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사와 오간 편지

한국창작문학/ 발행인 심의표

김현거사 2018. 9. 16. 08:04

원고 청탁서 감사합니다. 수필 원고 1편 기고

 

 진주 팔경(晉州 八景)

 

 내 일찌기 소주(蘇州)에 가서 상유천당(上有天堂) 하유소항(下有蘇杭)이란 말을 들은 적 있다. 하늘에 천당이 있고, 땅에 소주와 항주가 있다는 말이다. 소주는 곳곳에 운하가 연결되어있고, 태호(太湖)라는 호수 있고, 쌀과 차와 비단과 물고기 풍부해서 ‘어미지향’(魚米之鄕)이라 불리운 곳이다. 거기다가 하나 더 있다. 그곳 문필가 위치우위(余秋雨)란 사람이 '물은 너무나 맑고, 복사꽃은 너무나 아름다우며, 먹거리는 너무나 달고, 여인은 너무나 곱다' 고 표현한 바람에 더욱 그럴싸하게 보인다.

 그래 진주 역시 누가 그런 표현을 해줄 사람이 없을까 기다려 보았다. 진주도 남강물은 너무나 맑고, 복숭아꽃은 너무나 아름다우며, 먹거리는 너무나 달고, 여인은 너무나 곱다. 진양호란 호수 있고, 최상급 비단 생산하고, 쌀과 과일, 채소와 물고기 풍부하여 그야말로 ‘어미지향’(魚米之鄕)이기 때문이다.

  그 뒤 항주 가서 서호(西湖) 10경(景) 자랑하는 걸 본 적 있는데, 이건 또 무슨 이야긴가 했더니 이렇다. 첫째 백낙천이 물 위에 걸쳐놓은 아취형 돌다리에 눈 쌓인 모습 아름답고, 둘째 호수 안에 외로히 떠있는 고산(孤山)의 누대에 뜬 가을 달 곱고, 셋째 연꽃 활짝 피는 5월 술집 뜨락에서 피어난 술 향내가 정원의 연꽃 향기와 함께 바람에 떠다니는 분위기가 기막히고. 넷째 소동파가 만든 여섯 개 아름다운 다리 아래로 물안개 피는 봄날 새벽에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가 늘어진 가운데 하얀 북숭아 꽃잎이 살짝 물 위에 뜨있는 경치. 다섯째 추석날 배 띄우면 달과 인공섬인 소영주(小瀛洲) 석등에 켜진 불이 셋으로 보이는 모습. 여섯째 서호 남쪽 호반의 정원에 모란꽃이 활짝 피고, 화려한 색 뽑내는 비단잉어 노니는 모습. 일곱째 남녂 골짜기에 운무가 끼어 마치 구름에 봉우리가 꽃혀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 여덟째 석양의 남병산(南幷山) 정자사(淨慈寺)에서 울려퍼지는 종소리. 아홉째 우뚝 솟은 영봉산(靈峰山) 뇌봉탑(雷峰塔) 너머로 지는 노을. 열번째 물 오른 버들잎이 봄바람에 살랑일 때 듣는 꾀꼬리 울음소리가 그리 곱다는 것이다.

 그 말 듣고보니 나도 할 말 있다. 진주는 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할 것 없다. 첫째 물 위에 놓인 습지원 화강암 돌다리 그 아래 백로 모습 아름답고, 둘째 진양호에 뜨있는 섬 비치는 가을 달 한없이 곱고, 셋째 지금은 메워져 없지만 옛 진주성 주변 둘러싼 못 속에 수많은 연꽃이 피었는데, 술집 뜨락에서 피어난 술 향내가 바람에 떠다니는 분위기 기막히고, 넷째 항주 자사였던 백낙천이 서호에 돌다리 세웠던 것처럼 진주 국회의원 하순봉이 세웠던 천수교 아래 물안개 피는 봄날 새벽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가 늘어진 가운데 하얀 복숭아 꽃잎이 살짝 물 위에 뜨있는 경치 아름답고, 다섯째 추석날 배 띄우고 달빛이 의암과 촉석루와 진주교를 두루 비치는 모습, 여섯째 진양호 남쪽 호반의 신안동 들마을 정원에 모란꽃 활짝 피고, 민첩한 은어가 남강에서 헤엄치며 노니는 모습, 일곱째 망진산 절벽에 운무가 끼어 마치 구름에 봉우리가 꽃혀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 여덟째 석양의 진양성 호국사(護國寺)에서 울려퍼지는 종소리. 아홉째 우뚝 솟은 뒤벼리 절벽 너머로 지는 노을, 열번째 물 오른 버들잎이 봄바람에 살랑일 때 듣는 진주성 꾀꼬리 울음소리가 그리 곱다. 

