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중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5

김현거사 2015. 12. 9. 10:20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5

 

 최근 조계사에 피신했던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 일로 옛 일이 떠오른다.

 그는  지난 11월 14일 전교조 등 53개 단체 이끌고, '이석기 석방하라, 국정원 해체하라, 박근혜 정권 퇴진하라”는 구호 외치며, '청와대 쳐들어가자’며 세종대로에서 경찰 버스 차벽(車壁)을 밧줄로 끌어당겨 무너뜨린 후, 각목과 쇠파이프 휘둘러 경찰관 113명 다치게 하고, 경찰 버스 50여대 파손을 주도했다.

 40년 전에도 노조가 있었다. 1970 년대는 전국섬유노조, 마산수출자유지역, 80년은 구로공단 남화전자, 81년은 청계피복노조가 유명하다. 그 뒤 반도상사, 콘트롤데이타, 해태제과, 동국제강, 삼화방직, 대한모방, 서통, 대성모방, 대동화학, 영창악기, 경동산업, 일신제강, 태양제강, 원진레이온, 부산파이프, 원풍모방, 동일방직, 서통, 영창악기, 인천제철, 대우중공업, 대우조선, 대우자동차, 부산파이프, 울산의 현대 노조가 유명했다. 

 내가 있던 회사도 노조가 있었다. 그들도 쇠파이프와 각목 유행했고, 머리에 붉은 띠 두르고 '아침 이슬' 합창했고, 현장 점거로 생산 지연시켜 경영진 애 태웠다. 그 때도 굿판에 꽹가리패 데리고 찾아와 이념교육 시키는 외부 불순 세력 있었다.

 노조가 날 잡아 파업 선언하면 우선 사장 눈빛이 달라진다. 평소는 재벌 아들에다 박사니 세상 부러울 것 무엇이겠는가. 잘난체 하던 오만한 그 눈에 어두운 그늘 덮히고, 평소 하인처럼 대하던 사원 대하는 태도 금방 공손해진다. 중역회의에 오는 중역들은 비 맞은 닭이 된다. 전전긍긍 날개 접고 모여든다. 당시 인사부 책임자는 키 크고 허리 구부정한 황상무고, 그 밑 부장은 명문대 출신 키다리 김 모다. 그들이 갑자기 봉평 장똘뱅이 허생원처럼 주인 되고 중역들은 모두 그들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그들은 노조위원장 욕부터 하기 시작한다. 노조위원장 박 모는 누구도 다룰 수 없는 인물이다. 박은 모택동 전법이다. 밀어부치면 물러서고, 돌아서면 치고들어온다. 외모는 가날프나, 부드러우면서 탄력있는 고무줄 같다. 어떤 회유도 설득도 않되고, 인간적 호소도 소용없다. 박은 괴물이고, 이 세상 누구도 다룰 수 없는 불가사의 인물 이다.

 이런 노조 위원장에 대한 부풀린 인신공격은 인사부 책임 회피용 면피성 발언이다. 이런 브리핑 나오면 수 천 명 생산직 거느린 현장 중역들도 설레설레 머리를 저으며 동조한다. 그들도 간접 책임 있기 때문이다. 회의는 매번 자정 넘기고 결론이 없었다.

 회장은 출근시 회사 정문 앞에 펄럭거리는 '악덕 기업 물러가라'는 그 프랭카드가 가장 기분 나빴다. 자신은 국가 민족 위해서 첨단기술 이 땅에 뿌리 내린 애국자인데, 이 놈의 노조는 걸핏하면 자신을 악덕 기업으로 모는 것이다. 긍지를 쓰레기통에 쳐박힌 회장은 간혹 노조 대책회의에 들어가곤 했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의 제국 안에 역적 도배가 존재함을 깨닫곤 했다. 띵똥! 정문에서 도착 신호 보내면 여비서가 1층 엘레베이타 앞에 내려가 공손하게 절하고 모셔오는 회장은 제왕이었다. 

 그를 따라 회의에 배석하던 나는 조세희가 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뫼비우스의 띠' 같은 책을 읽곤했다. 어느 날 노조위원장 직접 만나보고 싶어 총무부장에게 부탁 해보았다.

