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근참기(謹參記)
북경에서 연변 가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대륙은 산도 강도 호수도 많다. 애재라! 이 넓은 땅 주인이 누구였던가? 우리는 원래 구환족(九桓族), 구한족(九韓族)이라 불리웠다. 상고(上古)에 바이칼 호수 동쪽 천하(天河) 혹은 천해(天海)로 불리던 흑룡강(黑龍江)으로부터 안 늙고 안 죽게하는 풀과 약이 많은 백두산(白頭山)까지 북만주 일대에 살았다. 백두산은 불함산(不咸山), 태백산(太白山), 천산(天山)으로 불렀고, 한글로 한밝산이라 불렀다. '환'이란 환하다 밝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늘과 태양을 숭배하는 '하늘족' '태양족' 후예다. 나라는 한국(韓國), 환국(桓國), 천국(天國)이라 불렀고, 남북으로 5만리 동서로 2만리 되는 대제국이었다. 지금 3천리 금수강산 열 배나 넘었다.
연길(延吉)
연길에 내리니, 거기 환국(桓國) 후예가 살고 있다. 인구 30만 태반이 조선족이다. 길가 간판도 한글이고, 말도 조선말이고, 골프장 광고 입간판도 박세리 라운딩 사진이다.
거리엔 청노새 구루마에 턱수염 영감이 회초리 들고 마차 끌고, 대우 프린스 자동차 보인다. 양말 없이 때묻은 신발 신은 모습 남미 잉카 후예 연상시킨다.
낡은 나무 판자로 가린 단층집이 많고, '문화주택'으로 불리는 아파트도 있다. 아파트는 우리 돈 2천만원이면 33평을 살 수 있다. 단층집 화장실은 사통팔달이라 주변이 다 보이는 문 없는 화장실 이다.
가로에 심어놓은 붉고 푸른 당국화가 형언할 수 없는 감회를 일으킨다. 과꽃으로도 불리는 그 꽃은 일제가 우리 민족을 북간도로 이주시킬 때, 남부여대(男負女戴)하고 떠난 사람 짐 속에 묻어온 애닲은 향수(鄕愁)의 꽃이 아닐까?
세월이 흘러 그들의 언어는 일부 우리와 다르다. 우리가 쓰는 톨게이트는 '도로수금소'요, 턴넬은 '차 굴'이고, 소쎄이지는 '고기순대'다. 장갑은 '손 싸개'고, 브라자는 '젖 싸개'고, 전등은 '불 알', 형광등은 '긴 불 알', 가로등은 '선 불 알', 샨데리아는 '떼 불 알'이다.
이도백하(二道白河) 가는 길
새벽에 백두산으로 떠나니, 길은 끝없는 구릉과 평원 지나간다. 콩과 옥수수밭 끝이 없다. 해발 7백 고원(高原)의 코스모스, 백일홍, 당국화 꽃빛 유난히 곱다. '명월호' 이르니 팔월 말인데 여긴 벌써 가을이다. 이북에서 사스래나무라 부르는 하얀 자작나무가 호반을 노랗게 물들였다.
두 시간 걸려 이도백하 닿으니, '일송정 푸른 솔은 홀로 늙어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선구자> 노래 떠오른다. 독립군 김좌진 장군이 활약한 혜란강은 백두산 미인송(美人松=beauty pine) 벌목한 뗏목이 줄지어 흘러가던 곳이다. 양안에 수십개 온천이 있어 김이 무럭무럭 나는데, 키 30미터 되는 미인송 끝없는 솔 숲 인상적이다.
여기가 백두산 발치다. 시베리아 호랑이 고향이며, 흑곰과 표범 담비 시라소니 사슴 서식지다. 이 광활한 임해(林海)에 야생식물 2540종 야생동물 1500종이 있다. 거기 자생하는 산삼, 장뇌 등 약초를 휴게소마다 팔고있다. 물어보니 값도 싸 일행은 산삼 두어 뿌리씩 즉석 몸보신 했다. 차가버섯, 상황버섯, 우황청심환, 자수(刺繡) 파는 '만경대 전시관' 북한 아가씨는 얼굴도 이쁘고, 말 시켜보니 북한 사투리 목청이 곱기도 하다.
장백폭포
버스가 다섯 시간 걸려 도착한 곳이 장백폭포다. 여기 해발 2200 지점부터 완만하던 오름 끝나고, 산이 적갈색 화산석 급경사로 치솟았다.
