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첫사랑

김현거사 2014. 6. 11. 08:26

    첫사랑


   첫사랑이란 무엇일까? 봄 언덕을 스쳐간 한줄기 훈풍이었을까? 가을 강에 비친 한가닥 달빛이었을까?

 사람들은 흔히 진주(晉州)를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한다. 남강이 아름답고 촉석루가 아름답다고 한다. 그 아름다운 전원도시 진주에서 성장한 한 소년이 어떤 소녀를 사랑한 이야기를 여기 소개한다.

 

 그 소녀 이름은 김혜정이다. 

 소년은 고등학교 일학년 때 천전초등학교 교정에서 열린 동창회에서 처음 그를 만났다. 졸업하고 4년만에 만난 동창들은 모두 열일곱살의 사춘기였다. 여학생은 작은 풋복숭처럼 가슴이 볼룩해지고, 여성 특유의 꽃봉오리 같은 태가 나타나기 시작할 때 였다. 이성에 대한 미묘한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학생을 곁눈질하며 공연히 얼굴 붉히면서, 저희들끼리 깔깔대며 웃곤 했다.

 남학생 몇은 좀 어른스럽게 보일려고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코밑수염이 나기 시작했고, 입었던 교복은 어깨에 심을 넣었고, 모자챙은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했다. 모두가 번데기가 나비로 될 때 같았다. 이제 막 어른티가 박히기 시작하는 참이었다.

 

  여학생 중에서 정란이, 전자, 인순이, 습천 못가 영자가 먼저 눈에 띄었고, 혜정이는 그 한쪽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때는 내가 위즈위스나 투루게네프, 헬만헷세, 사머셋모음 좋아하던 시절이다. 혜정이는 마치 도브의 샘가에 핀 한떨기 수선화 같았다. 명작 속의 소녀처럼, 곁의 다른 소녀와 전혀 다른 기품을 지니고 있었다.  아마 내가 그의 긴 머리칼과 호수처럼 신비한 눈빛을 본 바로 그 순간이, 큐피트의 화살이 나의 가슴을 명중시킨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 순간이 내 운명의 갈림길이었다. 불시에 화살을 맞은 표범처럼, 나는 갑자기 수십만 볼트의 엄청난 전류가 전신을 짜릿짜릿하게 지나감을 느꼈다. 그것은 생전 처음 경험한 엄청나게 감미로운 전율이었다. 

 첫사랑이 번개처럼 나를 때린 그 이후  일을, 나는 아무 것도 기억 못한다. 누가 노래를 불렀고,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어떻게 동창회가 끝났는지 모른다.  신경이란 신경은 오직 혜정이에게만 집중되었다.  아무리 사소한 움직임 하나라도, 혜정이의 움직임 하나하나는, 내마음의 줄을 민감한 악기의 현처럼 바르르 떨리게 하였다. 나는 그 순간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그날 나는 야릇한 흥분 때문에, 교실 밖에 나가서 감나무에 등을 기대고, 쿵쾅거리는 심장의 고동소리만 듣고 있었다. 이윽고 동창회가 끝나고, 혜정이가 떠나는 모습을, 먼 발치에서 한없이 허전한 마음으로, 꿈결처럼 지켜보고만 있었을 뿐이다. 

 

  그날 밤부터 나는 혜정이네 집 근처로 날라간 한마리 나이팅게일 새였다. 탱자나무 울로 둘러쌓인 넓직한 진주농대 학장 관사 밖에서 밤마다 세레나데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혜정이에게 바친 첫 세레나데는, 도입부가 바리톤 저음으로 시작되는 '불 밝던 창'이라는 노래다.  '불 밝던 창에 어둠 가득 찼네. 내 사랑 넨나 병든 그때부터. 그의 언니 울며 내게 전한 말은, 내 넨나 죽어 땅에 묻힌 것을...'. 혜정이가 보일듯 말듯 약간 다리를 저는듯 해서, 애잔한 넨나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다.

 두번째 세레나데는 엘비스프레슬리의 'Love me tender'였다. '나를 부드럽게 달콤하게 사랑해주오. 결코 떠나게 하지마오.'  사랑을 갈망한 가사 그 자체가 내마음 이었다. 

