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2

장가계 여행

김현거사 2017. 11. 12. 15:50

 

 장가계(張家界) 여행

 

그대에게 묻나니, 왜 푸른 산에 사는가 (問君何事棲碧山)

웃고 대답않으니 마음 절로 한가롭네 (笑而不答心自閑)

도화 뜬 물은 묘연히 흘러가니 (桃花流水杳然去)
별유천지 인간세상이 아니로다 (別有天地非人間)

 이태백 "산중문답(山中問答)"에 나오는 별천지가 무릉도원이다. 도연명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별천지가 무릉도원이다.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가 무릉도원이다. 서울서 서안(西安) 날라가는 2시간 동안 나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을 생각했다. 장가계(張家界)가 바로 '무릉원'이기 때문이다. 

 

 서안에 착륙하여 웨이팅 시간에 잠시 아방궁(阿房宮) 둘러보고, 한시간 비행하여 장가계 닿았다. 장가계란 곳은 한(漢)고조 유방의 오른팔 장자방이 가솔을 데리고 와 살았던 곳이다. 중국 내 오지로 우리나라 백두대간 화전민촌 연상하면 된다. 시가지엔 택시 대신 삼륜차 다니고, 호리호리하고 키 작은 원주민 토가족(土家族)은 밤에 전기 아까워 촛불 켜고 산다. 호텔 전기가 밤에 두번이나 나갔다 들어오는 그런 깡촌이다.

 무릉원(武陵源)

 부슬부슬 아침 비가 내리는 비안개 속에 대밭과 가옥의 파초 보며 버스로 무릉원 도착하니, "천원! 천원!" 토가족 할머니들이 복숭아와 석류 팔고있다. 삼사년 전에 한국에 알려진 후, 이곳 관광객 거의가 한국인이고 한국돈으로 거래를 하는데, 거기 복숭아 보니, 얼씨구 여기가 무릉원(武陵源) 맞다.

 무릉원은 장가계국가산림공원, 천자산자연보호구, 삭계육풍경구 셋으로 나눠있다. 장가계는 남성적이고,
계림은 여성적 풍경이라, 장가계 먼저 보면 계림이 시들해, 계림 먼저 본 후에 장가계 봐야한다고 한다.


 보봉호(寶峰湖)

 가이드가 준 우의 입고 450미터 산 속의 보봉호 가니, 안개 낀 호수 나타난다. 거기 산은 종유석이 죽순처럼 삐쭉삐죽 하늘 찌르고, 봉마다 신비롭다. 중국인들이 그림에서 산을 너무 삐쭉하게 그려 과장이 심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여기 보니 이해가 간다. 장가계가 산수화의 원본이다. 
"와아!"
"세상에..."
사람마다 탄성 지르며 카메라 꺼내든다. 비오는 호수가 더 운치있다. 낡은 누선(樓船)은 절묘한 산수화 속으로 사람을 싣고가는데, 보봉호는 이름 그대로 봉오리 하나하나가 보물(寶物)이다. 경치가 비취빛 물에 비치니, 물 아래도 산수화다. 그 위 배 타고 유람하는 사람 신선이다.
 배가 지나가는 산허리에 작은 초옥 지어놓고 요정같은 토가족 처녀 하나 배가 오자 일어나 노래 불러준다.  가날픈 음색이 인간 보다 새소리에 가깝다. 중국 관광객들이 흥에 겨워 "아리산도꾸냥"을 합창하길래 그 화답으로 나는 "소양강 처녀"를 한 곡 불렀다.



  보봉호

 

 황룡동굴(黃龍洞窟)
황룡동굴은 굴 안에 물이 흘러 800미터는 배 타고 구경하는 환상적인 동굴이다. 영빈쌍문(迎賓雙門) 통과하여  자연석으로 다듬은 탐방로 따라가니, 10만 평방미터 달하는 거대한 동굴 석순들이 조명으로 신비롭다. 하이라이트는 용궁태청(龍宮太淸) 광장 정해신침이다. 높이 19미터의 석순인데, 백년에 3미리씩 자란다고 한다. 석순 중간이 잘룩했다가 그 위가 다시 굵어 보기 아찔한데, 1억위안(元) 보험에 들었다고 풍을 친다.
 하산길은 수직절벽에 인공 계단 달고, 중간에 정자까지 만들어, 인간이 거대한 산수화 속을 걸어내려오는 착각이 들게한다. 보봉호도 사실은 협곡을 막아 연출한 인공호다. 황룡동굴 안의 수로도 인공이다. 중국인들은 자연과 인공을 이처럼 운치있게 조화시키고 있다. 그들은 자연에 인공을 가미해 완벽을 만들고, 유네스코 인류 문화유산에 등록시켰다. 이걸 보며 "설악산 모노레일과 지리산댐 건설은 무조건 반대요" 하는 우리나라 쫌생이 환경운동가들 생각을 해보았다.

