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림청 짜투리땅 경매 참가기

김현거사 2016. 1. 24. 17:41

 

 

산림청 짜투리땅 경매 참가기

 

 거제도에 '공곶이'란 곳 있다. 일운면 바닷가 4만 평에 노부부가 수선화 천국 만들어 놓은 곳이다. 그 장관을  보면, 위즈위스의 시 '수선화' 생각난다. 외도는 섬 전체가 동백, 대나무, 튤립 천국이다. 예이츠가 노래한 '이니스프리' 섬 같다.

 나는 20년 전에 땅 보러 다닌 일 있다. 신문에 산림청 짜투리 땅 공매 공고가 났었다. 춘천 홍천 삼척 강릉 함양 등 전국 26개 국유림관리소 임야 사진과 지번, 입찰 예정일, 전화번호 등이 실렸다. 그래 그 광고 스크랩 해놓고 열심히 연구했다.

 직장 다닐 때는 사람 속에 살았다. 사람 능력과 품격을 따졌다. 그러나 은퇴 후는 다르다. 나무의 품격과 꽃 향기를 따진다. 나르던 새도 해 지면 둥지로 돌아간다. 관심이 자연으로 돌아간 것이다.

  처음 관심 둔 곳은 삼척 궁촌리와 매원리란 곳 이다. 궁촌리는 임야 2천 2백 87 평으로, 예정가격 125만원, 평당 가 547원 이다. 공짜면 소도 잡아먹는데, 평 당 천 원 않되니, 공짜나 다름 없다.

 큰 돈이면 엄두도 못냈을 것이다. 그러나 궁촌리, 매원리 두 땅 열 필지 1만 8천 평이 계산기 두드리니 천만 원 쯤 된다. 가만 있자, 롯데 신격호 회장은 동경 교외 저습지 샀다가 횡재했고, 증권계 큰 손 '광화문 곰'은 서울 외곽 싼 땅 확보해서 횡재했지 않던가. 그까짓 천 원 미만 땅 못사면 바보다.

 지도 보니 궁촌리 매원리는 삼척과 울진 사이고, 해수욕장 표시한 비치파라솔이 맹방, 궁촌, 용화, 양정에 있다. 해수욕장 뿐인가. 삼척에 죽서루 촛대바위 있고, 울진에 불영계곡 덕구온천 있다.

  사실 궁촌리(宮村里)란 이름도 맘에 들었다. 궁과 관련있단 이야기다. 실제 이성계 선조 목조 능과 공양왕릉 근처에 있다. 매원리(梅院里)란 이름도 맘에 든다. 매화 피는 동네란 뜻이다. 

 강남 50 평 아파트 산다는 소리에 기 죽을 필요 없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 짓고 살면 된다. 상상만 해도 호연지기 솟았다.

 열 필지 중 어디 한 곳에 샘물이나 퐁퐁 솟아봐라. 앞으론 물이 돈 이다. 물이 석유처럼 귀한 시대 온다. 생수는 지금도 병에 넣고 판다.

 서울은 팔당호 물 쓰지만, 가축 분뇨, 공장 폐수로 오염된 물이다. 호수 밑바닥에 침전물 켜켜이 쌓여있다. 중국에서 황사 날라온다. 스모그 날라온다. 빗물도 의심스럽다. 빗물 먹고 자란 채소도 께름직하다. 서울 사람은 어항 속 금붕어 같다. 있거나 없거나 공히 신선한 공기 아쉬워, 금붕어처럼 하늘 보고 입 뻐꿈뻐꿈 벌리고 산다.

 가령 생수 나오는 땅 확보해 1천 가구 아파트에 공급해보라. 한 집 만원만 받아도 한 달 천만원 들어온다. 차 하나, 기사 하나, 휘발유, 총 지출은 5백 만원이다. 쉽게 말해서 월 수입 5백 된다.

