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제천 지나 태백산 가는 길은 하늘로 올라간다.
솔고개서 보니 구절양장(九折羊腸) 꼬부라진 고개를 돌며 물은 소리치며 아래로 흘러내려 온다.
'소나무와 소나무,잣나무와 잣나무,바위와 바위 사이로 휘돌아.
물과 물,산과 산이 처처에 절경이로다.'
(松松栢栢岩岩廻 水水山山處處奇)
연화산 태백산 근처는 김삿갓 싯귀같은 산수화다.
태백에 도착하니 날씨는 싸늘한데 고원도시에 강물은 흐르고,탄광촌 옛이름 새롭건만 아파트촌으로 변했다.식당은 초라하나 내놓은 고산지대 한우고기 맛이 담백 고소해 덩달아 '참이슬' 맛까지 일품이다.
흥에 겨워 벽에다 '진주중고 933 태백산 등정 기념'이라고 일필휘지 명필 갈긴 것은 정국장이요,잘 익은 매실주와 포도주 꺼내 동행들 입맛 살린 것은 이사장이다.
권커니 자커니 마시고 민박촌 뜨끈뜨끈한 장판 위에 사지가 녹신녹신하게 누웠는데,문득 부인들 방에서 호출이 온다.창국이 사장만 당번으로 남겨놓고 불이나게 달려가니,오호라!거기 저녁 세수하고 선녀처럼 아름다운 친구 부인들이 웃으며 반겨준다.
'댁 서방님들은 다 태백시 캬바레에 가버렸읍니다.'
거짓 농담하고 꽃 본 나비처럼 선녀들과 짝 지어 앉아 윷놀이 하는데,판세가 잘나가자 밤 깊어 한 선녀가 치맛자락 살풋 걷어올리고 일어나 캉캉춤까지 춘다.나이 60 앞두니 겁도 없다.'팁은 안받는다'고 웃기면서 여인들은 남편 친구들 줌치돈 만원씩 뜯어갔다.
아침에 일어나니 멀쩡한 4월초에 눈이 내린다.
희한(稀罕)한 것은 태백산 신령님께서 백설로 건곤(乾坤)을 은백 천지로 만들어 놓으신 배려다.여기는 태고적부터 산정상에 천제단 쌓아놓고 하늘에 기도한 신성한 땅이니,눈 맞으며 한번 올라보라는 뜻이시다.
해발 850 유일사 매표소서 출발하니,눈은 원시림에 쌓였다가 바람에 비산(飛散)했다가 하면서 고산 설경을 보여주는데,차그운 산새들은 찌리리 찌리릭짹 은방울 소리 숲속에서 낸다.반도(半島)에 하고많은 산 중에 태백은 왜 유독 신령스런 산일까?
조정래의 '태백산'처럼 민족의 한(恨) 서린 산이라 그럴까?백두대간의 척추라서 그럴까?뽀도독 뽀도독 눈쌓인 빙판길에서 문득 심리학을 전공하고 명산대찰 찾다가 끝내 무속인이 된 한 여인 모습을 그려보았다.그도 기도빨 센 태백산엘 많이 올랐을 것이다.40년 전 그는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어떻게 변해 살고있을까?
유명한 주목군락지를 지나가니 눈바람이 작난 아니다.
입으로 귀로 뺨으로 불어닥친 눈은 사람을 설화(雪花)로 만들어놓는다.주목은 폭설 맞고 더 싱싱한데 사람은 조금만 서있어도 얼어붙는다.
그런데 이웃 동네 마실 나온 차림의 영감들 보소.강풍에 찢긴 우의 걸친 박사장은 '황야의 무법자' 같고,전문가들 웃기려고 작정한 일행 모두 아이젠 없는 것은 그렇다치고,동내의 없이 온 하사장은 누가 하산 제의를 하나 눈만 굴린다.
산은 반드시 정상 올라가 '야호!'를 해야 되는가?
천제단 반쯤 올라간 고개쉼터의 더더욱 살 에이는 강풍과 폭설을 보고,일행은 우왕좌왕 의논 분분하더니,
'젊은이도 아니고 산에서 체온 급강하하면 무리다.'
누가 입 떼자말자 얼씨구나 지화자 핑계삼아 하산한다.
몸 가벼운 부인들은 여그에서 돌아섬을 아쉬워 했으나,물장사 삼년에 엉뎅이짓 남듯이 노회(老獪)한 영감들 입심만은 남아있다.
'끝까지 않가고 남겨둬야 다음에 와서 볼거리가 많지.'
김사장 부부 포함한 정예 9명은 천제단에 올라가 증명사진 찍었지만,나머지 영감님들 중도하차 하는덴 일가견 있다.미끄러지고 넘어지고 그러나 하나님이 보호하사 전원 상처없이 하산하여 재미로 스키탄 양 제자랑할 즈음,산은 금방 청천 하늘 아래 백설 덮힌 한수(寒樹)의 아름다움 보여주고 바람은 언제 그랬냐고 잠잠하다.
'에라 모르겠다'
멋쩍은 김에 산골 감자전과 노란 옥수수 동동주에 포커판 벌이다가 청령포 둘러서 강물을 따라오니,때는 춘삼월 호시절.
동강 푸른 물구비마다 벚꽃 몽오리가 터질듯 부풀어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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