  신비한 사랑의 힘에 이끌린 나는 밤마다 혜정이네 집 근처로 가지 않을 수 없었고, 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진주의 어느 소녀도 그렇게 혜정이처럼 많은 세레나데를 듣고 성장한 소녀는 없을 것이다.

 

  그 집은, 봄이면 울타리에 하얀 탱자꽃이 피고, 가을이면 노란 탱자가 익었다. 그 안에 우물이 있었다. 달 밝은 밤, 그 우물가에 서있던 소녀는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망경산 정상에는 큰 바위가 있었다. 밑에서 찔레꽃 향기가 풍겨오고, 가끔 주약동 보리밭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오던 바위다. 거기 바위에 소년이 새긴 '크리스티나로젯티'의 시는 얼마나 애절했던가. 'When I'm dead my Dearest, sing no sad song for me. Plant no roses at my head, nor shaddy Cypress tree.( 내 죽거던 임이여 술픈 노래는 부르지 마오. 장미도 심지말고, 그늘 드리우는 사이프러스나무도 심지마오.)'  소년에게 혜정이는 로젯티 였다. 그 애절한 시는 혜정이가 소년에게 보낸 달콤한 시였다.

 그러나  영원히 남기려고, 손에 피멍이 들면서, 못과 망치로 바위에 새긴 그 시는, 훗날 사라져 버렸다. 망경산에 방송탑을 세우면서, 무심한 사람들이 시가 새겨진 그 바위를 발파하여 없애버린 것이다. 

 

 사랑의 감정이 싹틀 때 진주는 못견디도록 아름다운 도시다. 봄철 신안동 들판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 '너우니' 버들숲에 은어가 꼬리치며 올라오는 것을 보면, 남풍이 '당미' 언덕의 벚꽃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고 가는 것을 보면, 강 너머 칠암동 대숲에 달빛이 어리는 것을 보면, 진주 소년은 모두 시인이 된다. 

 촉석공원 벤치에 노란 낙엽이 날라가는 것을 보면서, 의암 바위에 황혼이 내리는 것을 보면서, 지드의 '좁은 문'을 읽고 산책을 나가서, 주인 없는 파란 페인트 칠한 과수원집 대문 옆에 나리꽃 만발한 것을 보면서, 진주 소년은 다정다감한 청년으로 성장한다. 새벽 안개 덮힌 서장대에서 남인수 노래 모창하고, 달밤에 이봉조의 쎅스폰 흉내 내면서, 진주 소년은 자란다. 그래서 진주 사람은, 거짓말을 업으로 삼는 국회의원조차, 감성이 풍부하다. 

 

 당시 혜정이는 어떤 편이냐 하면, 내가 밤마다 자기 집 앞에 와서 세레나데를 부른 그 남학생인건 아는 눈치였다. 그를 찬미하는 남학생이 있다는 것은 소녀로선 우쭐한 일이고, 세상 무엇보다 달콤한 비밀이었을 것이다. 한번 그 얼굴을 보고싶은 유혹도 있었을 것이다. 아침 등교시에 다리 위에서 만나면, 수줍어 하면서 살짝 뒤를 돌아보곤 했다.

 아! 그러면 돌아본 그 일 때문에 나는 얼마나 실낱같은 새 용기를 얻고, 고무되고 흥분되었던가. 나는 혜정이 친구 영자가 그렇게 부러웠다. 그는 혜정이와 이야기를 하면서 나란히 걸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천예술제가 열리던 밤, 남강에 유등(流燈)을 띄우는 수많은 남녀 학생들의 인파 속에서, 나는 혜정이를 만날려고, 얼마나 남강변을 여기저기 한없이 쏘다녔던가. 

 

 그때 내 모습은 어떤 편이냐 하면, 가슴이 떡 벌어진 소년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백미터 학교 대표였고, 고등학교 때는 축구, 농구, 평행봉, 달리기 등 만능 운동선수 였다.  