 아쉽게 물은 없다 치자. 임야니 소나무는 많겠지. 거기 송이(松耳) 난다. 장뇌 키울 수 있다. 송이 안주 장뇌 술 먹을 팔자 된다. 초지(草地)에 말 한 필 키울 수도 있다. 제주도 조랑말이라도 좋다. 승마 배운다고 보증금 2백, 월 회비 50 만원 지출할 필요 없다. 아침에 목장 길 달려보라. 승마가 얼마나 몸에 좋은가. 허리 운동 되고, 폐활량 증가한다.

 온갖 공상이 꼬리를 문다.

 사실 땅이사 가만히 쥐고만 있으면, 썩기를 하나, 도둑이 들어와서 훔쳐가기를 하나, 공산품처럼 재고 걱정을 하나,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다.

 양양군 강현면 물치리 소재 가옥도 경매 나왔다. 대지 53 평, 건평 10 평 집이, 천 5백 만원 이다. 양양은 한계령 밑 이고, 활어 펄펄 뛰는 대포항 옆 이다. 천 5백에 별장 하나 얻는다. 

 그 밖에 서울 가까운 강화도, 진주 가까운 함양을 입맛 다시며 검토했지만, 결국 춘천을 낙점했다. 

 춘천, 홍천은 냇 천(川) 자 든 곳이다. 물 많은 곳이다. 기암절벽 아기자기한 팔봉리, 강 낚시 명소 모곡리 검토하다가, 춘천을 택했다. 거긴 서울 가까워 나중에 물장사 편하다.

 

 '어이! 오사장 시험 잘 쳤제?'

 오사장은 60 억 넘는 공장을 운영하다가, IMF로 공장과 가락동 60 평 올림픽 아파트 경매로 날린 후, 경기대서 공인중계사 과정 거치고 중계사 시험 쳤다.

 '까짓거 붙겠지.'

 '당연히 붙겠지. 그런데 부동산이 자격증만 있음 되나? 현장 감각 공부차, 오늘 나하고 실습 나가자.'

 나도 회사 은퇴한 백수다.

'백수가 뭔 돈으로?'

'이 사람아 IMF로 나라가 어려워 땅까지 판다는데, 백수라고 가만 있을 수 있나?'

 이렇게 둘이 춘천 후평동 국유림관리사무소 찾아갔다.

 건물은 오래되어 절간처럼 퇴락했고, 그늘에 세운 공무원 고물 자가용만 호강하고 있다. 사람들이 산에 나무 심고 물 주다가 도를 통했는지, 옷차림 수수하다. 

 관리과서 짜투리 땅 경매 건으로 왔다니, '이리 오세요.' 콧날 오뚝한 아가씨가 임야도(林野圖)와 등고선 표시된 위치도(位置圖) 든 책 3 권 준다. 매각 조서 보니, 소재지, 지번, 지목(임야), 지적(평방미터), 예정가, 교통편 적혀있다.

 내가 관심 둔 건 춘천시 사북면 가일리 산 **번지. 두 필지 천 2백 평이 예정가 2백 50 만원 이다.

 임야도, 위치도 부탁하니, 아가씨가 싹싹하게 복사해준다.

 소양호 밑에서 막국수 먹고 덕우고개 넘어가니, 비포장 길 험하다. 차 하나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데, 돌이 드르륵 차체를 긁는다. 

'부동산은 이렇게 비포장일 때 사야 값이 싸다.'

그가 알려준다.

 고개 중턱에 사람 보이지 않고, 프라이드 아토스 같은 소형차만 보인다.

'산나물 캐는 사람도 차 몰고 나오니, 당연히 우리나라에  IMF 오지.'

 나도 한마듸 했다.

 고개 위에서 보니, 길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아득한데, 낙엽 썩은 부엽토가 시커멓다. 숲에 원추리, 참나물, 곰취, 다래순 보인다. 야산에선 볼 수 없던 것 이다.

'와! 산나물만 뜯어도 땅 값 뽑것다.'

'저 곰취 좀 봐라. 곰취 장조림 있으면 반찬 걱정 없다.'

