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2

계림(桂林) 여행

김현거사 2017. 11. 14. 19:25

 

 계림(桂林) 여행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황하의 물이 천상에서 내려와, 세차게 흘러 바다에 이르러 다시는 돌아오지 못함을. 또 보지 못하는가. 높은 집 사람이 거울 속 백발을 슬퍼함을. 아침에 푸른 실 같던 머리카락이 저녁에는 눈 같이 희어졌네. 인생은 모름지기 뜻을 얻었을 때 기쁨을 함께 누려야 할지니, 친구인 잠부자 단구생이여! 술잔을 올리니 그대는 부디 거절하지 마시라.'

 

 인천공항서 밤에 비행기 타고 떠나면서 이태백의 장진주(將進酒)란 시를 떠올려 보았다. 칠순 기념으로 고교동창이 계림에 단체 여행 가는데, 친구들 모두 아침에 푸른 실같던 머리카락 저녂에 눈같이 희다.

 

 계림에 가면 무엇을 보아야 하나? 첫째는 산수(山水)요, 둘째는 골동품이다. 중국은 거대한 골동품 시장이다. 가는 곳 마다 도자기와 그림 천지다. 그건 모르면 비지떡이요, 알면 보물이다. 

 멀리 갈 것 없다. 우선 아침에 호텔 로비에 있는 대형 도자기 찬찬히 살펴보았다. 거기 암봉에 폭포 걸려있고, 냇물에 다리 놓여있다. 다리에 숨은 은자가 보이고, 초옥에 파초가 자라고 있다.

 정원도 볼만하다. 연못에 비단잉어 헤엄치고 있다. 정원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 운치있다. 돌로 조각한 연꽃 발판이다.

 

  계수나무 많아 계림(桂林)이다. 밖에 나오니 가로수가 모두 보라빛 흰빛 꽃을 단 계수나무다. 계수나무 꽃은 만리향 비슷하다. 밭에 심어놓고 꽃으로 향수 만들고 술 담는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 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마리' 윤극영 선생께서 계수나무 아래서 토깽이가 떡방아 찧는 여길 와보셨는지 모르겠다.

 

 첫 날은 배 타고 리강(漓江) 유람했다. 시내 곳곳 지류가 많아, '이강(漓江)이 저강이고, 저강이 이강(漓江) 이다'란 우스개말 있다. 물의 도시 베니스와 또다른 운치다.

 계림에서 양삭(陽朔)까지 83km 뱃길은 몽환적이라 할만 했다. 산이 그림 속에서 튀어나와 강변에 우뚝우뚝 서 있다. 봉오리는 인수봉 같거나 혹은 마이산 같은데, 저마다 구름 스카프 둘렀다. 이런 봉우리 숫자가 자그만치 3만5천개라 한다. 밤에 달 뜨면 또 어떤 모습일까. 까무잡잡한 가날픈 몸매의 장족(壮族) 아가씨 이쁘다. 그와 달빛 아래서 동굴에서 3년 숙성시킨 계수나무 꽃으로 담근 삼화주(三花酒) 마셔봐야 그 분위기 알 것이다. 계림 풍광은 맑은 날은 물에 비치는 봉오리가 멋 있고, 흐린 날은 산 허리에 걸친 구름이 멋있고, 비오는 날은 리강에 피는 물안개가 멋있다고 한다. 

 

 

 여기는 베트남 하롱베이와 지맥이 이어져있다. 여름 날씨 40도라 시멘트 바닥에 계란을 놓으면 익는데 다행히 년중 300일은 흐린단다. 대나무 계수나무 많고, 비파 유자 과수원 많은데, 벼농사는 일년 3모작이라고 한다.

 계림 사진에 자주 나오는 어부가 가마우지로 고기 잡는 풍경 볼 수 없어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가마우지는 야행성이라 밤에 잡는다고 한다.

 

   

 

  다음날 비단 첩첩히 쌓은 것 같다는 첩채산(疊綵山)에 올랐다. 오르면서 보니 바위에 뭔가 새겨져 있다. '願作桂林人 不願作神仙'이란 글귀다. '계림 사람 되기 소원이지, 신선이 되기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다. 얼마나 살기 좋으면 이런 글을 새겼을까. 여기는 과일의 여왕이라는 듀리안을 비롯하여 망고와 비파, 무공해 채소와 신선한 물고기 천지다. 궂이 신선 부럽지 않는 모양이다. 산에 올라가 계림 시내를 내려다 보니 호수 옆에 집 있고, 7층 탑 보인다.  

