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기고 글

촉석루의 봄/수필문학 3월호

김현거사 2015. 3. 13. 14:11

 

    촉석루의 봄

 

                                                                                                                   김창현

 

  매년 개나리 진달래는 봄을 열고, 목련꽃은 봄을 닫는다. 해마다 오는 봄이지만, 세월이 갈수록 봄이 아쉽게 느껴진다. 작년에는 친구와 부부 동반으로 하동 섬진강, 거제 지심도 매화, 동백꽃 여행 다녀왔고, 올해는 아내와 진주성의 봄을 구경했다.

 천객만래(千客萬來)라 써붙인 제일식당 해장국으로 배를 채우고, 중앙시장을 어정거리며 인근 산야에서 뜯어온 돈나물, 고사리, 두릅, 당귀를 구경했다. 일곱 마리에 5천 원하는 삼천포 갈치를 보니 우선 값이 싸 반갑고, 그 옆 조개와 해삼은 오십 년 전 내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 보던 그것이라 반갑다.

 술 담그는 것이라며, 빨간 진달래 꽃잎을 대바구니에 쌓아 놓고 파는 할머니도 보인다. '이거 묵우면 무루팍이 튼튼해진다'며 쇠무릅팍 뿌리 파는 아줌마도 있다. 어쩌면 감자는 분이 그렇게 하얗고 푸실푸실하게 먹음직하게 쪄있고, 옥수수는 어찌 그리 알갱이가 크고 먹음직스러울까.  

 고향은 파는 물건도 정답고, 투박한 사투리 쓰는 사람도 정답다. 언제 귀향하여 이 아침장 매일 볼 수 있을까.

 걸어서 촉석루로 가니, 그 밑에 고태 가득한 석류나무 한 그루가 있어, '아리땁던 그 아미 높게 흔들리우며,그 석류 속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수주 변영노의 시 생각나게 한다. 

 누각 아래 고려 때, 김지대 진주 목사가 상주 목사 최자에게 보낸 시가 있다. 

 

'작년에 자네가 진주 목사로 떠나는 나를 전송해주더니만,

금년에 당신도 태수가 되었구려.

상주의 시내와 산도 신선의 고을 같지만,

진양의 풍월도 선향이라 이를 만하네.

비록 두 고을의 거리가 멀어서 추석에 만나자는 약속은 어겼으나,
이번 중양절에는 만나서 국화주를 마시도록 약속하세.' 

 

'하모! 그렇치. 평양이 부벽루(浮碧樓)라면, 진주는 촉석루(矗石樓) 아닌가.' 나는 속으로 김목사 풍류에 깊은 공감을 느꼈다.  

 신발 벗고 누각에 오르니, 강 건너 망진산은 울긋불긋 벚꽃동산이고, 곁의 의기사(義妓祠)엔 논개의 충혼 의미하는 매화와 오죽(烏竹) 심어져 있다. 의암(義岩) 내려가는 절벽에는 야생 복숭아꽃 분홍빛 곱다. 두보의 '강이  푸르니 새 더욱 희다'는 시 생각이난다. 남강은 '대밭이 푸르니, 모래밭 더욱 희다.' 

 촉석루 둘러보고, 서장대 가는 길 포구나무, 느티나무 거대한 나목이 새잎 돋고 있다. 성벽 위를 덮은 부드러운 잎들은 초봄 푸른 하늘에 파릇파릇한 물감을 한 방울씩 풀어놓는듯 하다타향에서 몇번이나 이 고향의 노거수가 그리워 생각에 잠겼던가.

 공원길에 심어진 분재처럼 잘 생긴 무궁화 나무도 눈여겨 보았다. 무궁화는 행주대첩, 한산대첩과 함께 임진란 3대 대첩지 진주성 같은 곳에 심기 알맞는 나라꽃 이다.

 성곽길에 진주성 전투에 사용했다는 천자총통 지자총통 현자총통이 놓여있다. 대포의 사정거리가 대략 일천 미터라, 따닥이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이 바다에선 거북선의 이 포에 당하고, 육지에선 진주성에서  또한번 호된 맛을 보았다. 그래서 왜놈들이 '요시 너희 진주 놈들 나중에 한번 보자.'고 절치부심하였을 것이다. 후퇴하면서 병력을 집중해서 진주성을 공격하여, 이 때 진주 관민 칠만이 전원 순국했고, 개는 왜장을 안고 남강에 꽃다운 몸을 던져 천추에 그 행적을 남겼다.

 아름다운 잔디 길 걷노라니, 담장과 지붕 골기와 보수 공사 중인 호국사 옆, 차나무와 맥문동 심은 언덕길이 나온다. 박물관 뜰에는, 대절 버스로 온 인근 초등학교 아이들이 웃으며 뛰어다닌다. 나도 저들처럼 한때 웃으며 뛰놀던 시절 있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오솔길에는 떨어진 동백꽃이 여러 송이다. 낙화는 인생 무상을 느끼게 한다. 나는 그 꽃 한 송이 집어 40년 세월을 함께 보낸 아내 손에 쥐어주었다. 

 서장대(西將臺) 능선엔 연분홍 진달래꽃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현판 글씨는 은초(隱樵) 정명수 선생님 글씨다. 은초선생은 아버님 친구분으로 아버님 임종시 반야심경을 손수 쓰시어 노구임에도 불구하고 경기도 안양까지 찾아오신 분이다.  단아한 선생의 글씨 보며, 그 분도 이미 고인이신 걸 생각하며, 가슴 뭉클했다. 대 아래 푸른 보리밭 덮혔던 신안동 들판은 아버님이 태어나신 곳이다. 이젠 현대, 한보,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다. 강 건너 소년이 다이빙 하고 놀던 언덕은 그 아래 봄물만 넘실거린다. 사람은 가고, 세월도 가고, 이제 칠순 바라보는 자식만 홀로 백발로 선 것이다.

 어릴 적 친구 소식 아득하고, 촉석루엔 무심한 꽃만 다투어 피어있다. 언제 다시 그리운 그 날을 기약하랴. 남강 푸른 물 위에 뜬 돚단배 하나 나처럼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