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2

옌따이(煙臺)를 다녀와서(1)

김현거사 2017. 11. 18. 09:40

 

    옌따이(煙臺)를 다녀와서(1) 

 

  다산 정약용(丁若鏞)은 <불역쾌재행(不亦快哉行)>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기나긴 여름날 무더위에 시달려서 등골에 땀이 흘러 베적삼 축축할 때, 상쾌한 바람 불어 소나기 쏟아지니, 단번에 얼음발이 벼랑에 걸려 있네. 이 어찌 통쾌한 일 아니겠는가. 지팡이 지쳤어라 높은 산에 올랐더니 구름 안개 겹겹이 눈 아래 막고 있네. 이윽고 서풍 불어 맑은 햇볕 내려쬐니, 만 골짜기 천 봉우리 일시에 드러나네 .이 어찌 통쾌한 일 아니겠는가. 낙엽이 소리 없이 강 언덕에 떨어지고, 황혼녘 하늘빛이 흰 파도를 걷어찰 때, 옷자락 휘날리며 바람 속에 섰노라니, 내가 마치 선학(仙鶴) 되어 흰 날개 씻겨진 듯, 이 어찌 통쾌한 일 아니겠는가.>

그러나 인생에 통쾌한 일이 어디 이뿐이겠는가. 나이 들어 친구들과 어디 국내여행 한번 가려해도 이제는 안방 사람 눈치를 살펴야 되는 신세인데, 어느날 중국에 공장을 가진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서, 자네는 중국술과 골동품과 한시 좋아하지 않는가. 이번에 같이 몇일 있다 오자면서 불시에  일반 티켓 보다 두 배나 비싼 비지니스급 비행기 태워 데려가 밤에 산해진미 대접한다. 이 어이 통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옛날 두보는 하장군이란 권세가 별장에 초대되어 대접을 잘 받았던 모양이다. 그래 향그러운 미나리에 붕어회가 싱싱하더라느니, 버들 우거진 물가에서 배를 저으며 연잎 술잔으로 인사불성이 되었다느니, 무려 10편이나 시를 썼다. 나라고 친구 중국 초청 다녀와서 여행기 한 편 쓰지말라는 법은 없다.

  기내에서 중요한 이야기 나누었다. 밤에 마실 술 어느 것으로 정하느냐는 건이었다. 중국에는 4천5백여종 술이  있다.  '바람이 불면 그 향기가 온 동네를 취하게 하고, 비 그친 후 술병을 열면 향기가 십리까지 간다'는 술이 마오타이(茅台酒)다. 청나라 건륭황제가 이 술을 마시려고 일부러 강남에 7일이나 머물렀다는 술은 양하대곡(洋河大曲)이다. 공자님 집안 손님 접대용으로 만든 술은 공부가주(孔府家酒)다.  첫 잔 마시면 대숲바람 몸에 스며들고, 두잔 마시면 입술 사이에 죽향 흩어지고,  세 잔 마시면 몸의 때가 씻기고, 네 잔 마시면 마주한 친구와 마음을 통하게 된다는 술은 죽엽청주(竹葉靑酒)다. 

 술 이름만 거론해도 입맛 땡긴다. 그 중 마오타이, 공부가주, 죽엽청주는 이미 마셔보았다. 그랬더니 친구는 수정방이 어떠냐고 권한다.

 수정방은 중국 3대 명주 중 하나다. 모택동 시절에는 마오타이, 등소평 시절에는 우량액, 요즘은 수정방을 최고로 친다. 값이 얼마냐 물어보니, 돗수 따라 다르지만 몇십만원 정도다. 글 쓰는 사람이 자존심은 있어야 한다. 비싼 술에 팔리면 속물이다. 그래 나는  두강주(杜康酒)를 부탁하였다.

 두강주는 두보나 이태백이 즐긴 술이다. 조조가 적벽대전을 앞두고 수백척의 전함을 끌고 양자강 내려오면서, 스스로 흥에 겨워 창자루로 뱃전을 두드리면서 달빛 아래 마시던 술이 두강주다. 두강주 마시고 두보나 이태백이 기분 알고싶다고 말하자, 친구는 두 말 않고 중국 현지 사장한테 전화 걸어 두강주 지시한다.

 

 

  옌타이는 서울서 생각하기보담 큰 도시였다. 인구 3백만이라는데, 경치는 속초 같다. 해변에 잔디 깔린 고급 주택가와 고층 호텔 많은 점이 속초와 다르다. 바다는 우리나라 동해처럼 맑고, 도로 밑이 바로 해수욕장이다. 신흥도시인데 큼직한 항구도 있고 거리도 깨끗하다.

 그날 밤 회장님 오셨다고 현지 사장이 예약해놓은 호텔식당 식탁엔 빨간 포장의 두강주 네 병이 얹혀있었다. 원래 '술이란 지기 만나면 천 잔도 모자라고, 서로 말이 통하지않는 사람과는 반마디 말도 많다'(酒逢知己千杯少. 話不投機半句多)'고 하는 물건이다. 선수들끼리 무슨 말이 필요한가. 우선 첫 병을 개봉하여 조심스레 향기를 맡아보니, 길에서 누룩 수레만 만나도 군침을 흘렸다던 두보와 한 말 술에 시 백편 지으면서 스스로 취선(醉仙) 자칭한 이태백 생각난다.

 오냐. 두강주야 너 본건 처음이다. 50도 독주를 원샷으로 비웠더니, 술 향기 어딘가에서 소동파가 좋아하던 대나무 향기, 도연명이 동쪽 울타리에 심었던 국화 향기, 이태백이 좋아한 연꽃 향기가 풍기는듯 하다. 술은 독하면서도 향기롭고 그리고 부드럽다. 그 전통 명주를 북쪽 발해만에서 잡아온 게요리와 해삼요리 안주가 받쳐주니, 즐김에 전혀 부족함 없다. 중국 술은 오랜 대륙의 역사가 빚은 문화요, 감성이다. 그 맛 제대로 알려면 그들 역사와 문화를 좀 알아야 한다. 두보나 이태백의 시 몇 개, 고사 몇 개는 알고 먹어야 더 맛이 난다.

 이날 베이징덕 외에 이름 모를 비싼 육군도 많이 올라왔지만, 나는 주로 해군과 야채를 먹었다. 

 

 

베이징덕

 

 이태백은 춘야원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라는 글에서, '천지라는 것은 만물이 쉬어가는 나그네 집이요, 세월이라는 것은 영원히 흘러가는 길손이다. 그 가운데 우리네 덧없는 인생은 짧기가 꿈 같거니, 그 동안에 환락을 누린다 한들 겨우 얼마이겠는가! 옛사람이 백년도 못 사는 인생으로 천년의 근심을 안고서, 낮은 짧고 밤은 길어 놀아 볼 겨를도 없음을 한탄하다가, 밤에 촛불을 켜고 밤을 낮 삼아 놀았다고 하더니, 참말로 이제야 그 까닭이 있음을 알겠구나!' 하지 않았던가.

 그들이 두 손 모우고 건빠이(乾杯) 하면서 자기 잔 빈 것을 보여준 것은 무슨 뜻이겠는가. 모처럼 지기를 만나 가슴 속 회포를 몽땅  터놓고 취흥의 끝까지 한번 가보자는 뜻이다. 건강 위한다고 술잔 앞에 머뭇거리는 친구는 아예 상종 말아야 한다. 그날 모처럼 재력 든든한 친구 있겠다 무얼 걱정하겠는가. 산해진미 시켜놓고, 인생칠십고래희에 거침없이 명주 향기에 취해본 뜻깊은 밤이었다.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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