 공부도 그런대로 잘 했고, 숫끼가 좋았다. 쉬는 시간에 교단에 올라가 미치밀러 합창단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흉내내어, 'The sun shines bright in the old Kentucky home'로 시작되는 '켄터키 옛집'이나, 'Way down upon the Swanee river'로 시작되는 '스와니강의 추억'을 원어로 부른 친구는, 나중에 뉴욕에서 의사를 한 우영이와 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운동이라면 운동, 공부라면 공부, 다 잘하던 내가 혜정이 앞에만 가면, 노틀담의 곱추 '콰지모도'였다. 혜정이는 짚씨 여인 '에스메랄다' 였다. 나는 가슴 속에 술처럼 부글부글 끌어오르는 감정을 주체치못해서 얼굴 붉히는 말더듬이 곱추였다. 컨트럴 불가능한 고압전류에 감전된 사고자였다. 두방망이 치는 가슴만 태우는, 젊은 베르테르였고, 가면무도회에서 처음 줄리엩을 만난 몬테규가의 로미오였다.

   

 그런 속에 밤마다 혜정이에게 보낼 편지 인용구를 찾기 위해 나는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던가. 소년에서 청년으로 넘어간 그 기간에 내가 읽은 책은 아마 백 권도 넘을 것이다.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짝사랑',  헬만헷세의 '페터카멘친트' '데미안' '싣달타',  사머셑모음의 '면도날' '인간의 굴레' '달과 6펜스',  토마스하디의 '테스',  에밀리부론테의 '폭풍의 언덕',  앙드레지드의 '좁은 문' '전원교향악',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듀마휴이스의 '춘희',  섹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엩' '햄릿',   밀턴의 '실낙원',  나타니엘호손의 '주홍글씨',  릴케의 '말테의 수기' 등이다.

 그 밖에 나는 톨스토이, 토스토엪스키, 궤테, 룻소, 빅톨유고, 보들레르, 위즈워스, 스땅달, 까뮈, 한스카롯사, 앙드레말로, 레마르크, 싸르트르, 헤밍웨이의 책을 남독(濫讀)하였다. 

  얼마나 많은 책 속의 여인이 혜정이었던가. 혜정이는 매번 '아쌰' '잔느' '줄리엩' '테스' '넨나'로 변해갔고, 나는 매번 그 상대편 남자였다. 나는 건강한 소년에서, 점점 사랑의 몸살을 앓는 몽상가가 되어갔다.  

 

  수많은 편지가 만들어졌고, 편지는 밤마다 혜정이네 대문 너머에 던져졌다. 달을 보고, 구름을 보고, 낙엽을 보고, 강을 보고, 산을 보고, 꽃을 보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감상한 그 모든 감정을 나는 편지에 담았다.   

  편지 옆에 간혹 꽃다발이 놓이기도 했다. 그 꽃은, 운동을 잘하던 나같은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갈 수 없는, 가파른 망경산 절벽에서 꺽어온 꽃이다. 진주에서 자란 그 어느 소녀가, 혜정이처럼 그렇게 목슴을 걸고 꺽어온, 그런 노란 원추리, 붉은 참나리, 보라빛 들국화를 선물 받을 수 있었겠는가. 

 

  지금도 내 서재에는 그 당시 일기장이 소중히 보관되어 있다. 거기에는 꽃을 꺽으려고 그 위험한 절벽을 오르내린 소년의 심정이 고스란히 적혀있다. 아무도 못오는 절벽 가운데 굴을 파놓고, 혜정이와 살고싶었던 한 소년의 꿈이 적혀있다.

 아무튼, 성장하면서 글씨체가 몇번 바뀌고, 영어를 자주 인용한 유치한 내 소년기 일기장은, 60년 전 시간을 가르키는 시계처럼 멈춘채, 빛 바랜 옛날 그 시간에 딱 머물고 있다.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한 영혼의 성장과정이 소롯이 담긴 그 수백통의 편지를, 아직도 혜정이가 한편이라도 간직하고 있어서, 그걸 돌려준다는 가설이 불가능한 점이다.  

    

 이렇게, 첫사랑은 나를 일기를 쓰는 소년으로 만들고, 철학을 동경하는 청년으로 만들었다. 혜정이가 없었다면, 나는 사대 체육과에 가서 체육선생이 되었지, 결코 철학과에 입학하고, 신문기자가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한 소녀가 한 소년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그러나 모든 턴넬은 끝이 있는 법. 혜정이에 대한 7년간 짝사랑도 끝이 있었다.