 호수 보이는 길목에 집이 있다. 생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황토집이 어설퍼 멋 있다. 프라스틱 통에 어디서 끌어온 물 철철 넘치고 있다. 물소리 힘 있다. 

'잠간 숨 돌리고 가자.'

우리가 차를 세우자,

'어디서 왔소?'

드르륵 방문 열리더니 구리빛 얼굴 노인이 내다본다.

'어르신 참 좋은 동네 사십니다. 집도 멋있고...'

'멋 있기는...내 손으로 지었소.'

'황토방은 원적외선 많이 나오겠습니다.'

'겨울에 군불 넣고 지지면 삭신이 잘잘 녹지.'

 툇마루 나무 결에서 진한 송진냄새 난다.

'물맛 좋지요?'

'물맛이야 천하 제일이지. 한 바가지 마셔보오.'

 한모금 마시니 오장육부가 다 시원하다. 집들은 드문드문 떨어져 있다. 물은 콸콸 바위 옆에 흘러간다. 바위엔 이끼 푸르다. 호수엔 물새가 날고, 물 위엔 빈 배 하나 고요히 흔들리고 있다. 좌대 있는걸로 보아 쏘가리나 붕어 잡히는 모양이다. 파도는 발 밑에 밀려와서 찰랑거리고, 산나리꽃 아름답다. 이 동네는 육지인데 호수 속 섬 같다. 건너편 긴 허리 물에 담근 신록의 능선도 아름답다. 거울같은 물 속에 아롱아롱 비치고 있다.

'허! 사람 잡는군! 신선 노름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겠다.'

내가 감탄하자,

'오늘 그랜져 기름 값은 제대로 뽑는군.'

그는 현실적인 대답한다.

땅은 두 필지인데, 윗쪽에 폐가가 있다. 

'수자원보호지역이면 골치 아픈데, 저런 게 있으면, 용도지역이 뭔진 몰라도 증개축 가능할거야. '

'폐가 리모델링 하면 건축비 않들고..., 그 아래 5백 평은 몽땅 복숭아 나무 심으면 좋것다.'

 무릉도원 같다. 채마밭에 약초 심고, 울타리에 줄장미 심을 일만 남았다.  

 나는 전에 퇴촌에 있는 모 제약회사 회장 별장에 간 적 있다. 발 밑에 잔잔히 밀려오는 물결이 인상적 이었다. 능내 정주영씨 별장도 가 본 적 있다. 팔당호에 드리운 소나무가 인상적 이었다.

 그러나 여긴 더 좋다. 호수 옆이고, 산나물 많고, 청정옥수 흘러가는 냇물 있다.

 인체는 수분이 7-80% 차지한다. 재벌이 상 다리 부러지게 진수성찬 차려봐야 별거 아니다. 저 청정옥수 한 잔이면 된다. 산나물 한 접시면 된다. 돈에 대한 욕심만 버리면 말 이다. 

'그대는 아는가 저 남쪽 나라를 ...’ 카프리 섬 읊은 괴테 심정이 이랬을까. 감동이 전율처럼 휘몰아친다.

 

 역시 부동산은 발로 뛰어야 한다. 그동안 나는 이런 곳 찾기 위해 얼마나 헤맸던가. 전원주택 기사 연재한 중앙일보 모 기자 따라 답사도 가봤고, 양수리 문호리 전원주택도 꽤 돌아댕겼다.

그 십여년 결실을 본 느낌이다. 이젠 더 이상 딴 곳 가볼 필요 없다. 

 두근거리는 가슴 진정시키며 '저 폐가나 한번 둘러보자.'고 가보니 인기척 없다. 동네 청년 만나, '여기 붕어 좀 잡힙니까?' 물어보니, '월척 붕어 나옵니다.'하고 대답한다.

 '그렇다면야...미리 붕어찜 기술부터 배워야지'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부안서 먹어본 붕어찜은 얼마나 황홀했던가.

 경매 건은 일부러 묻지도 않았다.

