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기고 글

판소리 춘향가/격월간 <현대문예> 2016년 4월

김현거사 2016. 2. 17. 15:25

   판소리 춘향가

                                                                                                                       김창현

 

  몇해 전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판소리를 들으며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만약 연출가라면 판소리는 섬진강에서 꼭 한번 연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저멀리 푸른 갈대밭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하얀 백사장은 달빛이 비치고 있다. 강 위로 배 한 척 흘러오고 있다. 배 위엔 한 여인이 서 있다. 그는 머리에 옥비녀 끼고, 흰 저고리 붉은 치마 받쳐입고, 손엔 합죽선 쥐었다. 수심어린 눈동자 고요히 들어 지리산을 바라보고 있다. 강바람은 살랑살랑 옷자락 흔드는데, 달은 강물에 비치고, 멀리 물새가 나르는 모습 보인다.

 배가 화개장터에 이를 즈음, 어디선가 대금소리 들려오기 시작한다. 거문고 소리와 바이올린처럼 부드러운 생황소리 난다. 뱃머리의 앉은 한복 노인 세 분이 저마다 악기를 켜기 시작한다. 이때 월하미인(月下美人)이 해당화같은 붉은 입술을 열어 창(唱)을 시작한다. 목소리는 한이 배였고, 가락은 애절하다. 

 

 마침 추석 앞 둔 노천극장엔 달이 떴고, 남산서 부는 바람은 시원하다. 막 오르자, 사회자가 국악계의 거인 안숙선을 소개하였다. 근세 명창에 권삼득 송만갑 임방울 김동진 이화중선 박초월 박녹주가 있다. 그러나 판소리도 오페라처럼 노래하는 사람 모습 보면서 감상해야 되는데, 아쉽다. 그 분들 득음(得音)의 경지 넘어선 '소리'는 남았으되 녹화된 모습은 없다. 그리고 다행이 안숙선은 남아있다.

 무대에 선 안숙선의 몸매는 쥐면 한 줌에 쥐일듯 가날프다. 가날픈 몸매 어디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먼저 단가(短歌) 뽑으니, 혹은 맑고 청아한 '소리', 혹은 사람 애간장 녹이는 슬픈 '소리', 혹은 아래배에서 뽑아올리는 걸쭉한 '소리'가 분위기를 흔든다. 판소리 외길 50년간 쌓은 적공(積功) 엿보인다. 탁! 부채 펼치는 손동작, 사뿐히 돌아서는 발동작, 가슴 속 한을 허공에 던지는 시선이 예술이다. '태'의 진수가 그를 통해서 제대로 전해짐이 다행이다. 

 

 단가 끝나자 본무대 펼쳐진다. 그 유명한 '사랑가' 다.

'사랑 사랑 내사랑이야 어허둥둥 니가 내사랑이야. 만첩청산 늙은 범이 살진 암캐를 물어다가 놓고서, 이는 빠져 먹지는 못허고, 어르르릉 어흥 어루는듯, 북해 흑용이 여의주를 물고 채운(彩雲) 간에서 넘노난듯, 저리 거거라 가는 태를 보자, 이만큼 오너라 오는 태를 보자꾸야. 너는 죽어서 버들 유(柳)자가 되고, 나는 죽어서 꾀꼬리 앵(鶯)자가 되어, 유상앵비편편귀이로다. 가지마다 놀거덜랑 니가 난 줄 알으려므나. 너는 죽어서 종로 인경이 되고, 나는 죽어서 인경채가 되야, 아침이면 이십팔수, 저녁이면 삼십삼천, 그저 뎅뎅 치거더면 니가 난 줄 알으려므나. 너는 죽어 이백도홍 삼춘화란 꽃이 되고, 나는 죽어서 범나비 되야, 네 꽃송이를 덤뿍 물고 너울너울 춤을 추거덜랑 니가 난 줄 알으려므나. 사랑이야 내사랑이로구나 어허 둥둥 네가 내 사랑이야.'

 

 사랑가는 이도령이 춘향에게 보내는, 요즘 말로 세레나데다. 구구절절 간절한 정이 시원한 폭포수 내리쏟듯, 관중의 마음 속을 뚫어준다. 남녀칠세부동석이던 옛날 이다. 이 장면이야말로 청중의 마음 속 갈증 대리만족 시켜주는 청심환 이다. 그 다음은 대담하다.  

