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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4

김현거사 2015. 12. 17. 10:27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4

 

 두보(杜甫)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 했지만, 나는 인생 칠십에 희대의 사기꾼 둘 만났다.

한번은 비서실에 아는 분이 찾아왔다. 

'이국장님 아니십니까?'

'어. 김기자! 여기 근무하시는가?'

 불교신문 업무국장 하던 이 모라는 분이다. 둘은 헤어진지 십여 년 지난 터다. 반갑게 인사하고 접객실로 모셨더니, 용건이 희한한 것이다. 이철희 장영자를 아느냐는 것이다. 내가 있는 회사에 3백억을 4%로 대출해주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은행 금리 10% 하던 시절이라, 4% 대출이면 6% 남는다. 엄청난 제의다.

 웟선에서 통치자금을 우리 회사로 배정했다고 한다. 하기사 미국같은 나라는 반도체가 우주 항공 산업과 첨단무기 제조 밑바탕 된다고 국가가 도움 준다는 말은 들었다.

 이국장은 독실한 분으로 종정은 물론 총무원장, 신도회 등 불교계서 모르는 사람 없던 사람이다. 장영자를 신도회서 만난 모양이다. 장영자는 대통령 영부인 이순자씨와 친하다. 전두환 대통령 처삼촌 이규광씨 처제다. 배경은 믿을만 했다. 그러나 그런 공돈이 그쪽에 아무 치성 들이지않은 우리에게 떨어지긴 어렵다.

 그러나 손님은 의심 가는 말이라도 긍정하는 체 이런저런 이야기 다 들어주는게 예의다. 그래 듣자하니, 아무래도 우리를 낙점한 이유를 알 수 없다. 특히 마지막 대목, 노회장을 시청 앞 롯데호텔 이철희 사무실로 모시고 와서 비밀로 만나라는 대목이 이상하다. 무슨 007 시리즈인가 싶었다.

 그래 살짝,

'회장님은 년세 높은신데, 어찌 그리로 모시고 갑니까? 이철희씨가 우리 회사 옆의 워커힐 호텔로 오실 수  없습니까?'

 퉁겨보니,

'김기자! 통치자금은 그런게 아닙니다. 그건 큰 결례요.'

 딱 거절한다. 한참 오라거니 가야된다니 밀고당기었다.  생각해보니, 이미 윗선에서 정했으면, 이쪽으로 오라해도 별 탈 없다. 그래서

'이국장님! 정 그러시면 이 문제는 돌아가서 보고한 후에 상호 결론 내리지요.'

 내가 대충 연막을 치고 그를 돌려보낸 후 이 일을 회장께 보고하였다.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는데 제가 회장님이 년세 높으시어, 이철희씨가 우리 회사 옆 워커힐 호텔로 오라고 해두었습니다.'

'아니 이 사람아! 그런 중요한 일을 잠시 나와서 내 의견 물어보지, 그렇게 경솔히 처리했어?'

돈 맛은 재벌일수록 잘 안다. 일 신중하게 처리하지 못했다고 날 책망하는 걸 보니 굴러온 떡 놓친 기분 든 모양이다.  

'회장님! 저쪽도 돌아가서 보고할 터이니 더 기다려 보시지요. 웟선에서 우리에게 통치자금 결정했으면 그건 일단 결정된 겁니다. 일단 결정된 거라면, 밑 사람 맘대로 못합니다. 워커힐로 부르는 것이 옳습니다.'

 그래도 회장은 아쉬운 모양이었다. 그렇게 불편한 분위기로 딱 일주일 지나서다.

 1982년 5월 대검 중수부 발표가 신문에 났다. 장영자 부부는 업체에 조건 좋은 자금조달을 제시하고, 그 담보로 대여액 2∼9배에 달하는 약속어음을 받아 그 약속어음 할인해 또 다른 회사에 빌려주거나, 주식에 투자하는 등 방법으로 어음을 유통시키고 사기행각 벌여, 총 7,111억 원에 달하는 어음 받아내고, 총 6,404억 원에 달하는 거액 자금 불법 조성했다는 것이다.

 거덜나기 직전에 우리 회사를 찾아왔던 것이다. 나는 각 신문에 보도된 기사들 스크랩해서 여직원 통해서 회장께 올렸다. 회장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원래 조직 생리란 것이 그렇다. 일이 잘 되는 윗사람 덕, 못되면 아랫 사람 탓 이다. 이 경우 할 말 없는 것이다. 후에 이철희·장영자 부부는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 선고받고, 10여 년 복역 후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돈 밝히면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일 반복한다. 나는 그걸 누차 경험했다. 이런 일이 있었다.

