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봉을 오르며

지리산 천왕봉 등정기

김현거사 2017. 11. 26. 09:02

    

 지리산 천왕봉 등정기

 

 지리산 천왕봉은 딱 세번 올랐다. 처음은 1962년 고2 때 여름이고, 두번째는 63년 대학 합격한 봄이고, 세번째는 그 50년 후인 2013년 가을이다.

 첫번째 갈 때는  지정 등산로가 없을 뿐 아니라 표시도 없던 때다. 등산복 등산화도 특별히 없었고, 신발은 군화고, 옷은 군복이었다. 그때 지리산에 곰과 멧돼지가 많아, 철수와 나 두 사람은 호신용 닛뽄도와 손도끼를 가지고 갔다. 하나는 사무라이, 하나는 바이킹 행세를 했다. 대원사 쪽에서 올라가 절벽 밑에 모닥불 피우고 비박하고 천왕봉 올랐는데 어느 쪽으로 하산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두번째는 한겨울에 가서 얼어죽다가 살아왔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진주 밀림다방에 나갔다가 대학 낙방한 친구 셋을 만났다. 그들은 죽기살기로 천왕봉 등정 하자고 주장했다. 그때 내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따라간 건 혼자 대학 합격했다고 꽁무니 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법계사 코스로  갔는데, 눈에 덮혀 길은 보이지 않았다. 야전잠바와 군화 차림인데, 눈 속을 몇 시간 헤매다보니, 장갑과 신발은 물이 스며들어 얼어붙었고, 해 지자 기온이 급격히 내려갔다. 천지는 칠흑처럼 어두운데 찬바람은 세차게 귓전을 때리기 시작했다. 체온은 싸늘히 식어갔고, 우리는 금방 진부령 황태처럼 될 뻔 했다. 그때 산 속에 빤짝이는 불빛 하나가 보였다. 법계사 보살님이 조난자가 있을까봐 밤에 등불로 산을 비쳐주셨던 것이다.

 이렇게 살아난 우리는 설설 끓는 장판에 녹작지근 엉덩이 지지고, 이튿날 천왕봉 올랐다. 정상엔 눈이 사람 키보다 높이 쌓여 있고, 눈 위에 곰 발자국이 이리저리 나 있었다. 그때 지금 진주서 토건업하는 류창환이 유난한 고집을 부렸다. 이왕 온 김에 구례 쪽으로 하산하자는데, 그쪽은 음지라 눈이 더 많이 쌓인 곳이다. 나와 한탁이, 왕년에 LG 씨름 감독한 중근이가 아무리 말려도 우겼다. 그리고 부득부득 혼자 그쪽으로 가더니 그만 쏙 눈 속에 빠져버린다. 얼굴은 뵈질 않고 위로 내민 두 손만 보였다. 그걸 소나무 가지를 꺽어 잡게해 끌어올렸으니, 지금 생각해도 웃음 나온다.

 

 그리고 후딱 50년 세월 흐른 후, 마지막 천왕봉 산행이 이 산행이다.

 나이 칠십 넘자 우리는 천왕봉 등정은 포기하고 살았다. 만용 부리다간 큰코 다칠 일만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은 우연히 일어난다. 시카코서 돌아온 혜근이란 친구가 두류동에 움막을 짓고 살았다. 거기 몇이 찾아가 고로쇠 물 마시고 인삼과 오가피 심곤 했는데, 하루는 그가 천왕봉 코스 중 제일 짧은 법계사 코스가 바로 옆 매표소로 통한다는 것이다. 법계사라면 내가 50년 전 죽다 살아난 곳이다. 그 이야길 했더니 전 육군 소장 이종규, 명창 안숙선 부군 최상호가 그럼 법계사만 한번 가보고 오면 어떨가 하고 발동을 건다. 마침 학습원 가는 7시20분 셔틀버스가 시동을 걸어놓고 있었다. 그 바람에 간 것이다.

