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첫사랑

김현거사 2021. 6. 28. 12:11

첫사랑

첫사랑이란 무엇일까? 봄 언덕을 스쳐간 한줄기 바람이었을까? 가을 강에 비치던 한줄기 달빛이었을까? 사람들은 흔히 진주(晉州)를 아름다운 고장이라고 말한다. 남강이 아름답고 촉석루가 아름답다고 한다. 그 아름다운 전원도시에서 성장한 한 소년의 첫사랑을 여기 소개한다. 

소년은 고등학교 일 학년 때 소녀를 만났다. 초등학교 졸업한 지 4년 만의 동창회에서다. 피차 열일곱 살이었다. 동창 소녀들은 젖가슴이 작은 풋복숭아처럼  불룩해지는 참이었고, 여성 특유의 꽃봉오리 같은 몸매가 나타나고 있었다. 이성에 대한 미묘한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학생을 곁눈질하면서 공연히 얼굴 붉히거나 혼자 웃기도 했다. 소년들은 줄리엣을 사랑한 열일곱 살 로미오 같은 때다. 간혹 어른스럽게 보이려고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코밑수염이 나기 시작했고, 교복은 어깨에 심을 넣었고, 모자챙은 손때 묻어 반질반질했다. 번데기가 나비로 우화 되는 바로 그런 시기였다.

여학생들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존재는 운동 잘하던 정란이와 전자로, 정란이는 조숙하여 벌써 처녀티가 났고, 전자는 누군가와 밤에 만난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러나 내 눈은 한구석에 조용히 앉아있던 한 소녀에게 못박혀버리고 말았다. 그는 도브의 샘가에 핀 한 떨기 수선화 같았다. 그는 투루게네프의 '첫사랑'이나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같았다. 곁의 소녀들과 전혀 다른 기품이 있어 명작 속 소녀 같았다. 그의 눈은 고요한 알프스 호수 같고, 머리칼은 들국화 핀 강언덕을 달려오던 제니 같았다. 아마 이때 큐피드가 나의 심장을 화살로 명중시켰을 것이다. 나는 살 맞은 표범처럼 갑자기 수십만 볼트의 엄청난 전류가 내 몸에 짜릿짜릿하게 흘러가는 감을 느꼈다. 처음 첫사랑을 만난 그 짜릿하고 감미로운 충격이었다. 

그날 나는 다른 건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동창 중에 누가 지명을 받고 교단에 올라가 노래를 불렀고, 친구들끼리 어떤 말이 오갔는지, 어떻게 동창회가 끝났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지나이다'를 사모한 '페트로비치'가 되었고, '샤롯테'를 사랑한 젊은 ‘베르테르’가 되었다. 내 신경이란 신경은 오직 혜정이에게만 집중되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혜정이의 동작 하나하나는 내 마음을 민감한 악기의 현처럼 바르르 떨리게 했다. 나는 극도로 흥분하여 더 이상 교실에 있을 수 없었다. 밖에 나가  감나무에 기대어 쿵쾅거리는 심장의 고동소리를 달랬다. 그러다 언제 동창회가 끝났는지 모른다.  먼발치에서 꿈결처럼 혜정이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날 밤부터 나는 혜정이네 집 근처로 날라간 한 마리 나이팅게일 새가 되었다. 떨리는 음성으로 세레나데를 부르기 시작했다. 첫 곡은 도입부가 저음의 바리톤으로 시작되는 '불 밝던 창'이라는 노래다. '불 밝던 창에 어둠 가득 찼네. 내 사랑 넨나 병든 그때부터, 그의 언니 울며 내게 전한 말은, 내 넨나 죽어 땅에 묻힌 것...' 두 번째 곡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Love me tender'다. ‘당신을 나의 것이라고 말해줘요. 부드럽게 날 사랑해줘요’. 나는 지금도 진주 농대 학장 관사 담 넘으로 불렀던 그 두 곡을 원어로 부를 수 있다. 진주의 어느 소녀도 혜정이처럼 밤마다 그렇게 많은 세레나데를 들으면서 성장한 소녀는 없을 것이다.