그 때도 청와대 특혜자금 이야기 심심찮게 나돌던 때다. 사람들은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재수 좋아 청와대 돈과 연결되면 누군가 횡재한다고 믿었다. 대부분 기업은 자금이 어려워 어음 발행하고, 제2 금융권은 '꺽기'라고 해서 미리 10%를 예금으로 남겨두고 돈을 주던 때다.

 비서실에 김 모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남묘호랭겟교' 절실히 믿는 자였다. 회장 조카인데, 키가 팔 척이고 인물 잘 생긴 자였다. 그는 한 때 회사가 어려울 때 뭔가 회사와 관계가 나빠져, 본관 건물 앞에 침을 뺃으며 '너희들끼리 잘 먹고 잘 살아라'는 말을 남기고 나갔다가 택시사업 망하고 술집도 망하자, 다시 삼촌에게 손 싹싹 비비며 빌붙은 사람이다. 그래 노회장에게 괄시 받으며 비서실 허드렛 일이나 하고 간혹 뒷방에 들어가 회장 안마나 하던 자다. 

 그러나 나보다 입사년도 빠르고, 나이 네 살 위고, 회장 조카 신분인지라 뭔가 내게 불만 많던 모양이다. 비서실에서는 남달리 실장님 실장님 고분고분 굴던 친구가, 딴 부서에 가기만 하면 곁의 남을 의식하여 곧잘 전화로 나에게 반말하던 친구이다

 그가 청와대 사칭 사기 조직을 만난 것이다. 몇 백억을 거의 공짜로 준다는 말에, 그는 그 사기꾼 만나도록 인도해준 '남묘호랭겟교' 부처님 앞에 아마 무릅 꿇고 눈물이라도 흘리며 두 손 모았을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물 만난 고기였다. 관례는 실장에게 보고한 다음에 회장께 보고하는 절차다. 그러나 그는 실장 무시하고 회장실로 직행했다. 공로를 실장과 상의하기 싫기 때문이다. 아침 출근하면 실장한테 인사하는 것도 빼먹었다.

회장님도 재미있는 분이다. 일제시대부터 파란만장한 세상 살아온 그는 세상은 때론 엉뚱한 횡재도 있다는 걸 경험한 사람이다. 만에 하나 가능성 있다면 시도하는 사람이다.

 회장은 날이면 날마다 김을 끼고 돌았다. 둘은 독립운동하는 애국지사처럼 소근소근 목소릴 낮춰 밀담 나누곤 했다. 그들은 런던 부둣가 희미한 등잔불 아래서 럼주 마시며 보물섬 꿈꾸는 선장과 선원 같았다. 서로 쳐다보는 눈빛이 의미심장 했다. 김은 어쩌다 사기꾼 전화 오면 신이 나서 궁둥이 바람 일으키며 외출했고, 비싼 요정에서 그를 접대한 영수증을 가져오곤 했다. 간혹 '국모님'이란 단어를 쓰기도 했다. 대통령 영부인 이순자 여사를 그리 부르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두어 달 지났을 때 이다. 수차례 모의가 끝난 모양이었다. 회사의 등기부등본, 대차대조표, 부동산 목록을 넘긴 모양이었다. 그러나 법인 인감, 회장 개인 인감은 취급이 복잡하다. 인감 보관한 금고는 열쇄가 세 개 있는데, 하나는 경리 담당 중역, 하나는 기조실, 하나는 내가 보관하고 있다.

 그동안 나는 사기꾼의 신원파악을 좀 해놓고 있었다. 총무부장 시켜 그의 육사 동기인 종로서장 통해 그가 별 몇 개 단 전과자임을 확인해놓았다. 또 S대 회계학 교수인 회장 막내아들에게도 청와대 비자금 제공 제의가 왔다는 정보도 입수했다. 우리 어디가 이쁘다고 청와대서 비자금 줄려고 두 군데나 선을 넣어 접촉하겠는가? 이쯤이면 결론은 뻔한 것이다.

 그런데 사기범은 김을 통해서 몇가지 서류를 받자, 자신감 얻은 모양이다. 이번엔 직접 나에게 전화했다. 

'청와대 지시인데 계열사 N 사장과 긴급 연락 필요하니 연결해달라'

는 것이다.

