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기고 글

9월이 오면/지구문학 2014년 가을호

김현거사 2015. 3. 31. 05:27

     9월이 오면

 

 

   단풍에 이슬 맺히면 9월이다. 아침 저녂이 서늘하고, 거리의 악사, 풀벌레는 가을노래 부른다. 금빛 혹은 붉은 빛으로 물든 가로수는, 이브몽탕의 샹숑이 된다.

  이때 문득 가로수 밑 여인에게 눈길이 간다. 가을을 밟는 하얀 맨발이 차급다. 푸른 비단신 눈부시다. 썬글라스에 지난 여름 추억이 묻어있다멜랑꼬리한 가을이 온 것이다.  

 년륜이 애수를 더하기 때문일까. 나는 가을이면 은백 머리칼의 여인을 그려본다. 

그들은  요일로 치면 토요일 금요일에 해당된다. 이미 지난 날은 올 날보다 많다. 그때 그들 눈빛은 더 그윽하다. 머리칼이 강변에서 손을 흔드는 하얀 갈대 같다.

  9월이 오면, 나는 혼자 가로수 길을 걷고 싶다. 그 길에서 그런 여인을 만나고 싶다.

 가능하면 그와 어느 노천 카페 의자에 앉으리라. 

 학처럼 여윈 어깨가 보일 것이다. 그 위에 걸친 하얀 스카프가 보일 것이다. 작은 우산이 꽃힌 슬로진 잔을 앞에 놓고, 우리는 지난 여름을 회상할 것이다. 저 하늘 흰구름처럼, 저 파도 위 돗단배처럼, 끝없이 나가던 우리의 젊은 시절을 회상할 것이다. 

 종로, 명동에 있던, 르네상스, 쎄씨봉, 뉴월드, 아폴로, 돌체, 디쉐네 같은 음악실 이야기부터 시작할 것이다. 한번 입장료 내고 들어가서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있어도 누가 귀찮게 하지않던 그 당시 이야기를 하리라. 

 에디트삐아프의 샹숑을,  LP판으로 듣던 낫킹콜의 부드럽던 음성을 회고할 것이다. 

세월이 가면 여인은 작고 여위고 가늘어진다. 다시 소녀로 돌아간다. 하얀 손목은 세월의 강물에 떠내려온 작은 막대기다. 그 손으로 잔을 만지작거리며 그가 혹시 종이장 같은 엷은 입술로  '벤쳐스 악단의 '9월이 오면'이란 곡을 가만히 읊조릴지 모른다. 밀물처럼 밀려오던 그 안타깝던 아쉬움을 표현할지 모른다.

 우리는 진을 마시며, '쉘부르의 우산'과 '가방을 든 여인'을 이야기 할 것이다. 까뜨린느 드뇌브와,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소피 마르소, 그레이스 켈리 이야기도 할 것이다.

  파스텔화 같이 부드럽던 젊은 시절로 돌아가서 잠시 행복할 것이다.  

 속물로 살아간 그 후의 날들 이야기도 하리라.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종교도 신도 없이 걸어온 그 황량했던 시간을 이야기 할 것이다. 새벽에 연탄불 갈아끼우던 일, 만원 뻐스, 단성사. 피카디리, 허리우드, 스카라극장, '별들의 고향' 경아 이야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두사람 다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지난 날이 고달프고 외롭던 것은 사막의 카라반과 다름 없었다. 오아시스는 멀고, 신기루는 없었다. 대양을 항해한 선원과 다름 없었다. 지친 항해 체험과 피곤한 일상이 돌아온 우리의 유일한 것이었다.

우리는 그 동안 체념을 배웠고, 고독을 배웠다. 눈빛이 고요해졌고, 옥같던 피부에 세월은 깊은 홈을 파놓고 가버렸다.

 우리는 바람에게 묻고 싶을 것이다. 외로운 휘파람 소리를 어디서 배웠느냐고. 낙엽에게 묻고 싶을 것이다. 허무한 그 허공의 춤을 누구에게 배웠느냐고.  

  우리는 한 때 세상일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가 였지만, 이제 시제(時制)는 모두 과거완료형이다.  현재가 없다. 우리는 한약국 천정에 주렁주렁 매달아놓았던 약봉지가 되었다. 이제 아무도 찾지 않는다. 

 우리에게 남은 건, 첩첩 산중 달빛같은 고요, 물 빠진 바닷가 조개껍질의 고독 밖에 없다.  

  그런 밤, 그의 몸에선 나무 냄새가 난다. 나는 하얀 자작나무 같은 그에게 질문할 것이다. 외로운 시간 속을 철새처럼 그렇게 멀리 비행하고도, 아직도 그대에게 그리움이 남아있냐고. 은은한 은행나무같은 그에게 물어볼 것이다. 아직도 그대에게 생각나는 사람이 있냐고. 

 뜨겁던 우리의 여름은 아무도 모른다. 우리만 서로의 고독을 애수를 안다. 그래서 길모퉁이 낙엽이 서로 몸을 비비며 서걱거리듯, 우리도 서걱거리고 싶어 만났다.  

  밤이 깊어 우리는 헤어질 것이다. 빈 잔만 우리 앞에 놓여있을 것이다. 우린 이미 이별의 명수다. 헤어진 사람, 생사로 갈라진 사람 때문에, 우리는 이미 많은 잔을 비운 적 있다.

 우리는 숱한 영화 속 이별도 보았다.

  '다시 살더라도 이런 시간은 오지 않을거요. 이런 확실한 감정은 꼭 한번 오는거요.' 우리는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의 그 대사를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한 사진작가와 감정 없는 남자와 살았던 한 유부녀의 이별을 보았다.

  전쟁 중 헤어진 두 남녀가 재회한 '릭'의 카페에 울리던, 그 애상적 피아노 곡을 기억하고 있다. '카사불랑카' 활주로를 이륙하는 미국행 비행기 뒤에 남겨진 남자의 담배연기를 기억하고 있다. 

 확실히 그런 감정은 흔치 않은 것이다. 그건 소중한 감정이다.   

 그러나 우리는,'안녕!'하고 헤어진다. 낙엽처럼 흩어진다.

  우리는 자정 넘은 전철을 탈 것이다. 우린 70년대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라고 속으로 생각할 것이다. 또한편, 세월이 가도 이야기 나눌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기도 할 것이다    

 살아있다는 일은 감사한 일이다. 낙엽은 그리 생각한다. 

 그래서 9월이 오면, 도심의 페이브먼트에서, 나는 한 여인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