통제소에서 입산 티켓 끊고 주차장에 차 세우니, 멀리 웅대한 봉우리 사이에 흰 명주필 걸어놓은듯 은하수처럼 하얗게 날아떨어지는 물줄기가 있다. 장백폭포다. 높이 68미터 백두산 16개 폭포 중에서 낙차가 가장 큰 저 폭포의 물은 천지(天池)에서 흘러온 티 한 점 없이 맑은 천상수(天上水)다. 이 물이 혜란강, 도문강, 송화강을 흐르며 만주벌판 적셨으니,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선조들은 이 천상수(天上水)를 마시고 살던 민족이다.
제국(帝國)의 역사
기원 전 2333년 환인(桓因) 임금이 환웅(桓雄)에게 무리 3천명과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나라를 세우라 명하시어, 환웅이 나라를 연 곳이 백두산 검벌 신단수(神檀樹) 아래다. 이곳을 신시(神市) 혹은 아사달(阿斯達)로 부른다.
환웅이 곰을 토템으로 하는 부족 여인과 혼인하여 아들을 낳으니 단군(檀君)이다. 나라 이름을 '배달' 혹은 '진단(震旦)'이라 했는데, 후에 수도를 송화강 당장(唐莊)에 옮겨 평양(平壤)이라 부르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했다. 그 후 동명성왕이 남하하여 고구려를 세우니, 수도는 대동강변 평양이다.
이후 고려는 남하하여 수도를 개성으로 삼았고, 조선은 남하하여 수도를 한양으로 삼았다. 이제 우리는 정치인에게 속아 행정수도를 대전권으로 옮기니, 이꼴로 어찌 우리가 감히 백두산족 후예라고 자칭할 수 있는가?
아직도 백두산은 화산 폭발 조짐이 있는 산이다. 용암 열기로 주황색 녹색 천화 일어난 바위 사이로 흐르는 온천수는 계란을 넣으면 금방 익는다. 땅은 아직 식지 않았는데, 사람만 식었던가.
천지(天池)
일행이 찦차 11대에 분승해 산을 오르니, 정상까지 화강암 깐 포장길이고, 그 옆의 초원은 제 철 되면 물매화, 산용담, 범의 꼬리, 노란 물봉선, 분홍 바늘꽃, 바위 구절초, 구름 패랭이 야생화 천국 된다는 곳이다.
중국인 운전사가 난폭하게 모는 찦차로 꼬불꼬불한 산길 줄지어 오르니, 시계(視界)가 좋아 백두산 웅장한 모습 한눈에 보인다. 발 아래 수백리 개마고원 보이고, 풍운조화(風雲造化) 무쌍한 흰구름은 산을 휘감고 있다. 이대로 가면 천지도 볼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 순간 짙은 운무가 우릴 덮는다.
'신쿠러!'(辛苦了) 중국 운전사 보고 수고했단 말 던지고 차에서 내리자, 보이는 건 농무(濃霧)요, 닿는건 세찬 바람 이다. 천지는 온데간데 없고 안개 밖에 안보인다.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끈금없이 정훈희 노래만 떠오른다. 일행에게 허용된 시간은 30분, 부랴부랴 등소평 글씨 '천지'(天池) 앞에서 증명사진 찍고 하산했다.
산을 내려와 '이게 천지서 산 백두산 돌이야!' 다들 백두산 화산석을 기념이라고 자랑하는데, 산이 작난을 치나? 돌아보니 백두산은 누굴 놀리듯 멀쩡하게 개여였다.
숲 속의 4층짜리 하얀 대우호텔 룸에서 밤 10시에 백두산 온천수로 씻고 잠들었다. 새벽 5시에 깨었더니 여명의 자작나무 숲에 바람이 지나가고 있다. 가져간 백두산에 관한 책 꺼내 잠시 읽었다
육당은 '백두산 관참기'에서 환웅의 신시(神市) 위치는 삼지(三池)와 천평(天坪) 부근이라고 추단했다.