'산나물 많습디다. 손바닥만한 곰취도 보이고...'

'산이 온통 나물 천지라요. 잎 넓직하고 큰 거 곰취 아니고, 산에 크는 우엉이래요.' 

한다. '우엉이 야생이요? 뿌리 되게 향기롭겠다,' 고 하자, '반찬 하면 좋아요.' 한다.

 이제 남은 일은 영국 시인 예이츠처럼 꿀벌 한 통 들고 여기 이사올 일 뿐이다.

'나 이제 일어나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나무 가지 얽고, 진흙 바른 작은 집 지어, 아홉 이랑 콩밭 갈며, 꿀벌도 치며, 벌 소리 잉잉대는 숲 속에 홀로 살으리.'

   

 마음은 이미 굳혔지만, 온김에 몇군데 더 들렸다. 사북면 오탄리, 남산면 광탄리, 남산면 행촌리다.

 그런데 되는 집은 가지나무에 수박 열린다. 행촌리도 좋다.

 도면 보니, 사방이 험한 등고선 이다. 지방도에선 뵈질 않던데, 실개천 따라 경운기 한 대 겨우 다닐 길 가보니, 넓은 땅 나온다. 별천지다.

 이런 곳을 연화만개형(蓮花滿開形)이라 부른다. 연꽃이 만개한듯 산이 사방 둘러싸고 있다. 들어오는 입구 좁은 것도 맘에 든다. 수구(水口)가 좁게 단단히 맺어진 것을 풍수에서 귀히 여긴다. 물이 재물 의미하여, 쉽게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세는 서북방에서 동남간으로 흘렀다. 북쪽 현무(玄武)가 남쪽 주작(朱雀) 보다 높다. 이치에 맞다.

 거기다가 동네 이름이 행촌(杏村) 아닌가. 행(杏)은 살구나무 뜻한다. 행인(杏仁)은 변비와 기침에 쓰는 약이다. 척 보니 사람 장수할 땅 이요, 복지(福地)다.

 여기 한 필지 천 4백 평이 2백 4십 만원인데, 일 되느라 그랬던 것 같다. 여든 넘은 동네 영감 한 분 나타난다.

'어르신 바나나 하나 드십시오.'

가지고 간 바나나 권했더니, '산 보러 왔소?' 먼저 묻는다. 

'예' 대답하니, '어제 춘천 사람이 산소 쓸려고 보고갔는데, 손바닥만한 산은 뭣하려고 사? 논이나 사지. 팔려고 내놓은 거 있는데....'한다. 

 평 당 얼마냐 물으니 5백원 이란다. 이 무슨 새가 뒤집어 날라가는 소리냐? 정신이 뻔쩍 난다. 임야가 평당 천 7백원인데 논이 5백원 이라니, 귀가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논 한 평이 5백원이라고요?' 재차 물어도 그렇단다.

'전부 몇 마지기 되는데요?',

'저기서 저기까지 한 스므 마지기 되나?'

 손으로 가르키는데, 한없이 넓다. 논두렁만 스므 개 넘는다.

 갑자기 가슴이 뛰기시작했다. 평당 5백 원이면, 한마지기가 10 만원이다. 스므 마지기 4천 평이 4백 만원이다. 

'메뚜기 미꾸라지도 있습니까?'묻자,

'많지.' 자신있게 대답한다. 농약 적게 쓴다는 이야기다. 

'집도 지을 수 있나요?'

'저기 저 위가 전에 집터 자리여.'

'논은 왜 파는데요?'

'자식들 다 춘천 나가고, 내가 농사하긴 스므 마지기 벅차.' 

 파는 건 확실하다.

'토지대장 볼 수 있습니까?'

 이렇게해서 노인 집에서 칡차 마시며 토지 대장 확인했다.

'어르신 그럼 5월 4일 와서 계약 하겠습니다.'

그날 오전이 춘천국유림사업소 경매일 이다.

 허허허! 일타이매(一打二枚), 한번 때리자 두 장이 엎어진다.

