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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김현거사 2015. 11. 16. 11:27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은퇴 후 지난 일들을 생각해볼 때가 있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C는 유공 부사장으로 있다가 우리 쪽 사장으로 영입된 사람이다. 유공은 미국 걸프사와 합작한 회사다. 평사원까지 S대 상대 법대 출신 많던 회사다. 회장 큰아들이 그와 S대 법대 동기였다. 그 인연으로 스카우트 제의가 있자, 노회장이 영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가 오면 당장 사장인 작은 아들 내보내야 하는 문제도 있었고, 대화를 해도 C는 말만 알아듣기 어렵게 하지 산전수전 겪은 회장 맘엔 들지 않았다. 까무잡잘한 얼굴과 작은 키도 맘에 들지 않던 모양이다. 그래 C의 사주에 문제가 있다며 반대를 표명하고 나섰다.

 당시 나는 회장과 생각이 달랐다. C가 우리 그룹에 필요한 인재라 생각했다. 유공 부사장이라면 국제적 감각을 가진 인물이다. 우리가 세계 속으로 뻗어가려면 이런 인물이 필요하다 싶었다. 

 사장 사주가 나쁘면 회사가 클 수 없다는게 회장 지론이다. 그래 우선 사주를 본 점쟁이를 만났다. 그의 사주는 고(孤)와 고(苦)가 중첩된 게 아닌게 아니라 께름칙한 사주였다. 그러나  S대 법대, 유공 부사장이란 경력이 욕심났다. 그래 그의 사주를 조금 변형시키기로 점쟁이와 합의했다. C의 사주는 나쁘지만, 오너의 사주와 큰 합(合)이 들어, 찹쌀궁합이라는 것이다. 철학 전공 비서실장이 이런 소릴 하자, 노회장은 찜찜하긴 했지만, 큰아들 입장도 고려해서 물러섰다.

 C가 사장으로 취임해서 먼저 한 일은 간부 교육이었다. 회사는 반도체 어셈부리 쪽 첨단 회사지만, 중역들은 대개 기계 몇 대 놓고 일하던 회사 초창기 소기업 입사자 들이다. 20년간 한 회사에 근무한 덕에 반도체 전문가이긴 하나, 안목이 좁고, 학벌이 낮았다. 이런 우물 안 개구리들을 외부강사 초청하여 위커힐호텔에서 일주일씩 교육하였다. 경영마인드와 국제적 안목을 키우기 위해서 였다.

 여기까지는 탈없이 잘 나갔다. 그러나 해가 바뀐 다음이 문제였다. 회사에 안착했다 싶은지 그가 인건비 줄인다며 간부급 30명을 짤라내겠다는 살생부를 만든 것이다. 만 명 인원 중에서 여자 오퍼레이터 9천명 빼면 남자직원은 천여명 된다. 그 중 급여가 고액인 간부급 30명을 짜른다는 것이다.

 살생부 속에는 전무도 있었고, 전직 비서실장도 있었다. 전 회사가 긴장하여 슬렁거리기 시작했고, 명단 알고싶은 간부들은 밤마다 비서실장을 왜식집에 초대했다. 그러나 사장 살생부는 혼자 비밀이었다. 사장 영입을 허락한 노회장과 그의 영입을 도와준 비서실장을 왕따 시키고 있었다. 혼자 전권 장악하여 비서실은 힘 없게 만들었다. 

  그는 그를 추천한 S대 법대 동기인 노회장 큰아들 말만 잘 이행하면 된다고 믿은 것 같다. 인사는 사장 고유 권한이라고 믿은 것 같다. 그동안  인사권 행사해온 창업주 입지를 없애버린 것이 잘못이란 생각이 없었다. 조직은 대화가 단절되면 오해가 생긴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조직은 상호 협력 못하는 혼자 똑똑이가 가장 문제인 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나는 우선 그를 찾아가 몇가지 충고를 해보았다. '숲도 건강하게 키우려면 적당한 간벌을 해줘야 한다. 그러나 사람 간벌은 다르다. 나가는 사람 입장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가령 부장급을 짜르려면 그가 창업 때부터 이 회사에서 일한 사람이니, 이 분야 전문가다. 작은 자회사 만들어 거기 사장직으로 내보내면 된다. 그가 서너명 간부들 데리고 나가면 회사는 자동으로 인원 감축했고, 또 경험 많은 사람들 제품 납품 받으니, 품질도 유지 하기 쉽고, 원가 통제할 수 있다.'는 지론이다.

 실제 나는 수요가 없어 주문 끊어진 LED 라인 부장을 그런 식으로 유도하여 작은 회사 사장으로 내보낸 적 있다. 얼마 후 LED 국제 수요가 늘어나 그와 그와 함께 나간 직원들 모두로부터 감사 인사 받은 적 있다. 관리직 과장도 포장 박스 회사 사장으로 내보내고 본사 납품권 주어 평생 직장 만들어 준 적 있다. 