 

 사실 세 사람은 궂이 법계사가 목표는 아니고, 신선한 피톤치트나 마시며 산보 삼아 가다가 힘들면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래 계곡 만나자 우선 내려가 물가 바위에 누워보았다. 웅장한 물소리 싫컷 듣는 것도 산에 온 이유다.

 

 

 그 다음에 만산홍엽이 소소히 떨어지는 숲 속에 앉아 대금 소리 들었다. 사방에 떨어지는 낙엽이 청아하고 맑은 청성곡과 잘 어울린다. 

 

 

  일단 우리는 등산에 대해서 이런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산행은 도시인의 출근길처럼 바쁘게 서둘러서는 않된다. 천천히 매우 천천히 하는 것이 의미있다. 산행은 급하게 치달리는 건 아무 의미가 없고, 잠시 자연 속에 몸을 담그는 것이 중요하다. 물을 만나면 하루 종일 물가에 놀아도 후회하지 않아야 한다. 바위 만나면 반드시 그 위에 들어눕거나 앉아서 구름을 보아야 한다. 약수 만나면 반드시 한모금 마셔야 한다. 폭포 만나면 반드시 보따리를 풀고 시주(詩酒)의 운치 즐겨야 한다. 귀는 반드시 물소리, 바람소리 들어야 하고, 눈은 반드시 청산과 흰구름 만나야 하고, 코는 반드시 야생화나 더덕 향기 맡아야 한다.

 산에 가면 나무가 많은데 나무 감상하는 몇가지 원칙이 있다. 먼저 뿌리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천인단애에 솟아, 암석에 끼이고 빗물에 씻긴 나무가 노목이 되면, 흔히 뿌리를 노출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세상을 벗어난 선인이 여윌대로 여위고 나이가 늙어서, 근골이 울퉁불퉁 불거져 나온 것 같은 운치가 있다. 그 다음 수형을 감상해야 한다. 낭떨어지에 난 것, 돌 위에 난 것, 비스듬히 굽어 바람  타고 다니는 선인(仙人)같은 것, 물결 밟고 다니는 신녀(神女)같은 나무를 하나하나 득의(得意)하여 구경하는 것이 좋다.

 

 이런 사상으로 그 날 산에 간 우리의 등산 속도는 아마 지리산 생긴 이래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린 신기록 세웠을 것이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그것이 우리 분위기 였다. 지나가는 등산객들은 우릴 보고 속으로 '저 노인네들 아마 법계사 올라가긴 어렵겠군.'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도 '어르신 파이팅!' 하면서 손 흔들어 준 것은 모든 등산객이 산에 오면 다 착해지기 때문이다. 어쨌던 이렇게 우릴 추월하여 지나간 등산팀 숫자는 아마 지리산 생긴 유사 이래 가장 많은 숫자였을 것이다. 이들은 나중에 천왕봉 밑에서 우릴 다시 만났는데, 우리 거북이들이 거기까지 올라온 것이 기특하여, 손만 흔든 것이 아니라 아예 기립박수까지 쳐주었다. 나는 산에 가서 그렇게 많은 박수 받기는 그것이 처음이다.

 

 그런데 노닥거리며 가면 힘도 않든다. 어쩌다 그만 법계사에 닿고 말았는데, 법계사 일주문 보니 감회가 앞선다. 법계사는 50년 전 눈 속에서 죽다 산 그 암자요. 이장군도 60년대 사관생도 시절 종주한 추억의 암자다. 보살님 소식을 물어보았다. 바위 위 3층 탑은 오뚝하건만, 6.25 후 여인의 몸으로 혼자 절을 가꾸신 노보살님 소식은 알 수 없었다.

