 키 두 배 되는 길다란 노는 무겁고 파도는 거세다. 잡자마자 노가 파도에 울렁이다가 뗀마의 움푹한 고리에서 쑥 빠져버린다.

'그 노질 아무나 하나?'

 한 여인이 노 빠진 걸 실패한 쎅스에 비유하자, 모두 배를 잡고 나딩군다. 어장에는 멸치잡이 배들이 뜨있고, 백사장엔 멸치 삶는 가마솥 장작불 붉은 혀 날름거리고, 솥은 뜨거운 김 하늘로 밷고 있다. 여인들이 거치장스런 옷 벗어 런닝 차림 되자, 푸르스럼한 유두가 밑에 비친다. 얼굴은 구리빛이지만 포동포동한 살결은 건강미 넘친다. 삼십 초반 금순이 엄마가 제일 젊다. 팽팽한 자기 몸 보란듯 날 보자 하얀 이 내놓고 웃는다. 강렬한 생명력 발산한다. 서울 아가씨가 피부가 하얀 북구 피요르드 호숫가 여인이라면, 여기 미조 여인은 카스타넷 흔들며 춤추는 짚씨 여인이다.

 작은 배는 수없이 육지와 배 사이 왕복하며 생멸치 날라오고, 여인들은 가마솥에 삶은 멸치 둥글고 납작한 대바구니에 담아 백사장에 깔고, 빈 바구니는 한 지점에다 던진다. 여기저기 수많은 둥글고 납작한 대바구니가 포물선을 그으며 빙글빙글 날라간다. 해변의 원무가 시작된다. 주변은 에메랄드 빛 하늘에 흰구름 뜨있고, 바다엔 배들이 뜨있고, 하얀 포말 일으키며 옥색 파도는 끝없이 달려온다. 가마솥은 하얀 연기 하늘로 내품고, 그 옆엔 구리빛 건강한 여인이 있다. 대지는 빛과 생명 가득하다. 그 모습이 19세기 인상파 화가 피사로나 시슬리의 풍경화 같다.

'아저씨 점심 묵우러 오이소'

 금순이 엄마가 그릇에 밥 담고, 풋고추 된장 챙겨주고, 장작불에 얹어 구운 고등어 챙겨준다.  양념없이 구운 고등어는 제 몸에서 나온 기름 자르르 흐르고 고소하다. 

 식후 쭈꾸미 안주로 막걸리 두어 잔 마시니, 

'아저씨 잠간 저기 가입시더'

금순이 엄마가 날 데리고 '뗀마'로 가더니, 배 밑창에서 팔뚝만한 우럭 건져내 회 뜨고 초장 내놓는다. 옆에 사람 눈치 않보고 신랑 모시듯 한다. 바닷가 여인은 파도처럼 대담하다. 

 

선주(船主)집 잔치


 손바닥만한 섬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대학 다니는 총각이 미조에 있다는 소문 알려져, 어느 날 옆 동네 환갑잔치 초대장이 날라왔다. 배를 여나믄 척이나 가진 부자집이라 했다. 송정 방풍림 뒤 그 집은 소슬대문에 한문으로 입춘대길 먹글씨 크게 써붙혀놓았고, 잘 먹여 체격 당당한 황구는 사람 보고 꼬리부터 친다. 동네 사람들 다 모인듯 했다. 가마솥 탕수국 냄새 진동하는 속에, 뒤집어놓은 솥뚜껑에 파전과 생선 굽는 사람, 유과 튀기는 사람, 시금치 고사리 다듬는 사람, 등에 애기 업은 소녀, 저고리 고름 풀고 애기 젖 먹이는 여인, 뛰어다니며 뭘 얻어먹는 아이들 모습이 한 폭 풍속화 같다. 남정네는 장작 패고, 군불 지피고, 노인네는 담뱃대 입에 물고 대청마루에 앉아있다. 누구네 파도에 떠내려간 어장 그물 찾았는가, 누구네 누렁호박 언제 딸 것인가 한담 나눈다. 풍채는 턱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왔고, 삼베옷 주머니에 풍년초 봉지 들어있고, 가랑이 넓직한 베잠방이 사이로 칡뿌리 같이 시커먼 다리 보인다. 선주는 내가 보기엔 무늬와 색상 촌스러운 양복 입었다. 그러나 대청에 넥타이 메고 앉은 모습 당당하다. 

'서울서 공부한다는 그 총각인가?'

'이쪽으로 오이소.'

 내가 나타나자 노인들이 눈치 하나 빠르다. 모두 진사시 합격한 도령 대하듯 자리 비켜주며 교자상 선주 앞자리에 앉힌다. 상 위에 밤, 대추, 곶감, 강정, 약과, 잡채, 전골, 신선로, 탕수국, 실고추 얹은 도미찜 놓여있다. 내가 왜 이런 귀빈 대접 받는가, 그 까닭 나중에 알았다. 부자집 만량판 수연(壽宴)의 백미는 헌수다. 환갑 맞은 부모님께 잔 올리는 헌수(獻壽)에서 술잔 들고 나온 처녀 원피스 가슴팍에 숙대 뺏지 달려있다. 숙대라면 알만했다. 숙대는 안암골 축제 단골 파트너다. K대 응원가에 '이대생은 우리 것, 숙대생도 양보못한다'는 구절 있다. 그가 날 초대한 것이다. 그는 마치 유럽 장원의 공주 같았다. 얼굴 해맑은 도시풍 처녀다. 외동딸이라 했다. 