 

'김교수! 논은 사서 뭐할려고?'

'연꽃 심고, 논고동과 미꾸라지 키울라고.'

 주렴계의 '애련설(愛蓮說)' 생각났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자라되 더러움에 물들지않고, 맑은 물결에 씻었으되 요염하지 않고,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겉은 딱딱하되 속이 빈 것이, 군자가 겉 행실은 근엄하지만, 속마음은 사리에 통달하고 빈 것 같다.'

 이런 데서 연꽃 구경 하고, 추어탕 끓이며 살면 된다. 대붕의 뜻을 연작이 어이 알리. 불가에선 연을 정토(淨土)의 꽃으로 본다. 당 현종은 태액지(太液池)에 핀 연꽃을 양귀비 자태로 보았다.

'부동산 하는 정사장 있잖아? 그가 창녕에 연꽃 심은 동네가 있는데, 수입이 벼 농사보다 낫다더라. 쌀 농사는 매년 수고 하지만, 연 뿌리는 한번만 심으면 만사 오케이. 연은 뿌리, 열매, 잎, 다 쓴다더라.'

'잎은 어디 쓰는데?'

'연잎차 만든다.'

'논에 쌀은 몇 가마 나올까?'

'한 마지기 두 가마 치면, 4십 가마지. 농협 대리농작 제도 이용하면 반은 남는다. 우리 친구 서너명 명단 만들어라. 가을마다 추수 쌀 가마니로 보내께.' 

이렇게 인심까지 써가며, 그날 서울로 돌아왔다.

 그 후 나는 며칠 제 정신이 없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가일리, 행촌리 이야기만 했다. 봄에 나물 뜯으러 산엘 갈까, 알 밴 붕어 잡으러 호수엘 갈까? 산과 호수, 양수겸장(兩手兼將) 이다. 다도(茶道) 하는 사람은 연잎에 고인 이슬 모아 차를 다린다. 향기 얻으려고 밤엔 연꽃 속에 차 봉지 넣어 둔다. 호수에 띄울 모터보트 돈 얼마나 들까? 거기 미들홀 하나 만들면, 골프 예약 못해 설설 기는 친구들 기절초풍 할꺼다. 하루종일 나는 행복했다. 꿈을 꾸어도 그 땅에서 놀았다. 'This Land is mine. God gave this Land to me.' 앤디윌리암스 노래가 귀 간질인다. 

 

 그리고 입찰 날 출동했다. 인감증명 떼고 주민등록 지참했다. 나는 가일리 예정가 두 배인 6백 만원, 둘러리 오사장은 3백 썼다. 한 사람 응찰하면 입찰 유찰 된다 한다. 입찰 보증금 5퍼센트 30 만원과 15 만원 예탁했다. 가일리 입찰 등록자는 열 명 밖에 안되지만, 털도 않뜯고 먹기 미안해 인심 좀 쓴 것이다.

 입찰장은 한 사람씩 호명해서 당사자만 들어가게 했다. 노타이 차림 산림청 공무원이 주의사항 알린다.

'입찰 물건 넘버를 분명히 써야 합니다. 넘버 틀리면 무효 입니다. 금액은 입찰 예정가 이상 써야 합니다. 그 이하는 자격 미달 입니다. 금액은 예치한 보증금 한도 내에서 써야 합니다. 한도 넘으면 무효 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입찰 시작 합니다.'

 이리 시작된 입찰이 그리 짜릿한 건 줄 거기서 처음 알았다. 스릴과 사스펜스 그 자체다. 

 옆에 인주통 있었다. 서류 기재하고 인감도장 찍고, 봉투에 서류 넣고 봉투 위에 인감 찍었다.

 입찰 끝나자, 직원이 봉투 거두더니 넘버 별로 나눠놓는다. 그러자 전의 그 산림청 아가씨가 가위로 봉투 짤라 남자 직원에게 넘긴다. 직원은 금액을 전부 기재한 다음, 껀 별로 최고액 적은 사람 호명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을 '고스톱'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살찐 암소 넘보는 호랑이가 그럴까. 모두 침을 삼킨다.