  이쯤 되니 소주 항주 둘의 장점을 합친 곳이 진주고, 진주야말로 상유천당(上有天堂) 하유진주(下有晉州)라 할만 하다. 그런데 그후 중국의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란 그림을 보았더니, 그 그림이 또 왜 그런가. 꼭 진주 풍경 같다. 원래 이 그림은 동정호(洞庭湖)와 그 남쪽 두 개 물줄기 소수(瀟水)와 상수(湘水)를 그린 여덟 폭 산수화인데, 북송(北宋) 때 이성(李成)에 의해 처음으로 그려졌다. 그런데 그림이 하도 유명하다보니, 고려서도 명종이 문신들에게 소상팔경을 글로 짓게 하고, 이광필(李光弼)로 하여금 그림으로 그리게 했다. 이후 이인로(李仁老), 이규보(李奎報), 이제현(李齊賢) 등 문인들이 소상팔경을 시로 남겼고, 조선시대 안견(安堅), 이징(李澄), 김명국(金明國), 정선(鄭敾), 심사정(沈師正), 최북(崔北), 김득신(金得臣), 이재관(李在寬)이 떼거리로 그림을 남겼다.

 그 소상팔경(瀟湘八景) 중 첫번째가 소상야우(瀟湘夜雨)인데, 그 그림이 동정호(洞庭湖)와 그 남쪽 두 개 물줄기인 소수(瀟水)와 상수(湘水)의 밤에 비 뿌리는 풍경이다. 그런데 진주는 지리산에서 흘러온 덕천강과 경호강이 있질 않는가. 두 강 합수한 진양호(晉陽湖)도 있다. 소수(瀟水)와 상강(湘水)의 밤에 뿌리는 비가 있듯이, 덕천강 경호강 밤에 뿌리는 비가 없겠는가. 두번째로 동정추월(洞庭秋月)이란 것은 동정호에 뜬 가을 달을 말함인데, 진주 그 넓은 진양호에 가을 달이 없겠는가. 원포귀범(遠浦歸帆)이란 멀리서 포구로 돌아오는 돛단배를 말하는데, 섬과 섬 사이 멀리서 돌아오는 돗단배 없겠는가. 평사낙안(平沙落雁)이란 말도 그렇다. 백사장이 남강의 명물이다. 겨울 백사장에 떼 지어 내리는 갈가마기 모습 장관인 곳이 남강이다. 연사만종(烟寺晩鐘)이란 안개 덮힌 절간에서 울려퍼지는 늦은 종소릴 말하지만, 진주는 호국사 의곡사에서 쌍으로 종소리가 시내에 울려퍼진다. 특히 서장대가 남강에 달그림자 꼬리 묻고 벌레 울음도 잠든 새벽, 호국사 종소리와 목탁소리 가히 신선의 경지다. 어촌석조(漁村夕照)는 어촌의 저녁 노을을 말하는데, 한번 진주 선학산(仙鶴山) 밑 뒤벼리로 가보시라. 거기 석양의 조각배에 앉아서 낚시하는 어옹의 모습을 보면 진주가 무릉도원인가 착각하게 한다. 강천모설(江天暮雪)이란 것은 저녁 강에 내리는 눈을 말하는데, 저녁 눈 내리는 배건너 십리대숲 청아하기 그지없다. 

 소상(瀟湘)에 악양루 있고 진주에 촉석루 있다. 소상반죽(瀟湘斑竹)이라고 그쪽에 명품 담뱃대 있다면, 진주는 반죽, 오죽, 왕죽 다 잘 자라는 죽림 천국인데 그까짓 명품 담뱃대 하나 없겠는가.  

  그런데 기이한 일이다. 최근에 진주에 이상한 일이 하나 생겼다. 교포 사업가 김두용 선생이 일본서 그  '소상팔경도' 8폭 병풍을 구해서 진주로 보내온 것이다. 이를 문화재청은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시키고 보물 제1864호로 지정했다. 아마 소상과 진주 두 곳이 하도 닮아서, 이 소상팔경도를 진주로 보내야겠다는 것이 상천의 심오한 뜻이었던 모양이다. 하늘의 뜻이 그렇다면야... 누군가 그 뜻에 호응하는 사람도 있어야 했다. 그래 말석의 이 사람이 외람됨을 무릅쓰고 진주 팔경(晉州 八景)을 한번 읊어보았다.

 

 진주 팔경(晉州 八景)

 

矗石寒月  촉석루 차그운 달

義巖落花  춘삼월 의암 낙화 

望晉春霧  망진산 봄 아지랑이

新安牧笛  신안동 목동 피리소리

西湖歸帆  진양호 돌아오는 배

川前修竹  강 앞의 십리죽림

仙鶴落照  선학산 저녁 노을 

月牙吐月  월아산 보름 달

 

 

김창현 약력. 

2007년 문학시대에서 수필로 등단

청다문학회 회장. 남강문학회 부회장

<책 한 권에 소개한 한국 고전 25편>외 수필집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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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8년 9월 04일 화요일, 16시 52분 30초 +0900
제목: 원고청탁서

원고청탁의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