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심매도

서해안의 여름휴가

김현거사 2017. 10. 13. 20:43

서해안 여행


인생의 행복한 일 중 하나가 휴가다.그 중 지도 펴놓고 몇번 도로로 어디 가 뭘 보고 뭘 먹느냐 계획할 때가 가장 즐겁다.


그해 7월23일 아침 6시 우리는 떠났다.

과천 수원 아산만방조제 지나 삽교호에 닿은 것이 아침 9시.안개가 산과 들 가득하다.삽교호 방조제는 한쪽 담수 한쪽 바다인데,올라보니 둘 다 끝간 곳 모를 안개에 덮혔다.


박대통령 궁정동 비화 이야기하며,아산 당진 서산 태안반도 들어가는 도로변 집들은 凌宵花 붉다.충청도 원산지답게 집집마다 능소화 담에 올렸고,초록 산에 시선 던지면 산나리 원추리꽃 보인다.


솔로몬의 영화보다 향기롭다는 백합이지만,나는 그 사촌 산나리를 좋아한다.진주 망경산 험한 절벽에 산나리가 많았다.절벽 타고 내려가 꽃을 따 한 소녀의 집 탱자울 너머로 던지곤하던 시절이 있었다.


길가 원두막에서 겉은 해병대 얼룩무늬,속은 호박색 개구리참외 사서 싣고 태안반도 꾸지나무골로 갔다.중앙일보에서 본 그곳은 숲 빽빽히 들어선 작은 灣에 백사장 곱고 파도가 조용했다.


I wandered lonely as a cloud

That floats on high o'er vales and hills,

When all at once I saw a crowd,

A host,of golden daffodils;

Beside the lake,beneath the trees,

Fluttering and dancing in the breeze.


워즈워즈 ‘水仙花’ 시 같은 줄 알았다.그러나 와보니 사람들 텐트 치고 벅적거리는 돗데기시장이다.

‘이거 보러 오자캤나?’

오사장이 비아냥거린다.


She lived among the untrodden ways

Beside the springs of Dove,

A maid whom there were none to praise,

And very few to love;


‘너는 이런 시 모르제?’

법조문 외우다 나온 법대 출신 매부리코를 나는 英詩 암송으로 쭁크 놓았다.


바닷가 비포장길 돌아나오는데,동네 이름들이 즐급다.

음포,보지3리,사창리라 써붙였다.즐급자고 한 여행,우리 두 가족은 맘껒 낄낄거리며 웃었다.


학암포 일대는 해수욕장이 여나문개나 되는데,

“똑닥선 기적소리 정든 꿈을 싣고서... ”

만리포 입장하니,수족관에 우럭 농어 도다리 꽃게 장어 멍게 해삼 많고,하늘엔 인명구조 헬기가 뜨있고,바다엔 수상안전 보트 다니고,라우드스피커에선 해상안전 수칙 시끄럽게 방송한다.

비치파라솔에 앉아 아이스크림 먹으며 눈 앞 온통 벗어제친 청춘들의 나신을 구경했다.후에 여기다 작은 GIFT SHOP 하나 내면,좋은 눈요기하며 재미있게 살겠다.


만리포서 능선 하나 넘으면 천리포요,또 능선 넘으면 백리포다.호수에 수련 가득하고,정원에 보라색 옥잠화 만발한 수목원이 있다.천리포에  이 수목원 세운 사람은 벽안의 외국인이라 한다.


소형 그랜드캐니언같은 해변에 옥같은 조약돌이 파도에 영롱하게 씻기고 있는 波濤里란 곳에 가서 밀려오는 파도에 발 적시며 해옥 줍는 재미도 좋았다.


점심은 안흥에서 먹었는데,1.5K 육만원짜리 우럭회 싱싱하고,따라나온 해삼 멍게도 바다냄새 짙다.젓갈과 생선 파는 좌판과 횟집 너머로 갈매기 날고,바다엔 통통배 파도를 가르고 있었다.


몽산포 가자,경택이 이 친구 또 사람 김새게 만든다.

“아니 백사장은 없고 전부 뻘밭이잖아?”

당구공만한 커다란 눈 껌벅거리며 날 쳐다본다.

날더러 어쩌란 말인가?썰물이면 갯벌 나오는 서해 아닌가?


그는 추억이 없다.나는 여기 삼십대에 온 적 있다.

비서실 미스 全과 세살백이 내 딸 데리고 조개 캐던 곳이다.

“새파란 수평선 흰구름 흐르는.오늘도 즐그워라 조개잡이 가는 처녀들.”

나는 그때 노래와 끓인 조개탕 생각나는 몽산포요,오사장은 뻘밭만 보이는 몽산포다.


송진 냄새 풍기는 붉은 키다리 적송 사이로 난 길 따라 안면읍으로 가니,당시는 돈 없어 버스 타고 갔고 지금은 그랜져 타고 간다.미스 전은 지금 두 아이 엄마 되었고,흔들리는 버스에서 그리도 깔깔거리던 딸아이 벌써 대학생이다.