 그것은 마치 키엘케골의 처녀작 <이것이냐 저것이냐>에 나오는 자전소설 <유혹자의 일기> 같았다. 나 역시, 사랑을 관념에서 시작해서 관념으로 끝난 점에서 키엘케골 비슷하였다. 말한마듸 건네지 못하고,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관념적 프라토닉 사랑도 끝이 있었다. 

 

  그때 혜정이는 초등학교 교사였고, 나는 군인이었다. 나는 대학에 입학하자 그 해 자원입대하였는데, 가장 친하던 친구가 재수생이 되어 진주에 남아있다가, 주약동에서 철도자살을 한 이유의 대부분이 나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에 진학한 나는 내가 벌써 무슨 큰 사상가인양, 사흘이 멀다하고 왕래한 편지에서. 걸핏하면 허무니 절망이니 실존이니, 철학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문학을 동경하는 젊은이가 흔히 그러듯, 허무와 절망을 무슨 값어치 있는 훈장인양 겉에 내비치고 다녔다. 그러다가 친구가 자살한 것이다.

 입대하자, 나는 까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뭐르소'였다. 일부러 운전병이 된 후, 외출 나가서 서면 하이에리아 부대 근처 사창가에서 술을 마시고 다녔다. 아무 이유없이 헌병을 구타하고, 헌병 완장과 하이바와 하얀 장갑을 빼앗아 휴가병 돈을 갈취하다가, 제부지역 전 15P 헌병대에 비상이 걸리게 한 적도 있다. 

 

   그러다가 혜정이 혼처가 정해진다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임시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와서, 그가 교사로 근무한 문산초등학교로 찾아간 것이다.

 그 때 내 모습은 이랬다. 군복 상하의는 빳빳이 풀먹여 다려입었다. 모자의 병장 계급장을 광약으로 빤짝빤작 딱고, 파리가 낙상할 정도 군화도 매끄럽게 칠했다. 수송병 빨간 마후라를 목에 걸쳤고, 어깨는 떡 벌어졌고, 허리는 잘룩했고, 걷어올린 팔뚝은 구리빛 근육에 덮혀 있었다. 내 일생 그렇게 외모에 신경 쓴 일은 두번 다시 없다.

 나무에서 매미가 울고, 잠자리가 날아다니던 문산초등학교 운동장 푸라타나스 그늘 아래서, 나는 종일 화랑담배를 피우며 혜정이를 기다렸다. 이윽고 교정에 하학종이 딸랑딸랑 울리고, 재잘거리는 초등학생들 흐름 속에 퇴근하는 혜정이 모습이 나타나자, 코스모스 하늘대는 신작로를 따라가서, 검은 석탄연기 품으며 들어온 기차에 같이 몸을 실었다. 

  '오징어 땅콩이요!' '석간신문이요!' 기차 안은 이런 행상들 소리 요란했는데, 원래 통학생들은 그 속에서 소녀에게 닥아가서 말을 건네거나 편지를 건넸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를 못했다. 여선생인 혜정이 체면을 고려해서, 낮 모르는 남자가 닥아가서 말을 건네는 수작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기차가 주약동 터널을 통과하고 진주역으로 들어서자, 나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컴컴한 터널 속에서, 말을 붙이려고 생각했으나, 생각만 하다가 기회를 놓친 것이다.  

 역은 마중나온 사람들과 택시들, 여인숙 호객꾼들로 혼잡하였는데, 그곳이 바로 내가 혜정이에게 닥아가 말 건넬 마지막 장소였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만 초조했지, 나는 여기서도 그러지를 못했다. '잠시 시간 좀 내주세요.' 그 말 한마듸 하기가 그때는 왜 태산처럼 오르기 힘든 산이었는지 나는 모르겠다.

 

  이때 오히려 혜정이가 나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는 이미 내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던 것 같다. 수업 중에 교정에서 얼쩡거린 사람, 같이 기차에 올라와서 뭔가 안절부절 하던 그 군인이 누군지 알았던 것 같다. 아마 그는 진작부터 나를 알았을 것이다. 내가 밤마다 집 밖에 와서 <불 밝던 창>과 <러브미텐더>를 부른 그 사람이라는 것을, 초등학교 동창이고, 서울의 모 대학에 진학한 동기인 것을 그는 알았을 것이다. 