 선주는 잔을 비우자, 그 잔을 내게 돌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고명딸이 초청한 손님이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동네 유지들 놀라버렸다. 그런데 이때 마신 술이 내 평생 마신 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술이다. 정성이 지극하면 도를 이룬다고 한다. 이 집 안주인이 목욕재계하고 담근 술이라 한다. 제조법이 밖에 나가지 않도록 며느리한테만 비전하는 술이라 했다. 재료는 수수라는데, 색은 거무티티했지만, 맛이 그렇게 달콤하고 시원할 수 없다. 찰랑찰랑 대접 가득 채운 술이 단숨에 목으로 넘어간다. 세상에 이럴 수 없다. 그런 명주가 그 외진 바닷가에 있을 줄이야. 소동파 말대로 '인생도처유청산(人生到處有靑山)' 이다.


 그날 밤 걸어서 집에 왔을 때는 자정이 좀 지났다. 달빛은 야트막한 돌담 위에 비치고, '망운산'호 등불은 물에 어리고, 등대불은 일 이초 간격으로 바다 위를 지나간다. 금순이는 잠든 모양이다. 달빛 환한 무화과 나무 밑에 목욕하는 사람이 있다. 항상 허룸한 옷으로 가려져 있던 시골 여인 몸매기 그렇게 탄력있을 줄 몰랐다. 뒤챌 때 탄력있는 가슴의 융기와 젖은 겨드랑이가 보인다. 철썩철썩 물 끼얹는 소리 자극적이다. 나는 그가 목욕 끝내고 다리 올려 팬티 입고, 치마 걸치고, 젖은 머리 만지며 방으로 돌아가는 전과정 다 보았다. 모두 잠든 밤에 일부러 날 보라고 저러는 것일까. 하기사 백석의 시를 보면,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 매어 죽은 밤도, 이런 묵은 초가지붕 위 박이 달같이 하얗게 빛나는 밤' 이라고 했다. 얼마 후 내가 목이 말라 부억에 들어갔을 때다. 

'물 마시려고요?'

여인이 부억에 따라 들어온다. 컴컴한 부얶에 여인의 몸 냄새 가득찬다. 쌔근쌔근 내뿜는 숨결 들린다. 마당의 무화과나무는 바람에 몸을 흔들고 있다.

 <면도날>이란 사메셋 모음의 소설이 있다. 주인공 래리는 참전 중 자신을 돕기 위해 전우가 총상으로 죽는 장면을 목격한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도 쌩쌩하던 사람이 죽은 모습으로 누워있는 것을 보자, 인생이란 대체 무엇인가? 산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삶이란 눈먼 운명의 신들이 만들어 낸 비극적 실수에 불과한 것인가 하는 존재의 근원적 물음에 직면한다. 그래 광산노동자, 생선장수 같은 불루칼라 속으로 들어가 일도 해보고, 인도의 고산지대를 방랑하기도 한다. 그러다 라인강을 도보여행 하면서 어느 농가 건초더미 위에서 잠을 자다가, 자기보다 연상인 여인이 입술로 자기 입에 키스하고, 팔로 목을 휘감고, '조용히 해요' 숨가쁘게 속삭이는 경험도 한다. 그때 래리는 겨우 스물 셋 이어서, 여자의 비위를 상하게하고 싶지 않아, 해주기 바라는 행동을 해주었다고 한다. 나 역시 막 제대한 스물 셋이다. 여자가 원하는 행동 해줄 나이다. 뜨거운 작은 입술에서 마그리트 꽃향기 같은 게 나던 기억 난다. 꽃은 나비 기다리고, 나비는 꽃 찾는다. 그게 자연의 순리다. 살이 닿았던 여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는 다르다. 남녀는 별처럼 먼 존재지만, 한번 닿으면 하나가 된다. 그가 나보다 열 살 연상이지만 그건 문제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럴려고 내가 남해 간 건 아니다.

 키엘케골은 이렇게 말했다. 

'결혼을 해보라. 그대는 그것을 후회할 것이다. 결혼 하지않고 있어보라. 역시 그대는 후회 하리라. 결혼을 해도 하지않아도, 그 어느 편이던 그대는 후회할 것이다. 연애를 해보라. 그대는 후회할 것이다. 연애하지 말아보라. 역시 그대는 후회 하리라. 연애 해도 않해도, 그 어느 쪽이던 그대는 후회할 것이다.'

키엘케골 말이 옳다. 얼마 후 나는 금순이한테 노트와 학용품 몇가지 사준 후 미조항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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