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기고 글

명상이란 무엇인가/동방문학 2014년 10월호

김현거사 2015. 3. 31. 05:38

 

       명상이란 무엇인가

 

   나는 한 때 불교신문 기자였다. 그때 제법 참선 관련 책 모우는 일, 선(禪) 이론가 만나는 일에 신경을 썼었다. 천축사(天竺寺) 무문관(無門關) 토굴에서 10년 면벽한 경산스님, 역경원장으로 팔만대장경 한글 번역 주도한 춘원 이광수 사촌형 운허스님 인터뷰 등 보고 배운게 많았다. 서경보스님 선(禪) 관련 책 신간안내 해주고 소위 그 분의 선필(禪筆)도 많이 받았고, 포교사실 무진장스님 책상에 놓인 석부난을 보고 그 멋도 배웠다. 요즘은 전설적 고승이 된 불교신문 근무한, 광덕, 법정, 월주, 설조스님은 아침저녁 뵈었으니 그것도 복이고, 내가 조계종 회의실에서 결혼식 할 때 총무원장 석주스님한테 친필 휘호를 받았으니 그것도 복이다.  

  

 이처럼 선지식 싫도록 만나보고, 선문답도 해보고, 선방도 많이 탐방했으나, 그러나 지금 누가 나에게 참선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모른다고 대답한다. 썩어도 준치라고 절 밥 먹었으니, 뭔가 할 말이 있긴 있지만, 참선이란 것은 모른다. 그것은 입으로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이다.

 

  그런 사람이 속세로 나와 기업체서 어영부영 하다가 어느 날 퇴직이라는 걸 했다. 나이 들자, 지난 날 계속 불교 공부 못한 것이 좀 후회되던 어느날 이다. 나는 한 지식인을 만났다. 그분은 시인으로 어떤 문학지 발행인 이었다. 내가 그 잡지에 수필을 실은 인연으로 삼각지에서 식사를 하다가 그가 '주머니 속의 명상법'이란 책을 냈다는 말을 들었다. '명상'이란 무엇일까. 남이 은장도 차니, 나는 식칼이라도 차고 싶었다.

 그래 출판기념회에 가서 '주머니 속의 명상법'이라는 책을, 마치 옛날 애인 모시듯 모시고 와서 읽기 시작했다. 명상의 방법, 목적, 효과, 자세 등을 읽으며 만단회포 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일이 잘 풀릴려고 그랬던 것 같다. 간혹 내가 그 방에 들어가 심호흡(深呼吸) 하던 방이 명상하기 딱 좋은 방이었다. 이런 걸 복 많은 과부는 앉아도 요강꼭지에 앉는 격이라 한다.

 아파트 단지 제일 뒷동 그 방은, 뒤에서 항상 맑은 바람이 불어온다. 북향에 공원부지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방에 법정스님이 애용한 나무의자같은 걸 하나 갖다놓고, 거기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간혹 명상실습도 해보았다. 우선 높이가 아파트 7층에 달하는 버드나무를 바라본다. 그를 명상의 벗으로 정했다. 상호 나이 70 쯤 되었으니 서로 의지할만 했다.

 나무는 항상 수많은 잎새 앞 뒤로 펄럭이면서 청풍을 보내준다. 흔들리는 잎새에 눈을 고정시킨채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 처음에는 서늘한 바람이 반바지 차림의 내 허벅지와 팔의 잔털을 쓰다듬는다. 호흡으로 서서히 청량감을 몸으로 들이면, 그때 내 몸은 버들처럼 푸러러진다. 

  새소리 듣는다. 까치와 뻐꾹새가 운다. 휘파람새도 운다. 새소리는 숲을 더욱 고요케 한다. 산 속 정취 불러온다. 일부러 청하지 않는데, 새는 울고 나무는 푸르다. 이걸 선미(禪味)라 한다.   

  그래 나무잎에 눈 씻고, 새소리에 귀 씻는 그 방 이름을 이번에 아예 '명상의 방'으로 정해버렸다. 서재에 계시던  부처님도 아주 이삿짐 옮겼다. 향로와 향과 함께 방을 옮겼다.

 

 그 부처님은 한 손을 펴서 앞으로 내밀고 있다. 손 끝을 위로 향하여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시무외인(施無畏印) 하고 있다. 한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약병을 쥔 약인(藥印)을 하고 계신다. 나도 향을 피워놓고 부처님처럼 자세를 잡는다. 손바닥을 편 채 좌정하여, 명상에 잠긴다. 향냄새 그윽한 그 자리는 싣달타 태자가 명상한, 동쪽에 니란자나 강이 흐르고, 위에 보리수 나무 가지 드리운 그 자리는 아니지만, 고요한 것은 사실이다. 

  때는 새벽도 좋고, 한밤도 좋다. 비오는 날도 좋다. 사위가 잠든 고요한 밤엔 총총한 별 보고, 비 오는 날은 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본다. 가끔 새벽안개 속에 고요를 마신다.

