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고향 가는 길

김현거사 2016. 9. 5. 06:07

고향 가는 길

 

  

  여행길 나서면 나는 항상 차창 밖의 풍경을 보느라고 정신이 없다. 

 그 중에서 고향 가는 길은 3시간 넘게 걸리는데, 풍광을 보느라고 한번도 지루해 한 적 없다. 준수한 봉오리, 부드러운 능선, 광활한 산록, 강물, 구름, 시골 동네는 모두 내 즐거움의 대상이다.

 나는 이런 것 어느 하나 허투로 보지 않는다. 봉우리가 바위로 되었으면 바위의 기상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핀다. 능선을 보면 그 부드러운 품속에 들어가서 한 없이 헤맨다. 광활한 산록을 보면 거기 걸리는 면사포같이 부드러운 아침 안개와 밤하늘 비추는 달빛을 생각한다. 강물을 바라보면 아름다운 강마을과 나룻배를 상상하고, 산마루 넘어가는 구름을 보면 끝도 시작도 없이 흘러가는 인생을 생각한다. 문득 한가한 시골 동네가 나타나면 거기에 작은 초막을 짓고 감나무 사과나무 심고 도연명처럼 생활하는 공상에 잠기곤 한다.

  

 어쨌던 그 모든 것은 굳이 마원(馬遠)이나 황공망(黃公望)의 산수화일 필요는 없다. 고갱이 타히티행을 감행하기 전에 그린 '아를의 마을'일 필요도 없다. 풍경은 화폭 속의 그림보다 더 생생하다. 눈을 감탄케하는 살아있는 그림이다.

 봄철에 산록 곳곳을 울긋불긋 물들여 사람을 감동시키는 산벚꽃은 도대채 어느 천재화가의 작품일까. 복숭아꽃 진달래꽃 만발한 사이로 뻗은 그윽한 오솔길은 또 누구의 작품일까. 그 끝에 보일락말락 운치 그윽히 나타나는 작은 시골집은 또 어느 작가 작품일까. 파릇파릇 버들잎 피는 물 위로 흘러가는 흰구름, 그 밑을 유유히 헤엄치는 오리는 어느 남종화가가 그린  작품일까. 

 나는 매번 그런 생각을 한다. 풍경에서 그림을 보고, 그림에서 풍경을 읽는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산수화라 할지라도 그림 보다 자연에서 더 영감을 얻는 편이다.

 

 

 고향 가는 길에 제일 먼저 눈여겨 보는 곳은 안성이다. 거기는 그걸 지평선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끝없이 넓은 들판이 있다. 그 들판 가운데를 유유히 흘러가는 실개천이 있다. 나는 봄이면 소를 몰고 그 실개천 안개 속의 둑을 거닐고 싶다. 여름이면 걷어부치고 개천에서 유리 어항으로 피리와 모래문지를 잡고 싶다. 가을이면 밤에 그 넓은 들판 위로 쏟아지는 별들의 장관을 바라보고 싶다. 가만히 들판에서 우짖는 노고지리 소리를 듣고싶어서, 여기저기 돋아난 봄나물 뜯고 싶어서, 나는 당장이라도 안성에 이사가야지 하는 생각을 하곤한다. 가서 들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높은 아파트에서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금산을 지날 때는 잠두마을이란 곳을 눈여겨 본다. 거긴 산태극 수태극으로 덕유산과 마이산에서 발원한 금강이 굽이쳐 흐르는 마을이 있다. 강은 S자 형으로 굽이쳐 흐른다. 대진고속도로를 통과하면서 보면, 강이 먼저 나타나고 그 다음에 따뜻한 양지쪽 강마을이 보이고, 그 다음에 물에 비친 기암절경이 보이고, 그 다음에 섬처럼 생긴 산과 절벽을 마주한 강이 보인다. 잠시 동안에 강이 세개나 지나간다. 나는 여길 지날 때마다 창 밖으로 사라지는 안타까운 강 풍경을 보느라 항상 눈이 바쁘다.

 집에 돌아와 그 근처를 컴퓨터로 검색을 해보기도 한다. 근처에 홍도마을이 있다. 봄이면 복숭아꽃 가로수가 별유천지 이루는 이채로운 곳이다. 강변 산책길이 너무나 정답다. 점점이 물들인 벚꽃이 아무도 모르는 강변에 피었다가 홀로 지는 모습이 너무나 목가적이다. 거기 물가에 나지막히 엎드린 다리가 있다. 여름에는 그 위에 누워서 물소리 듣고 산들바람 씌기 좋은 곳이다. 가을이면 거기서 살찐 피래미를 낚을 수 있을 것이다. 그곳은 대전에서 한시간 거리라, 언젠가 꼭한번 친구들과 복숭아꽃 핀 홍도마을을 가보리란 생각을 하곤 한다. 

 

 무주 적상산(赤裳山)도 지날 때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다. 산은 깍아지른 기암절벽인데, 단풍이 마치 붉은 치마를 입힌듯 하다 해서 붉을 적(赤)자에 치마 상(裳)자가 들어간 것이다. 언젠가는 고향 다녀오는 길에 경사가 위험한 그 산을 차를 몰고 올라가본 적 있다.

 적상산 정상엔 강화도 마이산의 정족산성(鼎足山城)과 함께 우리나라 5대사고(史庫) 중 하나인 적상산성이 있고, 큰 호수가 있었다.