'아무도 모르게 박을 불암산 뒤 송어횟집으로 데리고 올 수 있겠소?'

'아마 어려울 겁니다.'

 이렇게 말하더니 요행히 박의 동의를 얻어왔다. 그는 여사원과 직원들에 인끼있던 육사 출신 부장이다.

'미스터 박! 오늘 우리 직장 선후배로 머리도 식힐 겸 한 잔 하러 온 것으로 생각하고, 비싼 송어회 놓고, 쓸데없는 소린 맙시다. 그냥 한 잔 하면서 노동 문제나 한번 이야기 해봅시다.'

'그러지요'

 박이 대답하자 옆의 총무부장이 토를 단다.

'실장님은 기자 출신으로 회장님 자서전 쓰러오신 분이라, 누구 눈치 보는 분 아니요. 회사에서 회장님께 직언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요.'

장단 잘 맞춘다. 

본론 들어갔다.

'미스터 박! 아담스미스 '국부론' 읽어봤소? 나는 대학 때 칼 맑스의 '자본론' 속의  임금과 자본,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 소외된 노동에 대한 구절에 공감한 적 있소. 그 책은 당시 못보게 하던 금서요.'

'저는 모릅니다.'

박은 간단히 대답했다.

'노동운동 골자는 분배의 잘못과 소외된 노동에 있다고 믿소, 우선 선배로서 살아온 이야기나 하나 해봅시다. 내가 지금 서초동 2억짜리 아파트에 살고있소. 2억 모으려면 몇 년 걸리오? 월 백 만원 저금해도 1년이면 천2백만원, 10년이면 1억 2천 아니요? 계산상 15년 걸립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매달 백만원 저축 가능한 사람 어디 있소?'

박은 듣기만 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 2억짜리 집에 살고있소. 내가 도둑질 했소? 나는 월급 봉투 내역도 읽지않는  사람이요. 돈보다 사회 정의 같은데 관심 많던 사람이요.

 그런데 그런 집이 어찌 생겼소? 교통비 담배값 아끼고 그야말로 피땀 흘려 절약한 결과요. 그리 살면서 은행 대출금 갚아나가다가 부동산 값 올라서 이제 한시름 놓았지만, 아직 은행 빚 1억 안고 사는 사람이요. 노조가 기득권이라고 겉만 보고 몰아부치는 중산층 대부분이 그렇게 악착같이 산 사람이요. 그게 배울 점이지 비난 받을 점이요?

그리고 그가 어떤 집에 사느냐고 물어보았다.

 '팔천 만원 전세집 삽니다'

 '당신은 나보단 인생 쉽게 살았구만. 사회초년생 대리가 실장인 나와 실제로 가진 돈이 비슷해요.

 나는 입주 가정교사로 대학 나오고, 조계종 회의실에서 공짜 결혼식 올리고, 서울 변두리 창동 전셋방 값 올라 해마다 이사다닌 사람이요. 이문동 언덕 꼭대기 18평 짜리 집 죽기살기로 마련한 나보단 당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당신 자신은 잘 몰라. 백 이십 만 원 짜리 집 살려고, 전세금 삼십 만원에다 배 보다 배꼽이 더 큰 은행돈 대출 받은 인생이 얼마나 고달픈지 아시오?, 출퇴근 버스 토큰 두개, 배달 도시락으로 끼니 때우던 나보단 지금 당신이 훨씬 나아요. 그렇게 이십 년 보내고, 이제 너덜너덜한 비서실장 감투 하나 얻어. 빚 1억 안고 살고있어요. 그게 인생이요. 그러니 우리끼리 분배가 어떠니, 노동의 소외가 어떠니 하는 그런 만화같은 이야긴 하지맙시다.'

  이렇게 지난 이야길 하자 박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안도감 솟은 것이다. 공손한 손길로 잔이 건너 온다. 내친김에 노사 본질도 건드려 보았다.