 그런데 좋은 대학 나온 사람일수록 남의 말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인사권에 감 놔라, 배 놔라 간섭한 것으로 생각하는 눈치였다. 한 가정의 가장이 하루 아침에 집단 실업자 되는 참사를 서양식으로 냉정히 생각한다.그걸 책에 나오는 현대식 경영이라 생각한다.

 나는 말 먹히지 않는 이 고집불통에게 다른 과거 예를 소개했다.

 N이라는 공장장 상무를 내보내고 겪은 일 이다. 그는 회사 일이라면 몇 일, 몇 주 쯤은 공장 안에 아예 침대를 깔아놓고 일한 사람이다. 나중에 그가 사장으로 승진할 걸 공장 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으니, N 위에 모토롤라 중역이 공장장으로 온 것이다. N은 새 공장장과 트러불이 생겼고, 결국 현대전자 부사장으로 옮겨갔다. 그는 자신을 배신한 회사에 복수한다고, 회사 앞 여관에 거점을 정해놓고 기술자 수십명을 스카우트 해갔다. 직원들 전폭적 지지를 받던, 술 세고 뱃장도 쎈 그를 말릴 사람이 회사 내에 아무도 없었다. 그래 언론의 힘을 빌려 현대의 무차별 기술자 스카우트를 저지한 적 있다.

 이 소릴 듣고도 그는 오불관언이었다. 쥐 잡다 독 깬다는 말 있다. 인건비 줄이려다 첨단기술 대량 유출 사고 칠려는 듯 했다. 그는 오직 회장 큰아들만 믿었고, 자기 머리만 믿었다. 

이런 상황은 어찌 보면 노회장과 미국 큰아들이 짜고 치는 고스톱 같기도 했다. 노회장은 그동안 저임금 주면서 사원들에게, '이 회사가 누구 것이냐? 나중에 다 여러분 것이다. 영광은 여러분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 현재의 어려움을 참고 난관을 돌파하자'고 역설해왔다. 그리고 이제 아들 회장은 경영합리화란 명분 아래 낮선 외부사장 영입하여, 이들을 대량 학살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C 사장은 그들 하수인 이었다.

 내 추측이 맞는다면, 이들 아버지 아들은 멋진 컴비풀레이를 하고 있었다. 모든 왕조는 개국공신을 알아준다. 왕조가 세워지면 공신들은 작호와 봉토를 받는다. 그러나 이들 부자는 경영합리화란 명분으로 앞 뒤를 저들 유리한대로만 끌고 간 것이다.

 남명 사상 이어받은 진주 사람은 이럴 때 참지 못한다. 짜고 치는 고스톱 판을 깰 자는 누구인가? 그래 어느 날 회장실로 들어갔다.

 '회장님! 이번에 해고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이 회사 식당 벽에 걸어놓은 회장님 글씨 '신의(信義)' 액자를 떼어버리라고 야단 입니다.'  

 '누가?'

'남 전무, 박 실장 입니다.'

이들은 그간 회장이 가장 아끼던 사람들이다.

'회장님이 매년 창업기념식 행사 때마다 전 사원 앞에서 두 사람을 지목해서 일으켜 세우고, 70년대 한강이 범람한 이야길 하시곤 했지 않습니까? 공장 1층이 모두 침수되자, 회사 인근 자기 집도 침수된 사원들이 공장에 나와 바가지로 물을 퍼내고 드라이어로 기계를 말려 바이어 납품 일자를 맞춰낸 일들을 말씀하시면서, 전 사원들이 박수를 치도록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번 C 사장 살생부 명단에 그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회장님께선 알고 계셨습니까?'

이렇게 묻자 노회장은 한참 생각하더니 사장실로 전화를 건다.

'어이 C 사장! 이번 인사에 남 전무, 박 실장이 들어있나?'

 명단 올려보내라고 지시한다. 사전 상의 없었던 것이다. 이때 같이 왕따 당한 비서실장도 분풀이 했다.

'회장님!  C 사장은 회장님 경영철학을 전혀 모릅니다. 남전무도 회장님 아끼던 중역이고, 박실장은 전 회장님 비서실장 아닙니까? 창업 때부터 회장님 곁에 두고 키운 인재를 상의 없이 짜르겠다는 것은 회장님 철학을 무시한 처사 입니다.'

 철학 무시 당하고 좋아할 사람 없다.

'C 사장 영입 때 싸고 돈 자네는 그동안 뭘 했나?'

 그를 옹호한 비서실장 탓 할 때는 사장은 이미 글렀다는 이야기다. 그 말 한마듸로 상황은 백팔십도 변했다. 회장은 직관이 강한 분이다. 처음부터 C 사장 사주가 맘에 찜찜하던 참이다. 살생부 고치고, 회사 술렁거리게 하던 인사문제 끝나자, 그 후 C 사장을 짤라버렸다. 단명 사장이었다. 이 일로 나는 학벌 좋은 사람들 중 세상 일 어리숙한 자 간혹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양인모