 

 '애! 춘향아 말 들어라. 밤이 매우 깊었으니 어서 벗고 잠을 자자.' '도련님 먼저 벗으시오. 매사는 쥔이라고 하니 쥔 너 먼저 벗어라.' 도련님 거동 보소. 우르르르 달려들어 춘향의 가는 허리 예후리쳐 덤썩 안고 옷을 차차 벗길 적에, 저고리 벗기고, 바지 벗기고, 버선마져 뺀 연후에 덤쑥 안아 이불 속에다 훔쳐넣고, 도련님도 훨훨 벗고  둘이 끼고 누웠으니, 좋은 호(好)자가 절루 난다.'

 

  질펀한 춘사 장면 나온다. 젊잖던 선조들 앞에서 이 무슨 음담패설일까. 그러나 판소리 기원을 생각해보면 금방 수긍간다. 판소리 기원은 무가(巫歌)다, 광대의 소학지희(笑謔之戱)다. 판소리는 과거 급제 후 광대(廣大) 재인(才人) 불러 3 일유가(三日遊街) 할 때, 급제 홍패를 앞에 놓고 부귀 빌던 홍패고사(紅牌告祀)에 초대되던 악극이다. 시골 장터 짚씨 낭인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던 아리아다.

 

 '사랑' 다음은 '이별'이다. 사랑 나눈 후 서울 가는 이도령이 오죽 원망스러웠을까.

 '내 몰랐소 내 몰랐소 도련님 속 내 몰랐소. 도련님은 사대부요 춘향 나는 천인이요. 일시 춘흥을 못이기어 잠간 좌정 허였다가 버리난 것 옳다하고 나를 떼랴고 허옵신되, 속 모르는 이 계집은 늦게 오네, 더디 오네, 편지 없네, 손을 잡네, 목을 안고 얼굴을 대니, 짝사랑 외즐그움에 오직 보기가 싫었겠소?

 속이 진정 저러시면 누추한 첩의 집에 오시기가 웬일이오? 책실에 있으시어 방자에게 일장 편지 거절한다고 하였으면, 젊은 년 몸이 되어 살자살자 하오리까? 아들 없는 노모를 두고 자결은 못하겠소. 독수공방 수절타가 노모 당고 당하오면, 초종 장례 뫼신 후에 소상강 맑은 물에 풍덩 빠져 죽을런지, 백운청산 유벽암자 삭발도승 되올런지, 소견대로 내 할텐디, 첩의 마음 모르시고 금불이요 석불이요 도통하려는 학자신가? 천언만설 대답이 없으니 이게 어디 계집 대접이며 남자의 도리신가?'

 

 자고로 이별 원망않는 처자 어디 있던가. 춘향의 이 강짜 더 실감나게 돋워주는 추임새는 고수의 장단이다. 퉁타당 장고소리 빨라진다. '얼씨구' '그렇치' '좋다'  청중 감탄사 여기저기 터진다. 판소리는 노래하는 창자, 북치는 고수, 그리고 청중, 이 삼자가 만드는 참여예술이다. '사람 헌장 허것구만.' 장바닥에서 막걸리로 얼굴 불콰해진 누가 이렇게 거침없이 한마듸 고성을 내지른다고 누구 탓하리. '어따 그 양반 목소리 한번 억세게 크네.' 누가 큰소리로 토를 달아도 상관없다. 이것이 판소리다. 왁짜하니 한바탕 술렁대야 마당극은 제대로 된 것이다. 

 

 이별 다음은 시련이다. 시련의 백미(白眉)는 ‘쑥대머리’다. 이른바 춘향이 '옥중가(獄中歌)’다.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 옥방(獄房)의 찬자리에 생각나는 것은 임 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 낭군 보고지고. 오리정 이별 후에 일장서를 내가 못봤으니, 부모봉양 글 공부에 겨를이 없어서 이러는가. 손가락의 피를 내어 사정으로 편지헐까. 간장(肝臟)의 썩은 눈물로 임의 화상을 그려볼까. 이화일지춘대우(梨花一枝春待雨)에 내 눈물을 뿌렸으니, 밤비 내리는 문전 애끓는 소리 비만 와도 임의 생각. 가을비에 오동잎 질 때 잎만 떨어져도 님의 생각, 푸른 물 속 연꽃 따는 아가씨와 뽕 따는 여인네도 날보다는 좋은 팔자, 옥문 밖을 못나가니 뽕을 따고 연 캐것나. 내가 만일에 도령님을 못보고 옥중고혼이 되거더면, 무덤 근처 섯는 나무는 상사목이 될 것이요, 무덤 앞에 있는 돌은 망부석이 될 것이니, 생전사후 이 원통을 알아줄 이가 뉘 있더란 말이냐.' 