'사실 내가 오너 측근 아니오? 오너? 문제점 많아요. 자본의 속성이 무엇인지 아시오? 간단히 말하면 노동착취로 이익 극대화 꿈꾸는 모리배요. 그들이 회사 돈 빼돌려 비자금 만들고, 회계장부 조작하여 끼치는 회사 피해 노조와 비교할 수 없소. 그들은 고래고 당신들 노조는 피래미요. 그들 횡포 막기 위해선 반드시 사내 노조가 있어야 해요. 그러나 긍정적 측면도 있소. 아담스미스가 '보이지않는 손'을 말하지 않았소? 자본가가 있어야 끈질긴 그들 사업의욕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거요. 말하자면 그들은 이 사회에 없어선 안되는 필요악이요.

그럼 노조는 무엇이요? 대한민국 헌법은 노동3권 명시하여 보장하고 있지요? 헌법 제33조 제1항에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지요? 이게 할 일 없는 사람들이 괜히 만든 법이요? 노조는 자본의 횡포와 합법적으로 맞서 싸울 최후 보루요. 미스터 박! 당신이 그 역활 맡았으니, 투쟁이 당신 임무요.

 그러나 쥐꼬리 같은 봉급 갖고 평생 일해도 내 집 마련 물 건너갔다는 그 진부한 이야긴 하지마소. 한국  노동귀족이 미국 대학교수보다 임금 높다는 거 아시오? 일본은 왜 노조가 춘투(春鬪)라 해서 봄에만 노동운동 하는지 아시오? 순수한 임금투쟁이기 때문이라오. 영국 대처수상이 왜 union boss(노조지도자)가 파업 하려면 노조원 전체 비밀투표에 의한 동의 얻어야 되도록 법을 고쳤는지 아시오? 노조지도자가 순수한 노조  활동 이외 일로 나라 일 망치기 때문이오.

 요는 올바른 노조는 꼭 필요하단 이야기요. 그래 나는 박 위원장을 절대 편협하게 보지않소. 당신은 젊고 유능하고 회사에 꼭 필요한 존재요.

  나는 기업인에 대한 글 써볼려고 이 회사 찾아온 전직 '사회의 목탁' 이요. 회장 시키는대로만 하는 허수아비 아니요. 그러나 오너 곁에 있으니, 내 당신이 노조라고 진급에 불이익 받지 않도록 보장하겠소. 대신 당신은 파행적 노조 활동 않는다는 약속만 해주소.'

'실장님 말씀 대로라면 저 약속 하겠습니다.'

'오케이!.'

 이렇게 악수 한번으로 노사간 길이 열었다. 서로 조금 상대 배려하면 길은 있다.

 그러고보니 우린 동지였다. 가져온 돈 충분하겠다, 그날 동지 둘은 신나게 마시고 돌아왔다.

 이렇게 홀가분히 일 끝내고 회사 돌아온 뒤 였다. 회사에 대규모 쟁의가 벌어졌다. 상부인 금속노조에서 지시한 거대 쟁의였다. 나로서야 뿌려놓은 씨 있어 느긋이 지켜만 보면 그만이었다.

 인사부는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며, 시위 현장 돌아다녔다. 그리고 비상대책 회의 와서 박 위원장 욕 퍼붓기 바빴다.

 이렇게  쟁의가 일주일 갔을 때다. 박과 연락해보니 그 날이 쟁의 끝나는 날이다. 회장은 그 날도 집에 가지못하고 밤 11시 넘도록 집무실 창가에서 요란한 꽹가리 소리, 구호 소리, 회사 마당에 쌓인 집기 불타는 모습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 때 내가 슬며시 회장 옆에 갔다.

'회장님! 걱정 마세요.오늘 밤 12시에 쟁의 끝납니다. 끝나면 바로 전화 올릴 터이니 댁에 돌아가 편히 쉬십시오.'

 회장은 믿기지 않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날 나는 정확히 밤 12시에 쟁의 끝났다는 전화 댁에 드렸다. 

'자넨 그 정보 어디서 얻었어?'

노회장이 묻길래,

'정보 출처 공개하면 다음 정보 끊어집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튿날 이다. 쟁의 끝나자 사장 이하 인사부, 생산 중역들 회의실에 다 모였다. 저마다 밝은 얼굴로 지난 밤 무용담 터져나왔다. 이러쿵 저러쿵 자신들 공로 부풀리고 있었다.

'에이! 이런 쓸모없는 인간들 같으니라고.!'

 회장이 격한 목소리로 일갈하더니, 회의실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