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사와 오간 편지

경남미디어 편집국장 이선효

김현거사 2018. 11. 5. 07:43

고향의 시냇물

 

 누구나 고향을 생각하면 화가나 음악가가 된다. 풍경은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요, 물소리는 한 소절의 아름다운 음악이다. 고향은 하늘빛마저 얼마나 그립던 곳인가. 그 하늘 아래 시냇물이 흘렀다. 시냇물은 강처럼 깊지 않지만, 강의 원천이다. 우리 그리움의 출발점이며 추억의 발원지다.

 고향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게 시냇물과 거기서 같이 놀던 친구들이다. 우리는 소나기 피하려고 토란잎을 우산처럼 받치고 뛰어다녔고, 덤벙덤벙 옷 적시며 송사리와 물방개 잡았다. 별이 총총한 밤하늘 밑에는 하얀 수증기 피우며 흘러가던 시냇물이 있었고, 함초롬히 이슬 맺힌 박꽃 사이로 날아가던 반딧불이가 있었다. 논두렁 밭두렁에 울어대는 개구리 합창단이 있었고, 창공에서 솔로로 노래하는 종달새가 있었다. 지금 그 이름 잊었지만, 누렁이 황소 꼴 먹이며 풀피리 불던 아이가 있었고, 물 소리, 빗소리, 바람소리는 그리운 한 편의 시였다.

 나는 재주가 없어 고향을 소리로 오선지에 옮길 수는 없지만, 최근 유화를 배우면서 서투른 솜씨지만 풍경을 캔버스에 옮겨볼 결심을 하였다.

 그래 첫번째로 작정한 풍경이 우리 할아버지 논 옆에 있던 작은 시내이다. 할아버지가 사시던 집은 큰 정자나무 있던 언덕 위에 있었고, 뒤는 싱그러운 청보리밭으로 덮힌 길 끝에 작은 동네가 있고, 그 동네 앞에 들우물과 우리 논이 있었다. 논가에 어릴 때 내가 입술이 까매지도록 오디를 따먹던 늙은 뽕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그 뽕나무는 늘 코발트빛 하늘과 목화송이 흰구름 몇 점 머리에 이고 있었다. 뽕나무 밑에 야산을 요리조리 구부러져 흘러내려온 작은 시내가 있었다. 그 시내는 작고 평범한 냇물이지만, 어릴 때 같이 소꿉놀이 하던 여자애처럼 세월이 갈수록 잊혀지지 않고, 안개 속 산처럼 신비롭다. 물이 맑아 빨간 산딸기와 하얀 찔레꽃을 또렷히 비쳤고, 물밑에는 부드러운 모래와 이끼 낀 돌에 붙은 고동이 있었다. 거기서 나는 어느 여름날 물가에 찍힌 물새 발자국을 보고 신기해 한 적 있고, 피라미가 물 위로 점프하는 걸 보며 감탄한 적 있다.

모든 게 처음 본 것이 인상 깊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다. 논에서 새를 볼 때 만난 그 시냇물을 어찌 잊겠는가. 그래 나는 물맛 달콤한 그 개여울을 첫번째 내 그림 대상으로 삼고, 아를의 교외 풍광을 그린 고흐처럼 강렬한 텃치로 한번 그려볼 작정이다.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에서 싸이프러스 나무를 그려놓은 것처럼 나도 늙은 뽕나무를 정신없이 그려놓으므로서 입술 까매지도록 오디 따먹던 추억을 되살리고, 남프랑스의 강열한 태양 이글거리는 ‘해바라기’를 그린 것처럼, 나도 신안동 노란 황토밭과 청보리밭을 그리고 싶다.  

 그 뒤에 나는 르노아르 그림을 보고 또하나 그림을 구상했다. 약수암 절 아래 과수원이 있는데, 과수원 밑 복숭아꽃 살구꽃 떨어져 흘러오는 냇가에 과수원집 어린 딸이 놀고있었다. 맨발의 소녀의 뺨은 꽃보다 부드러웠다. 과수원 한 켠 공터에 낮으막한 원두막 있고, 하늘엔  빨간 잠자리가 떼지어 날고 있었다. 나는 꽃잎 흘러내리는 시냇가에서 놀던 꽃보다 곱던 소녀의 뺨을 르노와르의 '모자를 쓴 소녀'처럼 부드러운 붓놀림으로 그리고 싶다.

 나는 지리산 밑에서 온 친구들이 많아 냇물 위에 걸쳐진 섶다리, 섶다리 건너가는 스님, 냇물에 비친 달, 백도라지 핀 밭에 둘러쌓인 강마을을 안다. 다음에는 그 시냇물을 그릴 예정이다.

 어쨌던 시냇물은 강처럼 깊지 않지만 강의 원천이다. 시냇물은 우리 그리움의 출발점이며 추억의 발원지 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내가 시냇물을 그리려고 작정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경남미디어신문 /수필 칼럼 2018. 11월 12일자)

 

 

진주고. 고려대 졸업.

불교신문. 내외경제신문 기자.

아남그룹 회장 비서실장. 동우대 교수.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