 

 명상이란 무엇인가. 백과사전에는, '영적인 자각이나 신체의 평정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적혀있다. 최근 의학 및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명상요법은 치료에 임하기 전 맥박과 호흡을 조절하는 데 효과 있고, 편두통·고혈압·혈우병 등의 증상을 억제하는데 효과 있다'고 나와있다. 

 반야심경 외워봐야 아무 소용 없다. 명상 없으면 모두가 나무아미타불이다. 불교의 알음알이는 의심의 대상을 음식물 저작(咀嚼)하듯이 잘근잘근 씹어삼켜야 제대로 자리 잡는다. 이것이 명상이다.

 

 나 같이 은퇴한 사람이 제대로 할 일 찾은 것이다. 남아 넘치는게 시간 아닌가. 나는 아침에 직장 나간다고 서둘 일 없고, 밖에 나가 남과 싸울 일 없다. 그냥 조용히 집만 지키면 된다. 인근에 손바닥만한 땅 하나 빌려 채소 심고, 식탁에 스스로 키운 고추 상추 푸성귀 올려 검소함을 즐긴다. 간혹 약수 뜨러 가고, 주말이면 막걸리 한 잔 놓고 친구와 떠들다 온다. 이런 경우에 권장할만한 일이 무엇이겠는가.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선들 새지않겠는가. 산에 가서 하는 일도 참선이다. 

 약수터 갈 때는 '참선 보행'을 한다. 거금도 송광암 스님에게 배운 것이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모두 선(禪)이니, 걷는 것도 선이다. 허리 펴고 심호홉 하면서, 욕심 버리고 보폭은 짧게, 발뒤꿈치가 땅에 닿게 천천히 걷는다. 물소리, 바람소리 듣는다. 마음은 공중새가 날라 가듯, 되도록 자취 없이 만든다. 이런 보행이 우리 몸과 마음을 치유해준다고 생각한다.

 

 산에 들면 거기 내가 항상 앉는 장소가 있다. 굴참나무 밑의 작은 바위다. 바위는 위가 편편하여 앉으면 무척 편하다. 휴식이란 말에서, 휴(休)자를 쪼개면, 사람 인(人)변에 나무 목(木)자고, 식(息)자의 구조는 스스로 자(自) 밑에 마음 심(心)자다. 휴식은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서 자기 마음 위에 앉아보는 행위'다.

 거기 굴참나무 아래서 나는 마고(麻姑)선녀를 기다린다. 마고선녀와 물소리 듣고, 나무 잎 사이 푸른 하늘 흰구름 보고, 풀잎 흔드는 시원한 바람을 쐰다. 핏삐리삐리핏, 삣쭁삣쭁 우는 새소리 듣는다.

 어디 수십년 된 산도라지가 있고, 굵기가 사람 허벅지 같은 칡이 있고, 어디 산뽕나무 열매가 열렸는지 나는 마고에게 묻는다. 어느 노송 아래 영지가 있고, 땅속에 복령이 있는지 그가 대답한다. 어느 계곡에 그걸 복용하면 기억력 되살려주는 석창포가 자라고, 머루 다래 주렁주렁 열렸는지 알려준다.

 

  원래 명상의 대상은 일정하게 정해진 바가 없다. 그래 나는 산에 가면 주로 마고선녀를 대상으로 삼는다. 불교 쪽으로는 제법무아(諸法無我)를 화두 삼아 애용한다. 제행무상(諸行無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  '삼법인(三法印)' 중, 제행무상은 우리 중생도 모두 아는 소리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무상이라 하고, 태어나고 변하고 죽는 모든 현상을 무상이라 한다.

 

  우리 몸은 무엇인가.

 몸의 세포는 끓임없는 생멸을 반복한다. 매일 일정량 세포가 죽고 다시 생긴다. 위장세포 수명은 2시간 30분이며, 백혈구 수명은 48시간이다. 우리는 7년마다 완전히 새 세포로 태어난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생각은 찰라에 생기고 없어진다. 찰라란 번개불같이 빠른 시간이다. 어제 생각 오늘 생각 아니고, 오늘 생각 내일 변한다. 일정한 것이 없다. 마음이 일정하지 않는데, 나란 무엇인가. 제법무아(諸法無我)다. 내가 없는데, 성낼 일 무엇이며, 괴로울 일 무엇인가. 생노병사 희노애락에 흔들릴 이유, 명예에 집착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사실 나는 그동안 집에서, 산에서, 텃밭에서, 혹은 버스나 전철에서 늘상 심호흡을 해왔다. 허리 곧추세우고, 가늘고 긴 심호흡을 옆사람 모르게  즐겨왔다. 심호흡은 심신을 고요하게 만들고, 안정시키는 묘약임을 이미 알고있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 '주머니 속의 명상법'이란 책을 만난 것이다. 그건 약수터서 만난 약수같다. 가득 담아 등에 지고 하산하는 일이 신이 난다. 그래서 생각해본다. 이제 내가 바랄 일은 무엇인가. 선승처럼 깨달음을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근기가 모자란다. 그저 '명상의 방' 하나 만들고 명상 즐기는, 얼굴 고요히 늙어가는 백발노인 될 일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