안면도 최남단 영목서 태풍이 남해 상륙했다는 뉴스 듣고 돌아나오다가 우회전하여,‘현대’ 간척지 가니,감홍시같이 붉은 해가 끝없는 지평선에 걸려있다.

어리석은 서생들아 학벌 자랑마라.강원도 통천 촌사람 정주영이 만든 땅 한번 보아라.초기에 서울서 쌀장수한 그 사람 배포가 이렇게 크다.


어두워 수덕사 옆 덕산온천호텔에 여장 풀고,우렁이 된장국 한그릇 먹고 방에서 온천했다.

바닷가 민박이 삼만원인데,호텔 숙박비가 수상하게 이만오천원 이다했더니,그 값 한다.에어컨은 덜덜덜 소리만 나고,바람 안나오고,모기 때문에 찜통방에서 모기향 피우고 잤다.‘인적없는 수덕사에 밤이 깊은데...’가 아니라,모기 날개짓 소리에 신경 곤두세운,신경질나는 밤이었다.


아침 7시,수덕사 입구에 차 세우고,꼬불길 기념품 가게 사이로 일주문 올라가니,경내 고목들이 반갑다.한바퀴 도량을 도니,요사채 옆에 수덕각시 대리석 조각이 서있다.


백제시대에 절 중창불사를 하는데,한 아릿다운 처녀가 스스로 공양주가 되겠다고 자청하였다.신라의 젊은 부호가 이소문 듣고 佛事에 많은 돈 희사하여 드디어 회향했는데,청년이 수덕각시에게 함께 내려가 결혼해 살자고 청하자,옷 갈아입고 오겠다며 가서는 바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관음보살 화신 ‘수덕각시’ 전설이다.수덕사는 백제시대엔 수덕각시,최근엔 ‘청춘을 불사르고’ 쓴 신여성 일엽스님과,이응로 화백이 새긴 암각화 바위 옆 수덕여관서 평생 남편을 기다린 한 여인의 프라토닉 사랑이 있다.


수덕사 바로 밑 절동네 아침이 원더풀이다.

한정식 9천원짜리 床은 더덕 취나물 두릅 고동 굴비 등 맛깔나고,나무 밑에 깐 평상에 부는 바람 시원하고,물소리 좋다.

밥 떨어지자 한그릇 더 드시라는 충청도 인심도 좋다.땅부터가 유순하고 각박한 데 없다.


개운히 먹고 예당저수지 가니,드넓은 바다같은 호수에 좌대 낚시배 수십척 뜨있으니,밤엔 수면 가득 비치는 밤낚시 불빛 낭만적이겠다.


간에 좋다는 구귀자 유명한 청양 지나.‘콩밭 메는 아가씨 베적삼 다 젖는다는’육감적인 노래있는 칠갑산 가니,勉庵 崔益鉉 동상이 있다.

안내문에 한일합방 후 순창에서 의병활동하다 체포되어 대마도 끌려가자,“내가  원수의 밥 먹고 살겠느냐.너희들은 살아 돌아가 나라 구하라”고 제자에게 권하고 단식하다 돌아가셨다고 써있다.


예까지 와서 부소산 낙화암 않보고 갈 것인가?

부여 皐蘭寺 약수터 위에 유명한 皐蘭이 자란다.그러나 강바람 촉촉하고 이끼는 푸른데,부여 사람들은 무얼했는가?입장료만 천원이지,정작  고사리처럼 생긴 고란은 반쯤 시들어 몇포기 초라하게 바위에 붙어있다.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삼천리 한 김삿갓의 호가 蘭皐다.그가 이 볼품없는 고란 보면 만감 교차하리 싶다.

‘조직배양이라도 해서 고란 좀 살려놓지.’

우리는 불평 좀 하였다.


유명한 서예가 孫在馨의 고란사 현판을 썼고,백마강은 蘇定方이 백마를 미끼로 용을 낚았다는 강이다.그러나 삼천궁녀 꽃처럼 떨어진 낙화암  강물은 지금 모래바닥이 다 보인다.


백마강은 흘러 금강이 되고,금강은 장항 군산 사이로 서해에 든다.

군산 남쪽은 만경 김제 두 평야요,바다는 고군산군도와 대청도 품고있다.넓은 평야,좋은 바다,魚肉 풍부한 곳이다.


작정하고 부안 가서,읍에 3백억짜리 종합상가 짓는 회사 현장소장 불렀다.

‘상무님 우찌 미리 기별도 안하시고...’

‘자네는 근무 중이고 나는 휴가 중.한가지만 물어보고 갈란다.부안서 유명한 음식이 뭐고?’

‘백합탕과 붕어찜 입니다.’


그가 안내한 곳은 부안서 변산 가다가 돈지란 곳에서 계화도 있는 오른쪽으로 꺽으면 바다를 메운 큰 호수가다.연잎 가득핀 호수 앞에 붕어찜 집 있었다.


이태리 하면 마카로니,스위스는 치즈,독일은 맥주,프랑스는 포도주,미국은 햄버그 코카콜라,일본은 사시미와 오뎅,중국의 탕수육 빼갈이다.