 한때 이 적상산에 기인이 살았다. 그는 죽염으로 유명했던 김일훈옹의 동서로 두 사람이 한번 만나면 하루밤 새에 마신 소줏병이 마당 가득히 쌓였다고 한다. 적상산은 산도 기이하고, 사람도 기이하다. 그런 곳에 가서 언제 꼭한번 이태백이나 두보의 시를 밤새 읽으며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든 모습을 구경해야 한다고 생각하곤 했다.

 

 서상을 지날 때면 뒤로 덕유산 연봉과 앞으로 지리산 연봉이 보인다. 그 광활한 풍경은 볼 때마다 사나이 가슴에 불을 지른다. 저런 산세를 아침 저녁 보고살아야 남자가 웅혼한 기상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 가운데 우락산이란 산이 우뚝 솟아 있는데, 북에서 우락산을 정남으로 바라보는 곳에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영어를 가르킨 박성순 선생님 고향집이 있다. 어느 가을 선생님이 마을회관에 돼지를 잡아놓고 남강문학회 회원 수십명을 초청한 적 있다. 그때 가보니 선생님 생가엔 작은 초당이 있고, 마당에는 수백년 된 감나무가 홍시를 조롱조롱 달고있었다. 초당에는 어머님을 기리는 작은 현판이 붙어있었다. 효가 인간의 근본인데 시인은 이런 산수 맑은 곳에서 성장하여 시 이상으로 아름다운 효심을 지녔지 싶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감탄하는 산세가 펼쳐진다. 지리산이다. 긴 육십령터널을 지나면 지리산이 나온다. 이 지리산을 보면 이젠 고향에 다왔구나 하고 생각한다.

 이 지리산에서 흘러온 강물이 소년시절 내 혈관 속을 흘렀다. 내 고등학교 교가 첫구절은 '지리산 높이 솟아 우리의 기상'으로 시작된다. 운동장 조회 때마다 나는 토끼 귀처럼 나란히 생긴 눈 쌓인 지리산 중봉과 상봉을 바라보곤 했다. 

 지리산의 특징은 높고 웅장한데 있다. 이 지리산의 골은 한없이 깊고, 바위는 한없이 크고, 물은 한없이 맑고, 구름은 한없이 희고, 능선은 한없이 부드럽고, 나무는 한없이 우람하다.  산아래 인심은 한없이 순박하다. 이런 모든 것이 서울 근교의 산과 다르다. 

  지리산 중산리란 곳은 곶감철이면 곶감 재료인 단단한 감을 제외한 홍시는 얼마던지 따먹어도 동네 사람 누구하나 간섭하지 않는 곳이다. 생초는 은어튀김이 유명한 곳이고, 거창은 한우불고기가 유명한 곳이고, 원지는 추어탕을 시키면 갈치구이 두 토막이 나오는 맘씨좋은 곳이다. 청학동과 화개동은 최치원이 신선의 자취를 찾아다닌 곳이고, 봄이면 벚꽃이 만개하는 화개장터는 전라도 경상도 사람들이 굴비와 산채 등을 물물교환한 곳이다. 함양 화림동은 선비들 음품농월한 정자가 많고, 폭포 많은 백운동계곡은 남명선생이 지리산에서 가장 경치좋은 곳이라고 찬탄한 곳이다. 

 지리산은 수많은 계곡을 품었으니, 중산리계곡, 대원사계곡, 백무동 뱀사골 피아골 화엄사 칠선계곡이 그것이고, 계곡마다 절이 있으니 대원사 내원사 쌍계사 칠불사 화엄사 천은사가 그것이다. 절만 해도 하동에 41개, 산청에 47개, 함양에 12개, 구례에 21개, 남원에 29개 등 150개가 있다. 곳곳마다 이름난 반석이 있고, 폭포가 있고, 명당이 있으니, 지리산은 그야말로 무릉도원이다.

 

 나는 서울 살면서 항상 지리산 같이 품 넓은 생각을 가진 큰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순박한 인심을 잃지말아야지 하고 생각했고, 집채만한 바위 밑으로 흐르는 지리산 계곡물처럼 맑은 정신으로 살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지리산에 뿌리내리고 자란 약초처럼 한없이 영험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지리산은 나를 가르킨 스승이었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기도한 기도처였고 의지처였다. 그래서 은퇴한 후에 시간이 돌아가자, 뜻 맞는 친구들과 지리산의 절들을 하나 둘 참배했고, 계곡들을 찾아갔고, 친구가 사는 중산리에 인삼과 복숭아나무 심어보기도 했다. 

 나는 항상 차에 지관들이 쇠(鐵)라고 부르는 패철(佩鐵)을 넣고 다니며 그걸 꺼내 방위를 살펴보고, 땅의 좌청룡 우백호는 어떤지, 앞산과 뒷산의 형세는 어떤지, 물은 어디서 발원하여 어디로 흘러가는지 살펴보곤 했다. 노년에 고향의 인걸은 자최없이 사라졌지만 산은 마음의 고향이었다. 

 간혹 지리산 꿈을 꾸곤 했다. 천석고황(泉石膏肓)의 지경에 이른 것이다. 꿈에 지리산의 좋은 반석, 좋은 샘, 길지나 명당을 찾아갔고, 맘에 드는 바위나 소나무를 발견하여 기뻐하다가 꿈을 깬 적이 한두번 아니다. 

 

 이 지리산을 지나면 남강 상류란 팻말이 보인다. 곧 진양호가 보인다. 진주에 도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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