혜정이가 살던 집 울타리엔 봄에 하얀 탱자꽃이 피고, 가을엔 노란 탱자가 열렸다. 우물이 있었다. 달밤의 우물가 소녀는 얼마나 아름답던가. 나는 혜정이를 생각하며 망경산 정상 바위에 '크리스티나 로젯티'의 시를 새겨놓았다. 'When I'm dead my Dearest, sing no sad song for me(내 죽거든 임이여 슬픈 노래는 부르지 마오). Plant thou no roses at my head, Nor shady cypress tree(장미도 심지말고, 그늘지는 사이프러스 나무도 심지 마오). 내가 주약동 보리밭에서 들려오던 뻐꾸기 소릴 들으면서 혼자서 손에 피멍이 들어가며 못으로 새긴 그 바위는 이제 없어져버렸다. 사람들이 봉수대를 세우면서 바위를 폭파해버렸기 때문이다.  

사랑의 감정이 싹틀 때 진주는 못견디도록 아름다운 도시다. 봄철 신안동 들판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 '너우니' 버들숲에 은어가 힘차게 꼬리 치며 올라오는 것을 보면, 바람이 당미언덕의 벚꽃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고 가는 것을 보면, 칠암동 대밭에 달빛이 어린 것을 보면, 진주 소년은 어느새 시인이 된다. 촉석공원 벤치에 낙엽이 날아가는 것을 보면서, 뒤벼리 절벽에 황혼이 내리는 것을 보면서, 지드의 '좁은 문'을 읽고 산책 나가서 문에 파란 페인트 칠한 과수원집 소녀가 붉은 바탕에 검은 반점 찍힌 산나리 꽃 옆에 서있는 걸 보면서, 진주 소년은 다정다감한 청년으로 성장한다. 안개 덮인 서장대에서 들려오던 남인수 노래 따라 부르고, 이봉조의 쎅스폰 소리 들으면서 진주 소년은 자란다. 그래서 진주 사람은 거짓말을 업으로 삼는 국회의원조차 감성이 풍부하다. 

당시 혜정이는 어떤 편이냐 하면, 내가 밤마다 자기 집 앞에 와서 세레나데 부른 그 남학생인건 아는 눈치였다. 그를 찬미하는 남학생이 있다는 것은 소녀로선 우쭐한 일이고, 세상 무엇보다 달콤한 비밀이었을 것이다. 한번 얼굴을 보고 싶은 유혹도 있었을 것이다. 등교 때 다리 위에서 살짝 뒤를 돌아보기도 했다. 나는 그 때문에 또 얼마나 실낱같은 용기를 얻고 흥분했던가. 나는 혜정이 친구 영자가 그렇게 부러웠다. 혜정이 옆에 나란히 걸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남녀 학생들이 유등(流燈)을 띄우던 개천예술제 밤 남강변 인파 속을 얼마나 쏘다녔던가. 혹시나 혜정이를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때 나는 어떤 편이냐 하면 가슴이 떡 벌어진 소년장사였다. 나는 초등학교 때 백미터 육상선수였다. 고교 때는 투창, 투 원판, 넓이 띄기, 백 미터 선수였다. 공부도 잘했고 성격도 명랑했다. 쉬는 시간에 교단에 올라가 미치밀러 합창단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The sun shines bright in the old Kentucky home', '켄터키 옛집'이나, 'Way down upon the Swanee river', '스와니 강의 추억'을 원어로 부를 수 있던 사람은 나중에 뉴욕에서 의사를 한 우영이와 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운동이라면 운동, 공부라면 공부, 양수겸장이던 내가 혜정이 앞에만 가면 꼼짝을 못 했다. 나는 짚씨 여인 '에스메랄다'를 사모한 노트르담의 꼽추 콰지모도였고, 두 방망이 치는 가슴을 태우는 젊은 베르테르였고, 가면무도회에서 줄리엩을 만난 몬테규 가의 로미오였다.