음식은 그림 음악 이전의 원초적 문화요,요리는 예술이다.팔도 여자 중에 전라도 여자 손 거치면,된장 김치 젖갈 튀각 구이 찜 떡 술 모두 왜 예술이 되는지 나는 모른다.흔한디 흔한 채소도 전라도 여자 손맛 보태면 맛 다르다.5천년 내려온 문화로 음식을 보아야 한다.그 명맥 유지 위해서 전라도 여자 몇은 인간문화재 지정해야 한다.

3만원짜리 붕어찜,월척 붕어 두마리가 원체 커서,각각 다른 커다란 접시에 담겨나온다.물엿 걸죽한 양념漿이 붕어에 덮은 그 모습,서울선 10만원 줘도 구경 못한다.


모처럼 會心의 음식 만났는데,이 무신 조화랴!

미식가는 생선 중 민물생선 더 선호하고,민물 중 월척 붕어를 최고로 친다.그런데 오사장은 붕어찜이 달짝지근하고 황토내 난다고 트집 잡으며,젓가락 대지도 않고,부인들은 사근사근한 전라도 김치만 판다.하늘은 나에게 이 무슨 횡재를 주시는고!

나는 황토내 물씬한 진짜 붕어찜을 방해 없이 유유자적하게 독식했다.그것도 두마리씩이나 월척으로.


변산 가니,새만금 간척공사로 군산까지 둑 쌓고 있다.변산해수욕장은 백사는 곱고 넓은데 사람 없고,격포해수욕장은 멀리 뻗은 串의 부드러운 곡선이 환상이다.

책 쌓아놓은듯한 채석강 斷厓 보니,건너편 중국 채석강에서 달 건지다 물에 빠진 이태백 생각난다.전망대 오르니,풍부한 어족 품은 바다는 일망무제,고슴도치같이 생겼다는 蝟島도 보인다.


냉커피 한잔 마시고 줄포로 갔다.

줄포만 건너편은 고창 선운사다.바다 끼고 줄포만 도니,변산반도가 바위산 많아,물 맑고 폭포 좋다.

영화배우 李아무개가 서해 낙조와 줄포 일출을 다 볼수있는 곳에 별장을 지어놓았다.


왕포와 족당마을 지나 ‘거시기’란 묘한 상호의 보신탕집 지나니,곰소 나온다.

곰소는 젓갈 집산지라,집마다 드럼통에 새우젖 갈치내장젖 오징어젖 황새기젖 멸치액젖 쌓아놓았다.얼음공장도 있고,찻길 낀 동네 전체가 젖갈집이다.


고창은 시골이지만,풍수 좋아 인물 많다.서정주 신석초 시인,김상만 김상협 진의종 총리 셋 배출한 곳이다.

덕유 마이 내장산에서 흐른 맥이 서해 入首 전에 名堂 名穴 많이 품었다.


불교신문 기자 시절,자주 만났던 서정주 선생 기억났다.세상은 바뀌었다.인촌 김성수 집 마름 아들 미당은 시인으로 이름 떨치고,인촌은 친일파로 몰리고 있다.


선운사 산새도호텔 특실방 두개를 얻어놓고,覆盆子술과 풍천장어 시켰으나.복분자술은 밍밍한 소주맛이고 풍천장어는 가짜였다.


그러나 익일 아침 절 동네 둘러보다가 뜻밖의 물건 얻었다.

‘靑藜杖’.

임금이 칠순 넘은 노신하에게 하사했다는 지팡이다.비름나물 줄기로 만든 청려장은 가볍고 단단하다.

그걸 사자,노인이 ‘청려장 내력을 아느냐?’며 무척 반가워한다.옛 책에나 나오는 이 청려장 아는 사람 요즘 드물다.

나는 이걸 사와서 지금 내 서재에 세워놓고 있다.아무래도 짚고 나가면 사람들이 좀 티내는 사람으로 볼 것이다.


未堂선생이 감탄한 선운사 대웅전 뒤 동백숲 구경하고,수백년 묵은 느티와 측백나무 하늘 가린 길에서 살칡 한잔 마시고,미당 詩碑 읽어본 후,전주로 날랐다.


비빔밥 한그릇 때우고,전주 시내 지나가니,古都라 골동가게 많고,藝鄕이라 멋떨어진 사군자 서화 팔건만,운전하는 매부리코는 일편단심 차를 진안으로 몬다.


馬耳山 말귀처럼 생긴 두 봉우리는 비행기서 내려다 보면,영락없이 두무릅 세우고 누워있는 여인 모습이라,거기 거시기 아래 동네 여인들은 문란하다는 풍수설이 있다.


장수에서 오사장이 사둔 임야 7천여평과 논개 출생지 돌아보고,가을 단풍이 물들면,바위 위에 붉은 치마 두른듯하다는 무주구천동 赤裳山城 차 안에서 구경만 하고,영동에서 경부고속도로 탔다.

고속도로 타는 순간 여름휴가는 끝났다.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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