 

 

  인구 50만 계림은 우산공원, 천산공원, 서양인들 모여드는 양삭(陽朔) 재래시장, 동굴 안에 케이불카와 배가 다니는 관암동굴 있다. 그 중 내게 가장 인상적인 곳은 세외도원(世外桃園)이다. 

 

 '진나라 태원년간에 무릉 사람으로 고기잡이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물길을 따라 멀리 갔다가 홀연히 복숭아꽃 만발한 곳에 이르렀다. 어부는 이상하게 여기고 계속 앞으로 나가 복숭아 숲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자 했다. 숲은 강 상류에서 끝났고 그곳에 산이 있었으며, 산에는 작은 동굴이 있고 그 속으로 희미하게 빛이 보였다. 어부는 즉시 배에서 내려 동굴 속으로 따라 들어갔다. 동굴은 처음에는 몹시 좁아 간신히 사람이 통과할 수 있었으나 수십 보를 더 나가자 갑자기 탁 트이고 넓어졌다.'

 

 

  세외도원은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 그대로다. 동굴 속을 배가 지나가면, 3월이면 도화꽃이 만발하여 도원경 이룬다는 복숭아숲이 나온다. 꽃도 많다. 황금색 유차화(油茶花)와 눈처럼 흰 여채화(茹菜花), 자홍색 홍화초가 땅을 자수처럼 수놓는다고 한다. 물은 한없이 투명하여 바닥이 환히 보이고, 산은 높고 고요하다. 

 거기 하얀 회칠한 민박집 두어채가 보였다. 집집마다 제비가 들어와서 살라고 벽에 구멍을 두어개 뚫어놓았다. 호수 이름은 제비 연(燕), 연자호라 한다. 여기가 강남 제비 고향이던가. 근심이 싹 가신다. 언제 이 곳에 와서 민박 얻어놓고 수필이나 몇 편 완성하면 좋겠다.

 

 계림은 리강(漓江) 유람도 좋고, 세외도원(世外桃園)도 좋다. 마지막 날 밤 유람선 타고 간 호수 야경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유람선이 불 밝힌 정자와 누각과 화려한 조명 비치는 호텔 옆을 지나가는데, 밤인데도 호반에 산책하는 사람이 많다. 거기가 두 강이 만나서 네 개의 호수를 이룬다는 곳이다. 어부는 불을 밝히고 가마우지로 고기 잡는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 가마우지가 날개를 퍼득이며 고기를 입에 물고 배에 올라올때 마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카메라 후랏쉬는 터진다.

 

 그 밤 그 유람선의 결정타는 은은한 해금 소리였다. 배가 호수를 반쯤 돌았을 때다. 누가 뱃머리에서 부드러운 해금을 탄다. 은은한 소리가 천상에서 내려온듯, 별빛 따라 흐르는듯 하였다. 아리랑에서 시작하더니, 심심산천 백도라지, 푸른 하늘 은하수를 거쳐, 뷰티풀드림머와 올드랭사인으로 끝을 맺는다.

 이럴 때 가만히 있으면 그는 목석이다. 우리 일행은 곡마다 험잉으로 따라부르고, 곡 하나하나 끝날 때마다 부라보! 만장의 박수를 보냈다. 또 얼마씩 돈을 모아 건네주었다.

 유람선이 통과하는 다리 근처 화강암에 유려한 필치의 한시와 산수화가 그려져 있다. 평범한 예사 솜씨가 아니다. 그윽한 조명 아래 불상과 7층탑과 어울려 신비로운 한문 문화권 깊이 보여준다.

 장가계는 남성 산수고, 계림은 여성 산수다. 계림의 밤 유람선 위에서 해금소리 들어보면, 거기 호반에 새겨진 시와 그림 보면 그 말 십분 이해간다. 시가 평범하고, 그림이 평범했다면 말도 하지않을 것이다.

 그런데 여행사 스케쥴이 묘하다. 음악에 반해 시에 반해 잔뜩 흥분한 사람을 비행기 출발 시간 맞춘다고 무조건 버스에 태운다. 밤 12시 40분까지 반드시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법도 있었나? 그래 부득이 아직도 감흥 벗어나지 못한 나그네는 버스 안에서, 연인을 이별한듯 안타까운 시선만 창 밖에 고정시킬 수 밖에 없었다.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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