 

 춘향이가 매 맞고 쑥처럼 무성히 자란 봉두난발로 옥중에서 탄식하는 부분이다. '햄릿은,'to be,or not to be.that is the question.'으로 시작되는 독백이 유명하다. 춘향가라면 이 쑥대머리가 유명하다. 구구절절 가슴 아픈 춘향의 옥중 탄식은 오필리아의 탄식보다 더 애절하다. 이 장면에서 청중은 침을 꿀컥 삼키며, 쥐죽은듯 숨 죽인다. 내가 판소리가 흘러가는 달빛 속 돗단배에 몸 싣고 들어야 맛깔 나겠다는 이유 여기 있다. 판소리는 이슬 젖은 별빛 아래서 들어야 제 맛 난다. 그래야 민초의 가슴 속 한이 산동마을 산수유처럼 붉게 익어 톡톡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시련’이 끝에, ‘재회’가 온다. ‘어사또 출두’다.
 '어떤 패랭이 쓴 젊은 사람이 질청으로 뛰어오며 ‘어사또 출두요’ 외치자, 동헌이 들썩들썩, 공방 불러 재물 단속, 신칙 사정 불러 옥쇠를 단속, 남원 성중이 떠는구나. 각 읍 수령 겁을 내어 탕건바람 버선발로 대숲으로 도망가고, 본관(本官)은 넋을 잃고 골방으로 들어가며, 통인은 목을 안고 날 살려라 날 살려라. 불쌍하다! 관노사령 엎어지고 상투 쥐고 도망치며 난리났네. 역졸이 수령 좌석을 뭉치로 쎄려부시는데, 금병(金甁), 수병(繡屛), 산수병과 대합, 쟁반, 술그릇, 왱그렁 쟁그렁 깨어지고, 거문고, 가야금, 생황, 세피리, 젓대, 북, 장고가 산산히 깨어진다. 각읍 수령 도망할제, 운봉영감은 도장 담는 주머니를 상 밑에 넣어두고 술을 먹다가 느닷없이 ‘출두야!’ 하는 바람에 상 위 수박덩이를 번쩍 들고 도망가고, 곡성 원은 겁결에 기생방으로 들어가 기생 속곳이 자기 도복(道服)인줄 알고 훌렁 뒤집어쓰니, 바지가랑이 사이로 곡성원님 대그빡이 쑥 나왔지. 운봉 영감 거동 보소. 한참 도망허다 봉께 말 한 마리 있는지라, 겁결에 말을 거꾸로 타고 '아이고 이 말 좀 보아라. 운봉으로는 안가고 남원으로 부두둥 부두둥 가니, 암행어사가 축지법도 하나부다.' 운봉 하인 여짜오되, '말을 거꾸로 탔사오니 바로 타시오.' '아이고 이놈아 언제 돌려타더란 말이냐? 말 모가지를 쑥 빼 똥구녕에다 쑤셔박아라!'
 

  허둥지둥 넋 빠진 수령 방백 모습 나온다. 청중은 벼슬아치가 기겁하면 할수록, 코믹하면 할수록, 즐급다. 카타르시스 느낀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로구나 무릅을 탁! 치며, 희희낙락 기뻐한다

 춘향가는 <사랑> <이별> <시련> <재회>로 나눠, 기(起), 승(乘), 전(轉), 결(結)의 완벽 구성인데, 그 중 어사또 출두가 백미다. 가장 슬픈 대목에서 가장 기쁜 결말로 급히 바뀌는 것, 이를 소설에서 극적반전(劇的反轉)이라 부르는데,  춘향전의 ‘어사또 출두’야말로 극적반전의 원형이다. 

 극 끝나자 관중은 무대의 배우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우렁찬 박수 소리에 안숙선 명창이 무대에 세번이나 다시 나와서 얌전히 절하고 들어갔다. 오페라 '춘희(椿姬)'의 프리마돈나가 생각났다. 그러나 춘향가는 안숙선 혼자 치러낸 오페라인 점이 놀랍다. 

 흥겨운 마음으로 수런수런 돌아가는 사람들 머리 위에 달도 밝고, 마음도 중추(仲秋)의 달처럼 밝다. 춘향전은 역시 고전 중의 고전이구나 싶었다.

 

원 고 청 탁 서

   

()한국지역문학인협회에서 발간하는 격월간현대문예가 통권 83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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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간 심 윤 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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