 기차에서 내린 혜정이가 개찰구 방향인 아닌 다른 곳으로 나가고 있었다. 거긴 망진산 쪽이었다. 들판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노란 벼이삭 늘어진 논길엔 메뚜기만 툭툭 튀었다. 대지엔 감미로운 바람이 불고, 산 허리는 황혼에 쌓여 있었다. 산기슭의 외딴 집 굴뚝에선 저녂밥 짓는 연기가 고요히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그 길을 혜정이가 한동안 걸어가더니, 이윽고 한 지점에서 고맙게도 고개를 숙인채 조용히 그 자리에 멈춰 서준 것이다.  닥아와서 뭔가 말을 해보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때 내 가슴의 고동은 왜 그렇게 쿵당쿵당 요란히 뛰기만 했던가. 내 입술은 왜 그렇게 바짝 마르고, 다리는 마치 허공을 밟듯 휘청거리기만 했던가. 무슨 말이라도 말을 해야하는데, 턱이 덜덜 떨려 한마듸도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마른 침을 삼키며 혜정이 옆으로 한걸음이라도 더 닥아가야 하는데, 하반신 전체가 떨려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심장은 얼어붙고, 전신은 사시나무였다. 나는 쿵쾅거리는 내 심장의 고동을 혜정이가 들을까, 오히려 그것만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혜정이를 만나기 전에 미리 할 말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젊은 베르테르가 샬롯테에게 한 말, 라트라비아타에서 알프레드가 비올레타에게 한 말, 릴케가 자기 보다 14살 연상인 유부녀 살로메에게 한 말, <좁은 문>에서  제롬이 마들렌에게 한 말, 로미오가 줄리엩에게 한 말들을 미리 읽어보고 준비 했었다. 그러나 이 모든 말들은 소용 없었다.

 나는 혜정이 앞에만 가면, 그에게 목슴을 바칠 각오를 하는 중세의 기사였고, 그의 충실한 종이었을 뿐이다. 사랑한다는 말, 그 자체가 나에겐 불경 이었다. 나는 사시나무였지, 말 못하는 벙어리였다. 지극했기에 말 못한, 그것이 나의 비극이었다

 부대 내에서 자살한다고 차에 칼빈 실탄을 숨기고 다니고, 외출 중에 헌병을 구타하여 부산 전지역  헌병대에 비상이 걸리게한, 남자사회에서는 맹견같던 내가, 혜정이 앞에서는 너무나 나약한 딴 남자였다. 아마 당시 나에게 수소폭탄같은 큰 충격을 가할 수 있는 어떤 힘이 있었다면, 그건 물리적 어떤 외부의 힘이 아니라, 혜정이가 우연히 내 쪽으로 보낸, 가슴 철렁하게 만들던, 그 시선이었을 것이다. 어쩌다 훔쳐본 그 신비한 미소였을 것이다. 내 심장에 엄청난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뇌관은 오직 혜정이였다. 신(神)은  내 생명 어딘가에 그렇게 반응하는 회로를 심어놓은 것 이다. 

   

  그때가 가을이었다. 내가 진주 역 근처에서 혜정이와 나란히 서있던, 그 황홀하고 감미롭던 시간이, 몇 분인지 몇 초인지 모르겠다. 그 일분 일초는 아마 내 인생 행로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일 것이다. 그러나 금새 주변은 어둠에 완전히 덮히고, 먼 동네 등불이 아득히 별처럼 깜박이기 시작했다. 마냥 그렇게 밤새도록 서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윽고 혜정이가 천천히 발걸음 떼더니, 멀어져 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가더니, 먼 동네 불빛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쓸쓸한 바람만 불어오고 있었다. '모든 게 끝났다'. 나는 절망하면서, 동네의 불빛을 바라보면서 장승처럼 어둠 속에 서있었다. 

  혜정이는 먼 유성에서 날라온 요정이었을까. 한 여름밤의 꿈이었을까. 첫사랑은 이렇게 끝났고,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그러나 손자까지 둔 이 나이에도, 아직도 내 가슴 속에, 황혼의 안개 낀 들판과, 멀리 어둠 속에 별처럼 깜빡이던 마을의 등불과, 고개 숙이고 서있던 한 소녀 모습이, 천 권의 서사시보다 황홀하게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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