 

       사진 우측 이종규 장군

 

  법계사서 천왕봉 구간은 바위가 많고, 거의 70도 각도 급경사라, 사람들은 여길 '깔딱고개'라 부른다. 그러나 여기를 아무 생각없이 무작정 용을 쓰며 오르기만 해서는 않된다. 여기 돌계단은 마고선녀(麻姑仙女) 신전 올라가는 신성한 계단이다. 9층탑 참배하듯 경건한 마음으로 올라가야 한다. 만장같은 바위에 합장하며 천년 세월을 느껴봐도 좋고, 바위의 청태(靑苔)에 피어난 가날픈 풀꽃에서 선녀의 손길을 느껴봐도 좋다.

 어쨌던 하나 반드시 유념할 것 있으니, 급경사 그 바위돌의 석질이다. 자세히 보면 그건 모두 청석과 오석이다. 청석과 오석은 귀한 돌로, 연마하면 보석처럼 광택이 난다. 법화경에는, 금, 은, 파리, 마노, 유리, 산호,거거(車渠)를 칠보라 부른다. 청석 오석도 칠보와 다름없다. 영국, 덴마크, 스페인, 모르코 왕궁을 가보면 안다. 그 어디도 그런 세련된 푸른 청석이나 검은 오석으로 만든 궁전은 없다. 마고선녀는 아마 머리에 초록 비취 비녀를 꽂고, 손에 은가락지를 끼고, 달빛 아래 궁전을 거닐었을 것이다. 마고선녀 같은 그런 세련된 취향은 없다.

 

 천왕봉 정상은 안개가 가득했다. 선녀님의 의중이 짐작되었다. 산도 여인처럼 안개로 얼굴을 가려야  신비로운 법이다. 안개나 아지랑이처럼 신비로운 것은 없다. 산에 백운이 층을 이루어 가로막고, 구름이 열린 곳에 창천(蒼天)이 나타난 모습을 운산(雲山)이라 하고, 나무가지 사이에 안개 덮힌 것을 운초(雲梢)라 한다. 선녀는 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선녀님 뜻이 이러신데 어쩔 것인가. 기쁜 마음으로 안개 낀 정상에서 기념사진 찍었다.

 

 

  하신길도 좋았다. 천왕봉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는 한없이 웅장하다. 안개 덮힌 산들은 모두 천왕봉 발 아래 국궁배례하고 있다. 마고선녀는 구름 위에 분재원 채렸다. 천왕봉 가파른 바위 틈은 수형이 멋진 철쭉나무 천지다. 선녀께서 직접 물 주고 가꾼 분재다. 그렇게 신령스러울 수 없다. 고산 철쭉은 연분홍 꽃이 핀다. 마고는 수줍은 산골 처녀 같은 연분홍 꽃빛을 애끼시는 모양이다. 땅딸보 구상나무도 그리 굳세고 푸를 수 없다. 산봉우리 하얗게 덮고 올라오는 운해 그리 청초할 수 없다. 한계단 내려와서 철쭉 보고, 한계단 내려와서 구름 보고, 한계단 내려와서 안개와 바위 감상했다.

 민초를 위해 골짝골짝 영험한 약초와 산나물을 키워놓으신 마고할머니다. 그 품에서 우리는 사나이로 자랐다. 동행한 이군은 장군 진급했을 때, 하동군수가 인근 세 곳 면장을 대동하고, 총무과장 시켜 돼지를 두 마리 잡고 축하연 베풀어 주었다고 한다. 이 장군 뿐인가. 하동, 산청, 안의, 거창에서 장관, 국회의원, 대학총장 줄줄이 나왔다. 

 63년에 내가 지리산 눈밭에서 동사하지 않은 건 마고선녀 덕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두 손 모아 감사드리고 산을 내려왔는데, 그 참 신기하다. 법계사 천왕봉 코스는 보통 등산객 4시간 코스이다. 그런데 10시간 걸려 내려온 우리가 학습원 도착하니 마지막 6시 셔틀버스가 기특하게 우릴 딱 기다리고 있다. 기록적 느림보 산행이었지만, 수미일관 원더풀한 산행이었다.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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