그 속에 고요히 낙찰자 이름 불리워졌다.

'입찰 넘버 16번 사북면 가일리 산 **번지 김**씨에게 낙찰 됐습니다. 입찰금액은 2천 7백 만원 입니다.'

 그 소리 듣고 나는 그만 기겁을 해버렸다. 현장에 촌 사람 몇 있었는데, 누가 2천 7백이란 거금을 썼는가.

 갑자기 눈앞이 하얘지면서 현기증 난다. 천길만길 낭떠러지로 툭 떨어지는 기분 이다. 믿던 도끼에 발등 찍힌 셈 이다. 촌이라고 얕잡아본게 실수였다. 조금만 더 쓸 걸. 후회해도 소용없다. 그러나 낙장불입(落張不入), 이미 패는 그 쪽 패에 찍 눌린 후다.  

 그 때 한 청년이 벌떡 일어나더니,'이장님! 우리가 낙찰 받았습니다.' 외친다. 그러자 밭 일 하다 온듯한 시골 아낙, 갓 쓴 호호야 시골 노인, 두 사람이 환호성 지르며 일어선다. 그들도 우리처럼 단독 입찰 피하려고 둘러리 데려온 것이다.

  그 순간 파도 잔잔히 밀려오던 '이니스프리'섬은 떠났다. 복숭아꽃 만발한 무릉도원도, 월척 붕어찜도 전부 만사휴이(萬事休矣) 였다. 내가 놓친 땅은 북한강 푸른 물에 영원히 잠겨버렸다. 

 청년에게 물어보니, 그들은 새벽에 이장 배 타고 호수 건너왔다 한다. 폐가는 원래 이장이 살던 집이고, 지상권도 이장 것이라 한다. 

 '김교수. 이왕지사 이리 된 거. 빨리 행촌리나 가보자.'

오사장 충고에 둘이 급히 경매실에서 나왔을 때다. 주차장에 행촌리 노인이 보인다. 

'아니 어르신 여긴 웬 일 이십니까?' 

그러자 노인도 좀 어색한 모양이다. 잠시 뜸 들이더니,'문중에서 행촌리 임야 입찰 해보래서 왔소.' 한다. 며칠 전 손바닥만한 그 땅 사서 뭐할려냐고 묻던게 누구냐? 백발 영감이 연막 작전 편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자.

'영감님! 행촌리 그 논은 팔거지요?'

그게 마지막 희망이다. 그래 물어보니 '팔지.'한다. 옳치 살았다.

그러나 혹시가 사람 죽인다. '한 평에 5백 원 맞지요?' 재차 확인하니, '누가 5백 원이라 했소? 5만 원이라 했지.' 한다.

 이건 또 무슨 도깨비 조화인가. 갑자기 값이 백 배 오른다. 영감은 오히려 내가 못할 말 한 양 빠안히 날 쳐다본다. 영감은 그래놓고 어떤 오십대가 운전석에 앉은 코란도 찦차 타더니 시야에서 사라진다. 괘씸하기 보담 웃음부터 나온다. 백발이 우리한테 흔들고 광박 피박 다 씌운 것 이다.

 이렇게 일거에 두 토끼 다 놓쳐버렸다. 그 바람에 논고동 삶을 일도, 추어탕 끓일 일도, 연잎에 고인 이슬로 차 끓일 일도 일장춘몽. 추수해서 친구에게 가마니 쌀 보낼 일도 물론 공수표 되고말았다.

 코란도 사라지자 휘나레는 오사장이 장식한다.

 '촌 닭이 서울 닭 눈깔 빼먹는다더니...기분 찝찝하다. 우리 어디서 막걸리나 한 잔 하자. 내가 위로주 살께,'

그래 둘은 구곡폭포 근처 한 음식점에 가서 닭 백숙을 뜯다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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