 십리화랑(十里畵廊)

 이튿날 아침은 사람 더 놀래키는 장관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해발 600까지 꼬불길을 차 타고 올라가니, 모노레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걸 타고 "십리화랑" 들어가니, 좌측 산이란 것이 사람이 그린 어떤 그림보다 산이 아름답다는 실증을 보여준다. 죽순처럼 치솟은 천하기봉(天下奇峰)이 십리 산수화 펼쳤다고 "십리화랑"이다. 조물주가 특별 제작한 샘풀같다.

 내 일찍이 "개자원화보(芥子園畵譜)"에 실린 기암절경을 상상의 그림이지 실젠 없는 것으로 여겨왔던 것이 오산이다. 수천척 깍아지른 침봉(針峰) 도립(倒立) 펼쳐진 곳에 안개 서린 그 모습이 실물이던 것이다. 거기서 디카로 아내 사진 찍으면서 간절히 빈 것은, '제발 귀국해서 사진이 탈없이 나왔으면..." 하는 거였다.

 

십리화랑 

 

 원가계(原家界)

 무릉원에서 가장 웅장한 풍경이 '원가계'란 가이드 설명 들으며 버스로 원가계 이동했다. 그러자 차창에 비치는 풍경이 완전 신선의 땅이다. 해발 1100미터 높이의 바위산들이 도끼로 찍어낸듯, 칼로 져며낸듯, 험준한 침봉 이루어 아득히 흰구름 속에 펼쳐져있다.
 산수화 기법에는 원래 석벽을 그리는 석벽법(石壁法), 고개와 주름을 그리는 파준법(坡皴法), 흐르는 물이나 폭포를 그리는 유천폭포법(流川瀑布法), 물과 구름 그리는 수운법(水雲法) 등 다양한 기법이 있다. 여기 산들은 그 모두를 갖췄으니, 필시 산수화 대가인 마원(馬遠)이나, 이사훈(李思訓), 왕숙명(王叔明) 등 제가(諸家)가 여기서 배워갔을 것이다.



 암봉이 얼마나 수직으로 치솟았으면 마지막 326미터를 엘리베타 타고 오르는가. 원래 잘생긴 미인은 아래 위 모두 완벽하지만, 올라보니 원가계가 그렇다. 산 아래도 감동이지만, 산 위도 절경이다. 밑에서 위로 쳐다보는 고원(高原)도 좋지만, 산 위에서 내려보는 심원(深遠)도 일품이다. 어쩌면 봉만(峰巒)의 상하 형세(形勢)가 그토록 기묘 준수한가.

 길은 산세를 충분히 감상할 수 있게 암벽을 도는데, 절경에는 전망대 있다. "미혼대(迷魂臺)"는 경치에 넋을 뺏긴다고 미혼대고, 천하제일교(天下第一橋)는 천하 제일 높은 석교(石橋)라고 그리 부른다. 어떤 대(臺)는 작은 사당에 향 피워놓고 소원을 빌고가라 하고, 어떤 대(臺)는 난간에 수만개 열쇄 주렁주렁 매달아놓고, 청춘남녀가 여기다 열쇄를 채우고 가면 그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천자산(天子山)

 장가계 서북쪽 천자산은 토가족 족장이 자칭 천자(天子)라고 한 데서 이름 유래한 곳이다. 3천5백 개 계단 끝 정상은 1920년까지 토가족 고위층만 오를 수 있는 신성한 곳이었다고 한다. 해발 2084미터 정상에 서니, 운무 속의 산봉우리들은 바다 위의 섬 같다.  천군만마를 호령하듯 안하(眼下)의 풍경 웅장하다.
 무릉원은 3억8천만년 전에 해저에서 솟아올라 억만년의 침수 붕괴로 협곡과 수려한 봉우리 생긴 것이다. 금강산, 설악산 수십개 합친 것처럼 광대한 규모로, 위가 평평한 것은 그랜드캐니언 비슷하나, 기암절경에 운무가 낀 모습은 모래와 돌로 이뤄진 그랜드캐니언 보다 한 차원 웃길이다. 