그런 속에 나는 혜정이에게 보낼 편지 인용구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던가. 혜정이에게 보낼 그럴듯한 문구를 찾기 위해 나는 달콤한 연애소설은 물론 그 나이에 이해하기 어려운 책도 많이 읽었다.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짝사랑',  헬만헷세의 '페터 카멘친트' '데미안',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전원 교향악',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사머셑모음의 '인간의 굴레' '달과 6펜스', 토마스 하디의 '테스',  에밀리 부론테의 '폭풍의 언덕',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듀마 휴이스의 '춘희', 그 밖에 톨스토이, 토스토에프스키, 괴테, 룻소, 빅톨 유고의 작품을 읽었다.

그 당시 얼마나 많은 책 속의 여인이 혜정이었던가. 혜정이는 매번 '아쌰', '잔느', '줄리엩', '테스', '넨나'로 바뀌었고, 나는 매번 그 상대편 남자였다. 나는 명작 속에서 혜정이를 만났고, 명작 속 사랑의 아픔을 겪었다. 수많은 편지는 만들어졌고, 밤마다 혜정이네 담 너머로 던져졌다. 달을 보고, 구름을 보고, 강을 보고, 산을 보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들은 그 모든 감정이 편지에 담겼다. 어느덧 나는 신체 건강한 소년에서 사랑의 몸살을 앓는 몽상가로 변해갔다. 간혹 편지 대신 담 너머로 꽃이 던져지기도 했다. 그 꽃은 망진산 험한 절벽에서 꺾어온 것이다. 진주의 그 어느 소녀도 사람이 갈 수 없는 그런 위험한 절벽에서 꺾어온 꽃을 그렇게 자주 선물 받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당시 일기장이 지금도 내 서재 안에 있다. 성장하면서 글씨체가 몇번 바뀌고, 새로 배운 영어 단어를 많이 인용한 그 일기장에는 망진산 절벽에다 굴을 파놓고 혜정이와 놀고 싶던 꿈이 적혀있다. 나는 '폭풍의 언덕' 히스크리프처럼, 교수형 당한 에스메랄드를 껴안고 죽은 노트르담의 꼽추 콰지모도처럼 되고 싶었다. 한 소녀가 내 운명을 바꿔놓은 것이다. 아마 내가 혜정이란 소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사대 체육과에 가서 평범한 체육선생이 되었을 것이다. 철학과 같은 델 가고, 나중에 글 쓰는 신문기자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어쨌던 그 일기장은 고장 난 시계처럼 지금도 60년 전 시간에 멈춰 선 채 내 서재에 그대로 있다.  

나는 어떤 면에서 키엘케골의 '유혹자의 일기' 주인공 같았다. 사랑을 관념에서 시작해서 관념으로 끝낸 점에서 그랬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누군가 여학생과 사귀고 있었다. 그러나 학교에서 가장 체격 좋고 용감하던 나는 혜정이한테 말한마듸 건네지 못하고, 손 한번 잡아보지 못했다. 나는 목숨을 걸고 성주의 따님을 보호한 중세의 기사 같았다. 공주에게 목숨을 바칠 수도 있지만 사랑은 고백할 수 없었다. 나에게 그건 불경이었다. 