'삼지는 둘레 칠팔리나 되는 물이 잠자듯 고요하고, 물가는 숲으로 쌓였는데, 화산석과 백사장이 정원처럼 운치있고 웅장하며, 물은 보기에 찬 것 같으나 평균 20도의 따뜻한 온천물이다. 천평은 신국(神國)의 옛터로 신령스런 백두산을 등진 산 위에 펼쳐진 바다처럼 넓은 평야로서 원시국가 발생지로 가장 적절하며, 이곳이 단군의 탄생지요 우리나라의 출발점이다.'
라 하였다.
천지 2차등정
아침에 일어나니, 일행들 백두산에 와서 천지 못보고 간다고 불만이 많다. '두만강 용정 가는 계획 취소하고, 천지 2차 등정하자.' 새벽부터 전화질하여 목소리 높인 건 조선일보 국장 출신 정모, '연애도 한번 거절한다고 그만두면 안되는거야. 두번 이상 트라이해야지.' 두번 주장한 건 육군 준장 이모다. 이번 환갑 기념 백두산 여행은 동기회장인 내가 사업하는 친구한테 5천만원 기증 받아 진행했다. 남녀 일행 60명 중 몇사람 커피숍에 불러 의논하니, 일사천리 가자고 결정난다. 그래 또한번 찦차 불러 산 올라가니, 이번에는 거기 2750미터 장군봉이 허리에 흰구름 두르고 우릴 반겨주고, 천지는 신비로운 비취빛 물결 옆에 내려와보라고 손짓한다.
천지는 해발 2194미터 고공에 매단 동서 3.3K 남북 4.4K 평균수심 204미터 저수량 20억 입방미터 물을 가둔 천궁의 거울같다. 천지는 기후가 순식간에 돌변하여 보였다 말았다 하여 신비롭기도 하지만, 물이 하늘에서 내려온 빗물과 지하에서 솟구친 용천수(湧泉水) 합쳐진 상서로운 물이다. 천지인(天地人) 하나 주장하는 동이족(東夷族) 사상과 일치하는 물이다.
여기가 동북아 최고봉(最高峰)이다. 백두산은 낭림산 금강산 태백산 속리산 지리산으로 뻗어내린 한반도 산맥의 조종(祖宗)이다. 천문봉(天文峰)은 회백색 구멍 많은 화산 부석과 검은 화산석으로 이뤄져 있고, 천지 에워싼 주변의 16개 외륜산을 볼 수 있다. 이것이 태초에 불 뿜은 백두산의 웅장한 분화(噴火) 흔적이다. 우리 5천만 동포 모두 여기 웅혼한 기백 보아야 한다.
일행 중 천지(天池)의 기 받는다고 천지를 응시하며 조용히 서서 심호홉 하는 친구도 있었다. 기념사진 찍느라고 분주한 친구도 있다. 나는 이참에 아침에 읽은 역사 기록을 되새겨 보았다.
'아득한 옛날, 배달나라에 나무를 얽어 집 짓기를 가르쳐 짐승들과 독벌레를 피하게 한 분은 유소씨(有巢氏)고, 불로 음식 익혀 먹는 법과 그릇과 항아리 굽는 법을 가르쳐 준 분은 수인씨(燧人氏)다. 태호복희(太昊伏羲)는 송하강에서 괘도(掛圖)를 얻어 8괘(掛)를 만들었고, 맥족(貊族) 출신의 염제신농(炎帝神農)은 성이 강(姜)씨인데, 나무를 다듬고 구부려서 쟁기와 호미를 만들어 '농사의 신'으로 추앙된 분이다. 치우(蚩尤)는 최초로 갑옷과 창칼 등 병기를 만들었고, 치우의 후손 제(齊) 환공(桓公)은 한때 중원의 패권을 잡기도 했다.
순임금은 동이족 출신이고, '육도삼략'(六韜三略)을 만든 강태공(姜太公) 여상(呂尙)도 동이족 출신이고, 심지어 '춘추'(春秋)를 쓴 공자(公子) 역시 동이족 후손이라는 설이 있고,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리던 발해는 당에 보내는 국서를 신지문자(神誌文字)로 썼는데, 지금은 인멸되었지만 신지문자는 단군의 신하 신지씨가 만든 우리 고유의 문자다.'
이 모든 기록은 중국 고문서에 남아있다. 그런데 그 후손들은 지금 어떤가. 국토 중간에 3.8선이란 걸 그어놓고 형제들은 총칼을 들고 서로 노려보고 있다. 신비로운 천지를 내려다보면서, 흰구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드넓은 개마고원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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