 전망대는 어필봉(御筆峰), 선녀산화(仙女散花) 기암 보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하룡(賀龍)장군 동상 옆에는 영지버섯, 수정, 나무뿌리 파는 기념품점과 돈 받고 기념사진 같이 찍어주는 토가족 복장 원주민 처녀가 있다. 내려오는 케이불카는 6인용 37대가 금방금방 연결되어 거대한 암봉을 스칠듯, 낙락장송 부딪힐듯, 스릴있게 케이불카 코스를 만들었는데, 설악산 권금성처럼 기다릴 필요가 없어 좋다.


 서안(西安)

 아침 비행기로 내린 서안은 비가 내린다. 관중평야 그 넓은 옥수수밭이 가을비에 젖고 있다.

"모처럼 왔는데, 비 때문에 관광은 좀 그렇겠다."
"아니다. 저 비 속에 관운장이 적토마 위에 높이 앉아 청룡언월도 치켜들고 달리는 모습 봐라. 그 뒤에 현덕을 호위한 장비 호랑이 수염과 날카로운 장팔사모도 보인다."

 나는 이렇게 응답했다.

 여기가 어디냐? 관중평야 아니냐? 위수(胃水)에서 낚시하시며 때 기다리던 우리 동이족(東夷族) 강태공 여상(呂尙)께서 문왕을 만난 곳이고, 시황제가 천하통일하고, 분서갱유(焚書坑儒)하고, 만리장성 축성한 도읍지고, 항우와 유방이 자웅을 겨룬 곳이고, 당 현종과 양귀비 로맨스가 꽃 핀 장소며, 이태백, 두보, 도연명 등 성당(盛唐) 천하문장이 부침한 곳이다. 서안은 돌맹이 하나도 유적이다.

 천년 13왕조의 도읍지 서안은 세계 4대 고도(古都)의 하나이다. 그 역사의 깊이와 폭이 로마나 아테네보다 깊다. 그러나 실크로드의 출발지 서안의 현주소는 스산하기 짝이 없다. 60년대 구로공단 모습이다. 휑한 아스팔트길 옆에 자전거포와 이발소 간판 보인다. 평균 월급은 1000원(元), 한화로 15만원이고, 30평아파트 임대료가 600원(元)이란다. "촌년이 아전서방 얻으면 갈 지 자 걸음 걷고, 육계장 아니면 밥을 안먹는다."는 식으로 한국인이 지금 여기 와서 거드럼 피우는 건 돈 때문이다.

 성곽 남문가 호텔에 짐 풀고, "비림(婢林)"에 가서 왕유, 왕희지, 안진경, 구양순 친필 비석 보고, 책으로 엮은 탑본(榻本)도 구경했다. 서예가 누구나 탐내는 왕휘지 "난정기(蘭亭記)"를 한참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 260원(元) 호가하는 공자님 전신상 탑본을 한참 흥정해 30원(元)에 샀다.
  

 
 그 다음에 당현종의 로맨스로 유명한 여산(驪山) 화청지(華淸池) 온천에서, 양귀비가 목욕한 해당탕(海棠湯) 40도 온천물에 손도 씻어보고, 양귀비가 즐겨먹은 달콤한 석류도 사먹었다. 난중에 자결한 양귀비 무덤은 서안 70K 지점에 있는데, 그 무덤의 흙을 얼굴에 바르면 미인이 된다는 속설 때문에 관광객이 하도 흙을 파가는 바람에 지금 돌로 덮어버렸다고 한다.

 끝으로 세계 8대 불가사의라는 진시황의 병마용을 구경했다. 황릉 지하에 망루와 실물대의 병사 토용을 묻어놓았다. 병마용은 죄수 70만명을 동원하여 40년간 만들었는데, 도굴 방지를 위해 자동으로 발사되는 활을 장치하고, 능을 만든 장인들과 후궁을 묻어버린 지하궁전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기 무슨 큰 구경거리 났는가. 끔찍한 무덤 속을 부산하게 다니는 시간에 나는 홀로 벤치에 앉아 달콤한 석류를 먹으며 백락천의 "장한가"(長恨歌) 한구절 음미했다.
 

 구름같은 귀밑머리, 꽃같은 얼굴, 머리의 금비녀는 걸음마다 흔들리고,
 부용무뉘 방장 드리운 따뜻한 방에서 봄밤을 보내었네.

 ( 2003.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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