그러나 모든 턴넬은 끝이 있는 법. 혜정이에 대한 7년의 짝사랑도 끝이 있었다. 그때 나는 항만사령부 229 자동차 대대 운전병이었는데, 어느 날 혜정이 혼처가 정해졌다는 소식을 듣자 부랴부랴 휴가를 얻어 그가 근무하던 문산초등학교로 찾아갔다. 그 당시 대학에서 미식축구 선수를 하다가 친구가 자살하자 군에 입대했던 나는 몸무게 80킬로 백미터 12초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서울운동장 대학교 미식축구 시합에선 발군의 성적이고, 선배들과 종로 3가 음악실에 다녔고, 백운대 단합대회에서 막걸리 한 되를 마시어 '지리산 곰'이란 애칭도 얻었다. 그러다가 친구가 자살하자 동반자살하려고 자원입대했다. 나는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 주둔한 외인부대 같은 곳에 가고 싶었다. 그런 데서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 주인공 뭐르소처럼 자살하고 싶었다. 자동차 대대 유일한 대학생 운전병이던 나는 차에 자살용 실탄을 싣고 다녔고, 외출 나가 서면 하이에리어 부대 근처 사창가 헌병을 구타하여 전 제부 지역 헌병대에 비상이 걸리게 했다.

이 와중에 혜정이의 혼처가 정해졌다는 소릴 듣고 나는 더 이상 가만 있을 수 없었다. 성사되던 실연당하던 그건 내 운명이다. 혜정이를 만나 양단간 결단을 내려야 했다. 혜정이 만나러 갔을 때 모습은 이랬다. 군복 상하의를 풀 먹여 빳빳이 다려 입고, 모자 병장 계급장은 광약으로 빤짝빤작 닦았고, 파리가 낙상할 정도로 군화 매끄럽게 칠했다. 수송병과 빨간 머플러 목에 걸쳤고, 어깨는 떡 벌어졌고, 허리는 잘록했고, 걷어올린 팔뚝은 구릿빛 근육에 덮여 있었다. 내 생전 그렇게 외모에 신경 쓴 일 두 번 다시없다.

문산초등학교 교정엔 운동장 푸라타나스 아래 빨간 고추잠자리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옆에 작난감처럼 작게 느껴지던 아이들 철봉이 있었다. 나는 거기서 하루 종일 화랑담배를 피우며 기다렸다. 이윽고 하학을 알리는 종이 교정에 딸랑딸랑 울리고 재잘거리는 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퇴근하는 혜정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혜정이는 '파계(破戒)'란 영화 속 오도리 햅번 같았다. 수녀처럼 맑고 신성한 모습은 옆의 촌스러운 다른 선생님과 전혀 달랐다. 그때 닦아가서 말을 걸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아이들과 선생들이 옆에 있어 그건 혜정이 품위를 손상시킨다고 생각했다. 그래 코스모스 하늘대는 신작로 길 따라가 칙칙폭폭 매캐한 검은 석탄 연기 품고 들어온 기차에 혜정이와 같이 몸을 실었다. 

차 안은 '오징어 땅콩이요!' '석간신문이요!' 행상들 소리로 요란했고, 사실 이런 데서 기차 통학생은 여학생에게 말을 걸거나 편지를 전달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중인환시 속에서 여선생에게 말을 건네는 건 그의 품위를 해친다고 생각했다. 그래 기차가 주약동 터널 안에 들어갔을 때 어둠 속에서 말을 건네려고 생각했으나, 막상 기차가 턴널 속 어둠 속을 지날 때 나는 일초 이초 시간만 재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기차가 쏜살같이 터널을 지나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차가 진주역에 닿자 나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남자 사회에선 무서운 게 없던 사람이다. 대학 땐 미식축구 선수였고, 입대 후엔 서면 하이 에리어 부대 근처 깡패 군인이다.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남자 사회에서 맹견 같이 사납던 내가, 혜정이 앞에만 가면 작아지는 존재였다. 지극했기에 말 못 한 그것이 나의 비극이었다. 당시 나에게 수소폭탄 같은 어떤 큰 충격 가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면, 그건 어떤 물리적 외부의 힘이 아니라 가냘픈 꽃 같은 혜정이였다. 신(神)은 내 몸 어딘가에 폭발을 일으키는 뇌관을 심어놓았으니, 그 뇌관이 바로 혜정이었다. 

