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심매도

선암사 매화는 아직 피지 않았더라.

김현거사 2017. 10. 13. 20:36

선암사 매화는 아직 피지 않았더라.

 

겨울이 길면 봄이 기다려지는 것이다.

서울은 아직 쌀쌀한데 선암사 고매(古梅)가 꽃 피었다는 소문이다.

폭설 산불 대통령탄핵 등 뭔가 어수선하지만 이럴 때 훌쩍 떨치고

떠나는 것도 괜찮다.

13일 잠실에서 출발하여 천안 논산을 거쳐 남원 도착하니

봄은 거기 와있다.추어탕 한그릇 하고 오작교에 올라서니,

노란 산수유 꽃망울 이미 터졌고,팔뚝만한 잉어떼 발 밑에

헤엄쳐 다니는 광한루 연못은 한강과 다르다.물빛 봄기운 머금어

부드럽고,훈풍 속의 대숲 푸른 빛 싱그럽다.고목은

낙목한천(落木寒天)이지만,훤히 보이는 맑은 물속은 갓 부화된

잉어 치어들이 떼지어 다닌다.

구례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야생화 압화들을 전시하고 있다.

춘난 삼지구엽초 취나물 현호색 원추리 앵초 등이 붉고 푸른

원색을 그대로 유지한채 뿌리까지 달고있어 사실감이

허난설헌 화조도를 무색케한다.

섬진강변은 산수유와 매화꽃 피었지만 아직 이르고,산은 갈색이다.

본격 꽃구경은 벚꽃 피는 4월이 될듯하다.

오동도 동백숲 한바퀴 둘러보며 갯바람 쐬고,수줍은 동백꽃 따라

돌산 향일암으로 달리니,밭은 시퍼런 갓 일색이고,바다는 미역

양식하는 하얀 스티로폴 일색이다.

풍란 채취하지 말라는 팻말 보며 향일암 오른다.가파른 화강암

돌계단과 하늘 가린 암석 아래 길 통과하니,암자는 바위와 고목과

짙푸른 동백숲에 자리잡아 피안이듯 아름답다.석간수로 목 축이고

천천히 경내 돌아보니,향일암은 몇번을 찾아와도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자연 암석을 그대로 살리면서 그 아래에 그런 운치있는 길을 만든

사람은 도대채 누구일까?처마에 매달린 풍경소리는 고요한 천상의

음률이요,발아래 푸른 바다 떠있는 섬은 피안의 환상이다.한점

실수없이 자연과 절 조경을 완성시킨 신기(神技)에 감탄하며

향냄새 맡으며 그 속을 거닐자 속세가 한없이 멀어진다.

이튿날 아침에 송광사를 찾아갔다.법보사찰(法寶寺刹) 해인사,

불보사찰(佛寶寺刹) 통도사와 더불어 승보사찰(僧寶寺刹)로

불리는,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 중 하나다.보조

국사 이래 수초 성총 등 선교(禪敎) 겸전(兼全)의 일대종사를

수많이 배출했고,구산(九山)스님이 참선 배우려는 미국 청년들

가리킨 곳이다. 가뭄에 말라붙은 주암댐 돌아서 아침 안개에

가리운 계곡길 올라가니,높이 치솟은 측백나무 삼나무 숲향기가

코 끝에 닿고,청정 계류(溪流) 위에 놓인 무지개다리의

우화각(羽化閣)이 아름답다.박물관 종고루 명부전 응향각을

둘러보고 대웅보전 배관(拜觀)하면서 주변 산세가 퍽 아름답다는

느낌받았다. 이곳은 산속이지만,주변을 둘러싼 산세가 수려하고,

맑은 물 풍부하고 햇볕 잘 들어 용맥(龍脈)의 지기(地氣)가 온화하다.

풍수로 '장군대좌형'이라고 하나 그것은 전문가 이야기고,내 보기엔

주산(主山) 조계산(曹溪山)은 노령산맥 지맥이 순천만에 잦아드는

곳이니,이 자리는 한송이 연꽃지형이다.

본성이 원래 고요함을 좋아해 푸른 산에 살거니.세월은 흘러

귀밑털은 흰데,사는 것은 한 벌 누더기 뿐이네.

비 맞으며 솔묘종 옮기고 구름에 쌓여 대사립문 닫나니,산꽃은

수놓은 장막보다 아름답고,뜰 앞 잣나무는 비단휘장 같네.

고요히 향로에서 피는 연기를 마주하고 한가히 돌다리에 핀 살찐

이끼를 바라보나니,아무도 내게 와서 무엇을 묻지말라.나는

일찍부터 세상과 맞지 않았으니.

조계(曹溪) 제6세(世) 맥을 이은 원감(圓鑑)스님의 이 시 온화하고

아름다운 시지,어디가 장군대좌형 시운인가?

날씨 화창하여 서울서 입고간 겉옷을 벗고놓고,낙안(樂安)읍성

민속마을 평상에 앉아 동동주 마셨다.돌담도 그렇고 오래된

감나무도 그렇고,초가지붕과 측간 모두 사라진 옛모습이다.

'이리 오너라!'

주모와 대화를 옛처럼 한번 바꾸어 해보고싶은 충동이 인다.

입구서 파는 티켓을 '입장료'라 하지말고 '타임머신 승차권'이라고

바꾸면 좋겠다.

해발 884미터 조계산 동쪽 자락 선암사를 찾아갔다.수령 수백년 된

상수리나무 단풍나무는 울창하나 아직 나목(裸木) 상태고 계곡물만

수정처럼 맑다.국내에서 가장 예쁜 돌다리 '승선교' 지나니

고로쇠나무는 수액 뽑느라 링겔병 같은걸 주렁주렁 달고있다.

신선 하강의 뜻 가진 강선루(降仙樓)와 삼인당(三印塘) 연못과

대웅전 참배한 후,선암사 홍매(紅梅)를 여기저기 찾아다녔으나,

아뿔싸! 법당 뒤에 이끼 끼고 꾸불꾸불 용트림한 나무 수형을 보니

수백년 된 그 나무가 유명한 선암사 홍매 분명하긴한데,봉오리는

필똥말똥 겨우 붉은 빛만 머금었다.

'저 꽃봉오리를 사람으로 치면 몇 살로 보나?'

중국서 사업하다 돌아온 김사장에게 물어봤다.

'17세 처녀?' '아니.15세 소녀같다.'

법당 뒤를 천천히 도니 고(高)품격 고(古)매화 등걸이 줄줄이 늘어섰다.

수형 잘 잡힌 수백년 된 희귀철쭉도 있고,범상치않게 생긴 초부용(草芙蓉)

도 있어,꽃시절 도래하면 그 향기 그 모습 작난 아니겠다.

'누가 심었을까?'

선암사 매화,아직은 만개(滿開) 아니지만,열흘 후면 향내 천지 진동하것다.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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