'그걸 그 쪽 비서실에 연락하시지 왜 여기로 합니까?'

그러자 반응이 걸작이다.

'이봐! 비서실장 당신 이름 뭐야?'

 내사 왕년에 청와대 가서 육영수여사 만난 적 있다. 높은 분 주변 사람들 그런 고압적 언사 안쓴다. 번짓수 잘못 짚은 것이다. 

'실례 합니다. 그 쪽 신분 확인이 않돼서요. 청와대 전화번호를 주시면 이쪽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전화를 꺼버렸다.

그러나 문제는 법인 인감 개인 인감이 그들에겐 필요했다. 그게 있어야 은행 상대로 사기를 칠 터이다. 며칠 뒤 다시 전화가 왔다. 날더러 인감 보내라고 협박한다. 그러나 그럴 바보 천치 어디 있겠는가? 이 참에 나간 회사 등기부등본, 대차대조표, 부동산 목록이나 회수해야 한다 싶었다.

'그럼 모일 모시에 비서실서 만납시다.'

이렇게  어느 토요일 오후, 비서실에서 만났다. 온 사람 관상을 척 보니, 매일 다방 출근해서 레지 붙들고 음담패설이나 하고 지내는 그런 관상이다. 달걀 노른자 넣은 모닝커피 먹고, 점심이면 호주머니가 텅 비는 그런 족속이다. 그런 사람일수록 허공에 그림 그리는 정보만 많다. 다방족 부풀린 이야길 듣고 요정 접대한 김 모의 안목이 한심할 뿐이었다.

 그가 정문에 도착했다는 전화 받고 미리 수위실에 연락해놓았다.

'비서실 찾아온 손님 무슨 차 타고왔소?'

'택시 타고 왔습니다.'

'그럼 내가 나중에 전화하면 무조껀 네! 모두 와있습니다 하고 크게 복창만 하시오.'

덪에 걸린줄 모르고 접객실에 마주앉은 사내는 007 가방을 들고 왔다. 그러나 오십대 꾀쬐쬐한 몰꼴, 분위기가 벌써 틀렸다. 나는 확신 가지고 그에게 물었다.

'명함 있소?'

'극비라서... ...'

이쯤에서 할 말 해야한다.

'극비 좋아하네. 자네 오늘 큰 집 갈 준비하고 오셨나?'

그러고 정문에 전화 걸었다.

'정문이요? 거기 형사들 다 왔소?'

'네! 전부 다 왔습니다.'

'알았소. 잠시 대기시켜 주시오.'

전화기 쾅하고 놓고 그에게 물었다.

'어이! 선생 서류 내놓고 맘 편히 걸어나가던지, 아니면 두 손 은팔찌 차고 경찰 따라 가던지?'

 사내는 이 말 듣자 손수건 꺼내 이마의 땀부터 딱았다. 007 가방 열더니 그간 가져간 서류 내놓고 혼비백산 쥐새끼처럼 사라진다.

그 뒤가 재미있다. 내가 자초지종 회장에게 보고했더니, 회장이 부회장에게 이야길 한 모양이다.

'김** 그 녀석 들어오라고 해.'

부회장은 MIT 박사인데 덩치 조그만 사람이다. 돈이란 무엇인가? 팔척 장신 앞에 세우고 이 자식 저 자식 한참 삿대질 하며 고성 지른다. 그런 반가운 소린 몇 달 만에 처음 들어본 것이다.

 또하나 싫찮은 일 있었다. 수사관이 김 모를 불렀다. 검찰이 청와대 사칭 사기단 수사에 착수하다가, 전문 사기단 몇 개 파 검거한 것이다. 피해자는 중소기업 재벌 등 다양했다. 사기단은 기업에서 서류 빼내는 조직,  은행에서 돈 빼내는 조직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도둑 놈 제발 제린다. 피해자측 출두는 사실 아무 일 없다. 그러나 그때 검찰 출두 통보 받고 얼굴 노래진 김 모 얼굴은 잊히지 앉는다. 

 며칠 뒤 일간신문에 검찰 측 기사가 실렸다. 중톱으로 본사 이름도 실렸다. 일개 비서실 부장이 어떻게 회사 등기부 등본 등 서류를 외부 유출시켰겠냐, 회장 허락 있었겠지, 하는 항간의 소문 파다했다.

 그 후 김 모는 문책 사임시키자는 의견이 많았으나 살아남았다. 그 후론 상관께 고분고분한 옛날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