진주역 광장엔 승객 마중 나온 가족들과 여인숙 호객꾼들로 혼잡했다. 거길 지나가면 말 걸기가 더 어려워지는데, 나는 햄릿이었다. '잠시 시간 좀 내주세요.' 그 말 한 마듸 하기가 그땐 그렇게 어려웠다. 그때 신이 내게 기적을 베풀어 주었다. 망설이기만 하는 내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럽던 그때 혜정이는 진작 눈치채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수업 시간 내내 교정에서 자기를 기다리던 나를, 기차 안에서 안절부절못하던 그 군인이 누군지 알았던 것 같다. 고등학생 시절 밤마다 자기 집 밖에서 '불 밝던 창'과 '러브미 텐더'를 부른 초등학교 동창이자 K대생인 걸 알았던 모양이다. 기차에서 내린 혜정이가 개찰구와 반대방향으로 나갔다. 그쪽은 산 쪽이라 다니는 사람  없고, 대신 노란 벼이삭이 늘어진 논길엔 메뚜기만 툭툭 튀는 길이다. 대지엔 감미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산허리에서 황혼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산기슭 외딴집 굴뚝에선 밥 짓는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풍성히 벼가 익어가는 논길을 걸어가는 혜정이 모습은 밀레의 만종 속 그림 같았다. 혜정이는 이제 소녀 시대는 끝난 것 같았다. 학생 시절 순결하던 그 모습보다 숙녀티가 몸에 조금 배여 있었다. 노을이 그 혜정이의 머릿결과 노랗게 익은 벼이삭을 비치고 있었다. 나는 혜정이와 거리를 두고 천천히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때 혜정이가 한 지점에 이르자 다가와 뭔가 말을 해보라고 눈치를 보였다. 가만히 멈추어 서준 것이다. 그 순간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파도처럼 전신에 밀려왔다. 동시에 전혀 예상치 못한 곤란한 반응이 내 몸에 일어났다. 갑자기 발은 허공을 밟은 듯 휘청거렸고, 지남철이 당기는 듯 발은 땅에 못 박혀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몸은 사시나무 떨듯 와들와들 떨렸고, 입은 마르고, 가슴은 쿵당쿵당 뛰었다. 뭔가 혜정이에게 말이라도 던져야겠다는 생각 했지만, 말이 입에서 나오질 않았다. 마른침을 삼켜도 목젖이 말라 음성이 나오질 않았다. 내 생전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나는 쿵쾅거리는 심장의 고동을 혜정이가 들을까 오히려 그것만 걱정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혜정이를 만나기 전에 많은 준비를 했다. 로미오가 줄리엣에게 한 말, 베르테르가 롯데에게 한 말, 제롬이 마들렌에게 한 말을 미리 복습해두었다.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나는 벙어리처럼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러는 새 소녀는 가버리고 말았다. 혜정이는 천천히 발걸음 떼더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가 먼 동네 불빛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생각해보니, 그 가을 어둠 속에서 밀레의 그림처럼 고개를 숙이고 혜정이가 서있던 그 시간이 몇 분인지 몇 초인지 모르겠다. 내 인생에서 가장 황홀하고 아름답던 순간은 그렇게 지나갔다. 곧 주변은 어둠에 덮이고, 먼 동네 등불이 별처럼 깜박이기 시작했다. '모든 게 끝났다'. 나는 롯데에게 절교 선언당한 베르테르처럼 절망한채, 장승처럼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서있었다. 이렇게 첫사랑은 끝났고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혜정이는 먼 유성에서 날아온 요정이었을까. 한 여름밤 꿈이었을까. 그러나 손자까지 둔 이 나이에도, 내 가슴속에 황혼의 들판과, 어둠 속에 깜빡이던 마을의 등불과, 고개 숙이고 서있던 한 소녀의 모습이 천 권의 서사시보다 황홀하게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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